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5. 00:50ㆍ산 이야기
지난 토요일인 10/16일 오전중에 설악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회사의 잔무와 제 개인의 일이 겹쳐저서,
회사에서 밤새 일하고, 회사를 나선 시각이 토요일 저녁 8시경입니다. 집 앞의 가게에 산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 들리자, 옆집의 횟집에서 대하구이와 새우회를 서비스로 내어준다. 막걸리 한병을
시켜서 가게 주인들과 나누어 마시고 집에서 출발한 시각이 밤 11시 언저리 쯤 되었나 봅니다.
동홍천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자,지난 번 추석전에 살둔계곡에서 잊어버린 산악용 스키고글이 다시
생각나서 철정 검문소에서 우회전하여 핸들을 아홉싸리고개로 돌렸다. 추석 연휴 첫날 다시 고글을 찾
으려 갔기 때문에, 그때 찾아보지 못한 어유소 계곡과 폭포까지 갔다가 오자 일요일 새벽 3시반 쯤이다.
남교리 주차장에 도착하여 보니 새벽 5시경, 차에 있는 배낭 3개와 사각가방의 짐을 한배낭으로
정리하고 매표소를 통과한 시간이 5시반 경이다. 짐을 정리하는 동안 솔로 등산객 2명이 조금 앞서
출발하는 것을 보았다. 첫 계곡 횡단다리 바로 앞에서 앞서 출발한 경북 김천에서 오신 한 분은
떡국을 끓이고 있었고, 다른 한분은 당일에 한계령까지 갈 수 있냐고 물어온다. 주력이 빠르면
밤 11~12시 경에나 도착할 수 있으나, 서북주능은 1박2일 또는 2박3일 걸리는 코스라고 이야기
하자 자기는 외설악 비선대-공룡능선-대청봉-천불동계곡을 하루만인 17~18시간 만에 가보았고,
백담사-오세암-탑골-봉정암-희운각대피소-비선대 앞 매표소를 12~13시간에 주파하였다며,
월요일의 업무 때문에 꼭 그리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는 짐을 가볍게 메고 다니므로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며, 먼저 출발하였다.김천에서 오신 분은 며칠이 걸리던지, 서북주능_천불동 계곡~
비선대 코스를 갈 예정이라 하며 느긋하게 아침식사로 끓인 떡국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오늘 비박 목표지점이 흑선동 계곡 초입의 첫계곡에 있는 가는폭이어서 저는 먼저 출발하였습니다.
가다가 쉬다가 하다가 보니 첫 폭포 바로 위의 너럭바위에는 7~8명 가량의 등산팀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저도 싸가지고 간 과일, 전, 떡 등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면서, 커피를 내려 마셨다. 그리고 얼마간 올라가자
너른 너럭바위에서 단체 등산팀들 몇팀이 식사중이다. 사진을 찍으러 너럭바위로 내려서자, 속담에서 처럼
떡 본김에 제사지낸다고 주전자에 물을 끓여서 모 카페에서 감사회원 선물로 받은 자아차나 달여 마시자고
배낭속의 식량,차,차도구 주머니를 다 뒤져 보아도, 그 자아차가 보이질 않는 것이다. 물은 끓고 있고
어찌한다..... 그래 12선녀탕 계곡물로 끓인 김에 아무 차도 넣지 않는 백비탕(白沸湯)이면 어때하고
봉황 두마리가 그려진 청화백자잔에다 백비탕의 맛을 보았다. 처음 두잔째까지는 약간 비린 맛이
가시지 않아 잔을 헹구고 그냥 버렸다.세번째 잔부터는 마실만 했다. 그리고 남은 한 주전자의 백비탕을
다 마셔 버렸다.
이때까지 만해도 산행은 할 만했다. 조금 올라가자 장수대 쪽에서 새벽 4시반에 출발한 모고등학교 산악회를
시작으로 연이어 모집 등산팀과 동호회팀 등 수십개 팀이 내려온다. 도로교통법에도 경사지를 올라가는 화물차가
우선이라지만 산길은 도로가 아니다. 단 두팀의 가이드만을 제외하고는 올라가는 화물차격인 제가 내려오는 이륜차
격인 단체팀들에게 길을 비켜주고 있어야 했다. 거의 40킬로그람에 달하는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짓 누른다.
이러지 말고 계곡에서 푹 쉬었다 가자. 제3복숭아탕 위의 너럭바위에서 점심과 에스프레소 커피를 내려 마시자
장수대쪽에서 하산하는 등산팀들이 더 늘었다. 거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줄줄이 내려 온다.
오후 4시가 지나자 쳐진 몇몇이 하산하고는 12선녀탕길은 다시 처음의 고요를 되찾았다.
