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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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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 성녀는 3세기 후반 또는 4세기 초반 로마의 유명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열세 살 무렵의
어린 나이에 순교하였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유약한 나이에 보여 준
그녀의 위대한 신앙의 힘’을 높이 칭송하였다. 교회는 아녜스 성녀를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증언하고자 정결을 지킨 순교자로 기억하고 있다.
성녀는 한 마리 양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되고 있다.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사울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를 뽑도록 하신다. 사무엘은 주님의 이 명에 따라 이사이의
아들들을 만난다. 주님께서는 사무엘의 예상과는
다르게 막내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신다.
주님께서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마음을 보셨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자,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항의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옛일을
언급하시며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밝히신다(복음).
<사무엘이 형들 한가운데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주님의 영이 그에게 들이닥쳤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6,1-13
그 무렵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하고만 있을 셈이냐?
나는 이미 사울을 이스라엘의 임금 자리에서 밀어냈다.
그러니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사무엘이 여쭈었다. “제가 어떻게 갑니까?
사울이 그 소식을 들으면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여라.
그러면서 이사이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다음에 네가 할 일을 내가 알려 주겠다.
너는 내가 일러 주는 이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어라.”
사무엘은 주님께서 이르시는 대로 하였다.
그가 베들레헴에 다다르자 그 성읍의 원로들이 떨면서 그를 맞았다.
그들은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 사무엘이 대답하였다.
“물론 좋은 일이지요. 나는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온 것이오.
그러니 몸을 거룩하게 하고 제사를 드리러 함께 갑시다.”
사무엘은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하게 한 다음 그들을 제사에 초청하였다.
그들이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다음으로 이사이는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이사이가 다시 삼마를 지나가게 하였지만,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이렇게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사이에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 하고 묻자,
이사이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사무엘은 그곳을 떠나 라마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28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는 놀랍게 들릴 두 가지
사실을 명백히 하십니다. 하나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사람의 아들, 곧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우리는 현대인에게 너무나 절실한 주제인
‘자유의 체험’에 관해 묵상하게 됩니다.
이 두 가지의 주장을 이어 주는 접속사
“그러므로”는 논리적 귀결이나 인과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분리할 수 없이 깊이 연결된 직관적 깨달음이라는 사실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안식일을 포함한 모든 율법 규정은 사람이 자유와
해방을 체험하게 도울 때 그 ‘존재 이유’가 있다고 알려 주십니다.
이어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자유의 몸’이시며 우리 역시 그러한 자유를
선사받았음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이제 이러한 자유의 체험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란 무엇이며
자유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의 답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안식일의 규정을 포함한 모든 계명의 정신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고 이웃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것과,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온 자유를 체험하는 것은 사실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진리에 감명받고,
더 나아가 자신이 ‘타인을 위한 존재’라는 것을 깊이 깨닫는 사람은,
“그러니, 십계명은 자유의 계명”이라는
노트거 볼프 아빠스의 말에 동감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에 대한 체험일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자유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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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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