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4. 23:50ㆍ산 이야기
북한산(옛 이름 삼각산)과 관련한 고인들의 유산기 20편을 올립니다.
1. 한국국학진흥원의 사이트 안에서 '사업안내->문화콘텐츠->조선시대유산기' 란 하단의 http://yusan.culturecontent.com/로 들어가시면 감상이 가능합니다.
2. 위에서 서비스하는 순서와 내용으로 하였으나 해당 글의 출전과 유산의 연대를 밝히고 원문이 일부만 제공되는 세 편( 李德懋의「기유북한(記遊北漢)」과 李瀷의「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와 李廷龜의「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은 원문을 채워 넣었습니다.
3. 가독의 편의를 위하여 간단한 오탈과 띄어 쓰기에 대하여 일부 손을 보았습니다.
4. 나머지 원문의 일부만 서비스되고 있는 4편의 작품에 대하여서는 제목 우측에 표시하여 놓았는데 추후 찾아서 보완해 놓을 예정이며, 그 외에 삼각산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작품들로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발견되었습니다.
1)「도봉서원기(遊道峯書院記)」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1564∼1635)의『월사집(月沙集)』권38에서
2)「유북한기(遊北漢記)」
양원(陽園) 신기선(申箕善, 1851~1909)의『양원유집(陽園遺集)』권10에서 1898.
3)「유청담기(游淸潭記)」
미산(眉山) 한 장석(韓章錫, 1832~1894)의『미산집( 眉山集)』권8에서
4)「재유조계기(再游槽溪記)」
창설재(蒼雪齋) 권두경(權斗經, 1654~1726)의『창설재집(蒼雪齋集)』권12에서
5)「도봉서원기(道峯書院記」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의『율곡집(栗谷集)』 권13에서
6)「유도봉기(遊道峯記)」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 1776~1852)의 『매산집(梅山集)』권28에서
7)「제중흥유기권후(題重興游記卷後)」
문무자(文無子) 이옥(李鈺, 1760∼1812)의『담정유고(藫庭遺藁)』권10에서
(위 7편은 추후 번역하여 올려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5. 고인들이 삼각산에 오르내린 기록과 그에 따른 감흥을 술회한 시문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은대산우회 회원들이 같이 더 찾아 보기로 하면서 우리가 오늘의 유산기(산행후기)를 남기는 일도 역시 뜻있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後之視今 亦猶今之視昔'이라 하니 그렇다면 비감한 가운데도 亦足以暢敍幽情일 것입니다. 이것이『삼각산유산기집성(三角山遊山記集成)』을 도모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북한산 <<<ㅡ 삼각산
산은 그 형상(形象)으로 보아 골산(骨山)과 육산(肉山)으로 나누어진다.
골산은 금강산, 설악산과 같이 바위가 많은 산으로 지혜(智慧)를 상징하고 육산은 지리산, 덕유산과 같이 바위가 적고 흙이 많은 산으로 자비(慈悲)를 상징한다.
바위는 기를 많이 발산하기 때문에 산에 들어 도를 닦는 이들은 흔히 바위 위에서 수련을 하였고 예수도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자 바위산에 올랐다.
『택리지(擇里志)』에 따르면 산 모양이 돌로 이루어진 골산이어야만 산이 수려하고 물 또한 맑고 강과 바다가 서로 만나는 곳에 좋은 터를 부려놓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곳이 나라 안에는 개성의 오관산(五冠山), 한양의 삼각산(三角山), 진잠의 계룡산(鷄龍山), 문화의 구월산(九月山) 네 곳 이라고 한다. 특히 삼각산은 역시 골산인 도봉산(道峰山)과 연달아 얽힌 산세여서 돌 봉우리가 무척 맑고 만 줄기 불이 하늘에 오르는 것 같다고 했다.
북한산(北漢山)은 『산경표(山經表)』의 산줄기 개념으로 보면 한강 북쪽에서 흘러내려와 한강을 건너지 못하는 산줄기인 한북정맥(漢北正脈) 상에 있는 산이다.
