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인 도륭의 고반여사(考槃餘事)

2023. 3. 22. 01:29차 이야기

동해인 도륭의 고반여사(考槃餘事)
동해인 도륭의 고반여사(東海人 屠隆의 考槃餘事)
 
▣ 東海人 屠隆
▣ 고반여사(考槃餘事)란?
▣ 다전(茶箋)
 
▣ 東海人 屠隆

도융(屠隆)은 융경(隆慶) 만력(萬曆)간에 특히 시문(詩文)으로 널리 알려졌던 문사(文士)로서, 자는 장경(長卿), 위진(緯眞), 호는 동해인(東海人), 적수(赤水), 도광거사 (도光居士)이다.
절강(浙江) 운현(운縣) 사람으로 만력 5년(1577)에 진사로서 안휘성(安徽省) 영상현(潁上縣)의 지현(知縣)이 되었고, 강소성(江蘇省) 청포현(靑浦縣)의 현령(縣令)을 거쳤다.

후에 예부주사 (禮部主事)가 되었으나, 만력 12년(1584) 참소를 입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글을 팔아 생활하면서 마음껏 시주(詩酒)에 잠길 수 있었다. 만력 32년 경에 사망한 것으로 전한다.

그의 전기(傳記)는 명사(明史) 문원전(文苑傳)의 서위전(徐渭傳)을 비롯한 8종류의 책에 적혀 있으며, 그 중에서도 <열조시집 (列朝詩集)>에 수록된 전기가 잘 정리되어 있다.
그는 천성이 종일(縱逸)하여 원래 벼슬에는 별뜻이 없었고, 만년에는 명사(名士)들과 더불어 임천(林泉) 간에 우유(優遊)하며 시주로써 인생을 즐겼고, 엄주(엄州)의 40子 에 들어 그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문집(文集)으로는 <유권(由拳)>. <백유(白楡)> 등이 있고, 3편의 희곡작품도 전해지고 있다. 그밖에 저술로는 <사고제요 (四庫提要)>에 들어 있는 <편해유편 (篇海類編)>. <거문(鉅文)>. <표상대류 (표상對類)>. 한묵선주 (翰墨選註)> 등이 있으나 대부분이 두찬(杜撰)으로, 책방 사람들이 도융(屠隆)의 명성을 빌어 간행한 것이라고 한다.

 
▣ 고반여사(考槃餘事)란?

   <고반여사(考槃餘事)>는 명(明)나라 도융(屠隆)이 편찬하였다. 고반(考槃)은 <시경(詩經)> 국풍(國風) 고반장(考槃章)의 「고반재간 (考槃在간) 석인지관 (碩人之寬)」 에서 따온 말이다. 「고(考)」는 구(구) 즉 두드린다는 말이요 「반(槃)」은 악기의 이름이니, 즉 『악기를 타며 골짜기에 살고 있으니, 대인(大人)의 흉회(胸懷)의 넓고 큼이여!』 라고 한 데서 연유하였다.

   이 말은 산가(山家)의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어 제목만 보아도 산인묵객 (山人墨客)을 비롯한 독서인들의 생활과 취미를 적은 책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서 서(書). 첩(帖). 화(畵). 지(紙). 묵(墨). 필(筆). 연(硯). 향(香). 다(茶). 금(琴). 분완(盆玩). 어학(魚鶴). 산재(山齋). 기거기복(起居器服). 문방기구(文房器具). 유규(遊具)의 16가지에 대해 이모저모로 낱낱이 설명하고, 호고지사(好古之士)를 위하여 이에 대한 수장(收藏)과 감상(鑒賞)의 방법까지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취미의 기록으로서 청완(淸玩)에 대한 전문적인 저서가 허다히 출현되었으니, 송(宋) 초기에 소이간(蘇易簡)의 <문방사보 (文房四譜)>를 비롯하여 임홍(林洪)의 <문방도찬 (文房圖贊)>과 기타 문방(文房)에 관해서 논한 것들은 물론이요, 그 밖에 두관(杜관)의 <운림석보 (雲林石譜)>, 조시경(趙時庚)의 <금장난보 (金장蘭譜)>, 주익(朱翼)의 <북산주경 (北山酒經)>, 채양(蔡襄)의 <다록(茶錄)>, 진경(陳敬)의 <향보(香譜)> 등등 마음과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보록(譜錄)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겠다.

   그 중에도 청완(淸玩) 일반에 관해 통론(通論)한 것으로는 임홍(林洪)의 <산가청사 (山家淸事)>와 조희곡(趙希鵠)의 <동천청록집 (洞天淸錄集)> 등이 유명하다. 그후 명(明)나라에 와서는 홍무(洪武) 연간에 조소(曹昭)의 <격고요론 (格古要論)>이 나왔고, 만력(萬曆) 19년에는 고염(高염)의 <준생팔전 (遵生八전)>이 간행되었다.

   <고반여사 (考槃餘事)>는 고염(高염)의 <준생팔전 (遵生八전)>을 기본으로 하여, 조소(曹昭)의 <격고요론 (格古要論)> 등 여러 서적을 참고하여 만들어낸 것으로 당시의 문방청완 (文房淸玩)의 취미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현재 전해지는 간본(刊本)으로는 만력(萬曆) 34년에 간행된 <보안당비급본 (寶顔堂秘급本)>이 가장 오래 된 것이고, 그 다음은 명나라 말기에 나온 <광백천학해본 (廣百川學海本)>이 있으며, 그 뒤 청(靑) 건륭(乾隆) 연간에 그의 자손이 되는 계서(繼序)가 전대흔(錢大昕)의 서문을 받아 간행한 <용위비서본 (龍威秘書本)>이 있는데, 체재(體裁)가 정비되어 있어 보급도 제일 많이 된 것 같다.

