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1. 20:09ㆍ차 이야기
안녕하세요.
본업에 바쁜 와중에서도 짬을 내어 다석(茶席)에 글을 싣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발간된 7호에 실은 우롱차 관련 글입니다. 읽으시기 편하도록 원고 자체를 먼저 싣고, 마지막에 다석의 페이지 사진들을 올립니다.
우롱차는 참으로 복잡 미묘한 차이다. 녹차는 그냥 발효를 하지 않으면 되고, 홍차는 발효를 완전하게 하면 된다. 하지만 우롱차는 발효를 하다 중간에 중지하여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중지하는가에 따라 품질이 많이 좌우되고 결과적으로 시장에서의 가격도 크게 달라진다.
우롱차는 청차(青茶)라고도 불리는데 반발효차(半发酵茶)에 해당된다. 발효 정도는 통상 20 ~ 60%라고 얘기하지만 청향형(青香型) 철관음(铁观音)은10% 정도, 그리고 대만 우롱인 동방미인(东方美人)은 80%에 이른다고 하니 범위가 상당히 넓다.
발효(发酵, fermentation)라는 용어는 여기서는 차 세포 내의 폴리페놀옥시데이스(Polyphenol oxidase, PPO)와 퍼옥시데이스(Peroxidase) 등의 산화효소와 기질인 폴리페놀의 산화 반응을 일컫는다는 것을 먼저 밝혀 둔다.
우롱차나 홍차 등의 발효차가 만들어질 때는 폴리페놀의 산화 뿐만 아니라 다른 변화들도 함께 일어난다. 엽록소가 분해되어 색상의 변화가 일어나고 또 많은 향기 성분들이 생성되게 된다. 이 모든 변화가 어우러져 우롱차의 최종 품질이 결정될 것이다.
[그림 1] 복건성 안계현 철관음 생산 지역 차밭 전경
우롱차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무슨 연유로 그토록 다양한 향기와 색상을 가진 많은 우롱차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공정별로 살펴보면서 알아보자.
1. 채엽
우롱차는 채엽 기준이 특이하다. 일반적인 차들은 어린 싹이나 여린 잎으로 차를 만들어야 품질이 높아지는데 반해, 우롱차는 싹이 다 자라 큰 잎이 되어서야 채엽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생산 지역이 중국의 경우 남쪽이어서 아주 따뜻함에도 불구하고 빨라야 4월 초가 되어야 찻잎 수확이 시작된다.
이러한 채엽 기준은 소개면(小开面), 중개면(中开面), 대개면(大开面)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소개면은 첫 번째 잎이 두 번째 잎의 1/3 정도 크기일 때, 중개면은 2/3 크기일 때, 대개면은 두 잎의 크기가 거의 비슷할 때라고 정의한다.
[그림 2] 철관음 채엽 표준. 왼쪽부터 소개면, 중개면, 그리고 오른쪽이 대개면이라 볼 수 있다
채엽 기준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뭘까?
차 싹보다는 큰 잎이 되었을 때 향기 성분의 생성에 유리한 전구체(Precursor) 들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다시 말하면 싹으로 만들면 좋은 품질의 우롱차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끊임없는 시도로 실패와 배움을 통해서 알아낸 결과가 아닐까 한다.
우롱차는 잎이 큼지막해서 정교해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그 어떤 차보다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차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채엽 기준에도 예외가 있다.
발효도가 가장 높은 대만 우롱차인 동방미인(东方美人)의 경우에는 싹을 포함한 일아이엽을 채엽 표준으로 한다. 이 차의 가장 중요한 요구 조건인 소록엽선(小绿叶蝉)에 의한 영향을 받아야 하고, 또 제조 공정 및 맛 특성도 홍차와 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채엽 표준을 선택 했으리라 본다.
[그림 3] 동방미인의 채엽 기준. 일아이엽이므로 싹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소록엽선
채엽 시기와 관련된 또 다른 우롱차만의 특징이 있다.
우롱차 이외의 모든 차들은 봄에 딴 차가 가장 품질이 좋고 가장 비싸다. 하지만 몇몇 우롱차의 경우 이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철관음 청향형의 경우 향을 중요시 여기는데, 가을차가 봄차보다 품질이 높다고 하고 가격도 높다. 또한 대만의 우롱차 및 봉황단총 등의 경우에도 가을차 또는 겨울차(冬茶 또는 冬片)가 향이 더 좋아 가격이 더 높은 경우가 많다.
2. 위조(萎调, Withering)
수분을 증발시키면서 다음 공정인 발효가 용이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최후 공정인 건조를 쉽게 만든다. 또한 위조 과정 중에 향기 성분의 생성 등 차엽 내 성분의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림 4] 동방미인의 실외위조
3. 주청(做青, Making Green)
주청 이야말로 우롱차의 특징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공정이다. 일반적으로 요청(摇青, Rocking Green) 공정과 량청(晾青,Leaf Cooling) 공정으로 나눈다.
