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6. 13:14ㆍ경전 이야기
나그함마디 문서
이 문서가 <사해의서>처럼 기독교들에게 왜곡되어
전시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떠도는 줄거리를 올려 봅니다.
1945년 12월 나일 강 상류의 "나그함마디" 마을에서 땅을 파던 한 농부가 붉은 질그릇 항아리 하나를 발굴했다.
거기에는 13개의 두루마리로 된 사본이 가죽에 묶여 들어 있었다. 그 농부와 가족들은 그게 무엇인지를 모르고 사본의 일부를 불쏘시개로 사용했다.
그러나 남은 것들이 드디어 전문가들의 눈에 띄었다. 그 중 하나가 이집트에서 유출되어 암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C.G.융 재단이 사들인 그 중의 한 사본이 오늘날 그 유명한
<토마스(도마) 복음서>다.
한 편 이집트 정부는 1952년 남은 사본들을 국유화했다.
국제적인 전문가 팀이 그 사본들을 복사하고 번역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은 1961년에 와서였다.
1972년 최초의 사진 복사판이 나왔다. 그리고 1977년에는 사본
전집이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나그함마디 두루마리는 성경 사본집으로서 본질적으로 그노시스 성격을 띠고 있으며, 4세기 후반 또는 5세기 초 때의 것으로 보인다.
이 두루마리들은 사본이며 그 원본은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일부, 예를 들면 <토마스복음>, <진리복음>, <이집트복음> 같은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이레나에우스, 오리젠 같은 초기 교회 창시자들에 의해 기재되었다.
현대 학자들은 그 사본의 일부가 늦어도 기원 15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나그함마디 선집은
현재의 복음서와 맞먹는 권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문헌들은 특이한 정확도를 자랑하고 있다.
첫째 이 문서들은 로마 정교회의 검열을 받지 않았다.
둘째 이것들은 로마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로마인의 비위에 맞게 왜곡되거나 편집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문서들은 직접적인 소스 또는 목격자의 진술에 근거하고 있다. 거기엔 성지에서 피난 온 유대인의 진술도 담겼을 것이고 예수를 잘 아는 사람, 또는 측근의 얘기도 수록됐을 것이다.
현대의 복음서에는 전술한 바와 같은 내용이 없다.
이들 두루마리에는 정교회나 <메시지 신봉자>들이 보면 경악할 내용들이 많이 적혀 있다.
예를 들면 연대가 적히지 않은 한 사본에는 바실리데스 이단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은 예수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즉 대리자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뒤 현장에서 도망친 예수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들이 계획한 대로 굴복하지 않았다.......그리고 난 실제로 죽지 않았고 죽는 척했다. 그들에게 창피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한 나의 죽음은 실은 그들의 과오와 무지 속에서 그들 자신에게 일어났다.......
쓸개즙과 식초를 마신 건 다른 사람, 그들의 아버지였다. 나는 아니었다. 어깨에 십자가를 짊어진 건 다른 사람, 시몬이었다. 그들이 면류관을 씌운 건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무지를 비웃고 있었다."
나그함마디 두루마리의 다른 사본에는
베드로와 막달라가 불화에 관한 목격자 얘기가 적혀 있다.
그와 같은 불화는 <메시지 신봉자>와 <혈통 신봉자>들 간의 내분을 반영하는 듯하다.
<마리아복음>에서 베드로는 막달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이여, 우리는 구세주께서 다른 여자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걸 알고 있다. 당신이 기억하는 구세주의 말을 얘기하라---
그건 당신은 알지만 우리는 알지 못한다."
잠시 후 베드로는 격분하여 다른 제자들에게 묻는다.
"주께서 한 여자와 은밀히 얘기하고 우리에겐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는 게 사실인가? 우리 모두가 그 여자를 향하여 그녀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주께서는 우리보다 그 여자를 더
좋아했는가?"
다시 잠시 후 한 제자가 대답한다.
"확실히 주께서는 그 여자를 매우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그는 우리보다 그 여자를 더 사랑했다."
<필립복음서>에는 이 불화의 원인이 확실히 나타나 있다.
예를 들면 거기엔 신부방의 이미지를 거듭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
"주는 만사를 행하셨다. 세례도, 성유식도, 성찬식도, 구원도, 그리고 신부방도......"}
얼핏 보기에 신부방은 뭔가를 상징적으로 또는 풍자적으로 말한 것 같다.
<필립복음서>는 이에 대해 더욱 명백히 하고 있다.