   이 책은 世界書局 印行, 藝術叢編 第1集 第12冊 중 揭載를 사용하였는데 전대흔의 서문과 계서의 발문이 있으나, 너무 간결하고 별다른 내용이 없으므로 여기에서 생략하였다.

한편 소화(昭和) 18년에 간행된 나카다 유우지로오 (中田勇次郞)씨의 일역본 (日譯本)은 여러 간본(刊本)을 참고하여 서로 다른 점을 정정하였고, 또 각 조항에 따라 본래의 전거(典據)를 밝히는 등 상당한 노력을 들였으므로 많은 참고가 되었다.
 

▣ 다전(茶箋)

  ○ 다품(茶品)①
차의 품등은 다경(茶經)과는 그 내용이 다소 다르다. 지금의 차를 달이는 법 역시 옛날의 육우(陸羽)나 채양(蔡襄) 시대의 사람들과 다르다.
[주] ①다품은 차의 품등을 말함인데, 여기서는 다음에 나오는 호구(虎邱)차로부터 천목(天目)차까지를 말한다.

  ○ 호구(虎邱)①
가장 뛰어난 차로 일컬어지며, 천하 제일이긴 하나 아쉽게도 많이 생산되지 않는다. 모두 지방 부호들에게 점거되어 적막한 산가에서는 구입할 수 없다.
[주] ①강소(江蘇) 오현(吳縣)의 호구(虎邱)에서 산출되는 차이름이다. 차와 물이 유명하다.

  ○ 천지(天池)①
푸른 빛에 좋은 향기가 나며, 마시면 마음이 즐거워지며, 냄새만 맡아도 갈증이 해소되니, 참으로 선품(仙品)이라 할 만하다. 어느 산중의 차라도 당연히 천지만 못하다.
[주] ①강소(江蘇) 오현(吳縣)의 천지(天池)에서 산출되는 차이름이다.

   ○ 양선(陽羨)①
속명(俗名)으로 나개(羅개)라고 하는데, 절강(浙江)의 장흥(長興) 것이 좋다. 형계(荊溪)②에서 나는 것은 약간 떨어진다. 가늘고 섬세한 것은 그 값이 천지(天池)의 배나 되지만 애석하게도 구하기가 어렵다. 몸소 자신이 채수(採收)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주] ①양선(陽羨)은 강소(江蘇) 의흥현(宜興縣)의 옛날 현명(縣名)이다. ②형계(荊溪)는 강소 의흥현 남쪽 형남산(荊南山) 부근의 강이름인데, 이 강이 양선(陽羨)으로 흘러 들어간다.

   ○ 육안(六安)①
품질 또한 정교하여 약에 넣으면 대단히 효과가 있다. 그러나 불에 잘 덖지 않으면 향기를 내지 못하며 맛도 쓰다. 차의 본성은 실로 좋은 것이다.
[주] ①안휘성 육안(六安)에서 산출되는 차이름이다.

   ○ 용정(龍井)①
이 차를 출산하는 곳은 불과 십수 무(數畝)에 불과하다. 이 밖에도 차가 있기는 하지만 다 그만 못한 것같다. 아마 하늘이 용홍(龍泓)의 미천(美泉)을 전개시킴에 산령(山靈)이 특히 좋은 차를 생산하게 하여 여기에 부응(副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중에는 있는 불과 한두 집에서 매우 정교한 초법(炒法)으로 만든다. 근래에 산승(山僧)이 이 초법으로 덖어 만들었는데 역시 좋다. 진짜는 천지(天池)보다 더 좋다.
 [주] ①절강(浙江) 항주의 서남쪽 풍황령(風篁嶺) 밑에서 있는데 용홍(龍泓)이라고도 한다. 이 부근에서 출산되는 차를 용정(龍井)이라 한다.

   ○ 천목(天目)①
천지(天池)나 용정(龍井)의 다음가는 것으로 역시 좋은 편에 든다. 지리지(地理誌)에 이르기를 "산중에는 추위가 일찍 오기 때문에 산승(山僧)들은 9월만 되면 벌써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겨울에는 눈이 많아 3월이 되어야 비로소 통행할 수가 있다. 따라서 차가 싹트는 것도 비교적 늦다"라고 하였다.
[주] ①천목(天目)은 절강(浙江) 임안현(臨安縣)의 산이름이며, 또한 여기에서 출산되는 차의 품명을 천목이라 한다.

   ○ 차따기(採茶))
반드시 아주 섬세한 것이 아니라도 된다. 섬세한 것은 싹(芽)이 이제 막 트기 시작한 것으로 맛이 좀 부족하다. 또 반드시 아주 푸른 것이 아니라도 좋다. 너무 푸르면 이미 때가 지난 것이니 연한 맛이 덜하다.
곡우(穀雨) 전후면 줄기가 생기고 잎은 연한 녹색을 띠는데, 둥글고 뚜꺼운 것을 따야 한다. 또한 천기가 청명할 때에 따면 더욱 좋다. 민(민), 광(廣), 영남(嶺南) 등 장려(장려) 기운이 많은 지방은 반드시 해가 나고 산이 개어 안개나 바람기가 완전히 걷힌 뒤에 따야 한다.
곡우날 날씨가 아주 좋아서 차잎을 따게 되면 이것은 능히 담수(痰嗽)를 고치며, 백가지 병을 고칠 수 있다.
[주] 채다(採茶) 시기는 중국의 양자강 유역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 햇볕에 말린차(日曬茶))
차 중에는 햇볕에 쬐어두면 좋은 것이 있다. 푸르고 향기도 좋아서 불에 말린 것보다 낫다.

  ○ 불에 덖은차(焙茶))
차를 딸 때에는 먼저 스스로 냄비와 부엌살림을 가지고 산에 가는 것이 좋다. 따로 방을 하나 얻어놓고 다공(茶工) 중에 특히 솜씨가 좋은 자를 골라 그 품삯도 배나 더 주고, 다루는 법을 잘 일러두어서 덜 익어 딱딱해도 아니되고 또 불기운이 지나치게 하여서도 안된다. 일일이 세밀하게 말려서 부채를 부쳐 식혀 단지 속에 저장하는 것이다.


