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太祖 아골타

2014. 1. 30. 22:15우리 역사 바로알기

 

 

 

 

                                     금 태조 완안 아골타

                                                                                                                  /  다음 아고라 에서

 

 

 

 

 

 

 

 

 

 

 

 

 

 

 

 

    금은 여진족의 국가로서 남북조시대 북중국을 호령한 강자입니다

여진족은 2000년전부터 숙신-읍루-물길-여진, 그리고 이후 만주족이란 이름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내려온 동북아시아의 주요민족중 하나이며 말갈족에서 여진족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고 발해의 멸망뒤 거란의 지배권에 들어간 말갈족이 여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금태조 아골타가 부족을 통일하기 이전부터 불려지던 명칭입니다

 

    아골타는 완안부 출신으로 흩어져 있던 여진의 여러부족을 통일하여 국가로서 금을 개국하였는데, 조상은 고려에서 온 김준, 그러나 금사에는 김함보라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금사에서 달리 표현되어 있는 이유는 함보는 법명이라고 부안김씨 후손들이 설명하고 있기에 위 두 이름은 동일인을 뜻하는 것입니다

고려인이란 금태조 아골타의 조상인 김함보가 고려에서 여진으로 건너갔다는 뜻이며 아골타의 직계선조이기에 아골타가 고려의 후예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잠시 아래에 금의 국명제정에 관한 내용과 아골타의 조상과 고려연관설에 대한 자료를 인용합니다

 

 

                                                                   -아래-

 

   금사에 나오는 금이라는 국명제정이유는

임금께서 말씀하시길, "요나라(거란)는 '빈철(賓鐵)'로써 국호를 삼았으니 그 견고함을 취한 것이다. 빈철은 비록 견고하지만 끝내는 변하게 되니(녹슬어버린다는 말) 오직 금(金)만이 변하지 않는다. 금의 색은 백색이고, 완안부의 색도 백색이다." 이에 따라 국호를 대금(大金)이라 하고 수국이라 개원했다.

上曰:「遼以賓鐵爲號,取其堅也。賓鐵雖堅,終亦變壞,惟金不變不壞。金之色白,完顏部色尚白。」于是國號大金,改元收國。

 

    또한, <금사> 지리지에는 다른 이유가 적혀 있는데

나랏말(여진족 말)에 '금'을 '안출호'라고 한다. 안출호 수원이 여기에 있어 이름을 금원(金源)이라 하였고, 건국할 때에도 여기에서 국호를 취하였다.

國言「金」曰「按出虎」,按出虎水源於此,故名金源,建國之號蓋取諸此。

로 그 이유를 분명히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사(金史)에 기록된 아골타의 고려출신 조상에 대한 기록은

金之始祖諱函普 (금나라 시조는 이름이 함보이다), 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처음 고려에서 나올 때 60세가 넘었다) 兄阿古好佛,留高麗不肯從 (형 아고호볼은 따라가지 않고 고려에 남았다)

 

    이 기록외에도 만주원류고(滿洲原流考)에도 기록이라던가 송막기문기록에도 고려인과 금나라의 관계가 나오며 부안김씨의 후손들은 더욱 더 구체적으로 "함보는 법명이고 그의 본명은 김행 (혹은 김준)으로 마의태자 김일의 아들이자 경순왕 김부의 손자이다. 김행은 여진으로 갔지만 다른 두 형제는 고려에 남아 부안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안정복 역시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김준은 삼형제인데 김준이 여진으로 망명할 때 두 형제를 두고 혼자서 갔다.'고 밝히고 있어 금나라의 시조가 고려인 김함보라고 주장합니다

 

    또 금의 뒤를 이어 후금에서 청으로 국명을 바꾼 만주족 역시 만주원류고란 그들의 역사서에서 친신라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데, 아골타에 기원한 금,청의 황족들이 친신라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기서 친신라적인 것은 김함보가 여진으로 건너 갈 당시에는 고려 때였으나 김함보가 신라왕가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청조의 황가 성씨인 애신각라씨들은 중화인민공화국 개국 이후 대부분 현대적인 성씨로 바꾸었는데 바로 金씨로 바꾸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의외로 적습니다

