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1. 22:03ㆍ율려 이야기
오픈지식왕산악의 거문고를 탄생케 한 금(琴)
200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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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악(王山岳)
[생애 및 업적]
고구려시대 거문고의 제작자이며 관리 왕산악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다음과 같은 짧은 내용이 그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기록의 전부이다.
거문고의 제작에 관해 신라고기(新羅古記)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처음 진(晉)나라 사람이 일곱줄의 현악기를 고구려에 보내왔는데, 고구려사람들은 그것이 악기인 줄은 알았지만 그 악기의 성음이나 연주법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음율을 알고 연주법을 아는 사람을 거국적으로 구해서 후상(厚賞)하기로 했다.
그 때 제2재상으로 있던 왕산악이 칠현금의 뼈대를 그대로 유지한 채 크게 그 법제를 고쳐서 악기를 만들었다.
아울러 백여곡의 음악을 지어 연주하니 마침 검은 학이 날아와서 춤을 추었다.
그래서 악기 이름을 현학금(玄鶴琴)이라했고 후에는 단지 현금이라고 했다.
그가 언제 거문고를 만들었는지 삼국사기에 언급되지 않아 불확실하다. 고구려에 칠현금을 보낸 진나라가
서진(西晉,265 - 316)이냐 아니면 동진 (東晉, 316 - 419)이냐에 대해 여러 이론이 분분하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며 수십세기를 내려오며 민족의 정서를 북돋아온 악기중에서 우리의 고유한 음악정신에 한발 가까이 밀착해온 악기를 꼽으라면 거문고가 그 첫손에 꼽힌다.
둔탁한 듯 하면서도 소박하며 조잡한 듯 하면서도 오묘한 음색의 매력을 갖고 있으며 거문고가 울려주는 현실음을 뛰어 넘은 뒤안길엔 거문고의 정신, 우리의 음악정신이 담겨져 있다.
느릿하게 연주해가는 속에서 휴지(休止)의 세계,여백의 세계가 느껴진다.
그러기에 이를 만든 왕산악은 단순한 악공(樂工)이 아니라 선도(仙道) 또는 도가(道家)사상에 정통한 풍류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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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음악사(고구려,백제,신라&통일신라시대,고려,조선전기,조선후기,근.현대)에 대하여 조사를 해야하는데 좀 알려주세요ㅠㅠㅠㅜ 많이 급하니 빠른답변 부탁드립니다ㅠㅜㅜㅜ
익명의 질문입니다.
우리나라 음악사
고대: 노래와 춤이 대표적인 가무이자 음악활동이었음, 방울같은 단순한 악기와 현악기가 등장하기 시작
고구려: 대표악기 거문고, 중국 진(晉)에서 7현금을 받아 왕산악이 개량하여 연주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해져 온다. 고구려의 다양한 고분벽화의 내용으로 추정할때 고구려에는 거문고 외에 완함, 종적, 횡적, 요고, 각, 배소, 등 다양한 악기가 있으며 서역에서도 악기가 들여오고 무용수나 악단등의 교류가 있었다.
백제: 부여 능산리 출토유뮬 '금동대향로' 는 5명의 악사가 배치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악기가 있다.
신라: 대표악기 가야금, 가실왕이 당악기를 보고 가야금을 만들었으며 우륵에게 명해 12곡을 짓도록 하였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실려 있으나 삼국지 동이전의 내용으로 추정하면 고대 현악기를 개량하여 가실왕이 가야금을 만든것으로 본다. 유물로는 경주 계림로 30호분에서 출토된 장경호의 임산부 현악기 연주모습, 비파타는 토우(흙인형), 종적 부는 토우 등이 있다.
통일신라: 삼국 통일과 함께 악기도 삼현(거문고, 가야금, 향비파), 삼죽(대금, 중금, 소금), 박, 대고 등이 함께 연주되었다. 당악과의 교류가 활발하였다. 통일신라때부터 당악과 대비되는 우리의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로 향악을 쓰게 된다.(최치원의 향악잡영)
고려: 송에서 많은 당악이 들어와서 발전하며 아악이라는 새로운 음악이 등장한다. 당악이 일상음악이라면 아악은 의식에 사용되는 음악이다. 악기에 따라 당악과 향악의 구별하는 것은 고려사 악지(樂志)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 고려때 유입된 당악이 단순 모방에 그쳤다면 조선때의 큰 차이점은 고유의 향악기로 새롭게 창작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세종 후기에는 새로운 음악에도 향. 당악기 혼합편성을 하여 새로운 느낌의 연주를 시도하기도 한다. 고려사 악지처럼 악기로 구별하지 않고 조선의 악학궤범은 악기의 연원으로 구별하여 설명한다. 예악이 발전한 조선에는 궁중음악과 아악이 발달하고 많은 악기들이 새롭게 만들어진다.
구한말 이후: 서양음악의 수입으로 국내에 잔류하던 당악, 아악... 등의 구분을 통일할 필요를 느끼게 되며 이때 국악이라는 말이 탄생한다. 향악기와 당악기, 아악기 의 종류를 모두 국악기로 칭하게 되었다. 민속악도 발전하여 종래의 가야금이나 대금을 좀 더 풍부한 성량을 지니게 개량한 산조가야금, 산조대금이 만들어 진다. 무대공연에 자주 쓰이는 산조아쟁도 나타났으며 고려에서 조선으로 변모할때 새로운 시도로 창조음악이 발달되고 그에따라 새로운 악기가 나타났던것 처럼 구한말이후 서양음악을 받아들이며 단순히 흡수되는 음악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국악미를 살리고 새롭게 창조 발달하는 음악사적 흐름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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