  ○ 차 저장법 1(藏茶)

   차는 죽순 잎사귀와는 성질이 맞지만 향약(香藥)을 두려워 한다. 따뜻하고 건조한 것을 좋아하고, 차갑고 습기 있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차를 저장하는 집에서는 청명(淸明)이 되기 전에 죽순잎을 사두는데, 그 중 특히 푸른것을 골라 불에 쬐어 잘 말린 다음 죽사(竹絲)로 묶어 사편(四片)을 한 덩이로 묶어 사용한다.

또 의흥(宜興)에서 나는 새롭고 튼튼한 큰 단지로서 10근 이상의 차가 들어갈 만한 것을 사서, 깨끗이 씻어 완전히 말린 다음에 사용하도록 한다.

산중에서 덖은 차는 뒤적거려서 다시 한번 덖은 다음 오랜된 잎이나 쉰잎, 덖을 때 탄 것과 줄기가 부러지고 가루가 된 것을 제거한다. 커다란 쟁반에 생숯(生炭)을 파묻은 다음 아궁이 속을 두드려 잘게 된 숯불을 그 위에 덮어면 연기도 나지 않고 또 쉽게 과열되지도 않는다.

차는 다배(茶焙)에 놓고 덖는데 대략 2근을 한꺼번에 덖는다. 또 별도로 숯불을 큰 화로 속에 넣고 그 위에 단지를 걸쳐 단지의 습기가 충분히 마른 다음에 그친다.
말린 죽순잎을 그 단지 밑에 깔고, 차 말린 것을 부채질하여 식힌 다음 그 단지에 쟁인다.
차가 어느 정도 건조한 가는 비벼서 곧 가루가 되는 가를 보면 된다. 이 정도로 마르면 단지에 집어넣고 하나 가득 되면 다시 죽순잎으로 단지 위를 덮는다. 차 1근에 죽순 잎 2냥 정도 사용한다.
단지 주둥이는 1자 8치의 종이를 불에 쬐어 6~7장 가량 겹쳐서 봉한다. 이것을 눌러두는 데는 네모진 두꺼운 백목판(白木板) 한 장을 쓰는 것이 좋은데, 이것 역시 잘 말린 것을 사용한다.

그렇게 한 다음에는 햇볕 잘 드는 깨끗한 방의 높직한 곳에 놓아둔다. 쓸 때에는 새로 잘 말린 의흥제(宜興製)의 4~5냥 가량 드는 작은 병에 필요한 양을 꺼낸 다음에는 곧 조심스럽게 다시 단지를 포장하여 둔다.


하지(夏至)가 지난 3일째에 다시 한번 불에 쬐어 말리고, 추분(秋分)이 지난 3일만에 다시 한번 말리고, 동지(一陽) 후 3일만에 또 말리며, 산에서 말린 것까지 계산하여 모두 다섯 차례 말리게 된다.

그 뒤에야 새 차와 바꾸어 넣을 때까지 빛이나 맛이 언제나 똑같게 마련이다. 단지 속에 차가 줄어들어 공간이 남았으면 다시금 말린 죽순잎을 하나 가득 채워두면 언제까지나 습기가 차지 않는다.


  ○ 차 저장법 2(又法)

   중치의 단지에 차 10근을 넣어 한 병을 만든다. 볏짚의 재를 따로 큰 통에 넣고, 그 통에 찻병을 넣어 재로 병 주위를 채우고, 병 위에도 재를 채워서 가득 메꾼다.
차가 필요할 때마다 차병을 꺼내어 차를 덜어낸 다음에 다시 재를 덮어두면 뜨거나 습기차는 일이 없다. 다음해에 그 재를 새로 바꾸어 넣기만 하면 된다.


  ○ 차 저장법 3(又法)

빈 방안에 시렁을 만들어 찻병의 주둥이를 아래로 향하게 얹어 놓으면 습기가 차지 아니한다. 증기란 위에서 아래로 내리기 때문이다.


  ○ 여러가지 꽃차

연화차(蓮花茶) - 해가 아직 뜨기 전에 반쯤 핀 백련꽃을 열어 섬세한 차(茶) 한 주먹을 집어 꽃수염 속에 잔뜩 채운 다음 삼실로 동여매어 하룻밤을 새우고, 다음날 아침 일찍 그 연꽃을 따서 차잎사귀를 끌어내어 건지(建紙)에 싸서 불에 쬐어 말린다.
다시금 이와같은 방법으로 다른 연꽃 속에 넣었다가 다시 말려 거두어 두었다가 이용하면 기막힌 향기가 풍긴다.

등차(橙茶) - 등차 껍질을 가늘게 썬 것 1근과 잘 말린 좋은 차 5근을 섞고 조밀한 마포(麻布)를 화상(火廂)에 꼭 끼게 입히고, 그 위에 차를 놓고 불에 쬔 다음, 2~3시간 깨끗한 베로 덮어두었다가 건연지(建連紙)의 봉투에 넣고 봉한 다음, 다시 싼 채로 불기운을 쐬어 말려서 거둔다.

