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평양천도 / 한국사 X파일, 포스코신문

2014. 1. 30. 09:28우리 역사 바로알기

 

 

 

 

 

      

 

 

 

 장수왕 평양천도 / 한지에 수묵담채 / 2012 / 유환영 그림

 

 

 

 

 

 

 

(4) 고구려는 왜 평양으로 천도를 했을까.

 

    고구려는 주몽과 소서노에 의해 건국되었고 대무신왕 시절에 차례로 이웃의 부족국가를 정벌하여 영토를 넓혔다. 주몽은 졸본에 도읍을 정했으나 나라가 커지면서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어 고구려는 다시 국내성을 거쳐 평양으로 천도했다. 평양의 천도는 그 동안의 천도와 달리 우리 민족이 대륙에서 한반도로 이동을 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가 오랜 역사를 살필 때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 고구려의 평양 천도로 우리 민족의 터전을 잃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이동을 하여 요동 일대에 정착했다. 고조선이 그곳에서 건국되었고 부여의 여러 나라들도 요동에서 일어나 광활한 대륙을 다스렸다. 그러나 고구려가 평양성으로 천도를 하면서 우리는 드넓은 만주 벌판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고국원왕은 국강상왕이라고 불리는데 이름은 사유(斯由), (), 또는 교()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미천왕 어머니는 주씨(周氏)였다.

연은 중원을 정벌할 야심을 갖고 있다. 그에 대비해야 한다.’

고국원왕은 연나라가 강성해지자 환도성을 증축하고 그들의 침략에 대배했다. 그러나 연나라는 중원을 도모할 정도로 강대해져 도읍을 용성으로 옮기고 중원으로 진격할 준비를 했다.

먼저 고구려를 빼앗고 다음에 우문씨를 멸해야 중원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연나라의 장군 모용한이 아뢰었다. 장군들이 일제히 그 말이 옳다고 아뢰었다.

고구려로 가는 길은 두 개의 길이 있다. 북로는 평탄하고 넓고 남로는 험준하고 좁다. 어느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는가?”

연나라왕 모용황이 장수들에게 물었다.

고구려는 우리가 반드시 북로로 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준비할 것입니다. 대왕께서 정예부대를 이끌고 그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남로로 진격하십시오. 북쪽에는 소부대를 보내 그들을 속이면 고구려군이 북로에서 승리를 한다고 해도 도성이 무너졌기 때문에 대항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용한이 다시 아뢰었다. 모용황은 손수 정병 4만 명을 거느리고 남로로 진격하고 북로에는 장수 왕우를 보내 노약자 15천을 거느리고 진격하게 했다. 대륙은 전쟁의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연나라가 침략해 오고 있습니다.”

국경에서 군사들이 달려와 다급하게 고국원왕에게 보고했다.

고구려군에 비상을 걸어라.”

고국원왕은 아우 무에게 정예부대 5만을 이끌고 북로로 출정하여 연나라군을 막게 했다. 자신은 소수의 군사를 거느리고 남로를 방어했다. 이때 연나라의 모용한 등이 달려와 전투를 벌이고 모용황이 뒤이어 대군을 이끌고 달려와 대대적으로 고구려군을 공격했다.

적의 대군이 남로로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고구려 장수 아불화가도가 황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뭣이?”

 

    고국원왕은 깜짝 놀라 전력을 다해 싸우라는 영을 내렸다. 주력부대가 북로에 배치되어 있어서 환도성은 무주공산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연나라 좌장수 한수가 고구려 장수 아불화가도를 죽이자 연군이 승세를 타고 환도성으로 물밀 듯이 짓쳐들어왔다.

대왕, 속히 피하십시오.”

장수들이 고국원왕에게 아뢰었다.

 

    고국원왕은 단기로 단웅곡으로 도주했다. 고국원왕이 탈출하자 고구려 환도성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군사들이 다투어 달아나고 왕비를 비롯하여 비빈들도 황급히 성문을 빠져 나갔다.

연나라 장군 모여니가 따라와서 왕모 주씨와 왕비를 사로잡아 돌아갔다. 이 때 연나라 장군 왕우 등은 북로에서 고구려 군사와 싸우다가 대패했다. 모용황은 더 이상 고국원왕을 추격하지 않고 사자를 보내 고국원왕에게 항복을 요구했다.

