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금동대향로 ㅡ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 발췌

2013. 5. 14. 07:26향 이야기

 

 

●백제금동대향로 ▶국보 제287호

 

Goldl and silver objects of Baekje were found in the Tomb of King Muryeong. The people of Baekje were famous for making precious crowns with jewels, crown ornament, pendants, ear rings, bracelets, gold hair-pins, bronze burial shoes, as well as horse equipment and weapons. Baekje was also renowned for a sword with seven blades, which is now in a collection at the Japanese Isonokami Shrine. From the excavation site of Neungsan-ri metal-smith workshop, metal mirrors, which is named a gilt bronze incense burner with a dragon and a phoenix(龍鳳金銅大香爐) depicting the Baekje belief of the universe, were found. They are the examples of excellent skills in metal works.

■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이야기

아래 이야기는 중앙박물관 웹진 30호 박물관 타임캡슐에 실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1천 4백여 년 전 백제인 들의 삶과 내세관을 그대로 담아 만든 백제 문화의 정수이자 유럽보다도 천년을 앞서 한반도에 드러난 바로크 예술의 산 증거로 평가받는 <백제 금동대향로>. 1993년 늦가을, 부여 능산리의 차가운 어둠 속에서 끈질긴 정열과 남다른 정성으로 일구어낸 금동향로의 발굴현장을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

1993년 12월12일, 충청남도 부여 능산리.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발굴을 계속할 것인지, 다음날로 미룰 것인지를 둘러싸고 발굴단내에선 한동안 의견이 분분하였다. 발굴 작업 중이던 논바닥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유물처럼 보이는 물체가 출현했다는 보고가 들어 온 것은 저녁 놀이 지기 시작한 초저녁 무렵. 그렇게 해서 발굴 작업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계속 야간 발굴 작업을 진행하다 혹시라도 유물에 손상이 갈까, 오늘 작업을 마무리하기를 바라는 우려의 의견이 제기되기도 하였지만, 결국 당시 발굴단의 지휘봉을 잡은 신광섭 국립부여박물관장은 "밤을 지새우더라도 절대 발굴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독려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의 발굴 작업을 감행하였다. 하지만 발굴단의 꼼꼼함과 진지한 탐구적 자세가 논바닥에 묻혀 영원히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를 우리의 귀중한 유물을 되찾아낸 발굴 작업이자 발굴단의 끈질긴 열정과 정성이 이룩해낸 개가였다.

끈질긴 열정과 정성이 찾아낸 우리 문화

늦가을 저녁 어둠 속에서 불 밝혀가며 차가운 논바닥 진흙탕 속에 엎드려, 커피 마시던 1회용 종이컵으로 조심조심 물을 퍼내가며 이뤄진 <백제 금동대향로> 발굴 작업. 힘들게 이뤄졌던 발굴 작업이었던 만큼 일궈낸 성과 역시 남달랐던 발굴 작업이었다. 무엇보다도 무령왕릉 발굴 이후 백제 고고학이 거둔 최대의 성과로 손꼽히는 이 발굴 작업은 자칫 부주의했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년을 하루 같이 살다 환생하다.

그렇게 백제 금동대향로는 천사백여년의 망각의 세월을 땅에 묻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도교사상과 불교사상이 가미돼 당시 백제인들의 삶과 종교 그리고 문화를 여실하게 부여주는 유물로 평가받는다. 여의주를 물고 마치 승천하려는 듯 꼬리를 높이 치솟으며 다리 하나를 치켜 들고 서 있는 봉황 모습의 몸통. 다리와 꼬리가 뒤엉켜 향로를 떠받치고 있는 용의 머리 등 전체 높이 64cm, 12cm 높이의 뚜껑과 뚜껑 옆 부분에 새겨진 말은 탄 기마상, 책을 보고 있는 사람, 코끼리를 타고 가는 인간,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등 다채로운 백제인들의 형상. 꿈틀거림의 선율이 뒤엉켜 역동감을 자아내는 백제 금동대향로는 한마디로 유럽의 바로크 악곡을 압도하고도 남는 우리 문화의 시각적 교향곡 그 자체라 할 것이다.