물푸레나무, 때찔레, 장미, 난초, 혜란(蕙蘭), 귤, 치자, 목향, 매화꽃 등 모두 차와 섞어서 만든다.
제각기 꽃이 필 때에 반쯤 핀 것으로 꽃술의 향기가 온전한 것을 따서 거기에 섞을 차의 양에 따라 적당히 섞어면 된다. 꽃이 많으면 향기가 지나쳐서 차의 풍미가 감손되고, 또 꽃이 적으면 향기가 없어 덜 좋다.
차엽(茶葉) 서푼에 꽃이 한푼이면 적당하다. 그런데 물푸레나무의 꽃이면 먼저 가지와 꼭지, 먼지나 벌레, 개미 같은 것을 가려내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런 다음 자기(磁器) 단지에 차 한층 꽃 한층의 순서로 차곡차곡 쟁겨서 가득차면 종이나 죽순잎으로 덮어서 단단히 묶어 솥에 넣고 중탕(重湯)으로 삶는다.
꺼내어 식힌 다음 종이에 싸서 봉하여 불위에 놓고 말린 다음에 사용하면 꽃 향기가 입에 가득하고 차맛도 감손되지 않는다. 다른 꽃도 이와같은 방법으로 만든다.

   이상의 여러 꽃을 섬세한 차잎과 같이 섞어도 좋다. 차나무 꽃을 차에 넣어면 본색(本色)의 향미가 더욱 아름답다.

말리화(茉莉花) - 꿇인 물 반 컵을 식혀 그 위에 죽지(竹紙)를 한층 깔고, 그 위에 몇개의 구멍을 뚫어서 저녁 무렵 처음 피는 꽃을 따서 그 구멍 안으로 넣고, 위를 종이로 봉하여 기운이 새어나지 않게 한다.
다음날 아침 꽃은 머리에 꽃고, 그 향기로운 물로 차를 마시면 좋다.


  ○ 물의 선택(擇水)

천천(天泉) - 가을 물이 제일 좋고, 매우(梅雨)의 물이 그 다음이다. 가을 물은 희고 차며, 매우(梅雨)①의 물은 희고 달다. 달면 차맛은 약간 덜하지만 차가우면 차맛이 온전하다.
그러므로 가을 물이 비교적 좋다. 봄 물과 겨울의 물을 비교하면 봄의 것이 겨울 것보다 좀 낫다. 그것은 온화한 바람과 단비가 천지(天地)의 바른 은혜를 얻기 때문에 좋을 것이다.

오직 여름의 폭우만은 안 좋다. 이는 바람과 뇌성으로 부터 생긴 것으로 상천이 노하여 떨어뜨린 것이기 때문이다. 용(龍)이 내린 물이 폭우가 되었다가 장마비로 된 것이라든지, 가믐 뒤에 갑자기 내린것, 냄새가 나고 검은 것 등은 다 먹을 수 없는 것이다.
눈(雪)은 오곡의 정(精)이다. 이것으로 차를 끓이면 유인(幽人)②에 대하여는 고상한 취미가 될 것이다.

지천(地泉) - 완만하게 흐르는 유천(乳泉)을 취한다. 예를들어 양계(梁溪)의 혜산천(惠山泉) 같은 것은 가장 좋다. 맑고 차가운 것을 취한다. 물이 맑기는 어렵지 않아도 차갑기는 어렵다.
돌이 적고 흙이 많아서 모래가 기름지고 진흙이 엉긴 것은 결코 맑고 차가울 수가 없다. 또 여울이 깊고 흐름이 빨라서 물이 맑은 것, 또는 바위 깊이 감추어져 그늘에 괴어 있어 차가운 것도 다 좋은 것은 못된다.
향기가 있고 단맛이 있는 샘물은 능히 양생(養生)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달기는 쉬워도 향기가 있기는 어렵다. 향기가 있고 달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바위 사이를 흐르는 샘물을 취한다. 샘물은 돌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면 결코 좋을 수가 없다. 산맥이 꾸불꾸불한 데의 것을 취한다. 산맥이 끊어지지 않은 곳에는 물도 반드시 정류(停留)하지 않는 법이다.

만약 흐르지 않고 멈추고 있다면 원천(源泉)이 없기 때문이다. 가뭄에는 으례 쉽게 마르고 만다. 가끔 모래흙 속으로 스며서 흐르는 물이 있는데, 이것을 떠내도 마르지 않으면 먹어도 되지만, 그러하지 않을 때는 흙속에 괸 물에 지나지 않으니, 비록 물이 맑다고 하더라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폭포처럼 급히 솟는 물은 마시지 않는다. 오랜 동안 이것을 마시면 목병이 생긴다. 예를들어 여산(廬山)의 수렴(水簾)이나 홍주(洪州)의 천태폭포(天台瀑布)는 진실로 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구슬의 발이요, 비단 장막이 되므로 이것을 보고 듣는 것으로 즐거움이 될 수는 있으나, 수품(水品)에 넣는 것은 적당치 않다.
온천(溫泉)이 있다. 이것은 그 밑에 유황이 생기기 때문에 더운 것이다. 같은 한 골짜기에서 나왔으니 절반은 덥고 절반은 찬 것이 있다. 어느것이나 먹을 것은 못된다.
멀리서부터 흘러온 것이 있다. 멀면 맛이 박하다. 깊은 병에 담아서 놓아두면 그 맛은 다시 회복된다.
흐르지 않는 것이 있다. 이것은 먹으면 해롭다. 박물지(博物志)에 말하길 "산에 사는 사람들에게 혹이 많이 나는 것은 흐르지 않는 샘물을 마시기 때문이다." 샘 위에 악목(惡木)이 있으면 그 잎이 퍼지고 뿌리가 뻗는 데 따라 물의 단맛과 향기가 손감한다.
심한 것은 독액(毒液)을 빚어내는 일이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없애야 한다. 남양(南陽)의 국담(菊潭)을 보면 그 손익(損益)이 증명될 것이다.
[주] ①매우(梅雨)는 매실이 익을 무렵인 음력 4, 5월 경 양자강 유역에 내리는 장마비를 말한다. ② 유인(幽人)은 세상의 공명을 귀찮게 생각하고 그윽한 곳에 숨어 사는 사람을 말한다.

  ○ 강수(江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물을 취한다. 양자강(楊子江) 남랭(南冷)의 암간(巖間)의 정연(停淵)은 특히 제일품에 든다.

