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1. 04:46ㆍ율려 이야기
국악기 소개2 악기의 우두머리 '거문고'
안녕하세요 예술과 사람이 만나는 곳 알팅입니다.
국악기 소개 2번째 포스팅으로 백악지장, 악기의 우두머리라고 불리었던 거문고 입니다.
거문고 연주를 들어보면서 거문고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
저번 포스팅에서 우리나라에 고유의 악기 2가지 중에 가야금을 소개해 드렸죠
오늘은 그 두가지중 한가지가 바로 '거문고' 입니다.
거문고는 6개의 명주실이 이어져 있으며 둘째 셋째 넷째 줄 아래 에 16개의 괘(프렛)가 고정되어있고
나머지 3줄은 안족으로 놓여져 있습니다.
거문고는 가야금과 달리 술대라고하는 대나무를 가지고 연주합니다
현악기지만 술대로 타악기적인 느낌을 내는 거문고만의 맛이 있는데 그 맛이 기가막히다고 하네요 ㅎ
거문고의 역사
거문고는 고구려의 대표적인 악기로
고구려의 재상 왕산악이 진나라로부터 선물받은 칠현금을 참고해서 만든 우리나라 고유 악기입니다.
옛날에 진나라 사람이 칠현금을 고구려에 보냈다. 고구려 사람이 그것이 악기인 줄은 알아도 그 소리와 연주법을 알지 못해, 나라 사람 중 능히 그 소리를 아는 사람을 후히 상주겠다고 하였다. 그때 제2상 왕산악이 그 모양은 그대로 두고 제원을 많이 뜯어고쳐 (새 악기를) 만들고, 겸하여 100여 곡을 지어 연주했다. 그러자 검은 두루미가 날아와 춤추었으므로 현학금(玄學琴)이라 하고, 뒤에 줄여 현금(검은고)이라 했다.1)
「악지」(樂志) ‘현금’(玄琴)
고구려의 거문고
거문고의 '거문'은 고구려를 뜻하는 설과,
검은학이 날아들었다 하여 '현학금'이라 불리다가 '검은(학)'고 ->거문고로 불린다는 설이 있습니다.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망하면서 '대금'과 함께 통일신라의 '천존고' 라고하는 보물창고에 보관되고 있다가
'옥보고' 라고하는 인물이 거문고를 가지고 지리산에 들어가 거문고를 독학하면서 알려지고 전수되기 시작했습니다.
고구려 거문고의 실물 유물은 없지만, 고분벽화에는 흔히 거문고나 그 원형악기가 등장합니다.
무용총 벽화의 거문고 2종
통일신라의 거문고
고구려의 거문고는 신라의 삼국통일과 함께 신라에 수용되고 한반도 전역에 퍼진 것으로 보는데요
『삼국사기』 「악지」는 ‘신라 옛 기록’을 인용하여, 거문고의 신라 수용과 정착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음악인으로 옥보고(玉寶高)와 신라인 귀금(貴金)을 언급합니다.
신라 사람 사찬 공영의 아들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금을 배운 지 50년에 손수 새 곡조 30곡을 지어 이를 속명득에게 전하고, 속명득은 이를 귀금선생에게 전했다. (귀금)선생 또한 지리산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신라 왕이 거문고의 도가 단절될까 두려워하여 이찬 윤흥더러 그 음악을 전할 수 있도록 하라 이르고 (윤흥에게) 남원의 공사를 맡겼다. 윤흥이 부임하여 총명한 소년 안장, 청장 2명을 골라 산중에 배알하고 배움을 전하게 하였다. (귀금)선생이 이들을 가르쳤으나, 그 은밀한 것은 전하지 않았다.
윤흥이 아내와 함께 (귀금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우리 임금께서 나를 남원에 보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선생의 기예를 전하고자 함인데, 어언 3년에 선생께서 감추시고 전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내가 (돌아가) 복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고는, 윤흥은 술(병)을 받들고 아내는 잔을 잡아 무릎걸음으로 나아가 예와 정성을 다한 뒤에야 (귀금선생이) 감추었던 <표풍> 등 세 곡을 전하였다. 안장은 그 아들 극상과 극종에게 전하고, 극종은 일곱 곡을 지었다. 극종 이후 거문고로써 업을 삼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악지」(樂志) ‘현금’(玄琴)
고려의 거문고
고려의 속악(俗樂: 향악鄕樂)은 삼국의 음악과 악기를 물려받았으므로 거문고도 비파(琵琶: 향비파), 가야금, 대금 · 중금 · 소금, 장구, 해금, 피리, 박 등과 함께 『고려사』(高麗史) 「악지」에 속악기로 소개되었습니다..
