겸재의 폭포 그림, 바위 절벽 그리기 <여산폭>

2023. 3. 19. 01:17美學 이야기

 

  • 겸재의 폭포 그림, 바위 절벽 그리기 <여산폭>


겸재 정선(鄭敾, 1676-1759) <여산폭廬山瀑> 비단에 먹, 100.3×64.2cm,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5597)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서화2실에서 2022년 9월 중순까지 공개되는 시원한 폭포 그림 한 점이다. 겸재 정선의 폭포 그림은 수도 없지만, 개성의 박연폭포, 금강산 구룡폭포, 철원의 삼부연(三釜淵)폭포 등 우리 산수를 그린 진경이 많은데  <여산폭>은 그렇지 않다.  
 


정선 <구룡폭> 비단에 담채, 29.5×23.5㎝, 겸재화첩, 독일 성오틸리엔수도원
이 화첩은 현재(2022.08)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중인데 구룡폭이 아닌 금강전도 쪽이 펼쳐져 있다. 

 


정선 <박연폭> 1750년대, 종이에 먹, 119.7x52.2cm, 개인

 
정선이 중국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에 있는 명승지 여산폭포에 직접 가지는 않았으니 기존 그림을 참고했거나 상상의 그림이다. 여산폭포가 동아시아에서 유명세를 타게 된 데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의 덕이 크다. 그의 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는 널리널리 퍼져 유명해지고 서화에서도 즐겨 다루는 소재가 됐다. 
 
日照香爐生紫煙
해가 향로봉을 비추니 자줏빛 안개가 일어나고
遙看瀑布快長川
멀리 폭포를 바라보니 마치 긴 냇물을 걸어 놓은 듯하네
飛流直下三千尺
날 듯이 흘러 수직으로 삼천 척을 떨어지니
疑是銀河落九天
이는 아마도 은하수가 구천에서 떨어지는 듯하구나.
 
삼천 척까지는 아니지만 아마도 그 규모가 대단했을 것인데 정선은 그 기세등등한 물줄기를 상상하며 화폭 중심에 배치했다. 왼쪽 위에서 중앙 쪽으로 떨어지는 식의 전형적인 포치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좌우에 이를 둘러싼 거친 절벽과 소나무의 기세를 강하게 표현해 폭포의 웅장함을 더욱 강조하고자 했다. 바위 주름과 침엽수, 활엽수의 꼼꼼한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폭포의 배경이 되는 암벽의 입체감과 질감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특징이 된 필선은 비교적 가는 붓으로 수직으로 내리그은 선들이다. 붓이 비벼지듯이 찰(擦)이 가미된 선들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간간히 가로로 찍은 태점들을 더해 밋밋하지 않도록 했다. 근경의 바위절벽은 조금 더 짙고 선의 밀도도 높다. 근경에 소나무 숲이 있는 낮은 절벽은 안정감 있는 구도에 한 몫을 한다. 
 
그림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 절벽 바위의 표현이 눈에 들어오는데 정선이 이렇게 바위를 표현하는 준법을 학계에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르지만 대체로 “수직준垂直皴”으로 부르는 듯하다. 
 
산수화의 스타일을 구분하거나 화가의 개성을 들여다볼 때 준법이 중요한 기준이 되게 마련이라서 어렵지만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양쯔강 이남의 부드러운 산세를 표현하기 위해 강남의 산수화 대가 동원(董源, 934~962)과 그 후계자 거연(巨然)은 마(麻)의 껍질(皮)을 벗겨 풀어놓은 것 같이 생겼다는 피마준(披麻皴)을 많이 썼고, 바위절벽보다는 황토절벽을 즐겨 그렸던 북송(北宋) 초의 범관(范寬)은 크고 작은 점을 비오듯 찍는 우점준(雨點皴)으로 기후가 건조한 화북지방의 황토바위를 표현했다. 
 
겸재 정선은 자신만의 산수 표현을 위해 남북종화에서 여러 준법, 필묵법을 선택해 사용했는데, 연구자들은 남종문인화에서는 습윤한 표현인 피마준披麻皴, 듬성듬성 물기 가득하게 찍는 미점米點과 태점苔點을, 북종화원화에서는 부벽준을 변화시킨 필치의 적묵법(積墨法), 편필과 직필로 그리는 소나무와 속필(빠른 필치)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다소 예리한 선으로 힘 있게 내리그어 절벽을 표현하는 정선의 바위 표현법은 중국 화보에서 보이는 어느 한 준법에 딱 들어맞지 않기에 수직준(안휘준)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정선의 특유의 준법에 대한 다른 이름으로는 수직평행선준/빗발준(김원룡), 평해수직준/난시준에 가까운 수직밀집준(최순우), 수평수직준(최병식) 등이 있다.
 
수직준은 붓을 수직으로 세워서 죽죽 내리 긋는다는 의미로 어지러이 쌓아놓은 땔감 같다는 의미의 난시준(亂柴皴), 마 줄기를 찢어놓은 것 같다는 열마준(裂麻皴)이라 부르는 준법과 비슷하다.
 
옛날 사람들은 겸재의 준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관아재 조영석은 "원백이 그린 금강산 화첩을 보니 모두 붓 두 자루를 뾰족하게 세워서 비로 쓸듯하여 난시준을 만들었는데 이 화권 또한 그렇게 되었다"라고 한 바 있다.  
 


개자원화전 난시준

 
강세황은 겸재의 한 폭포 그림에 "정선은 그가 평소에 익숙한 필법을 가지고 마음대로 휘둘렀기 때문에, 돌 모양이나 봉우리 형태를 막론하고 일률적으로 열마준법으로 함부로 그려서..."  라는 평을 덧붙이기도 했었다. 
 
그림 오른쪽에는 여산 소나무와 폭포의 기세를 찬탄하는 글을 썼다. 이백은 폭포의 기세를 은하수가 구천에서 떨어지는 듯하다고 했지만 겸재는 “주변의 소나무가 천 명의 병사들 같고, 폭포가 뿜어내는 기세가 만 마리 말이 울부짖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長松鬱立千兵列, 怒瀑急噴萬馬喧. 廬山瀑, 謙齋
높은 소나무 울창하여 일천 병사가 늘어선 듯하고
성난 폭포 급히 뿜어대니 만 마리 말이 울부짖는 듯하구나. 여산 폭포. 겸재.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3.03.17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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