안산과 대승령 능선이 만나는 1380고지 안부의 오르막에 이르자 오후 6시경으로 대전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강릉-양양-원통-남교리를 거쳐 대중교통으로 와서 남교리 매표소를 오후 2시에 출발하였다는
1대간 9정맥을 다 마치었다는 분이 올라온다. 내가 너무 노닥거렸나 보다. 이미 지친 나는 그 분을 먼저
올라가라고 하였다. 천천히 5분여를 갔을 때 대전에서 오셨다던 그 분이 텐트를 치고 있었다.
그 텐트치는 자리는 약간 심한 경사지이지만 날이 저물어 어찌할 수 없어 하루를 보낸다고 하였다.
그곳을 통과하여 20여 미터쯤 올라가자 전에 보지 못했던 한동분의 번듯한 텐트자리가 있어서 알려
주었더니 텐트를 옮겨 온다.
이제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대승령과 12선녀탕 갈림길에 들어서자 오후 6시반 헤드렌턴을 켰다.
이제 비정규 등산로인 백담사로 가는 왼쪽 능선길로 들어섰다.다행히 음력 초열흘의 반달이
밝게 떠 있어서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청년시절 한창 야등을 많이 할 때에는 이 정도 달빛이면
렌턴없이 다녔는 데,,,, 세월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소위 조난코스로 불리워지는 이 길은 원래
정규등산로가 아니다. 12선녀탕에서 장수대로 또는 반대로 등산하던 단체팀들이 이 능선의 삼거리부에서
상당수가 길을 잘못들어 백담사 횡장폭(일명 조용한 폭포) 건너편 흑선동 초입의 지능선으로 하산하고는
장수대나 12선녀탕까지 얼마나 더 가면 되냐고 묻고는 하여 이름짓기를 조난코스이다. 30~40년 전에는 단체팀의
가이드도 서툰 면이 없지 않았으나 안산-대승령-12선녀탕으로 가는 삼거리부의 지형상 착각하기 쉬운
특징이 있는 탓이다. 12선녀탕-대승령길은 능선고지를 비스듬히 우회하는데 반하여, 백담사 쪽의 소위 조난코스는
능선길을 똑바로 타고넘으면 되기 때문이다. 요지음은 12선녀탕계곡과 대승령길이 뚜렷이 나있기 때문에 이런
조난 산행은 거의 없을 것이다.
조난코스로 들어서자 길이 거의 폐쇄 수준으로 그동안 자란 나무가지들이 헤드렌턴과 배낭을 잡아끈다
이제 2시간 정도만 가면 가는폭에 도착하여 해먹을 걸어 놓고서 잔 나무가지를 주워와서 삼겹살을 구워
먹다가 숯불만 남으면 주전자를 올려놓고서 커피도 내려 마시고, 차도 다려 마시면서, 달과 별들하고
놀아야지 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조난코스 갈림길에 오자 지능선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조금 가다가 보면 낭떠러지이고.
다시 다른 길을 찾아 내려가다가 보면 굵은 나무가지와 덩쿨이 가로막고 있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그래 백담사 서측 주능선을 따라가 보자하고 조금 더 가니 오른 쪽으로 백담사와 오세암 그리고 영시암의
불빛이 보인다. 조금 더 가다가 청룡재 능선 코스로 빠져보자. 그런데 저 멀리서 <거기 누구세요.>하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나는 대답 대신에 <하이야 하이!!!>하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저쪽에서 <남교리로 가는 구먼.>
하는 스님이신 듯 하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 온다.
조금 더 능선을 타고 북쪽으로 가서 백담사 불빛으로 미루어 보아 청룡재로 가는 지능선 입구에서 갈림길을
찾아 보아도 도무지 어둠속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고 조금 내려가다가 보면 덩쿨로 막혀 있거나 굵은 나무가지들이
얽혀 있어서 내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 조금만 더 주능선길로 가다가 보면 원교나 강교로 내려가는 지능선이
있겠지. 그러면 바로 용대리로 걸어가자 하고 생각하고 쭉 걸어 나갔다. 갑자기 넓은 산길이 앞을 가로질러
있었고 표식기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조금더 가자 능선끝지점 왼쪽 방향은 대승령 오른쪽 방향은 남교리매표소라는
안내표시가 있었다. 이때만 해도 남교리 매표소에서 백담사 하류 방향으로 등산로가 새로 났구나. <차라리 잘 되었다.
어차피 가는폭을 하루 거처로 삼지 못할 바에는 차가 주차되어 있는 남교리 주차장에 가서 자자.>하는 생각만 하였다.
