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교회는 해마다 1월 마지막 주일을 ‘해외 원조 주일’로 지내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03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 해외 원조 사업에
대한 올바른 홍보와 신자들의 의식 강화를 도모하고자
‘해외 원조 주일’을 정하였다. 오늘 특별 헌금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지의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원조에 쓰인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3주일입니다.
이 겨울에는 많은 사람이 가난과 추위와 고독으로 아파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십니다.
하늘 나라의 도래는 다름 아니라 구원 약속의 성취를 뜻합니다.
우리 자신이 주님 구원의 작은 도구가 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에게 빛을 전하는 노력을 하기로 다짐하며 이 거룩한 미사에 참여합시다.
이사야 예언자는 장차 태어날 임금을 예언하며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이 영화로울 것이라고 한다. 이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이며 암흑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칠 것이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인들에게 당파로
분열하는 행태를 그만두라고 강하게 권고한다.
그리고 자신의 소명인 복음 선포는 말재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라고 밝힌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대로 갈릴래아로 가시어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의 호숫가 카파르나움에 자리 잡으신다.
그리고 회개를 촉구하시며 하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하신다(복음).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8,23ㄷ─9,3
옛날에는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이 천대를 받았으나, 앞으로는
바다로 가는 길과 요르단 건너편과 이민족들의 지역이 영화롭게 되리이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당신 앞에서 기뻐합니다, 수확할 때 기뻐하듯,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 정녕 당신께서는 그들이 짊어진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와,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를, 미디안을 치신 그날처럼 부수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모두 합심하여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10-13.17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모두 합심하여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오히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 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클로에 집안 사람들이 나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이 저마다 “나는 바오로 편이다.”,
“나는 아폴로 편이다.”, “나는 케파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 하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
바오로가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기라도 하였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바오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셨다.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 리된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23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로 가시어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시는 장면을 전해 줍니다.
그러면서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알려 줍니다.
제1독서에서 우리는 그 예언을 들었습니다.
이 차가운 계절에 이사야서의 이 대목을 묵상해 봅니다.
무거운 침묵과 깊은 어둠이 내려앉은 겨울밤입니다.
한 줄 한 줄 눈으로 이 구절들을 따라갑니다.
이윽고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9,1)라는 말씀에 멈추어 섭니다.
왠지 울컥하다 싶더니 조금씩 반향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마음속 깊이 어디선가 빛이 돋아나는 것 같습니다.
밖은 어둡지만 이미 새벽이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사야서에서 나오는 ‘빛’과 ‘어둠’은
인간 존재를 표현하고 움직이는 근본적인 표상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표상은 단순히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게 하는 도구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자체로서 삶의 의미와 방향을 얻고 새롭게 해 주기도 합니다.
한 철학자가 빛과 어둠의 표상에 대해 묵상한 내용이,
이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감동을 이해하는 데 좋을 것 같습니다.
“세계 안에서 서로 겨루고 있는 대립적인 것들이 불가항력적으로
자기 자신 너머를 가리킨다. 세계가 가진 색깔과 빛들의 수많은
변화 형태들로부터 우리 안에는 ‘빛’이라는 표상이 생겨난다.
이 표상 안에서 우리는 비춤, 덮임, 밝힘, 타오름 등을 알아차린다.
이 표상 안에서 우리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게 된다.
‘어둠’의 표상에서 우리는 신비가 있고, 방황이 있고,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현존하시는 하느님』에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예언의 성취는 우리가 우리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빛을 간절히 기다릴 때, ‘
지금 여기에서’ 구원의 체험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그 큰빛 주님되어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