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3. 03:11ㆍ美學 이야기
[조정육의 숨은 그림 찾기] 뜨거운 지구가 죽인 수컷 거북이들을 위해
- 기자명조정육 미술평론가
- 입력 2022.08.17 08:00
얼마 전 TV에서 거북이에 관한 놀라운 뉴스를 들었다. 미국 플로리다 키스제도의 해변에서 부화한 바다거북이 모두 암컷이었다는 내용이었다. 호주에서도 바다거북의 99%가 암컷이라는 통계를 내놓았다고 덧붙였다. 이런 해괴한 일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놀랍게도 기후변화 때문이었다. 바다거북은 알이 부화될 때 온도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고 한다. 동물이 수정할 때 성별이 결정되는 것과는 다른 특징이다. 바다거북은 모래에 알을 낳는다. 이때 알이 묻혀 있는 모래의 온도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 모래의 온도가 섭씨 29.7도보다 높으면 암컷, 낮으면 수컷으로 부화한다. 그런데 최근 해변의 기후가 올라감으로써 대부분 암컷만 부화하게 되었고 암수의 성비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거북이가 사라지게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궁궐에 거북이를 들인 이유
거북이는 동아시아에서 신령스러운 동물로 인식되었다. 영물(靈物)이라는 것이다. 거북이는 기린, 봉황, 용과 함께 사령(四靈)으로 꼽힌다. 사령 중 거북이만이 유일하게 실존하고 나머지는 모두 상상의 동물이다. 그만큼 거북이를 살아있는 동물 중에서 가장 신이(神異)한 동물로 인식했다.
‘십장생도 창호’는 창덕궁에서 사용한 칸막이용 창호다. 대부분의 십장생도가 8폭이나 10폭인 것에 반해 ‘십장생도 창호’는 창호의 쓰임새에 맞게 4폭으로 제작되었다. 4폭 중 중앙의 두 폭 중간 부분에는 흰색 팔각의 불발기창이 짜여 있다.(십장생도에 대해서는 본지 2696호 참조) 두 개의 불발기창 주변에는 청록색의 산과 바위, 소나무가 그려져 있고, 그 사이를 구름과 계곡물로 가득 채워 넣었다. 하늘에는 청학과 황학 두 마리가 날고 있다. 지상에는 양쪽에 각각 흰 사슴이 한 마리씩 그려져 있다. 두 마리 학이 머리를 서로 바깥쪽으로 향하고 있다면 사슴은 안쪽을 향하도록 해 관찰자의 시선이 중앙으로 머무르도록 했다. 그림 중앙 하단에는 네 마리의 거북이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그림은 2폭과 3폭을 중심으로 거의 완벽하게 좌우대칭을 이룬다. 좌우대칭은 보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 ‘십장생도 창호’는 비록 4폭이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학, 지상을 걸어다니는 사슴, 물속을 헤엄치는 거북을 통해 하늘세계, 지상세계, 수중세계를 전부 보여주었다. 사람이 접할 수 있는 모든 세계를 축원하는 그림이다.
거북이는 수중세계를 대표하는 동물이다. 네 마리의 거북이 역시 철저하게 좌우대칭으로 그렸다. 중앙의 두 마리는 고개를 뒤로 돌렸고, 뒤쪽의 두 마리는 앞을 바라본다. 육각형으로 이어진 등껍질과 목과 다리는 진한 회색에 갈색으로 채색했다. 특히 콧잔등과 다리에는 붉은색으로 포인트를 주었는데 누런빛의 뱃가죽 때문에 붉은빛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거북이는 지금 한창 물속을 걷고 있는 듯 다리 아래로는 고사리 같은 물보라가 피어오른다.
그런데 각각의 거북이 입에서는 푸르스름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른다. 서기(瑞氣)다. 서기는 신령스러운 존재임을 나타내는 기운으로 거북이는 입으로 서기를 내뿜는다고 전해진다. 조선 말기의 문신 조인영(趙寅永)은 ‘운석유고(雲石遺稿)’에서 “거북은 호흡으로써 장수한다(龜以息壽)”고 표현했다. 이런 거북이를 날마다 보고 있으면, 보고 있는 사람 역시 장수할 것 같다. 자손을 많이 낳아 번창하기를 기원한 궁궐에서 십장생의 하나인 거북이를 그린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거북이는 장수와 예지력의 상징
거북이는 단지 궁궐에서만 좋아한 동물이 아니었다.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로 사대부에서 민간에까지 그 인기의 범위가 매우 광범위했다. 거북이는 수천 년 전부터 하늘의 신하로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알려졌다. 거북이와 남생이는 구(龜)라고 하고 자라는 별(鼈)이라고 한다. 구와 별은 수명이 길 뿐만 아니라 물과 육지 모두에서 서식한다. 두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모습을 보면서 신과 인간도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거북이의 신령스러움에 대한 생각은 현무(玄武)가 사신(四神)으로 픽업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신은 도교에서 청룡(동), 백호(서), 주작(남), 현무(북) 등 사방을 호위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현무는 거북이와 뱀이 합체된 몸이다.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서도 강서대묘와 통구사신총의 현무도는 도교에 큰 관심을 보였던 고구려인들의 의식세계를 반영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중국에서는 주역의 기원으로 알려진 하도낙서(河圖洛書)에 거북이가 등장한다. 하도낙서는 하도와 낙서를 더한 말이다. 하도는 복희씨(伏羲氏)가 다스리던 전설시대에 황허강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그려져 있었다는 그림이고, 낙서는 하(夏)나라의 우(禹)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낙수에서 나온 신령스러운 거북이의 등에 쓰여 있었다는 글이다. 복희씨는 하도를 보고 팔괘를 그렸고, 우임금은 낙서를 보고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지었다고 한다. 홍범구주는 천하를 다스리는 법이자 근본원칙이다. 모든 위정자들이 선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정치 이념이 담겨 있다.
