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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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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교황은 540년 무렵
로마의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법학을 비롯한 귀족 계층의 고등 교육을 받은 그는
로마의 고위 공직자를 지낼 정도였으나,
모든 재산을 교회에 기증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
590년에 교황으로 뽑힌 그레고리오는 교황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한 최초의 교황이다.
교황권을 ‘지배하는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특전’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듯이,
그레고리오 교황은 전례 음악뿐 아니라
신앙과 윤리에 관한 저서를 많이 남기고 604년에 세상을 떠났다.
주님의 날이 갑자기 닥쳐올 것이므로 어둠의 자녀들에게는
마치 도둑이 덮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빛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다.
늘 깨어 있는 자세로 서로 격려하는 가운데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카파르나움의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나타나 방해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위로 그를 내쫓으신다(복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5,1-6.9-11
형제 여러분, 그 시간과 그 때에 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화롭다, 안전하다.” 할 때,
아기를 밴 여자에게 진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그들에게 파멸이 닥치는데,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고 저마다 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1-37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외친 말입니다.
자기들이 하는 일에 왜 훼방을 놓는지 따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들이 훼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칠흑 같은 밤에 배 한 척이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방에 불빛이 하나 보였습니다.
앞쪽의 배가 지금 당장 방향을 틀지 않으면 충돌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쪽의 선장이 확성기로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지금 당장 방향을 남쪽으로 15도 바꾸시오!”
그러자 그쪽에서도 반응이 빨랐습니다.
“당신 배를 북쪽으로 15도 바꾸시오!”
선장은 당황하며 다시 한 번 소리 질렀습니다.
“나는 이 배의 선장이오. 지금 당장 방향을 바꾸란 말이오.”
그러자 그쪽에서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3등 항해사요. 그 배의 방향을 바꾸시오.”
불쾌해진 선장이 더 크게 외쳤습니다.
“이 배는 거대한 화물선이란 말이오.
그러니 당신네가 남쪽으로 15도 트시오!”
역시 그쪽에서도 곧바로 반응했습니다.
“여기는 섬에 있는 등대요. 얼른 북쪽으로 15도 돌리시오.”
이 소리를 들은 선장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뱃머리를 북쪽으로 돌렸습니다.
선장이 방향을 바꿀 수 없다고 계속 고집을 부렸으면
그 배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와 주님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뜻이 주님의 뜻과 다르면 누가 그 뜻을 바꾸어야 하겠습니까?
주님께서 바꾸셔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배가 섬을 옮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우리도 더러운 영처럼 예수님께 훼방하지 마시라고,
걸림돌이 되지 마시라고 항변하고 있다면 섬을 옮기려는
어리석은 선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 Dans nos obscurities 어둠 속에 주님의 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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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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