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오늘의복음]연중 제27주간 수요일(10/9)

2013. 10. 30. 16:08경전 이야기

 



연중 제27주간 수요일(10/9)






    말씀의 초대
    요나 예언자는 적국의 수도인 니네베의 죄를 주님께서 벌하지 않으신 것에 대해 무척 화가 났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는 요나와 이야기를 나누시며 당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이와 피조물을 사랑하고 계심을 밝히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사고 청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알려 주신다(복음).
    제1독서
    <네가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4,1-11 요나는 매우 언짢아서 화가 났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기도하였다. “아, 주님! 제가 고향에 있을 때에 이미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서둘러 타르시스로 달아났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 제발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주님께서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말씀하셨다. 요나는 그 성읍에서 나와 성읍 동쪽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거기에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하였다. 주 하느님께서는 아주까리 하나를 마련하시어 요나 위로 자라오르게 하셨다. 그러자 아주까리가 요나 머리 위로 그늘을 드리워 그를 고통스러운 더위에서 구해 주었다. 요나는 그 아주까리 덕분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이튿날 동이 틀 무렵, 하느님께서 벌레 하나를 마련하시어 아주까리를 쏠게 하시니, 아주까리가 시들어 버렸다. 해가 떠오르자 하느님께서 뜨거운 동풍을 보내셨다. 거기에다 해가 요나의 머리 위로 내리쬐니,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어 죽기를 자청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셨다. “아주까리 때문에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그가 “옳다 뿐입니까? 화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4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주십사고 청합니다. 우리 교우들 가운데에도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들려주는 체험이 있습니다. 부제품을 준비하며 열흘 넘게 대침묵 피정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피정으로 크나큰 감동을 맛보고 많이 변화된 선배들을 보아 왔기에 저 역시 그 피정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그래서 피정 내내 누구보다도 열심히 기도에 매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도 감동은커녕 고달프기만 하였습니다. 물론 깨달음이 오기는 하였지만 부제품을 앞둔 사람의 삶 전체를 받쳐 줄 정도의 확고한 깨달음은 아니었습니다. 피정 막바지에 저는 지도 신부님에게 피정 내내 겪어야 했던 메마름과 실망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기도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지도 신부님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가 만족을 하는지, 그렇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이십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시간을 내어 당신과 함께한 것에 대해 너무나 기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십시오.” 피정이 끝날 때만 하더라도 큰 감흥이 없는 듯해 아쉬움이 많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돌이켜 보니 그 피정이 다른 어떤 피정보다도 가장 뜨겁고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기도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도 안에서 갈증을 해소할 오아시스를 만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순간의 갈증을 풀어 주는 기도가 반드시 좋은 기도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사막을 가로지르는 듯한 메마름을 느끼면서도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이어 나가는 기도가 더욱 값진 기도일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주님의 기도 

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글쓴이 : 사랑과 진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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