거북이의 등에 쓰여 있었다는 낙서는 ‘낙서신구(洛書神龜)’라고 특정해서 부른다. 거북이에게 낙서를 전해줄 임무를 부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북이가 하나라 이전부터도 신과 인간의 매개자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은 이의 사적을 적은 비석의 받침돌로 귀두(龜頭)를 쓰는 것도 같은 이유로 추정된다. 거북 모양으로 만든 귀두를 비석 아래 받침돌로 써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세계로 인도하라는 의미가 담겼을 것이다.
거북이는 신과 인간의 매개자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을 가진 동물로 여겨졌다. 중국의 은나라와 주나라 때는 미래를 점치는 점복술의 수단으로 거북이를 사용했다. 거북이를 불에 구우면 등껍질에 균열이 생기는데 그 모양이 어떤가에 따라 미래가 암시된다고 믿었다. 그 균열을 해석하여 미래의 징조를 읽어내는 것이 바로 거북점이다. 다른 동물도 아니고 특별히 거북이를 점괘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이유는 거북이가 수천 년을 사는 신령스러운 동물(靈獸)이라 믿었고 신탁을 부여받은 초월자의 사자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주나라에서는 거북점이나 시초점을 치는 사람에게 복관(卜官)이라는 직책을 둘 정도였으니 당시에 점복술이 얼마나 성행했는지 알 수 있다.
‘시경’의 ‘대아’에는 주 문왕과 무왕의 공덕을 칭송한 시가 적혀 있다. “왕께서 점을 치고, 도읍을 호경으로 정하셨네. 신령한 거북이의 도움 덕에 무왕께서 대업을 이루셨네. 훌륭하도다!” 문왕은 주나라의 기틀을 닦았고 아들 무왕은 수도를 호경으로 천도해 주나라를 크게 일으켰다. 그런 모든 국가적인 행사를 할 때 거북점을 쳤다는 내용이다.
사마천의 ‘사기’ 중 ‘귀책열전’을 보면 거북껍질(귀갑)로 점을 치는 내용이 사례별로 등장한다. 그는 “성스러운 왕이 나라를 세우고 천명을 받아 왕업을 일으키려 할 때, 복서를 소중히 여겨 훌륭한 정치를 돕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하면서 하은주 삼대 때 시초점과 거북점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나라의 운명을 전문가들의 정책이 아니라 점에 의지했다는 것이 무척 놀랍다. 그러나 사마천은 “거북의 영묘한 점에 있어서는 성인도 더불어 다툴 수 없는데 거북이 길흉을 보여주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 인간의 일에 적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심지어는 거북을 구워서 그 징조를 살피는 것을 바꿀 수 없는 도(道·규칙)라고까지 언급했다.
차라리 진흙탕 속에서 살고 싶어
‘십장생도 창호’를 보면 거북이와 함께 두 마리 학이 등장한다. 거북이만으로도 신령스럽고 장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학까지 가세했다. 이렇게 거북이와 학의 동시입장을 ‘구학제령(龜鶴齊齡)’ 또는 ‘구학령(龜鶴齡)’ ‘구학수(龜鶴壽)’라고 부른다. 거북과 학처럼 오래 살라는 뜻을 담아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로 쓰였다. 거북과 학 같은 수명이란 뜻으로 ‘구학년(龜鶴年)’이라 부르기도 하고 그냥 ‘구학’만으로도 장수의 의미로 쓰였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시문집을 보면 노인들의 잔칫집에 가서 ‘구학의 천년향수를 빌어드린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 신령스러운 거북이라 해도 거북이 입장에서 보면 어떠할까.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세계에 인도하고 인간의 길흉을 가르쳐주고 장수하게 복을 준다는 생각은 단지 인간의 입장에서 판단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거북이도 인간과 똑같은 생각을 할까? 중국 초(楚)나라 왕이 장자(莊子)에게 나라의 정사를 맡기려고 사신을 파견하였을 때 장자는 이렇게 얘기하며 정중하게 사양했다.
“내가 듣기에 초나라에는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있는데 죽은 지 3000년이나 되었다더군요. 왕께선 그것을 헝겊에 싸서 상자에 넣고 묘당 위에 간직하고 있다지만, 이 거북은 차라리 죽어서 뼈를 남긴 채 소중하게 받들어지기를 바랐을까요, 아니면 오히려 살아서 진흙 속을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까요?”
거북이도 마찬가지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과거에 거북이는 인간의 욕심과 거북점 때문에 죽더니 이제는 온도가 올라가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 거북점이나 기후변화나 명분은 다르지만 거북이를 죽게 한다는 것은 동일하다. 이래저래 동물들이 인간들 때문에 죽어간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한때는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학과 거북이에게 빌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만 장수하지 말고 거북이도 함께 장수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한다. 거북이가 알을 낳는 모래 속에 미세플라스틱이 섞여 있어 땅의 온도를 더 높인다고 한다. 가능하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거북이를 살리는 지름길일 것이다. 개인의 동참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플라스틱을 제조할 때부터 썩는 재료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기업의 노력도 중요할 것이다. 묘당 속의 죽은 거북이는 살릴 수 없지만 살아있는 진짜 거북이는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출처 :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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