웹진 바로 가기 http://muzine.go.kr/culture/30th/culture01_01.jsp

■‘백제금동대향로‘에 대한 상세한 정보

국보 제 287호 백제금동대향로는 불전에 향을 피울 때 쓰는 향로로써 부여 능산리 백제시대 절터에서 출토되었다. 이 향로는 크게 보면 앞발을 치켜든 용 한 마리가 막 피어날 듯한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는 듯한 형상인데 연꽃 봉오리의 중앙이 아래위로 분리되어 향로의 몸체와 뚜껑을 이룬다.

용 한마리가 연꽃 봉오리를 물다.

향로의 뚜껑은 중첩된 형태의 산악으로 묘사되어있고, 그 위에는 날개를 활짝 편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한 마리의 봉황이 보주 위에 서 있다. 봉황 바로 아래 즉 뚜껑의 제일 위쪽에는 5명의 악사가 각각 금, 완함, 동고, 종적, 소 등의 5가지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소발로 깎은 머리는 오른쪽으로 묶여져 있으며 통견의 도포자락과 악기마다의 독특한 자세를 취한 채, 연주하는 모습이 실감나게 표현되어있다. 이 사이에 표현된 5 봉우리에는 그 상단마다 1마리씩 5마리의 새가 얼굴을 들어 정상부에 있는 봉황을 올려 보고 있다. 그 아래 향로의 뚜껑에 장식된 박산은 중국의 동쪽바다 가운데에 불로장생의 신선들이 살고 있다고 하는 삼신산(봉래 방장 영주산)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여기에는 신선을 상징하는 듯한 각종 인물, 동물 산수 등이 다양하게 묘사되어있는데 동물들은 실존 동물 이외에도 상상의 동물도

많이 등장한다. 뚜껑의 문양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전면에 걸쳐 삼산형의 산봉우리 24개가 배치되어있는데 산봉우리 가장자리에는 집선문 문양대를 배치하여 산림이 가득한 산을 연출하였다. 이 산봉우리와 계곡 사이에는 각종의 진금기수가 드라마틱하게 고부조로 묘사되어있는데, 6군데의 나무와 12군데의 바위, 폭포 그리고 산 사이를 흐르는 시냇물을 비롯하여 잔잔한 물결이 있는 물가의 풍경도 보인다.

뚫려있던 배연구는 모두 원형 배연구인데 사용해본 결과 향연이 원활하기 나오지 않자 부정형 배연구를 추가로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향로의 뚜껑 내면은 외면의 돌출부분에 대응하여 돌출시켰기 때문에 전체 향로의 두께는 0.5-0.6cm 정도로 균일한 편이다. 하부는 반구형으로 생긴 몸체와 용트림하는 형상의 받침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부분의 연결도 관을 매개로 하여 접합하였다.

이들 곳곳에는 상상의 동물뿐 아니라 호랑이, 멧돼지, 사슴, 코끼리, 원숭이 등의 실존 동물, 그리고 산중을 거닐거나 나무 밑에서 참선하는 인물, 기마수렵인, 낚시를 하는 듯한 형상의 인물상 등 도합 16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쪽 즉 뚜껑의 구연부에는 1단의 유려한 당초문 문양대를 배치하였는데, 몸체의 구연부에도 같은 형태의 당초문 문양대를 배치하여 뚜껑을 닫았을 때 두 문양대가 서로 맞닿도록 배치하였다.

불로장생의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삼신산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향로의 뚜껑 장식. 5명의 악사, 5마리의 새, 24개의 산봉우리, 6군데의 나무와 12군데의 바위, 폭포, 시냇물이 세밀하게 배치되어 화려함을 뽐낸다.

향로의 몸체와 받침

반구형의 대접모양을 한 몸체는 3단의 연판을 배치하였는데 각 연판은 그 끝이 살짝 반전되었으며 잎의 끝부분에는 밀집선문을 음각하였다. 연판은 동체의 굴곡과 비례를 이루도록 윗 단의 폭이 가장 넓고 아래로 갈수록 그 폭이 줄어드는 방식을 취하였는데 제일 하단의 연판에는 2줄의 음각선으로 복엽을 묘사하였다. 각각의 연판 안으로 물고기, 신조(神鳥), 신수(神獸)등을 한 마리씩 도드라지게 부조하였으며 제일 상단의 연판과 연판 사이의 몸체 여백면에도 연판의 부조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의 동물상을 배치하였다. 또한 요고를 연주하오고 있는 모습의 주악상, 동물을 타고 있는 듯한 1구의 인물상이 장식되었다. 따라서 이 몸체에는 두 마리의 새를 중첩 표현한 연판 상단의 여백을 포함하여 도합 24마리의 동물과 2구의 인물상이 묘사되어있다.

