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대관령 옛길 주막터에서

2013. 5. 15. 00:21산 이야기

 

 

  대관령 옛길을 따라서 내려 가다가 보면,대관령 박물관이 약 1키로미터 남은 길가에

 

옛 주막터를 복원한 귀틀집이 한채 서 있다.

 

 

  주막터의 주변 풍경을 보니 온갖 야생화가 피어 있고, 특히 눈에 띄이는 식물은

 

산복숭아. 산뽕나무 그리고 오얏나무이다.

 

 

 

     주막터 주변의 산복숭아는 대관령의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밑둥부터 휘어져서

 

비스듬이 자라고 있다. 산복숭아 나무를 심어서 가꾸는 이유는 이 곳이 무릉도원(武陵桃源)임을

 

시사하는 함의가 있다.

 

  무릉도원이라는 말은 귀거래사를 지은 도연명이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의하면, 중국 진(晉)나라 때에 호남(湖南) 사람인 한 어부가

 

배를 타고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수원지(水源池)로 올라가 보니. 굴속에서 진(秦)나라 때에

 

난리를 피하여 온 사람들이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 데, 그들은 바깥 세상의 변화와 세상-즉 나라가

 

바뀐 줄도 모르고 유유자적하며 살아가고 있더라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대관령의 유래 안내판

 

 

주막터에 근래에 복원된 귀틀집

 

 

2008년에 다시 지어진 귀틀집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산복숭아나무 밑둥치

 

 

산뽕나무

 

 

찔레꽃  ;  어릴 때 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고, 겨울철의 빨간 열매는 산새들의 먹이감이 됨.

 

 

유월의 태양에 익어 가는 산복숭아

 

 

 

 

         산중 집터 주변에 산뽕나무를 심고 가꾸는 까닭은 크게 세가지 면으로 구별될 수 있다.

 

첫째, 뽕잎 나무껍질과 뿌리껍질(상백피:桑白皮)을 식용이나 약용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가뭄이나

 

큰 홍수가 나서 식량이 모자랄 때를 대비한 구황식물로 심었다.

 

  둘째, 뽕잎으로 누에를 길러서 명주옷감을 만들어서 나들이 옷이나 이불 등 침구류의 재료로 사용하는

 

양잠용(養蠶用)이다.

 

   샛째, 산중에 동방의 신선들이 산다는 부상지지(扶桑之地)를 형성하여 이상향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숨은 함의가 있다.

 

 

   예로부터 해가 뜨는 동방을 부상지지(扶桑之地)라고 하여<예문유취(藝文類聚) 券第一 天部上 日 참조>,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 3권 3흥법(興法)> 조에도 불법(佛法)의 동류(東流)를 설명하면서,

 

부상(扶桑)이 우리나라인 동방을 상징하는 뜻으로 나온다.

 

  또한, 중국 <양서 제이전(梁書 諸夷傳>에서, 상상의 나라 세나라인 문신국(文身國), 대한국(大漢國)과

 

부상국(扶桑國)을 설명하면서 < 부상국은 대한국의 동쪽 이만여리의 땅에 있다고 한다.>하여 요지음의

 

지도거리로 살펴보면 태평양 중의 한 섬이거나 북쪽으로 계산하여 극동 시베리아에 속하는 나라이다.

 

 

   다른 기록에는 부상국은 일본의 북해도에 해당하는 나라로서, 최고 관직명이 고구려의 관등명인

 

대대로(大對盧)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의 식민지이거나 고구려의 내부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유민집단이 건설한 나라라는 설이 있다.

 

 

   미수 허목(眉秀 許穆 :1595~1682)의 <기언 (記言之二十八 下篇 山川下)>의 동해송(東海頌)에서는

 

부상(扶桑)은 <동해 가운데에 있는 신목(神木)으로, 그 신목이 서 있는 나라를 가르킨다>라고

 

설명하였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부상(扶桑)은 해 뜨는 동방의 나라 혹은 나아가서는 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 신선들이 사는 이상향을 의미하는 말로 쓰여 왔다.

 

 

 

익어가는 오디 : 산새나 소동물들에게 먹이감이 되며.

하지 전후의 뜨거운 햇살 속에서 오가는 길손들에게 간식 보시용으로 사용됨.

 

 

붓꽃 : 문필 또는 학문의 성취를 뜻함

 

 

뽕나무 둥치

 

 

산뽕나무와 어린 산복숭아나무

 

 

 

 

  마지막으로 오얏나무는 중국 도교의 노자(老子)의 성이 오얏나무 이(李)씨여서 , 도교적인 이상향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나, 조선조 이후에는 태조 이성계의 성이 마찬가지로 오얏나무 이(李)씨이므로 국가와 왕실에

 

충절(忠節)을 다한다는 복합적인 의미로 오얏나무를 많이 심었다.

 

 

    산복숭아,산뽕나무와 오얏나무 또는 자두나무를 산중 처소 근처에 많이 심어 왔던 것은,

 

이 터 자체를 이상향으로 삼고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현세의 밥벌이를 위하여 몸은 산중 주막을 영위하고 있으나, 정신세계 만큼은 이상향 또는

 

선계(仙界)에서 노닐고 싶다는 그들의 정신세계의 한 편린을 주막터 근처의 나무를 보고,

 

다시 한번 느껴 본다.   ..........

 

 

 

 찔레꽂

 

 

대관령 옛길 계곡

 

 

 

오얏나무

 

 

 

가루녹차  차유희도(茶游戱圖) 

 

 

가루녹차 차유희도 :  우연히 나타난 무릉도원의 흔적들...

출처 : 백담 그 시절...
글쓴이 : 케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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