요청 공정은 찻잎의 세포를 부수어 위에서 언급한 산화(또는 발효라고 통칭하는)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과정이다.
[그림 5] 철관음의 요청 공정
량청 공정은 온도와 습도의 조절 하에 실제적으로 산화 반응이 일어날 수 있도록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림 6] 철관음의 량청 공정. 사람 사는 공간에는 에어컨이 없어도 차를 만드는 곳에는 설치되어 있다
이 주청과 량청 공정은 간단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로 긴 시간이 필요하고, 각 단계마다 종료 시점을 정확하게 판단하여야 하는 아주 민감한 작업이다.
철관음의 주청 공정을 살펴보자.
보통 3 ~ 4회에 걸쳐서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요청기를 사용한다. 첫 번째 요청은 60 ~ 90회 정도 (시간으로는 2 ~ 3분) 회전시킨다. 그 후 량청 공정을 1.5 ~ 2시간 정도 진행시킨다.
두 번째 요청은 120회에서 200회 정도로 좀 더 길게 하며, 다시 량청을 1.5 ~ 2시간 진행한다.
세 번째 요청은 다시 더 많이 회전(180 ~ 400회) 하게 하고 량청도 더 길게(2 ~ 3시간) 한다.
마지막 네 번째는 가장 길게 요청하고(300 ~ 600회) 가장 길게 량청(3 ~ 4시간)을 한다. 실내 온도를 20도 정도로 유지하면서 다음 공정인 살청을 준비한다.
[그림 7] 철관음 주청 공정이 끝난 후 찻잎의 모습. 청향형이니 발효 정도가 높지 않다. 이 정도면 일홍구록(一红九绿) 정도로 말할 수 있다
요청 정도와 량청 시간은 찻잎의 상태나 날씨 조건에 따라 미세하게 조정해야 함은 말할 나위 없다.
대충 계산해 보면 알겠지만 주청 공정에 걸리는 시간이 짧게는 8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 정도가 된다. 주로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이루어지므로 쪽잠을 자면서 이 섬세한 공정을 돌보아야 한다.
또 한 가지 예를 보자.
대만 우롱인 동방미인(东方美人)은 내가 본 우롱차 중에서 가장 섬세하고 길게 주청 공정을 하는 차이다. 여기서는 요청이라는 용어 대신에 낭청(浪箐), 량청이라는 용어 대신에 정치발효(静置发酵)라 표현한다. 내가 가 본 차창에서는 총 5회에 걸쳐서 진행하였다.
첫 번째 낭청은 몇 초 동안 차엽을 부드럽게 만지는 것으로 끝난다. 그 후 대나무 채반에 얇게 펴서 약 2시간 정도 정치발효를 시킨다.
두 번째 낭청은 처음보다 약간 긴 20초 정도, 세 번째 낭청은 약 30 ~ 40초 정도 차엽을 부드럽게 만지면 된다. 각각 대나무 채반에서 1시간 반 정도 정치발효를 시킨다.
[그림 8] 동방미인의 낭청 공정. 차엽을 부드럽게 만지는 것으로 끝난다
네 번째 낭청은 살청기로 사용하는 원통형 설비를 쓰되 온도는 올리지 않은 상태로 아주 천천히 10 ~ 15분 정도 회전시킨다. 그 후 대나무 채반에서 약 1시간 반 정도 정치발효를 시킨다.
다섯 번째는 위 설비로 다시 약 30분 정도 돌리고 나서 사람이 손으로 20 ~ 50분 정도 부드럽게 뒤집어 주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약 3 ~ 3.5시간 정치 발효를 시키면 총 10 ~ 15시간 정도의 기나긴 주청 공정이 끝나게 된다. 동방미인의 경우 이렇게 복잡하고 사람 손이 많이 가는 모든 과정이 24시간 이상이 걸리는 관계로 대개 2 ~ 3개의 조가 돌아가면서 차를 만들게 된다.
[그림 9] 동방미인의 5차에 걸친 낭청과 정치발효 후의 차엽. 다른 우롱차에 비하면 발효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살청(杀青, Enzyme inactivation)
발효가 계속 진행된다면 맛과 향이 변할 것이다. 원하는 품질에 도달했다면 고온으로 산화 효소를 불활성화 시켜 산화(발효)가 중지되도록 해야 한다.
5. 유념(揉捻, Rolling)
세포를 물리적으로 부수어 차가 잘 우러나오도록 한다. 철관음의 경우 모양 만들기와 유념을 동시에 진행하는데 이 공정을 포유(包揉)라 한다.
[그림 10] 철관음의 포유 공정. 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차엽으로 단단한 공 형태가 만들어진다
6. 건조
건조를 충분히 하여 모차(毛茶)를 완성한다. 이 공정을 끝으로 차 만들기가 완료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보관하면서 다음 공정을 거친다.
