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한국의 간화선이다 <2> 경허선사의 수행론

2023. 3. 21. 01:53경전 이야기

이것이 한국의 간화선이다 <2> 경허선사의 수행론

기자명문광스님/조계종 교육아사리·동국대 HK 연구교수 

“원돈문(圓頓門)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지어라”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고승 진영 가운데 2022년 11월 동국대 불교학술원 경허집 편찬팀(팀장: 주경스님)에 의해서 새롭게 발굴된 경허선사 친필들.(사진 왼쪽부터) 대연당 정첨(大淵堂 正添)대선사, 금우당 필기(錦雨堂 弼基)대선사, 인봉당 학서(茵峰堂 鶴西)대선사의 진영에 경허선사가 직접 짓고 쓴 진영찬이 붙어 있다. 문제(門弟), 문질(門侄) 등의 표현이 보이며 신축년(1901년)에 지은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당시 경허선사는 해인사 조실로 초빙되어 수선결사를 지도하고 있었다. '경허집'에 새롭게 첨부되어야 할 귀중한 자료들이다.

홀로 술이 깨어있었던 ‘독성(獨醒)’

경허선사 진영.

20세기 한국선(韓國禪)의 중흥조는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9~1912)선사이다. 경허가 있었기에 전국의 선원(禪院)들은 오늘날과 같이 문을 열고 유지할 수 있었으며, 간화선의 가풍이 굳건하게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다.

선사에 대한 평가는 이견이 많으나 그의 선시(禪詩) 가운데 가장 경허다운 구절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 구절이 아닐까 한다. “거세혼연아독성(擧世渾然我獨醒)하니 불여임하도잔년(不如林下度殘年)이로다.” 해석하면 “온 세상이 혼미한데 나 홀로 깨어있으니 수풀 아래에서 남은 생을 보내는 것만 같지 못하네”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으니 바로 ‘독성(獨醒)’이라는 두 글자이다. ‘홀로 술이 깨어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법명인 ‘성우(惺牛)’의 ‘성성할 성(惺)’이 아니라 ‘술 깰 성(醒)’을 썼다. 세간에서는 음주라는 무애행을 두고 왈가왈부했지만 정작 경허 자신은 반대로 온 세상이 취해있고 오직 자신만이 술이 깨어있어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아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서 여생을 은거해서 살겠다고 읊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경허는 백두산 아래의 함경도 삼수갑산으로 들어가 종적을 감추고 경술국치 직후인 1912년에 입적한다.

취(醉)와 성(醒), 광(狂)과 각(覺)의 이중주

1895년 일본의 일련종 승려의 건의로 스님의 도성 출입이 허용되자 종교 침략술의 일환인 줄 모르고 환호하며 천황 송수를 기원하는 당시 스님들의 행태에 대해 경허는 “나에게 서원이 있으니 발이 경성 땅을 밟지 않는 것이다(吾有誓願, 足不踏京城之地)”라는 사자후로 경책을 한다. 실제로 그는 다시는 서울 땅을 밟지 않고 북행(北行)을 실행했으니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신념대로 살다간 인물이었다.

온 세상이 취해있고 자신만이 깨어있다는 말은 마치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의 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처럼 모든 사람에게 미치광이 소리를 듣는 이가 사실은 홀로 각성한 인물이었던 것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실제로 그는 “평생의작취광승(平生宜作醉狂僧)”이라는 시를 남겨 “평생을 취하고 미친 승려로 살아야 마땅하다”라며 세상을 비웃고 있었다. 이처럼 경허는 취(醉)와 성(醒), 광(狂)과 각(覺)의 이중주를 온몸으로 보여주면서 말법시대에 망해가는 나라를 살아가는 고독한 각자(覺者)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금까지도 그의 삶 자체가 온통 알듯 모를 듯한 화두인 셈이다.

간화선법의 알파와 오메가 ‘경허집’을 다시 보자

경허가 어떤 수행을 했으며 어떻게 참선을 지도했는지는 그의 문집인 <경허집>에 상세히 드러나 있다. 그 속에 근·현대 한국 간화선법의 알파와 오메가가 모두 내장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을 쓰며 다시금 <경허집>을 일람하며 느낀 것은 20세기 최고의 선사는 단연코 경허였다는 점이다. 그에게는 일말의 명예욕이나 체면치레가 보이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하든 그는 여실히 깨쳤으며 자신을 철저하게 검증했고 보림 이후에는 걸림 없는 대자유인으로 막힘없이 살았다. 그러면서도 세간의 비판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면서 껍데기만 보는 안목에 대해서는 뒤에서 홀로 빙그레 웃으며 관조할 뿐이었다.