   여기서 애신은 금이라는 뜻이며 각라는 종족을 뜻하기에 애신각라는 곧 금씨족을 뜻하기에 김이라는 성씨로 바꾼 이유를 쉽게 유추할 수 있으며 아골타는 당시 여진족의 특성상 성을 쓰지 않다가 황제가 되고 난 이후 완안이라는 부족명을 성 대신 사용하였는데 그가 조상의 성을 기리고 있었지만 여진이라는 부족을 정치적으로 다스리기에 적합지 않았기에 금(김)이라는 성씨를 드러내어 사용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금사에까지 조상을 고려인으로서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뿌리를 잊지 않고 기리고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공교롭게도 국명을 금으로 정했는데 비록 금사지리지에는 안출호의 어원에서 땄다고도 적혀 있으나 분명 금사에는 왕이 직접 변하지 않는 금속인 금으로서 의미를 두고 국명을 제정했다고 적혀있고 이는 해석하기에 따라서 왕이 금이라는 국명을 염두에 두고 의미를 찾았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안김씨의 주장에서도 보듯이 김준 또는 김함보가 신라왕가의 후손이라면 아골타가 여진을 통일하기 이전부터 그 조상에 대한 선민의식이 있었음 역시 쉽게 유추해 볼 수 있고 이를 평생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국명에 반영했을 수 있다는 유추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위의 내용을 근거로 일부에서 금의 신라계승설이 나오고 있는데 그 동기는 역시 금사에 '태조 아골타는 고려출신 김함보의 자손이다'고 그 조상의 기원을 기록하고 있는데서 불거져 나온 것으로 추정되나 그것은 조상의 출신에 대해서 기록한 것으로 친신라적인 내용은 맞으나 정치적으로 신라를 계승했다고 주장한 내용은 없기에 신라(고려)출신의 조상을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금이 신라를 계승했다고까지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아골타가 고려인의 피를 이어 받았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학자들의 종족간 유전자 검사결과 한민족과 만주족(여진족)의  DNA가 여러 민족중 가장 가깝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는 한민족과 만주족(여진족)의 관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밀접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주는 큰 사례일 것이기에 고구려와 발해이후에도 두민족의 역사적 연관성에 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참고도서-금사, 금사지리지, 부안김씨족보

 

 

 

 

 

의 역대 황제

 

1대 태조 완안아골타 2대 태종 완안오걸매


 

1068~1123(재위: 1115~1123)


 

   (金)의 황제. 묘호는 태조(太祖). 여진식으로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 중국식으로 완안민(完顏旻). 아골타는 여진어 아구다Aguda를 음차한 것으로, 이 때문에 한국 역사서에는 아구다라고 등장하기도 한다.


 

    완안핵리발(完顔劾里鉢)의 차남으로 형인 완안오아속(完顔烏雅束)[1]이 1115년에 죽자 완안부 여진의 수장이 되었다. 나라의 지배하의 여진족을 모아 큰 세력을 얻은 뒤 1114년 요나라를 공격하여 연전연승했고 카이위안(開原), 눙안(農安) 지방의 숙여진과 랴오둥(遼東)지방의 발해인을 회유[2]하여 15년 황제로 즉위, 국호를 대금(大金)이라 하고 연호를 수국(收國)이라 했다.


 

   이후로 요나라의 중경과 연경을 연달아 점령하게 요나라 마지막 황제 천조제는 도망가기에 이르러 요를 실질적으로 멸망시켰다. 그러나 완안아골타는 요나라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 돌아오는 길에 병사하였고, 동생 완안오걸매가 금태종으로 즉위한 이후 금나라는 중원의 새로운 패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 인물 이름의 일본식 발음이 일본상업지 작가인 완얀아구다의 필명과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일본에선 이 완얀아구다의 홈페이지가 북방민족 관련 역사 홈페이지로 오해받는 일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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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의 윤관 장군이 동북지역을 원정할 때 여진족의 추장이 바로 그였다. 그때 아골타도 형을 따라서 고려군과 맞서 싸우기도 했다. 완안오아속은 금나라 건국의 기틀을 실질적으로 다진 인물이다. 삼국지로 치면 손책 포지션.
[2] 이 탓인지 금나라에서도 발해인들이 제법 중용되었으며 뛰어난 장군들도 많이 나왔다. 그 이전에 발해인들은 거란족의 요나라에서도 꽤 좋은 대접을 받는 편이었다.

