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정토불교의 세계 / 제9장 중국의 정토사상 - 8. 송대 이후의 정토사상

2013. 8. 27. 16:12경전 이야기

            

                                  8. 송대 이후의 정토사상

 

 

                                                                                    장휘옥 著/불교시대사  

 

자민삼장 이후 선정(禪定)의 쌍수가 설해짐으로써 염불과 선의결합이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그 영향을 받아 부처나 정토를 마음으로 파악하려는 유심정토(唯心淨土) 사상이 강해져, 이후 배출된 사상가들의 공통적인 성격이었다.

 

즉 천태종 산가파(山家派)의 지례(知禮, 960~1028)는 <관경소묘종초(觀經疏妙宗?>를 저술하고 천태종의 입장에서 선종을 비판하면서, 마음에 부처님을 관하는 '약심관불(約心觀佛)'의 설을 제창하고, 동문인 준식(遵式, 963~1032)은 <왕생정토결의행원이문(往生淨土決疑行願二門)>을 저술하여 선종을 비판함과 동시에, 또한 유심정토의 설을 주장하였다. 율종의 원조(元照, 1048~1116)도 <관무량수경소>와 <아미타경소> 등을 저술하여 천태의 사상을 이어받으면서, 또한 다른 입장에서 선을 비판하고, 자례의 설도 논파했다.

 

그러나 이들의 대립은 사소한 논점이었을 뿐 큰 흐름은 선정일치와 태정일치(台淨一致)의 기반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경향은 원·명시대에도 거의 그대로 이어졌는데, 명대의 대표적인 정토사상과 주굉(?宏1535~1615)의 선정일치 사상이나, 지욱(智旭, 1599~1655)의 선교율(禪敎律)을 염불에 통일하려는 사상에서 나타난다. 정토는 다른 여러 종파와 결합하여 염불은 쌍수(雙修)의 하나로 정착하였으며, 성종의 염불 병수(幷修)는 가장 현저한 모습이다.

 

 

 

 

 

 

 

출처 : 미주현대불교
글쓴이 : 파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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