항복을 하다니절대로 항복을 할 수 없다.”

고국원왕이 단호하게 말했다. 연나라 장수들은 회의를 거듭했다.

"고구려 땅은 우리가 남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은 그들의 임금이 도주하고 백성들이 흩어져 산골짜기에 잠복하였으나, 우리 대군이 철수한 뒤에는 틀림없이 다시 모여 나머지 군사를 수습할 것입니다. 이는 족히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구려왕의 아버지의 시체를 싣고, 그의 생모를 사로잡아 돌아갔다가, 고구려왕이 제발로 와서 사죄하기를 기다린 후에 돌려주어, 은혜와 신의로써 무마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연나라 장수들이 모용황에게 아뢰었다. 모용황이 그 말에 따라 미천왕의 무덤을 파서 그 시체를 싣고, 대궐 창고에 있는 역대 보물을 탈취하고, 남녀 5만여 명을 사로잡았다.

고구려 황궁을 불태우고 환도성을 헐어버리라.”

모용황이 영을 내리자 연나라 군사들이 환도성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고구려는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것이다.

반드시 치욕을 갚으리라.’

고국원왕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맹세했다.

 

    고구려는 일시적으로 연나라와 화친을 맺었다. 연나라는 황궁을 불태우고, 환도성을 헐어 버리고 돌아갔다. 고국원왕 시대는 전쟁의 시대였다. 연나라를 상대하는 것도 벅찬 일인데 백제가 국경을 침략했다. 고국원왕은 백제와 전쟁을 벌이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고구려의 패배는 광개토대왕이 요동을 정벌하면서 복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광개토대왕의 이름은 담덕(談德)으로 제18대 고국양왕의 아들이다.

 

    광개토대왕은 대대적으로 정복전쟁을 벌여 재위기간 동안 고구려의 영토와 세력권을 크게 확대했기 때문에 영토를 넓혔다는 뜻의 광개토(廣開土)로 시호를 얻었다. 고구려의 왕들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죽어서 묻힌 땅 이름으로 시호를 삼았다. 고국원에 묻히면 고국원왕, 중천에 묻히면 중천왕, 동천에 묻히면 동천왕, 산꼭대기에 묻으면 산상왕이라고 불렀다.

 

    광개토대왕은 재위기간 중에 64성과 1,400촌락을 정복했다. 서쪽으로 요동, 북쪽으로는 개원(開原)~영안(寧安), 동쪽으로는 혼춘(琿春), 남쪽으로는 임진강 유역이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불과 40세에 요절하자 아들 장수왕이 돌연 도읍을 평양으로 옮겼다.

 

 

장수왕은 왜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를 한 것일까.

 

    아버지 광개토대왕이 요동을 정벌하여 고구려가 다시 강대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웃 나라의 전쟁을 피해 압록강을 건너 평양까지 내려왔다는 설은 설득력이 약하다. 광개토대왕 시절에 고구려군은 개마부대라고 하여 철기군이 수만 명이나 되었다.

장수왕의 평양 천도에는 반대나 찬성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삼국사기가 완전한 역사서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으나 환경적인 요인을 꼽을 수도 있다. 백두산의 화산 폭발이나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록이 없다. 요동일대는 겨울이 몹시 추웠기 때문에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고구려는 대륙에서 일어난 나라이기 때문에 추위를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구려는 부족연맹국가였다. 부족들의 연맹체인 제가회의가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왕의 추대도 그들이 했다. 그들에게는 자치권이 있어서 종묘를 따로 갖고 있었고 군사도 스스로 거느렸다. 소수림왕은 강력한 제가회의에 맞서 중앙집권정부를 구성했다.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대왕으로 이어질 때는 왕들의 권력이 강화되어 제가회의는 꼼짝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장수왕이 즉위하면서 제가회의가 다시 득세하여 장수왕과 충돌하게 되었다.

장수왕은 이들과의 충돌을 피하여 평양으로 천도하게 된 것이다.

 

 

                                                                                                                                          <: 이수광 역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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