문장을 보면 당송팔대가에 못지않다고 했던 통도사 극락암의 명정스님의 말씀이 지당할 정도로 근·현대 선사 가운데 최고의 명문장이었다. 거침없이 선어(禪語)를 뽑아내는 호연(浩然)한 문장력 속에는 천지를 뒤집어엎는 선지(禪旨)의 쾌활자재(快活自在)함이 장착되어 있다. 가히 원효(元曉), 진묵(震默)과 함께 한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활달한 무애도인(無碍道人)이었다고 할 만하다.

“이 법문을 가끔 보고 읽고 남에게 일러주면 팔만대장경을 본 공덕과 같고 그대로 공부하면 일생에 성불할 것”이라고 했던 <중노릇하는 법>과 “이 노래를 깊이 믿어 책상 위에 펴 놓고 시시때때 경책하라”고 강조했던 <참선곡>을 보면 화두 참선법의 골수가 모두 담겨 있다. 오직 화두를 간절히 의심하라는 경책과 함께 역대조사의 진수를 가사체의 한글 노래 안에 고스란히 담아두었다.

이와 함께 1899년 해인사 정혜결사의 맹주로 초빙되어 지은 <결동수정혜동생도솔동성불과계사문(結同修定慧同生兜率同成佛果社文)>은 경허 선사상의 골수를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참선지침서이므로 참선 수행자는 누구나 심독(心讀)해야 할 문장이다.

<경허집>은 최고의 선시(禪詩)를 담은 선어록이자 최상의 간화선 수행의 교과서이다. 묵혀둔 <경허집>을 다시 꺼내 읽으며 자자입선(字字入禪)의 자리에서 경허의 진면목을 다시 만나면 참선 수행의 요체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원돈문이 아닌 경절문으로!

경허가 한국 근·현대 선불교를 중흥할 수 있었던 것은 교(敎)와 선(禪)을 완벽하게 관통한 데에 기인한다.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갑자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는 대강백이었던 자신을 돌아보고 생사 해탈을 위한 사교입선(捨敎入禪)을 결심한다. 스승도 없이 공안집을 독파하고 막힌 공안을 찾아 스스로 결택한다. “불법(佛法)의 대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영운(靈雲)선사가 답한 “나귀 일이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왔도다(驪事未去 馬事到來)”라는 향상구 화두를 간택하여 의심 삼매에 들어 목숨을 건 수행을 거쳐 ‘콧구멍 없는 소가 된다’는 말을 듣고 확철대오한다.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를 부른다”는 그의 멋들어진 오도송에서 20세기 한국불교는 새롭게 태어났다.

경허의 화두 참선법의 핵심은 제자 만공과의 법거량에서 그 전모가 드러난다. 만법귀일(萬法歸一) 화두를 타파하고 오도송을 읊은 만공을 본 경허는 “불 속에서 연꽃이 피었구나(火中生蓮)”라고 하며 기뻐한 뒤 다시 점검한다. “토시와 부채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해야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해야 옳으냐?”라는 질문에 만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해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해도 옳습니다”라고 하니 경허는 다비문에 나오는 “눈 있는 돌사람이 눈물을 흘린다(有眼石人涕下淚)”는 구절이 무슨 뜻인지 묻는다. 만공이 답을 못하자 경허는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를 주며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지으라”는 가르침을 준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만공은 이미 한 차례 견처가 있었고 8부의 눈이 열린 상태였다. 하지만 원돈문이 아닌 경절문을 지으라는 경허의 이 가르침이야말로 간화선의 요체인 것이다. 원돈문은 화엄학에서 말하는 법신(法身)의 경지로 선(禪)에서는 ‘법신변사(法身邊事)’라고도 한다.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부처 아님이 없고 진리 아님이 없다는 불이(不二)와 공(空)의 경지를 터득한 것을 말한다. 최근에도 이러한 경지를 경험하고 공부가 끝났다고 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경허는 냉철하게 만공을 다그친다. 향상구(向上句)의 세계가 다시 있으니 무자(無字) 화두를 들고 근본지(根本智)를 넘어선 차별삼매(差別三昧)의 세계로 곧장 들어가라는 것이 바로 ‘경절문(徑截門)을 지으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더 깊은 선정의 세계로 곧장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는 팔만대장경을 모두 외워도 불가한 경지로 오직 화두를 들고 깊고 깊은 의심 삼매에서 투과(透過)해야 하는 최상승선의 세계인 것이다. 만공은 다시 각고의 노력으로 재참하여 화두를 타파하고 경허의 인가를 받기에 이른다. 이 대목이 바로 경허의 선수행론의 요체이자 화두 참선의 지침이 되는 핵심 포인트인 것이다.

 

[불교신문 3754호/2023년2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