  ○ 장류(長流)
이 중에는 천두(泉竇:물이 샘솟는 구멍)와 통한 것이 있다. 이런 것은 길어서 반드시 한참 두었다가 맑아진 다음에 먹는 것이 좋다.

  ○ 우물물(井水)
수맥(水脈)을 알 수가 없고 수질이 엉겨 맛이 짜고 색이 탁한 것이 있다. 이런 물은 차맛을 못쓰게 하는 수가 있다. 시험삼아 한 사발의 차를 달여서 하룻밤 지난 뒤 보면 기름기가 잔뜩 끼는 것을 보게 된다. 다른 물은 그렇지가 않으니 이것을 보면 증명될 것이다.
물론 자주 길어내는 우물물이라면 먹는 수도 있지만 끝내 가품(佳品)이라 할 수는 없다. 혹 평지에 우연히 판 우물이 마침 천혈(泉穴)과 통하면 그 맛이 달고 담담하며,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것이 있으니 이런 것은 산천(山泉)의 물과 다를 것이 없다. 보통의 우물물(井戶水)로 볼 일이 아니다.
해변가의 우물이라면 으례 좋은 것이 없다. 그 이유는 조석(潮汐)이 가까와서, 지질이 짜고 경작할 수 없는 땅이기 때문이다.

  ○ 영험있는 물(靈水)

하늘에서 내린 은택, 다시말해서 상지(上池), 천주(天酒: 甘露), 첨설(甛雪), 향우(香雨) 같은 것은 세상에서 드물게 보는 것이고, 혹 알고 있는 사람조차도 드물다. 말하자면 선가(仙家)의 음수(飮水)라 하겠다.

  ○ 단천(江水)

   명산대천(名山大川)의 선인(仙人)이 연단(煉丹)하는 곳의 물에는 속에 약(丹)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 맛이 이상하다. 이 물은 능히 장생도 할 수 있고 병을 물리칠 수도 있으나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부정한 그릇에는 결코 물을 길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신안(新安) 황산(黃山)의 동봉(東峯) 아래에 주사천(주砂泉)이 있는데, 이는 차를 끓일 수 있는 것으로 희미한 미홍색(微紅色)이다. 이는 자연의 단액(丹液)이라 하겠다.
임원(臨沅)의 요씨(요氏) 집은 대대로 장수(長壽)를 하는데, 나중에 우물을 파보니 좌우에서 수십 곡(斛)의 단사(丹砂)가 나왔다.
또 서호(西湖)의 갈홍정(葛洪井) 속 돌독에서 마름 열매와 같은 단(丹)이 몇 개 나온 일이 있는데, 먹어보아도 아무런 맛도 없어 버려두었던 바, 시어옹(施漁翁)이라는 사람이 그 중 하나를 주워먹고 106세까지 살았다.
맛이 있는 것을 감천(甘泉)이라 하고, 향긋한 것을 향천(香泉)이라 한다. 달기 때문에 양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달기는 쉬워도 향기롭기는 어려우니 향기는 있으되 달지 않은 것은 없다. (田子藝의 煮茶小品에서)

  ○ 양수(養水)

흰 자갈을 물독에 넣어두면 물맛을 좋게 할 뿐아니라 또한 물을 맑고 흐리지 않게 한다. "다기(茶記)에 양수(養水)함에는 자갈을 독속에 넣어두면 물이 좋아질 뿐 아니라 흰 돌과 푸른 물과는 서로 맞아 같이 산간에 있는 듯한 유쾌한 연상을 일으킨다." 라고 말하였다.
대개 돌은 물속에서 표리(表裏)가 투명해 보이는 것이 좋다. 마치 희기는 끓어낸 지방(脂肪)과 같고, 닭의 벼슬과 같이 붉어며, 눈썹 그리는 먹과 같이 푸르고, 삶은 밤과 같이 누르며 칠과 같이 검으니 비단같은 오색이 독속에 비쳐서 그 옆에 기대어서면 응접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것은 다만 물에 유익할 뿐 아니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屠本畯의 茗급에서①)
 
[주] ①도빈수는 명(明)나라 근현 태생으로 자는 전숙(田叔)이요, 이름은 본준(本畯)이요, 빈수는 그의 아호이다. 그는 진주지부 (辰州知府)의 벼슬을 지냈다. <명급>은 도본준이 1610년에 지은 책으로 상하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차씻기(洗茶)

차를 달이려면 먼저 더운 물로 차를 씻어서 먼지를 제거하고, 식힌 다음에 달이면 맛이 있다.
 
 ○ 탕 살피기(候湯)

무릇 차는 약한 불에 덖어 말리고, 활화(活火)에 달인다. 활화란 불꽃이 나는 숯불을 말함이니, 이것은 불이 필 때의 연기나 그밖의 나쁜 기운이 제거되어 있다. 그리고는 탕(湯)을 헛되게 끓어 넘치도록 하지만 않으면 그런대로 차맛이 우러나게 마련이다.
물이 끓을 때는 처음에 물고기의 눈과 같은 포말이 생기면서 미미한 소리가 나는 것을 일비(一沸)이라 하고, 구슬같은 방울이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것을 이비(二沸)이라 하며, 거친 파도가 일고 물방울이 퉁기게 되면 삼비(三沸)이라고 한다.
삼비(三沸)는 활화가 아니면 되지 않는다. 동파옹(東坡翁)이 "해안(蟹眼)이 지나면 어안(魚眼)이 생기고, 우수수 솔바람 소리가 일어난다." 라고 한 것은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만약 숯불(炭火)이 막 피어나서 주전자가 달을 만한 때에 급히 들어 올려 따르면 수기(水氣)가 아직 없어지지 않으니, 이것을 젊다(嫩)고 한다.
만약 사람이 백살을 넘으면 물이 십비(十沸)을 넘는 것과 같으니, 혹시 이야기라도 하고 있다가 일을 망친 뒤에야 따른다면 물은 이미 본성을 잃은 것으로, 이런 것을 늙었다(老)고 한다. 눈(嫩)과 노(老)는 둘 다 좋지 않다.

