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오늘의복음]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9/27)

2013. 9. 27. 17:56경전 이야기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9/27)






    빈첸시오 드 폴 성인은 1581년 프랑스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도움으로 공부한 그는 사제가 되어 파리에서 본당 사목자로 일했다. 빈첸시오 신부는 한때 여행 도중 해적들에게 잡혀 노예 생활을 하였다. 이 일로 말미암아 그는 고아와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고 자선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660년에 선종한 그를 1737년 클레멘스 12세 교황이 시성하였고, 1885년 레오 13세 교황은 모든 자선 단체와 병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의 정신과 활동을 계승하려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1833년 파리에서 설립되어 현재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 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예수아 대사제, 유배지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용기를 북돋우시며 성전 재건에 힘쓰라고 말씀하신다(제1독서).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요한 세례자나 엘리야 또는 옛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긴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구세주라고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머지않아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가득 채우리라.> ▥ 하까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15ㄴ─2,9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이었다. 그해 일곱째 달 스무하룻날에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 “너는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와 나머지 백성에게 말하여라. ‘너희 가운데 이 집의 옛 영화를 본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느냐? 지금은 이 집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너희 눈에도 있으나마나 하지 않느냐? 그러나 즈루빠벨아, 이제 용기를 내어라. 주님의 말씀이다.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야, 용기를 내어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일을 하여라.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맺은 언약대로,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에 머무를 터이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 정녕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머지않아 나는 다시 하늘과 땅, 바다와 뭍을 뒤흔들리라. 내가 모든 민족들을 뒤흔들리니 모든 민족들의 보화가 이리 들어오리라. 그리하여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가득 채우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은도 나의 것, 금도 나의 것이다.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이 집의 새 영광이 이전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이곳에 평화를 주리라.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22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사람들은 요한 세례자나 엘리야, 또는 옛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자신의 주변 인물 정도로밖에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만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 곧 구세주라고 고백합니다. 군중과 달리 베드로는 예수님을 삶의 중심으로 여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단순히 우리 삶의 주변 인물이 아니라 중심이라는 생각, 이것이 바로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흔히, 예수님께서 ‘나’의 뜻에 따라 움직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예수님을 주변 인물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우리 자신이 중심이고, 예수님께서는 이에 맞추어 움직여 주시는 존재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이며, 또한 정반대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중심이시고, 그 중심에 맞추어 우리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는 주님께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저랬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청원과 함께 반드시 다음과 같은 기도를 덧붙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 삶을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중심이시며, 저는 그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제 뜻대로가 아니라 주님 뜻대로 하소서.’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대로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중심이신 주님께서는 그 고난 뒤에 반드시 우리를 되살리실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Lord Jesus Christ 주 예수 그리스도 
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글쓴이 : 사랑과 진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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