백두산(白頭山)에서 시작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동해(東海) 연안(沿岸)을 따라 남쪽을 향하다가 강원도 평강군 분수령에서 서남쪽으로 꺾어져 적근산, 대성산, 광덕산을 일구고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인 광덕고개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솟구쳐 백운산, 국망봉, 청계산, 운악산을 지나며 높낮이를 이어오다가 포천과 의정부를 넘나드는 축석고개에서 그 높이를 현저히 낮추고 불곡산, 도봉산을 지나 북한산과 도봉산을 가르는 우이령에서 본줄기는 서향(西向)하여 노고산에 잠시 솟구쳤다가 장명산에서 임진강 하류로 숨어들어 산줄기의 뻗음을 마감하고 또 다른 한줄기는 남향(南向)하여 백운대(白雲臺), 인수봉(仁壽峰), 만경대(萬頃臺)를 솟구쳐 일구어 놓았으니 이를 삼각산(三角山)이라 하는데 속칭 북한산이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역사서들은 북한산을 삼각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고려사』 그리고 조선시대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여지도서』,『증보문헌비고』,『북한지』, 『대동지지』 등 역대 지리서와 조선왕조실록에 북한산을 한결같이 삼각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백운대(836.5m) 인수봉(810.5m) 만경대(799.5m)의 세봉우리가 이루고 있는 그 모양이 세 개의 뿔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세뿔 즉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려졌다.
그럼 북한산이란 이름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
삼국시대부터 지금의 서울지역인 한강유역을 한산(漢山)이라 하였는데 한강을 중심으로 북쪽지역을 북한산(北漢山), 남쪽지역을 남한산(南漢山)이라 하고 한산에서 가장 양지바른 곳을 한양(漢陽)이라 하였다.이와 같이 북한산이란 산 이름이 아니라 지역(地域) 이름인 것이다.
북한산의 이름도 각 시대마다 달리 불렀는데 삼국시대에는 부아악(負兒岳), 횡악(橫岳)이라 하였고 고려, 조선시대에는 삼각산(三角山), 화산(華山), 중악(中岳) 이라 하였다.
삼각산의 한 봉우리인 인수봉 뒤에 튀어나온 바위가 마치 어머니가 어린애를 업고 있는 형상이라서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부아악(負兒岳)이라 했고, 삼국시대는 북한산을 가로 놓고 대치하여 길항하고 있었으니 이 때문에 가로 횡(橫)자를 사용하여 횡악(橫岳)이라 불렀고, 중국의 영향을 받아 중국이 자기나라를 세계의 중심으로 기운이 결집되어 꽃같이 피어난다는 의미로 중화(中華)라고 칭하고 있듯이 화악(華岳) 또는 중악(中岳)도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산의 격(格)을 말해주는 기준으로 최고의 지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12종산(宗山)이 있으니 북한산도 그 중의 하나이다.
백두산, 원산, 낭림산, 두류산, 분수령, 태백산, 속리산, 장안산, 지리산은 백두대간에 위치하여 다른 산줄기를 가르는 분기점(分岐點)이라는 조종적(祖宗的) 위치인데 북한산은 금강산, 오대산과 더불어 그러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종산의 반열에 들었다.
천하명산 금강산(金剛山)이야 중원(中原)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이고 오대산(五臺山)은 불법(佛法)의 보고(寶庫)이니 종산이 되고도 남을 터인데 북한산은 이도저도 아니면서 종산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북한산이 부려놓은 터가 한 나라의 도읍을 가능하게 한 명산이었기에 그러하다.
이처럼 북한산이 도읍지를 부려놓은 명산이라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이성계가 산에 올라 시를 남겼고 나라의 경계를 굳건히 하고자 진흥왕이 산에 올라 비석을 남겼고 원효, 의상, 도선, 보우, 탄연, 진관, 승가, 법경 등의 스님들이 수행을 위하여 산에 들어 절을 지었고, 숱한 사대부 양반들이 산에 올라 산천경계를 감상하고 유산기(遊山記)를 남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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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의 산행기 모음을 볼 수 있는 사이트입니다.
백두산 금강산 지리산 북한산 가야산 청량산 등 7개산 산행기 250편을 번역해 올려놓았습니다.
산행기 외에 지도, 산행 경로, 사진, 관련 漢詩, 설화 등 다양한 컨텐츠를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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