  ○ 끓인 물 따르는 일(注湯)

차가 이미 고상(膏狀)이 되어 있어 그기에 탕(湯)을 따를 때에는 자세를 아주 자연스럽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손이 떨려서 팔이 내려지고, 다만 탕이 너무 깊어 물이 잘 따라질까를 염려하여 다병(茶甁)의 주둥이에서 끓인 물이 나오는지 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고르게 따르지 않으면 차맛이 제대로 날 수가 없다. 이런 것을 완주(緩注)라고 한다.
한 사발의 차의 분량은 많아서 二돈(錢)을 넘도록 하지 아니하며, 찻잔과 차의 분량을 적당히 하여 탕을 따르며, 찻잔이 六명분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①
만일 왈칵 부어서 너무 많이 따르면 차가 적고 물이 많게 된다. 이런 것을 급주(急注)라 한다. 완(緩)이나 급(急)이나 모두 중용(中庸)을 지킨 것이 못된다.

   탕(湯)의 중용을 얻고자 하는 데에는 팔에 그 책임이 있다. 모든 일은 맡은 사람에게 맡겨서 그 성공여부를 꾸짓을 따름이지만 오직 차 끓이는 일만은 손수 수고를 다해야만 된다.

차를 끓이는데, 그 수고를 손수 하지 않고 아무리 탕이 좋기를 바란들 잘 끓여질 리가 없다.(屠빈수의 茗급에서)
[주] ①육우의 다경(茶經)에 보면 "차솥에 물을 끓인 후, 끓인 물의 복판을 휘저으면서 가루차를 헤아려 끓는 물의 중심에 넣어 끓인다. 물기포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북치는 소리가 나는 삼비(三沸)일 때 표주박으로 미리 떠내어 물바리에 식힌 물을 찻솥에 붓고 찻물의 온도를 급히 식힌다. 그런후 함께 찻잔에 나누어 마시는데 통상적으로 한 찻솥의 차를 다섯잔 정도로 나누어 마신다" 라고 되어 있다. 아마 도륭이 여러책에서 인용하면서 당시와 다른 육우시대의 다법을 잘못 인용한 것 같다. 도륭과 같은 시대의 인물로 다소(茶疏)를 지은 허차서(許次서)는 팽점 (烹點)조에서 말하기를 "먼저 손에 차를 쥐고 끓인 물을 다호에 넣기를 기다렸다가, 곧이어 차를 넣고 뚜껑을 덮고 세번 숨쉬기를 기다린 후, 다시 세번쯤 숨을 쉬고서 찻물을 찻잔에 따라 손님에게 바친다"라고 하였다. 이 방식이 명대(明代) 부터 유행한 포차법(泡茶法)이다.

  ○ 그릇선택(擇器)

   무릇 다병(茶甁)은 작아야만 탕(湯)의 정도도 보기가 쉽고, 또 차를 마시고 따르는 데도 형편이 좋다.
만약 다병이 커서 마시던 나머지를 오래 남겨두면 차의 맛이 변해서 좋지가 않다. 공신(功臣)의 되어 탕(湯)의 왕업(王業)을 세우는 데는 금, 은 그릇이 좋기는 하나, 빈천한 사람으로 그것을 구비하기가 어려우면, 자기나 돌로 된 것도 쓸만하다.
자기(瓷器)는 차의 기운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유인일사(幽人逸士)에게는 그 품(品)과 색이 모두 적합하다. 돌은 천지의 수기(秀氣)가 엉겨서 된 것이므로 이것을 잔손질해서 그릇으로 쓰면 수기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그 탕이 나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진기한 것을 자랑하고 호사를 뽐내는 취공자(臭公子)들은 이런 것을 알지 못한다.
동(銅)이나 철, 연석(鉛錫)으로 된 그릇은 누린내가 나고 텁텁하다. 기름기 없는 와병(瓦甁)은 물이 스며들고 토기(土氣)가 있어서 그것으로 탕을 끓여 마시면 언제까지나 나쁜 기운이 입에 눌러붙어 가시지 않는다. 것 또한 보통 속인들에게는 말을 해도 통할 수 없는 일이다.
선묘(宣廟 1426-1435) 때에 만들어진 찻잔 중에는 재료가 좋고 식이 우아하며, 살이 두껴워서 잘 식지 않으며, 옥과 같이 희어서 차의 빛깔을 시험할 수 있는 것이 있었으니, 이것은 없어서는 안될 가장 요긴한 것이다.
채군모(蔡君謨)는 건안의 잔(建盞)을 취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빛이 감흑(紺黑)으로 되어 사용함에 마땅치 않은 것 같다.①
[주] ①<다록(茶錄)>의 저자 채양(蔡襄)은 송(宋) 선유(仙遊) 사람으로 전운사(轉運使)를 지냈다. 송대(宋代)에는 음다법도 자차법(煮茶法)에서 점차법(點茶法)으로 변해갔는데, 점차법이란 다마(茶磨)에 부드럽게 잘 갈은 덩어리 단병차 가루를 차솥에 넣지 않고, 차사발에 차가루를 직접 넣고 끈적하게 만든 후 적당한 양의 뜨거운 물을 부어 다선이란 다구를 이용하여 잘 휘져어 거품을 내어 마시는 음다법이다. 이때 사용된 다완은 거품의 색깔을 잘 보이게 하는 감흑(紺黑)색으로 유약을 바른 다완을 선호하였다. 아마 이것도 도륭이 여러 책을 인용하면서 송대에는 감흑(紺黑)색 다완이 유행했다는 것을 모르고, 명대(明代)에 포차법(泡茶法)으로 우린 연두빛 찻물을 감상하기에 적합한 찻잔만을 언급한 것 같다.