제일 아래쪽의 받침에 해당하는 용은 승천하는 듯한 격동적인 자세로 굴곡진 몸체의 후미와 그곳에서 뻣어나온 구름모양의 갈기를 투각 장식하여 받침으로 삼았다. 용의 정수리에서 솟아오른 뿔은 두 갈래로 갈라져 목 뒤까지 길게 뻗어있고, 길게 찢어진 입안으로는 날카로운 이빨까지 세밀히 묘사하였다. 용의 입안으로 물려진 짧은 간주(竿柱)위로 몸체의 하부받침을 연결시켰다. 간주는 몸체 안으로 솟아올라 그 바깥쪽으로 몸체와 연결되는 관을 끼워 몸체와 받침을 연결하였다. 그리고 아래쪽 가장자리에는 휘감은 몸체 사이사이에 물결무늬, 연꽃무늬 등을 배치하여, 용이 물결을 박차고 승천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불교와 도교의 복합적 요소, 백제왕실의 사상을 압축하여 표현해.

이 향로는 중국 한대 이후의 박산향로의 전통과 도상을 계승하면서도 오랜 시차를 두고 백제에서 출현하면서 시대적인 변화와 백제적인 요소가 더욱 가미된 것을 느낄 수 있다. 즉 향로 자체도 전대에 비해 휠씬 대형화 되었지만 뚜껑에 표현된 신선의 세계는 전대에 비해 훨씬 크고 웅장하며 보다 드라마틱한 구성으로 여러 가지가 복합적 요소가 가미되었고, 선인의 형상도 휠씬 인격화된 수행자 또는 도사의 존재로 표현되기에 이르렀다.

전면에 베풀어진 세부 도상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지만 천상계인 정상에는 양을 대표하는 봉황을 두고, 그 아래 뚜껑에는 지상의 동물 및 인물상(신선), 그 밑인 몸체에는 연꽃을 중심으로 수중생물이나 물과 관련된 동물, 그리고 제일 아래쪽에는 음을 대표하는 수중동물인 용을 배치한 것으로 음양사상에 기본을 두고 배치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이 향로의 전체형상이 용의 입에서 나온 기운으로 연꽃봉오리가 만들어지며 이 연꽃봉오리 속에서 모든 도상이 형성되는 것이 불교의 연화화생을 의미하며, 이것을 연화장 세계 또는 수미산으로 보는 견해도 제시된 바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불교와 도교의 복합적인 요소로 꾸며진 문양이 시문된 것은 무령왕릉 은제 탁잔, 부여 외리 출토 문양 전에도 보여, 백제적인 문양표현의 중요한 특징이다. 아울러 이 향로가 출토된 절터가 불교의 일반적인 수행사찰이 아니고, 백제 왕릉인 능산리고분군의 원찰인 만큼 이 향로의 용도도 전형적인 불교의식 법구가 아니고, 백제왕실에서 선왕을 제사 지낼 때 사용하기 것이기 때문에 이 향로에는 당시 백제왕실의 사상관을 압축하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자료출처:중앙박물관 및 문화재청)

청동대향로사진출처- 광복동 중국차전문점 "여여해"에서 스마트폰사진

백제금동향로는 사비시태 백제 왕들의 무덤인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 인접한 백제 능사의

공방터에서 출토됐다. 전체 높이 68.1센티미터 최대 지름 19센티미터로 향로 뚜껑과 몸체

두 부분으로 이뤄졌으나. 원래는 봉황 ,뚜껑, 몸체, 받침으로 조합한 것이다.

