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오늘의복음]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8/29)

2013. 8. 30. 11:01경전 이야기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8/29)








    “여자에게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에 앞서서 그분의 길을 닦고 준비한 위대한 예언자이다. 이러한 요한 성인은 헤로데 임금의 불륜을 책망하다가 헤로데의 아내 헤로디아의 간계로 순교하였다 (마르 6,17-29 참조). 요한 세례자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한 것은 4세기 무렵 그의 유해가 있던 사마리아의 지하 경당에서 시작되었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당신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명령하신다. 그러나 이는 온 땅과 맞서는 일이고, 유다의 권력자들뿐 아니라 백성 전체와 싸워야 하는 고난의 길이다(제1독서). 요한 세례자는 헤로데 임금이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혼인한 사실에 대해 간언하다가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헤로데의 생일잔치 때 헤로디아의 간계로 목숨을 잃는다(복음).
    제1독서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17-19 그 무렵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7-29 그때에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명백한 대조를 봅니다. 바로 요한 세례자와 헤로데 임금입니다. 요한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에 앞서 그분의 길을 닦으며 준비한 선구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회개를 촉구하면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들꿀과 메뚜기를 먹으면서 광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그만큼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헤로데는 그 반대입니다. 그는 교활하고 야심 많은 통치자로, 동생의 아내를 차지한 탐욕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두려워하여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인 헤로데 대왕이 바로 그의 아버지이며, 자신 또한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며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였습니다. 이 두 인물이 오늘 복음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 만남을 통하여 두 사람의 대조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요한이 정의를 대변하는 사람이라면, 헤로데는 불의를 대변하는 자이며, 요한이 하느님의 진리를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라면, 헤로데는 거짓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자입니다. 요한이 수난을 당하는 사람이라면, 헤로데는 폭력을 행사하는 자입니다. 결국 요한은 자신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불의한 헤로데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을 두고 ‘당당한 패자’와 ‘부끄러운 승자’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통은 바로 ‘당당한 패자’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당당한 패자의 삶을 사시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당한 패자’에게 ‘참승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당한 패자’입니까, 아니면 ‘부끄러운 승자’입니까?
 
-출처 매일 미사-
♬ 고통의 길 주님의 길 
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글쓴이 : 사랑과 진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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