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대제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3. 11. 4. 23:12우리 역사 바로알기

 

 

 

 

 

      

 

    

        종묘대제의 첫 번째 절차 ‘취위’. 왕과 제관이 제례를 위해 정해진 위치에 서는 의식이다.

 

 

  국가제사의 기원

 

  조선은 건국 후 1474년(성종5) 오례(五禮)를 기준으로 국가체계를 완성하였다. 오례는 제사에 관한 길례(吉禮), 국왕의 즉위나 왕세자 책봉, 국가혼례 관련 가례(嘉禮), 외국 사신 맞이 의례인 빈례(賓禮), 출정 등 군사에 관한 군례(軍禮), 국장(國葬) 관련 흉례(凶禮)로 구성되었다. 

 

  국가제사는 길례에 해당하는 국가의 핵심의례로 만물의 근원이 되는 하늘신(天神)을 위한 환구제(圜丘祭), 국토와 오곡의 신에 국태민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사직제(社稷祭), 조상신인 역대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종묘제례(宗廟祭禮)를 비롯하여 농업국가 조선에서 중시한 농사의 신(神) 선농(先農)과 양잠의 신(神) 선잠(先蠶)에게 지내는 제사가 대표적이다. 

 

  유교국가의 통지행위인 국가 제사는 천신, 지기(地祇), 조상신인 인귀(人鬼)를 대상으로 군주는 제사를 통하여 이들의 공적에 보답기 위한 윤리적인 행위를 표현함과 동시에 권위와 정당성을 확보 받는 정치적인 행사였다. 

 

  조선시대 국가제사는 제사의 등급에 따라 주재하는 사람의 지위나 절차가 달랐으며 제례에 사용하는 음식이나 복식, 음악, 무용도 차이가 있었다. 천자만 지네는 환구제와는 달리 사직제는 제후, 지방관, 일반백성에 까지 정해진 규모와 형식에 따라 지낼 수 있었으며 왕실의 종묘제례와 같은 국가제사의 전통은 사대부와 일반백성에도 계승되어 오늘날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전승되고 있다. 

 

 

 

두 번째 절차 신관례(晨祼禮) 모습. 하늘과 땅 속에 있는 신을 부르기 위해 향을 피우고 땅에 술을 붓는 의식을 행한다. 

세 번째 절차 천조례 (薦俎禮). 신위가 모셔진 각 실에 제물을 올리는 절차이다.

 

 

 

 

  조선시대 국가제사 중 환구제, 즉 제천례(祭天禮)는 중국과 연계된 천하관의 문제 등으로 인해 세조대까지 이어지다 중단된 후 고종대인 1895년 대한제국 건국과 함께 부활되었다. 이로 인해 제천례의 주요내용 이었던 기곡제(祈穀祭)는 중종대 이후 선농단에서 주로 행해지다 숙종대부터는 사직단으로 옮겨 거행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종묘는 삼국시대에 처음 세워졌다. 신라는 남해차차웅이 서기 6년 시조묘를 세우고 유리이사금이 직접 시조묘에 제사를 올렸으며, 고구려에서는 서기 20년(대무신왕 3) 동명왕묘(東明王廟)를 세웠으며, 백제는 온조왕 대에 동명왕묘와 국모묘(國母廟)를 세웠다. 고려는 992년에 종묘를 완성하였다. 

 

  1392년 조선 건국 후 개경에 있던 고려의 종묘 자리에 조선의 종묘를 세웠으나 도읍을 서울로 정하면서 1395년 경복궁을 중심으로 오른 쪽에 사직(社稷)을 왼쪽에 종묘를 설치하였다. 따라서 종묘와 사직은 조선시대 국가를 의미하는 종사(宗社)로 일반화되어 사용되었다. 

 

  현재 종묘의 정전(正殿)에는 27명의 국왕 중 태조를 비롯한 18명과 추존된 국왕 1명을 합하여 19명의 신주만 봉안되어 있고 나머지는 영녕전(永寧殿)에 모셔져 있다. 그리고 지위가 군(君)으로 격하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주는 없으며 역대 공신들의 신주를 모신 공신당(功臣堂)과 궁궐을 호위한 일곱 신을 모신 칠사당(七祀堂)이 별도로 자리하고 있다. 

 

 

 

 

네 번째 절차 초헌례(初獻禮). 초헌관이 첫 번째 술(예제)를 올리는 예로 보태평을 연주하고 춤춘다.

종묘친제규제도별병 중 친제반차도 및 친제찬설도

 

 

 

  종묘제례의 현재적 의미

  전통시대 국가제사는 형식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천신(天神)에게 지내는 것을 ‘사(祀)’, 지기(地祇)에게 지내는 것을 ‘제(祭)’, 인귀(人鬼)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향(享)’, 문선왕(文宣王)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석전(釋奠)이라 하였다. 

 

 

 

 

다섯 번째 절차 아헌례(亞獻禮). 아헌관이 두 번째 술(앙제)을 올리는 예로 정대업을 연주하고 춤춘다.