그런데 한 30~40여분 내려 오자 복숭아탕 2.8킬로라는 팻말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런 조난코스에서 룽반데룽(안개, 눈 , 비, 어둠이 짙을 때 등산로를 한바퀴 돌아서 원점으로 오는 현상)을 당하다니,
청년시절에 눈속의 동계등반시 마등령에서 미시령으로 가는 황철봉 너덜지대에서 룽반데룽을 경험해 보고는 근 30여년
만에 또다시 경험해 보는 구나. 이건 조난코스에서 조난 상황이 아닌가.....쓴 웃음이 헤실거리며 입술 밖으로 자꾸
기어 나왔다. 그래서 배낭을 내려 놓고서, 큰 댓자로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달은 깊은 계곡의 지형 때문에
안산의 능선부를 넘어가고 있었고, 하늘에는 주먹만한 별들만이 성좌도를 뚜렷히 보이며 달려 있었다. 월령 초열흘
또는 스무날에 뚜렷이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해발 1380미터인 삼거리 지점에서 확인한 시간은 저녁 9시반, 이제는 남교리 주차장까지 노닥거리며 내려가면 된다.
낮의 상황과는 정반대로 이제 12선녀탕 계곡은 혼자 가지고 놀아도 된다.
제일 위에 있는 제3복숭아탕 전망용 돌출 데크에 배낭을 벗어 놓은 채로 데크 위에 큰대자로 벌렁 누워 버렸다.
달은 가파르기 만한 계곡의 능선을 넘어서 갔지만, 하늘은 아직 월령 초열흘 달이 지배한다. 주먹만한 큰별들만
보이고, 잔별들은 아예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깜박 잠이 들었다가 안되지 하는 생각과 함께 잠이 저만치 달아났다.
능선부에서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윈드스토퍼를 껴입은 채로 내려 왔지만, 설악은 설악의 기질을 발휘한다.
다행하게도 계곡부는 바람 한점없이 포근하였다. 그래도 슬리핑백이나 판쵸를 곁두르지 않으면 저체온증
(하이포써미아)에 잘 걸리기 쉬운 환절기이다. 천천히 남교리로 내려가서 짐 때문에 차에다가 놔두고 온 막걸리나
마시고는 차에서 자자. 이렇게 피곤한 상태로 운전하는 것은 너무 무리이다.
복숭아탕을 지나 한참을 내려 오자 12선녀탕 계곡의 독점이 깨어졌다. 젊은 건장한 청년 산악인이 헤드렌턴을
번쩍이며 씩씩하게 걸어온다. 그 청년의 말인 즉 서북주능을 하려 가는 데 긴 산행시간 때문에 새벽 2시에
남교리매표소를 출발하였고, 한시간 쯤 산행하였다는 것이다. 그럼 벌써 3시인가. 얼마전 부터 시계보는 것도
귀찮아졌고 이젠 쉬려고 앉으면 잠이 쏟아져 온다. 얼마쯤 자다가 다시 걷고 다시 쉬다가 깜박 잠이들고를
반복하면서 , 어제 새벽에 김천에서 온 등산객이 떡국을 끓이고 있었던 첫 다리가 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무슨 다리가 그리도 많은지 언제 그리 많이도 만들었는지 가도가도 첫 다리는
보이질 않는다. 그러고도 10수개의 데크형 다리와 4개쯤의 현수형 출렁다리를 지나자 그 첫 다리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첫 다리인 줄도 몰랐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다리 입구의 풀밭을 보자
여기서 어제 새벽에 누군가가 떡국을 끓이던 자리이구나 하는 기억이 떠 올랐을 뿐이다.
첫 다리를 지나서도 남교리매표소는 금방 나타나지 않았다. 가도가도 능선의 높이가 도무지 낮아 지지 않는 것이다.
지침은 거리를 멀게 느끼도록 한다. 남교리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이 5시반, 차로 곧장 가서 시동을 걸고 히타를 틀어
놓고서 자려 하였다. 그런데 스마트키의 밧테리 방전으로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히타는 무슨 호강하려고 산에 왔나. 의자를 제끼고 잠에 빠져 들었다. 잠결에 한기를 느껴서 뒷좌석에 놓아둔
배낭을 더듬거려 침낭을 꺼내서 덮고 잤다. 아침 7시 반까지..... 그것도 푹 잤다.
24시간에서 30분 모자라는 길지 않은 산행을 모처럼 하였다.
격렬한 사랑 후에 나른함이 새 생명을 탄생하는 것과 같이, 격한 산행은 새로운 충전이 되고 삶의 활력소가 된다.
그리 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리 되었습니다.
12선녀탕 첫폭포
폭포 위의 아침 식사와 노닥거림
오조 홍인 대사님의 게송
식사전 고수레와 원두 커피 내림
오조 법연 스님의 오도송
12선녀탕 계곡의 가을
차 권할 차(풀 초+사람 인 + 나무 목) 와 도륭의 고반여사(考般餘事)에서 따온 고반산행(考般山行) 갑골문
너럭 바위에서 본 작은 폭포
너럭바위에서 백비탕 맛보기
다선(茶禪) : 차나 마시고 가게
다정(茶情) : 차나 마시러 오게
너럭바위 아래 계곡에 찾아온 가을
작은 폭포들이 구슬을 꿴 듯....
제1 복숭아탕
제2복숭아탕
복숭아탕폭포 위의 제3폭
제3폭
점심 때의 에스프레소 커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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