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오늘의복음]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1/24)

2014. 1. 30. 16:44경전 이야기

글제목 : 말씀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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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1/24)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1567년 이탈리아의 사부이아에서 귀족 가문의 맏이로 태어났다. 1593년 사제가 되어 선교사로 활동한 그는 특히 칼뱅파의 많은 개신교 신자를 가톨릭으로 회두시켰다. 1599년 제네바의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어 1602년 교구장이 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기고 1622년에 선종하였다.
    말씀의 초대
    사울은 다윗을 죽이고자 병사들을 이끌고 추격하다가 홀로 동굴로 가게 된다. 다윗은 그때 사울을 죽일 기회를 잡았지만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인 사울을 놓아주며 그에게 자신의 진심을 호소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산에 올라가시어 열두 명을 선택하시어 사도로 삼으셨다. 당신께서 그들과 함께 지내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시려는 것이었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24,3-21 그 무렵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가려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과 그 부하들을 찾아 ‘들염소 바위’ 쪽으로 갔다. 그는 길 옆으로 양 우리들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사울은 거기에 들어가서 뒤를 보았다. 그때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굴속 깊숙한 곳에 앉아 있었다. 부하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가 너의 원수를 네 손에 넘겨줄 터이니,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하신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다윗은 일어나 사울의 겉옷 자락을 몰래 잘랐다. 그러고 나자,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른 탓에 마음이 찔렸다. 다윗이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인 나의 주군에게 손을 대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아니시냐?” 다윗은 이런 말로 부하들을 꾸짖으며 사울을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울은 굴에서 나와 제 길을 갔다.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와 사울 뒤에다 대고,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하고 불렀다. 사울이 돌아다보자, 다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다윗이 임금님을 해치려 합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곧이들으십니까? 바로 오늘 임금님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오늘 주님께서는 동굴에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임금님을 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니 나의 주군에게 결코 손을 대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살려 드렸습니다. 아버님, 잘 보십시오. 여기 제 손에 아버님의 겉옷 자락이 있습니다. 저는 겉옷 자락만 자르고 임금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임금님을 해치거나 배반할 뜻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살펴 주십시오. 제가 임금님께 죄짓지 않았는데도, 임금님께서는 제 목숨을 빼앗으려고 찾아다니십니다. 주님께서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시어, 제가 임금님께 당하는 이 억울함을 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악인들에게서 악이 나온다.’는 옛사람들의 속담도 있으니,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께서 누구 뒤를 쫓아 이렇게 나오셨단 말씀입니까? 임금님께서는 누구 뒤를 쫓아다니십니까? 죽은 개 한 마리입니까, 아니면 벼룩 한 마리입니까?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시어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셨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송사를 살피시고 판결하시어, 저를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런 사연들을 다 말하고 나자,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 이게 정말 네 목소리냐?” 하면서 소리 높여 울었다.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너를 나쁘게 대하였는데도, 너는 나를 좋게 대하였으니 말이다. 주님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주셨는데도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 네가 얼마나 나에게 잘해 주었는지 오늘 보여 준 것이다. 누가 자기 원수를 찾아 놓고 무사히 제 갈 길로 돌려보내겠느냐? 네가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을 해 준 것을 주님께서 너에게 후하게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 이제야 나는 너야말로 반드시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너의 손에서 일어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3-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도로 선택하신 열두 사람의 이름을 전해 줍니다. 유다 이스카리옷 말고는 모두가 훌륭한 사도로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분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택하신 이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참으로 보잘것없고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깊이 사랑하시고 몸소 가르치시어 사도로 파견하신 것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는 평범함과 부족함이야말로 더없이 비범한 당신의 일을 담을 그릇이라는 것을 보여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언젠가 읽은 네덜란드의 화가 고흐에 관한 평전의 한 대목이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그가 살고 있는 작은 방, 다른 방과 별다른 점도 없는, 작고 단순한 데다 볼품없는 방이 캔버스에 아무렇게나 그려져 있다. 그런데 갑자기 작은 침대는 단순한 침대가 아니라 인간의 모든 고난이 몸을 뉘는 자리가 된다. 신들 또는 거인들이 주사위 놀이를 할 것 같은 탁자는 네 개의 버팀목이 있는 선사 시대의 화판이 된다. 거룩하게 비어 있는 의자는 주 예수님께서 오시어 앉으시기를 기다리는 자리가 된다.” 뛰어난 재능, 화려한 조건, 첫눈에 사로잡히는 매력 등을 사랑하는 이 시대에 살면서 사도를 선택하시는 주님의 그 마음을 닮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소박한 이들의 고난과 일상에서 주님의 자취를 발견하는 화가처럼, 주님께서 사람을 보시는 눈은 세상의 기준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진정한 제자로서 첫발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주님나라위해(예따사)

 

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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