고려 고종(高宗, 1213~1259) 때 여러 문신들이 놀이 삼아 지었다는 「한림별곡」(翰林別曲) 중 한 절에는 거문고를 포함한 여러 악기를 벌여 놓고 밤이 새도록 노는 장면이 나옵니다.
阿陽琴아양금 文卓笛문탁덕 宗武中琴종무듕금
帶御香어향 玉肌香옥긔향 雙伽倻솽개야ㅅ고
金善琵琶금션비파 宗智稽琴종지금 薛原杖鼓셜원장고위
過夜과야ㅅ景경 긔 엇더니잇고
(葉엽) 一枝紅일지홍의 빗근 笛吹뎍취 一枝紅일지홍의 빗근 笛吹뎍취
위 듣고아 드러지라
아양의 거문고, 문탁의 젓대, 종무의 중금
대어향과 옥기향의 쌍가야금
김선의 비파, 종지의 해금, 설원의 장구
아, 밤새우는 모습 어떠합니까!
매화 가지에 비낀 젓대 소리, 매화 가지에 비낀 젓대 소리
아, 듣고서 잠들고 싶습니다!
제6장, 『악장가사』(樂章歌詞)본
조선의 거문고
조선 초기에는 궁중의 문헌이 주를 이루다가, 조선 중기 이후부터 민간의 문헌, 악보, 그림의 비중이 점차 높아졌습니다.
특히 조선 전기부터는 소장자의 이름이 있는 악기 실물도 더러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종실록』 권132 「오례」(五禮)에 따르면, 궁중 혼인의례인 가례(嘉禮)와 사신 접대 의식인 빈례(賓禮)의 음악에 거문고를 편성했고.
함께 수록한 거문고 그림은 거문고의 여섯 줄, 열여섯 괘, 술대 등을 뚜렷이 알아볼 수 있게 표현되었습니다.
『세종실록』 권132 「오례」 중 ‘가례서례’(嘉禮序例)의 거문고 실물로 전하는 조선시대 거문고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5세기 문인 탁영( 濯 纓 ) 김일손( 金 馹 孫 , 1464~1498)의 ‘탁영금’( 濯 纓 琴 )이다. 김일손 만년인 1490년경 제작한 것으로 확인된 탁영금은 길이 160 cm, 너비 19 cm, 폭 10 cm 로 오늘날의 거문고와 대동소이하다. (보물 제 957호)
시간이 지날수록 거문고는 궁중보다 민중에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는데
조선시대 거문고의 음악과 이론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거문고 악보집들입니다.
16세기 중반부터 단편적인 악보들이 나온 흔적이 있지만, 온전한 형태로 전하는 것으로는 1572년 안상(安瑺, 생몰년 미상)이 엮은 『금합자보』(琴合字譜, 일명 『안상금보』, 보물 제283호)가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안상(安瑺), 『금합자보』(1572) 중 <평조만대엽> 시작 부분
본래 궁중에서 주로 쓰이던 악기였지만 민간에게 널리 퍼지게 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궁중 의식 음악이 차츰 관악기 위주로 재편되면서 거문고는 궁중에서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비들 방에 하나씩 걸어놓고 있을 정도로 필수품으로 여길만큼 대중적이었습니다
거문고의 종류
거문고는 가야금과 달리 종류를 나누지 않습니다.
가야금은 음역대 폭이 좁아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지만
거문고는 16개의 괘가 있어서 국악기 중에 가장 넓은 음역대(3옥타브)를 연주할 수 있고 전조도 용이한 악기입니다.
그래서인지 개량된 악기가 있지만 잘 사용되지 않는것 같습니다. (제 생각)
마치며
날렵하면서도 중후한 소리를 내는 거문고 어떠셨나요
국악은 잘 몰라도 국악기 하면 가야금과 거문고가 떠오르는데요
이렇게 읽어보니 우리나라 대표 악기라고 할만 하죠!!
예술과 사람이 만나는곳 알팅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료 출처 : 국악기 소개2 악기의 우두머리 '거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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