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오늘의복음]연중 제2주간 월요일(1/20)

2014. 1. 23. 01:13경전 이야기

글제목 : 말씀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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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간 월요일(1/20)






    말씀의 초대
    사무엘은 전리품에 욕심을 낸 사울의 불순종에 대해 책망한다. 사울은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지만 사무엘은 주님의 말씀을 배척한 사울의 행동 때문에 주님께서 그를 왕위에서 끌어내리시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율법 학자들에게 당신을 통해 나타난 새로운 차원을 일러 주신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다가온 하느님 나라는 새로운 눈으로 보아야 한다(복음).
    제1독서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5,16-23 그 무렵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그만두십시오. 간밤에 주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사무엘에게 응답하였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사무엘이 말하였다. “임금님은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여기실지 몰라도,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아니십니까? 주님께서 임금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이스라엘 위에 임금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임금님을 내보내시면서 이런 분부를 하셨습니다. ‘가서 저 아말렉 죄인들을 완전히 없애 버려라. 그들을 전멸시킬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에 덤벼들어,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 사울이 사무엘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가라고 하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아말렉 임금 아각은 사로잡고 그 밖의 아말렉 사람들은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다만 군사들이 완전히 없애 버려야 했던 전리품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양과 소만 끌고 왔습니다. 그것은 길갈에서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8-22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몇 년 전에 한 가톨릭 성서학자가 쓴 『예수님은 세상에 어떤 새로움을 가져오셨는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제목의 질문이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언제부터인지 제가 무의식중에 종종 교회를 번잡함을 피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방공호’, 또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 사이의 온건한 중재자인 것처럼 여기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깊이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셨고, 이로써 이 세상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삶의 길이 열렸다는 사실, 이를 확신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의 신앙에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생동감이 있을 수 있겠는가?’ 개신교 목사로 나치 독일에 반대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현대 가톨릭 신학에도 많은 영감을 준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종교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형태를 세상에 선사하시려 오셨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가 여기서 ‘종교’라는 말로써 비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관습과 선입관에 매달리며 복음의 가치관에 따라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거부하면서도 스스로는 어엿한 종교인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 반면 ‘새로운 삶의 형태’는 바로 복음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새로운 가치들을 선택하며 사는 모습을 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새 포도주가 헌 부대를 터뜨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복음과 관습은 때로는 날카롭게 충돌할 수 있고, 이는 각 개인에게, 그리고 교회에게 당장은 피하고 싶은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새로운 삶의 길을 두려움 없이 신뢰하며 걸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참된 자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오직 하느님의 영광만을

 

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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