7. 선별
우롱차는 대부분 가지 채로 수확을 하니 가지를 제거해 주는 공정이 필요하다. 여러 종류의 기계를 쓰기도 하지만 사람 손을 거쳐야 원하는 품질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가지야 그렇다 치고, 우롱차에서는 노엽(老叶)이 품질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므로 제거해 주는 것이 좋다.
여기서 표현하는 노엽은 사실 그 해에 나온 새로운 잎이다. 가공 공정 중에 좋은 작용도 하는데, 여린 잎들을 보호하고 또 유념 과정에서 맛 성분들(차 진액)을 차엽 표면에 부착시켜 차맛을 증가시킨다.
[그림 11] 철관음의 유념 후 모습. 차엽 표면에 차즙이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최종 제품에서 노엽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목질부를 뜨거운 물에 우릴 경우의 나무냄새 느낌이 나서 향기와 차탕의 맛에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입 안에서 불편한 느낌을 초래하기도 한다.
노엽이 잘 제거되었다면 인건비가 들고 수율은 낮아지므로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림 12] 무이암차의 선별. 왼쪽이 제거되어야 할 노엽이고 오른쪽이 좋은 찻잎이다
8. 홍배
홍배는 색,향,맛, 그리고 건차의 모양까지 결정하는 중요한 공정이다.
무이암차, 철관음 농향형, 봉황단총 등의 우롱차들에서는 홍배 공정이 품질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높은 반면 철관음 청향형과 대부분의 대만 우롱들은 그렇지 않다.
이전에는 천편일률적으로 홍배 정도가 강한 것 위주로 되어 있었는데, 요새는 품종향을 살리기 위해서 홍배를 약하게 하는 시도도 눈에 띈다. 보관성이 낮아 빨리 소비를 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색다른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홍배 방식으로는 열풍 홍배기를 쓰기도 하고 전기 홍배기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좋은 품질을 얻기 위해서는 탄배(炭焙)를 고집해야 한다.
[그림 13] 무이암차의 탄배 공정
나무의 선택에서부터 아궁이(배갱, 焙坑)에 밑불을 준비하고 재의 두께로 온도를 조절하고, 열 몇시간 동안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뒤집어 주고, 이러한 과정을 몇 달에 걸쳐서 2 ~ 3번 반복하고…
시장에서 원하는 정도에 맞춰서 약하게(轻火), 중간 정도로(中火), 그리고 강하게(足火) 홍배를 조절해야 한다. 홍배가 끝나고 난 후에도 맛과 향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숙성 과정(退火)까지 몇 주 정도 거치면 비로소 개완(盖碗)에 담기고 차호(茶壶)에 담겨 멋을 뽐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무이암차나 봉황단총의 경우 5월이 가기 전에 모차(毛茶)가 완성됨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을 끝내고 제대로 된 차맛을 보려면 빨라도 9월말은 되어야 하고 바람직하게는 연말 가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토록 전문가의 손이 많이 가는 섬세하고도 복잡한 공정을 거치고 나서야 우롱차는 비로소 완성된다. 만드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잘못된 판단이 개입된다면 제대로 된 품질이 나올 리 없다. 매일 다른 날씨 환경, 매번 다른 원료 상태를 종합하여 언제 다음 공정으로 넘어갈 지, 언제 발효를 중지하고 살청 단계로 넘어갈 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림 14] 동방미인의 정치발효 중 다음 단계로 언제 넘어갈 지에 대한 전문가의 섬세한 판단이 중요하다. 오감 특히 후각을 이용하여 세밀하게 느껴 보아야 한다
우롱차의 공정 중 어느 하나라도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이 없으리라 보지만, 그 중에서도 우롱차의 다양성과 품질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공정을 뽑으라면 단연코 주청과 홍배 공정이다.
발효 정도와 홍배 정도에 따라서 향, 맛, 그리고 차탕의 색상까지도 결정 나게 된다.
거기다 좀 더 맛을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얻기 위해서는 선별 공정의 중요성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상으로 공정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우롱차의 특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넓고도 깊은 우롱차의 매력을 같이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다.
茶쟁이 진제형님은 식품공학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국내 대기업 및 다국적 기업의 음료와 차 제품을 포함한 식품을 개발하는 연구원으로 23년 넘게 재직하고 있다. 12년 전부터는 중국 상해에 거주하면서 중국 현지의 차 관련 소식을 블로그 (중국명차연구소, blog.naver.com/jehyeongjin)와 인스타그램(jin4tea)을 통해서 으라茶茶 이선혜님(인스타그램 tea_tea_cha_cha)과 함께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아래 사진들은 다석(茶席)에 실린 페이지들이다.
중국은 코로나19의 상황이 나아지는데, 한국은 아직도 확대되는 형국이다.
많은 중국의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온다.
고마우면서도 별로 반가운 안부 묻기는 아니다.
한국을 비롯해서 세계 각국의 상황이 빨리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茶쟁이 진제형 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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