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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 성인은 354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타가스테
(오늘의 알제리의 수크아라스)에서 모니카 성녀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가운데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끊임없는 기도와 이탈리아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영향으로 회개하고 입교하였다.
391년에 사제가 된 그는 5년 뒤 히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아우구스티노 주교는 이단을 물리치며 교회를
수호하는 데 일생을 바치는 가운데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430년에 선종한 그는 중세 초기부터 ‘교회 학자’로 존경받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에서 복음을 전하는 데 얼마나 정성을
쏟아부었는지 밝히고 있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고, 경건하고 의로운 태도로 그곳의 신자들을 대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복음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보며 불행하다고
선언하신다. 이들은 회칠한 무덤처럼 속은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고,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면서 오히려 예언자이신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복음).
<우리는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2,9-1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자 여러분에게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게 또 흠 잡힐 데 없이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이 증인이고 하느님께서도 증인이십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하면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으로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여러분에게 권고하고 격려하며 역설하였습니다.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호되게 나무라십니다.
겉과 속을 달리하며 사는 그들의 모습을 두고
‘회칠한 무덤’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는 ‘코스프레’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나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을 흉내 내어
그 의상과 행동을 따라 하는 축제 같은 것입니다.
코스프레를 할 때에는 현실 속의 나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철저히 새로운 모습의 또 다른 인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도 일상에서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진실한 모습은 감춘 채 겉으로 꾸며진 모습을 연출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 ‘꾸며진 나’와
‘있는 그대로의 나’가 함께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면 쓰는 것에 익숙하다 보면 그것이 위선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무엇이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참된 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때 그 사람은 오늘 예수님의 말씀대로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가면에 익숙한 나머지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자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들 스스로가 이를 깨달아 하느님 앞에서
가면을 벗고 진실한 모습을 갖추라고 촉구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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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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