뚜껑의 정상부에서는 한 마리의 봉황이 턱 밑에 여의주를 끼고 날개를 활짝 펴 막 비상하려

한다. 긴 꼬리는 약간 치켜 올라갔으면서 부드럽게 휘날린다. 뚜껑의 몸체는 5단의 삼산(三

山)형 산악문양 띠로 장식되어 있는데 삼산의 외곽에는 여러 줄의 선 무늬를 음각했고, 맨

윗단에는 다섯 명의 주악신선이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은 5악사로 불리는데 완함, 종적, 배소, 거문고, 북 등 5개 악기를 실

감나게 연주하고 있다. 완함, 종적, 배소는 서역에서 전하는 악기로 보이며, 거문고는 고구

려, 북은 남방계인 것으로 추정된다. 봉황 아래 악사들을 둘러싼 5개의 산봉우리에는 신선

의 음악을 감상하는 듯한 춤추는 기러기들을 표현해 한폭의 가무상을 이룬다.

5악사와 더불어 뱀을 물고 있는 짐승 등 상상의 동물, 호랑이, 코끼리, 원숭이, 멧돼지 등

현실세계의 동물 42마리, 주변인물 12명이 74곳의 봉우리와 계곡 사이에 변화무쌍하게 표

현돼 있어 자세히 볼수록 그 신비로움의 세계로 빠져든다.

봉황은 성인이 탄생하거나 임금이 치세를 잘해 태평성대를 이룰 때 출현하는 상서로운 새이

다. 천조, 서조, 신조로 여겨져온 이 새는 출현할 때 뭇 새들의 영접을 받으며 내려온다. 이

때 내는 봉황의 울음소리로 아름다운 음악으로 불리는 봉명은, 5음의 묘음으로서 주악신선

으로 상징화했다.

봉황의 턱 밑 여의주 바로 아래에는 2개의 구멍이. 5악의 뒤쪽에는 5개씩 두 줄로 10개의

구멍이 나 있어 향 연기가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도록 하였다. 실제로 이 향로에서 연기가 피

어오르면 동적인 자태로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향로 뚜껑에 있는 12명의 인물은 말을 탄

2명을 제외하고는 발 아래까지 내려오는 도포를 입고 있다. 그 폭포 아래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인물이 눈에 띄는데 그는 산천제를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말 탄 인물 중 한 명은 후

방을 향해 활을 당기는 듯 날렵한 몸동작을 보여주며 다른 한명은 투구와 갑옷을 착용했고,

말은 안장과 각종 장식구로 꾸며졌다. 이런 기마인물상의 표현은 고구려 고분벽화와 신라,

가야 토기의 그것과 흡사하다.

또한 상상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물상으로서 인간 얼굴에 새의 몸이나 짐승의 몸을 하고

있는 평화스런 형상들이 눈에 띄는데, 이는 선계의 신선을 묘사한 것이다. 뚜껑에는 또한

악귀를 막기 위한 포수가 있고, 여섯 종류의 신령이 깃든 식물도 있다. 뿐만 아니라 길상,

서기의 상징으로 표현한 박산무늬가 있는데 박산무늬 테두리는 불꽃무늬로 장식했다. 산봉

우리 사이사이에 바위가 있는데, 2~4개가 중첩되어 깍아지른 듯 한 험준한 형상을 나타내

문양들이 수직으로 쏟아져 내리는 듯 향로의 맵시 있는 몸체와 연결된다.

향로의 몸체인 노신은 반구형 대접으로 3단의 연꽃잎으로 덮여 있어 활짝 피어난 연꽃을

연상케 한다. 연꽃잎과 그 사이사이 여백에 27마리의 짐승과 2명의 인물상이 있다. 그 중

한 명은 무예를 하는 듯 한 동작을 보여주어 흥미로운데 이는 무용총과 안악1호분 벽화에

서 보이는 인물과 유사하다. 27마리의 짐승 중에는 날개와 긴 꼬리를 가진 동물, 날개 달린

물고기도 있다. 받침대는 몸체의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을 치솟듯 고개를 쳐들어

떠받들고 있는 한 마리 용으로 표현됐다. 한쪽 다리는 치켜들고, 나머지 세 다리와 꼬리로

원형을 이루도록 표현된 용의 자태는 환상적이며 생동감 있다.

용은 마치 승천하는 듯 한 모습인데, 주변이 화염, 물결, 구름 모양의 갈기, 연화문등으로

장식돼 분위기를 더한다. 용의 뿔은 두 갈래로 뻗어 끝이 고사리 모양으로 말려 있으며 날

카로운 이빨, 볏, 갈기는 고구려 집안 오회분에 그려진 용의 모습과 흡사하다.

출처-서적“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의 백제금동향로 부분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