 

 

   

  전통시대 새로운 국가의 건국에는 이를 지탱해 줄 사회적 목표와 통치를 위한 이념이 요구되었다. 1392년 조선이 유교를 국시로 건국된 후 국가통치를 위한 핵심가치는 “충(忠)과 효(孝)”, “예(禮)와 악(樂)”이었다. 이러한 충과 효, 예와 악을 강조한 유교문화권에서 최고통치권자가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또 실천하던 공간이 바로 종묘였다. 즉, 종묘는 국왕이 그 조상을 섬기는 모습을 통해 ‘효’의 실천의지를 만백성에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이는 ‘효’를 이루면 ‘충’이 되므로, 종묘의 궁극적인 의미는 국왕이 백성에게 효와 충을 동시에 보여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예’와 ‘악’은 종묘제례에 잘 드러나는 데 제례를 행할 때 예와 함께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대한제국의 폐망과 일제강점기, 6.25전쟁, 건국과 산업화의 급격한 시대변화를 통해 수백 년 동안 이 나라를 지탱해온 “충과 효”, “예와 악”은 그 위상이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다행히도 민족문화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과 1962년 문화재보호법의 제정으로 전통문화의 전승이라는 틀 속에서 종묘와 관련된 제례, 음악을 비롯하여 전통문화 전반에 대한 계승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현재적 관점에서 종묘제례의 복원은 시대의 가치이념을 달리하는 산업사회에서 전통윤리인 “충과 효”의 가치와 의미를 국민들에게 새롭게 인식시켜주고 전승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예와 악”은 조선시대 국가의례에 사용된 의례절차는 물론 각종 궁중음악과 무용 등 아악이 당대 대중예술의 근간이 되었던 사실을 상기하면 제례에 사용된 의례체계와 음악, 무용 또한 현전하는 전통예술을 구성하는 기본 골격이며 동시에 새로운 문화로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중요한 콘텐츠인 것이다. 

 

  종묘대제는, 본래 춘하추동 사계절의 첫째 달 초순과 12월 등 연 5회를 지냈으나 광복 이후 일시적으로 중지되었다가, 1969년 복원되어 지금까지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만 봉행하고 있다. 

 

  문화재보호법 제정과 함께 종묘제례악은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고, 종묘제례는 1975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다. 종묘건축은 독창성이 뛰어난 건축양식과 함께, 500년 조선왕조의 신주를 그대로 모시고 600년 이상 제례를 봉행하는 등 문화적, 예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01년에는 종묘제례가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으며, 현재 무형유산보호를 위해 2008년에 수립‧공표된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으로 등재되어 있다. 

 

여섯 번째 절차 종헌례(終獻禮). 종헌관이 세 번째 술(청주)을 올리는 예로 정대업을 연주하고 춤춘다.

 

  종묘제례는 유형의 건축과 무형의 종묘제례, 종묘제례악 및 일무가 융합된 문화유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종합의례이자 예술이다. 

 

음복례(飮福禮). 제사에 올린 술과 음식을 초헌관이 먹으며 조상의 덕을 받는 예.

송신례(送神禮). 신을 보내드리는 예.

 

 

  종묘제례의 절차와 내용

 

  종묘대제는 크게 신을 맞이하는 절차와 신이 즐기는 절차, 신이 베푸는 절차, 신을 보내는 절차로 나누어진다. 제례가 시작되기에 앞서 신을 맞이하는 절차로 제관들이 정해진 자리에 서는 취위가 진행되고, 신을 부르는 의식인 신관례를 마친 후, 신이 즐기는 절차인 천조례(제수를 올리는 의식)와 초헌례(첫 술잔을 올리는 의식), 아헌례(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 종헌례(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를 거쳐 신이 베푸는 절차인 음복례(제례에 쓰인 술과 제물을 먹고 신이 주신 복을 받는 의식)와 신을 보내는 절차인 철변두(제례에 쓰인 제물을 거두는 의식), 송신례(신을 보내는 의식) 후 마지막 절차인 망료례(제례에 쓰인 축문과 폐를 태우는 의식)까지 마치게 되면 제례는 모두 끝나게 된다. 

 

  종묘대제에는 제례와 더불어 제례악과 선왕의 문덕(文德)과 무덕(武德)을 찬양하는 일무(佾舞)가 함께 어우러져 완성된다. 일무는 6열 6행의 36인이 추는 춤으로 국왕의 문덕을 찬양하는 보태평(保太平)에는 예악(禮樂)을 의미하는 약(籥)과 적(翟)을 들고 추며 무덕을 찬양하는 정대업(定大業)에는 검 또는 창을 들고 춘다. 

 

  현행, 종묘대제 봉행은 국가를 대표하여 문화재청에서 정책과 홍보를 맡고, 국제문화행사로서의 전체적인 진행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담당한다. 제례의 주관은 종묘제례보존회가 의례를, 종묘제례악보존회가 음악과 일무를 담당한다. 외래 관광객 유치 및 해외 홍보를 한국관광공사와 국립국악원에서는 제례악의 악사 파견과 악기를 지원한다. 

 

망료례(望燎禮). 마지막 절차로 제례에 쓰인 축문과 폐를 태우는 예.

 <현행 종묘제례 주요절차>

 

  종묘제례를 도회한 기록화인 종묘친제규제도설병(宗廟親祭規制圖說屛)의 설찬도(設饌圖)에 따르면 각각 좌우에 12가지의 음식을 비롯하여 가운 데 질서정연하게 희생에 쓰인 양고기와, 소고기를 비롯하여 조 등의 진설 모습과 친제반차도(親祭班次圖)에 228명의 제관들이 잘 묘사되어 당대의 장엄한 제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록화는 오늘날 종묘대제를 현재적 관점에서 학술적인 고증을 거쳐 재현해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귀중한 기록유산이다. 

 

팔일무를 추는 모습.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종묘대제 행사]
일 시: 2013. 5. 5(일) 16:30-18:30 / 종묘 정전
※ 매년 5월 첫 번째 일요일 종묘에서 시행함
주 최: 문화재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주 관: 종묘대제봉행위원회(종묘제례보존회, 종묘제례악보존회)
후 원: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악원, 한국관광공사, 서울특별시
주요내용: 종묘제례 봉행, 종묘제례악 및 일무 재현

 

[행사일정]

 

안태욱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http://www.ch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