  ○ 다기 씻기(洗器)

다병(茶甁), 다잔(茶盞), 다시(茶匙)에 녹이 나면 차맛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반드시 미리 깨끗이 씻어두는 것이 좋다.
 
 ○ 찻잔데우기(협盞)

차를 마실 때에는 반드시 찻잔을 데워서 뜨겁게 해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차의 표면에 젖빛이 뜨는데, 찻잔이 차가우면 차의 빛이 뜨지 않는다.①
[주] ①이 대목도 송대 채양이 지은 <다록>의 협盞조의 글을 인용한 것 같다. 그래서 잎차에는 맞지 않는 내용이다.
 
 ○ 숯의 선택(擇薪)

모든 나무는 어느 것이나 물을 끓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숯(炭)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차의 맛을 내는 것은 탕이 좋고 나쁜데 달렸고, 탕은 또 연기를 가장 꺼리기 때문에 역시 차를 끓이는 데는 숯(炭)이 아니면 안된다.
그런데 잘 타지 않는 숯이나 생나무를 써서 짙은 연기가 방안에 끼는 것이야말로 차에게는 악마와 같은 것이다.
혹시 나무 중에서 센 불길이 나는 것이나 타다 남은 허숯(虛炭)이나, 아니면 바람에 말린 댓가지나, 나뭇가지로 솥을 덥게하여 병(甁)을 걸면 기분에 맞을지는 몰라도 이런 것들은 체성(體性)이 부박(浮薄)한 것으로 중화(中和)의 기가 없기 때문에 이것 역시 탕의 벗이 될 수 없다.
 
 ○ 과일의 선택(擇果)

차에는 참된 향과 아름다운 맛과 바른 빛이 있다. 끓이거나 마실 때에 진기한 과일이나 향초(香草)를 집어넣어 차의 본성을 빼앗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차의 향기를 빼앗는 것으로는 송자(松子), 감등(柑橙), 목향(木香), 매화(梅花), 말리(茉莉), 장미(薔薇), 목서(木서) 따위가 있고, 맛을 빼앗는 것으로는 번도(番挑), 양매(楊梅), 따위가 있다.
무릇 좋은 차를 마시려면 다른 과실류를 섞지 말아야 비로소 깨끗한 차맛을 알게 된다. 다른 것을 섞으면 참다운 맛을 분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만약 꼭 무엇이든 들어가야 좋을 경우라면 호도나 개암, 행인(杏仁), 남인(欖仁), 능미(菱米), 밤, 계두(鷄豆), 은행(銀杏), 신순(新순), 연육(蓮肉) 따위는 정제(精製)하면 쓰는 수도 있다.
 

 
○ 차의 효능(茶效)

   사람들이 진짜 차를 마시면 갈증을 없애고, 음식을 소화시키며, 담을 제하고, 잠을 덜 오게 하며, 소변이 잘 나오며, 눈을 밝게 하고, 머리가 좋아지고 걱정을 씻어주며, 기름기(이氣)를 씻어낸다. (本草拾遺에 있음)
사람들에게는 본래 하루도 차가 없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꺼리고 먹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식사가 끝난 때마다 짙은 차로 입안을 가시면 기름기가 말끔히 제거되며, 뱃속이 저절로 개운해진다. 잇사이에 낀 것도 차로 씻어내면 다 소축(消縮)되어 모르는 동안에 없어지기 때문에 번거롭게 이를 쑤실 필요가 없어진다.
또한 이(齒)의 성질엔 쓴 것이 좋기 때문에 자연히 이가 튼튼해 져서 충(蟲)과 독이 저절로 없어진다. 그러나 이런 용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하품(中下品)의 차를 이용하고 있다.(蘇東城의 文集에 있음)
 

 ○ 차와 인품(人品)

   차는 음료중에서는 행실이 바르고 덕을 닦은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다(陸羽의 茶經에 나오는 말).
또한 백석(白石)의 청천(淸泉)을 길어서 끓이는 절차를 법도에 맞게 하며, 중도에 집어치우는 일이 없이 한결같이 계속하며, 그 법식을 완전히 익히고 깊이 음미하며, 정신이 융회(融會)해서 제호감로(醍호甘露)에 비견할 만한 참다운 맛을 깨닫고서야 비로소 다도(茶道)를 훌륭하게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하겠다.
좋은 차를 마시면서도 그 사람됨이 되어 있지 않다면, 마치 좋은 샘물을 길러와서 잡초(雜草)에 주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이보다 큰 죄가 없을 것이다.
또 다도의 취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꿀꺽하고 한 모금에 마셔버리어 맛을 분간할 여유도 없는 사람이라면, 그 이상 속될 수가 없다.

   사마온공(司馬溫公)①과 소자첨(蘇子瞻)②은 차와 먹을 좋아하였는데, 공(公)이 이르기를 "차와 먹은 정반대다. 차는 흰것이 좋고, 먹은 검은 것이 좋으며, 차는 무거운 것이 좋고 먹은 가벼운 것이 좋으며, 차는 새것이 좋고 먹은 옛것이 좋다." 라고 하였다.

소(蘇)씨가 이르기를 "좋은 차나 먹이 향기로운 점에서는 한가지로다." 라고 하니 사마온공도 옳은 말이라고 하였다.
당의 무초(武초, 측天武后)는 박학하여 저술(著述)에 재능이 있었다. 원래부터 차를 싫어하여 이것을 비난하였다. 그 말의 대략을 살펴보면 "차가 막힌 체물(滯物)을 소화시키는 것은 단 하루의 이익에 불과한 것이어서 잠시는 좋을 지 모르나 기운을 깎고 정기를 침해하여 종신(終身)의 해(害)가 되니 이보다 큰 해(害)는 없다.
이익이 되는 점은 차의 효능이라고 하면서 재환(災患)을 남기는 것은 차의 잘못이라고 생각치 않는 것은, 가까운 복은 알기 쉽고 먼 화는 보기 어려운 까닭이 아니고 무엇인가" 라고 하였다 (大唐의 新語에서③).