"언제나 주와 함께 걸어 다니는 세 사람이 있었다. 주의 어머니 마리아, 그녀의 동생, 그리고 주의 친구라는 막달라 이렇게 셋이다."
한 학자에 의하면 <친구>라는 말은 <배우자>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립복음서>의 다음 구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만하다.
"그런데 구세주의 친구는 마리아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모든 제자보다 그 여자를 더 사랑했고 툭하면 그 여자의 입에 키스하곤 했다."
다른 제자들은 언짢아져서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그에게 말했다.
"왜 당신은 우리 모두들 보다 그 여자를 더 사랑하나요?"
구세주가 그들에게 대답했다.
"왜 내가 그 여자처럼 너희를 사랑하지 않을까?"
<필립복음서>는 이에 대해 더욱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나체를 두려워하지도 말고, 사랑하지도 말라. 그것을 두려워하면 그것이 너희를 지배할 것이요, 그것을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를
삼켜 파멸시킬 것이다."
다른 구절에서 이 대목은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참으로 위대한 건 결혼의 신비이다. 그게 없이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세상의 존재는 사람에게 달렸고 사람의 존재는 결혼에 달렸다."
그리고 이 복음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사람의 아들이 있고 사람의 아들의 아들이 있다. 주는 사람의 아들이고 사람의 아들의 아들은 사람의 아들을 통해 창조된 자이다.
"나그함마디 문서란"
나그함마디 문서는 파피루스 13권의 묶음으로 발견되었으며 총 52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7편이 중복인 탓으로 43편의 글이 실려져
있습니다. 이 문서에는 기독교의 "영지주의"를 엿볼 수 잇는데
재미 있는 사실은 지금의 기독교는 영지주의를 이단화 하였다는 것이다.
영지주의에 대하여 간단하게 한마디하면..
영지주의는 <인간의 본질은 여호와의 본질과 같다.>
즉 인간의 영혼은 여호와의 본질과 같다고 믿습니다.
조금더 해석하면 자신의 본질을 아는 것이 곧 여호와를 아는 것이며 이것이 진정한 구원이다.,...
여호와가 자신의 모습을 본뜬 아담을 만들고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떼어 이브를 만든 본질의 구도를 유추해 볼 수 있는와 초기
기독교들의 예수와 신에 대한 생각으로 접근케 하는 이 문서는
대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해의서 등에서와 나타나는 것과 같이 나그함마디에서 의도하는 것들은 지금의 기독교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다른 의미이지요.
그리고 위 내용은 불교등에서 나타나는 사상적 태반 입니다.
지금의 기독교(중세)가 왜 영지주의를 이단으로 보고 있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사해의 서"가 나타나 카톨릭의 제2의 진경이라고 할 수 있는
"외경"를 확인 시켜 주었듯이, 애전에 발굴된 자료들을 나그함마디 문서는 다시한번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부루키아누스(부루스) 문서> <마리아 복음> <요한 비밀의 서>
<복된자, 유고노토스>등이 재차 관심을 받는 것도 나그함마디 문서에 의해서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해의서에서도 보았다시피,
자신들에게 불필요한 부분은 삭제한체 자신들의 유용한 자료모음만으로 자기위안용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며
이처럼 초기 기독교를 기록한 문서를 보면 지금과같이 다른 근본을 엿볼 수 있으며, 또한 지금의 경전인 (성경)이 초기 기독교들이
사용하던 것과는 질적으로 조금씩 차이가 난다는 것에서 기독교도 진화를 스스로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신과의 대화에서는 그때 사람들이 지금의 기독교들보다 가까웠지만 웬지 논리면에서는 지금의 기독교가 잘 짜여 졌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는 신의 본심을 기독교가 진화되어 가면서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고
변명아닌 변명을 해야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며,자신의 본질을 깨달으면 해탈(구원)한다는 영지주의자들의 믿음을 거부해야하는 그들이 안스럽기까지 합니다.
거짓은 거짓으로 묻어야 한다는 진리를 성서 고고학자들은 열심히 팔레스타인 땅을 곡괭이와 삽으로 뒤지는 것과 같이 불교적 색채를 애써 감추면서 절대진리적 기독교를 짜집기 해가는 그들의 행태가 구역질 납니다.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요? 거짓 없는 바른 양심 이라고 여깁니다.
기독교가 양심이란게 있는 종교인지 한번은 되짚어 볼 필요가 있으며 그 디딤돌로는 '사해의 서와 나그함마디 문서'와 같은 것들이 될 것 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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