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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연중 제22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며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드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9월 첫날인 오늘, 예수님의 겸손하신 모습을 닮아 가기를 다짐합시다.
집회서는 참지혜가 무엇인지 서술하고 있다.
지혜는 주님을 경외하는 데에서 온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말씀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을 낮추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제1독서).
시나이 계약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현존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새 계약을 맺은 우리는 천상
예루살렘 안에서 하느님을 두려움 없이 만날 수 있게 되었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어느 바리사이의 집에서 사람들이 윗자리를 탐하는 것을
보시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낮추는 이가 높아진다고 가르치신다(복음).
<너를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3,17-18.20.28-29
얘야, 네 일을 온유하게 처리하여라.
그러면 선물하는 사람보다 네가 더 사랑을 받으리라.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정녕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거만한 자의 재난에는 약이 없으니,
악의 잡초가 그 안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현명한 마음은 격언을 되새긴다.
주의 깊은 귀는 지혜로운 이가 바라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2,18-19.22-24ㄱ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만져 볼 수 있고
불이 타오르고 짙은 어둠과 폭풍이 일며
또 나팔이 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 말소리를 들은 이들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말씀이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7-14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잔치에 초대되었을 때에
윗자리가 아니라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끝자리’가 단순히 공간적인 뜻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앉고 싶지 않은 자리라면 거기가 바로 끝자리입니다.
이를테면 주일인데도 성당에 가기 싫다면 성당 좌석이 곧 끝자리입니다.
제삿날이지만 시댁에 가기 싫다면 시댁이 곧 끝자리입니다.
교회 활동으로 어려운 가정을 방문해야 하는데,
갈 때마다 불편하게 느껴지면 바로 그 집이 끝자리입니다.
보좌 신부 때에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회식 자리가 잦았습니다.
스무 명이 넘게 모이는데, 보통 친한 이들끼리 가까이 앉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다소 소외되는 이들은 한쪽 구석으로 몰립니다.
결국 한쪽에는 인기가 좋은 이들이,
다른 쪽에는 소외되는 이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러면 보좌 신부인 저는 어디에 앉아야 했겠습니까?
마음으로는 좀 더 매력 있는 청년들 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반대로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에게서 “우리 신부님은
청년들을 편애하지 않는 것 같아.” 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가기 싫은 자리, 하기 싫은 일, 선택하고 싶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이
바로 ‘끝자리’에 앉는 것이고, 겸손을 향한 지름길입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면, 앉고 싶은 자리만 앉으려고 하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려고 하면 겸손을 배우지 못합니다.
겸손을 배우려면 ‘끝자리’에 앉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 낮은 자 되게 하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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