   이덕유(李德裕)④는 신분에 넘치는 사치를 하였다. 중서(中書)의 벼슬에 있을 때 서울의 물을 마시지 않고 혜산(惠山)의 샘물만을 이용하였다. 당시 이것을 수체(水逮)라고 불렀다. 그 청치(淸致)는 좋치만 성덕(盛德)에 손상이 감은 물론이다(芝田錄에서).

전하는 이야기에 육홍점(陸鴻漸)은 문을 잠그고 책을 저술하며, 시(詩)를 외우고 나무를 두둘기면서 차를 즐기는데, 치수(淄水)와 승수(승水)의 맛을 분간할 정도로 그의 청풍아취(淸風雅趣)는 고금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차를 파는 사람들이 도기(陶器)로 그의 형(型)을 만들어 부엌 굴뚝 옆에 놓고 다신(茶神)을 섬긴 것은 가위 이를 데 없이 지극한 존숭(尊崇)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찌기 "만구지(蠻구志)"를 상고하여 보니, "육우(陸羽)가 월강(越江)의 차를 따서 심부름하는 아이를 시켜 말리는 것을 지켜보게 하였는데, 아이가 깜빡 졸아 차가 까맣게 타서 먹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육우는 화가 나서 철사줄로 아이를 묶어 불속에 던져버렸다" 고 하였다. 잔인하기가 이와 같으니 그밖의 일이야 볼 것도 없으리라.
차를 마실 때에는 손님의 수가 적은 것이 좋다. 많으면 시끄럽다. 소란스러우면 아취가 부족하게 된다. 혼자 마시는 것을 유(幽)라 하고, 두 사람이 마시는 것을 승(勝)이라 하고, 3~4인을 취(趣), 5~6인을 범(汎), 7~8인을 시(施)라고 한다(東原의 試茶錄에서⑤).
 
[주] ①사마온공(司馬溫公)은 북송때 정치가요 학자인 사마광(司馬光)을 이르는 말이다. ②소자첨(蘇子瞻)은 북송의 소식(蘇軾)의 자이다. ③원문에는 세설신어(世設新語)로 되어 있으나 잘못이므로 정정하였다. 이 이야기는 <본초(本草)> 一三 당(唐) 기무민(기毋旻)의 대다음서 (代茶飮序)의 글로 기재되어 있다. ④이덕유(李德裕)의 자는 문요(文요), 당 무종(武宗) 때의 재상으로 위국공(衛國公)이 되었다. ⑤동원(東原)은 명 두경(杜瓊)의 호이다.


  ○ 다구(茶具)
(1) 고절군(苦節君) : 상수(湘水) 부근에서 생산되는 상죽(湘竹)이라는 대제품으로 만든 풍로(風爐)
(2) 건성(建城) : 차를 저장하기 위한 대바구니
(3) 상균배(湘筠焙) : 차를 불에 쬐어 건조시키 말리는 상자. 위를 덮어서 화기(火氣)를 흡수한다. 속에 간격을 두어 차를 넣는 곳이 만들어져 있다. 밑에 불을 집어넣고 차에서부터 한 자 가량 떨어지게 놓는다. 차의 빛과 향미(香味)를 돕게 하는 것이다.
(4) 운둔(雲屯) : 물을 담는 항아리
(5) 오부(烏府) : 숯을 담아두는 바구니
(6) 수조(水曹) : 다기를 씻는 나무통
(7) 명천(鳴泉) : 차를 끓이는 가마(물을 끓이는 탕관)
(8) 품사(品司) : 대나무로 짜서 들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여러가지 차잎을 저장하는 그릇
(9) 침구(沈垢) : 묵은 차를 씻는 도구
(10) 분영(分盈) : 목표(木杓), 즉 다경에서 말하는 수칙(水則)으로 물 二되에 차 一냥을 사용한다(물의 양을 재는 것)
(10) 집권(執權) : 차를 다는 저울. 차 一냥에 물 二되를 사용한다
(11) 합향(合香) : 다병을 받쳐서 품사를 저장하는 기구
(12) 귀결(歸潔) : 대로 만든 솔. 이것으로 다병을 씻는데 사용
(13) 녹진(녹塵) : 차를 씻어 담는 대바구니
(14) 상상(商象) : 옛날 돌솥
(15) 체화(遞火) : 동(銅)으로 만든 화두(火斗, 다리미)
(16) 강홍(降紅) : 동(銅)으로 만든 부젓가락. 고리는 붙어 있음
(17) 단풍(團風) : 상죽(湘竹)으로 만든 부채
(18) 주춘(注春) : 다호(茶壺)
(19) 정비(靜沸) : 죽가(竹架), 즉 다경에서 말하는 지복(支腹)
(20) 운봉(運鋒) : 과일을 깎는 작은 칼
(21) 철향(철香) : 찻잔(茶盞)
(22) 요운(요雲) : 대로 만든 차수저
(23) 감둔(甘鈍) : 나무로 만든 침돈(침墩)
(24) 납경(납경) : 상죽(湘竹)으로 만든 차쟁반
(25) 이지(易持) : 찻잔을 놓는 잔받침. 칠조비각(漆雕秘閣)
(26) 수오(受汚) : 찻잔을 씻는 수건

  ○ 다료(茶寮)
  작은 방을 하나 만드는데 서재(書齋)와 이웃하게 하고 안에는 차 도구를 준비해 두고, 한 동자(童子)에게 전적으로 차 심부름을 맡게 하고, 해 긴날의 청담(淸談)과 추운 겨울밤의 올좌(兀坐)에 시중을 들게 한다.
이야말로 유인(幽人)들에게 가장 긴요한 일로서 잠시도 없어서는 아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