 

 

 

 

 

                                                              다음 아고라   움직이고 활동하라 님의 글

 

 

 

 

 

 

 

 

 
 2부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
        신라의 후예였다!


▣방송 : 2009. 9. 5(토) 20:0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엄지인 아나운서
▣연출 : 류지열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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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조 아골타
 신라의 후예였다!


















금태조 아골타

    중원에서 최초로 한족을 밀어낸 금태조 아골타, 그의 시조는 놀랍게도 신라인 함보였다. 이것은 전설이나 야사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와 금 건국 시 송나라에서 씌어진 <송막기문>에 명확히 나오고 있다.
“금시조의 이름은 함보인데 처음에 고려에서 온 신분이다”
                       (금사본기 제 1권, 세기)

“여진의 추장은 신라인이고 완안씨는 중국말 왕과 같다”(송막기문)
금사 송막기문

   고려에서 온 신분이며 신라인인 금시조. 아골타의 출생년도를 고려해 계산해보면 금 시조 함보가 여진에 들어온 시기는 신라 말, 고려 초다. 당시 신라와 고려의 왕권교체기였던 한반도의 사정을 생각하면 두 사서는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아골타의 조상 함보, 그는 과연 누구일까?

 





함보, 그는 누구인가?

 










금황실 계보도

    <동명해사록>에 함보의 9대손 아골타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김부(경순왕敬順王)가 비록 항복하여 고려왕이 합병하였으나 김부의 외손 완안아골타는 곧 권행의 후예로서 능히 중국을 갈라 다스려 백년동안 대를 이었으니... (동명해사록 1636년)
    조선의 유학자 김세렴은 여진족의 아골타를 경순왕의 외손이며 조선최고가문 권행의 후예라고 하고 있다.그런데 권행의 본래 성은 金(김)씨였다.김행의 아들이며 경순왕의 외손인 금의 시조. 당시 족내혼을 했던 신라 왕실의 관습을 고려하면,그의 성이 金(덧말:김)이며 신라의 후예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동명해사록>의 금 시조와 <금사>의 함보는 과연 동일인인가? 

 





신라 후예인 왕족과
 발해 후손의 왕비족이 세운 나라, 금




   함보를 시조로 둔 금 황실은 발해인을 왕비로 맞는다. 금나라의 성군 세종의 어머니, 4대 황제 해릉왕의 어머니는 모두 발해 여인이었다. 또한 아골타는 발해인을 신뢰하여 발해유민 장호를 새로운 수도 북경 건설 책임자로 등용한다. 발해는 대제국을 경영해본 경험이 있었다.금나라는 이런 발해의 경험을 이용하여 국가체제를 확장해 나갔던 것이다.

 





청 황실의 성씨도
 김씨였다








청태조 누루하치
금 멸망 후 1606년, 여진은 다시 중원을 장악했다. 바로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이다. 그런데 청나라 황제 성은 아이신 줘러 였다. 아이신(愛新)이란 금(金), 줘러(覺羅)란 겨레(族)부족 씨 등을 뜻한다. 결국 금 부족, 김씨들 이라는 뜻이다.

신라 왕족인 경주 김씨, 그의 후예인 금 황실, 청 황실까지 그들은 모두 금을 뜻하는 김(金)씨들이었던 것이다.

 





만주역사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금나라, 청나라로 이어지는 만주의 역사는 우리 민족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한족의 영토,중원을 만주대륙에 합병하여 오늘의 중국을 완성한 여진족, 그들 선조가 신라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은 국수주의적 우월감을 주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반역사적인 동북공정 논리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우리 역사를 지켜내어 향후 동아시아와 한반도 지역에 평화의 논리적 근거를 재확인하자는 것이다.

 

 

                                          다음 아고라 내마음을 님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