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진다의식(進茶儀式) / 현로(炫爐)의 블로그 마운틴 님의 글

2014. 3. 11. 12:11차 이야기

 

 

 

      

 

고려시대 다사

 

(2) 고려의 진다의식(進茶儀式)

 

서론

    고려시대 진다의식이란 삼국시대의 헌다의식(獻茶儀式)이 발전된 것으로 국가의 많은 행사에 차를 올리는 의식을 말한다.  차를 올리는 진다의식(進茶儀式)은 그 대상이 신(神) 이거나 선왕(先王) 혹은 외국에서 온 사신(使臣), 임금이거나 오악삼신일 때도 있다.  행사 때마다 대상이 바뀌게 되는 데 그 대상에 따라 진다의식도 그 절차가 자못 다르다.  국가에서 행하는 진다의식에는 길례 때 진다의식, 흉례 때 진다의식, 빈례 때 진다의식, 가례 때 진다의식이 있는데 그 절차와 의식을 차례차례 살펴 보도록 하겠다.

 

① 길례(吉禮)때 진다의식

    길례는 대사(大祀)와 중사(中祀)와 소사(小祀)로 나눈다.  대사는 환구(桓丘), 사직(社稷), 태묘(太廟), 별묘(別廟)와 경영전(景靈殿)과 제릉(諸陵)이 있다.  중사(中祀)는 적전(籍田), 선잠(先蠶), 문선왕묘(文宣王廟)가 있는데 이 중에서 문선왕묘에만 진다를 행하고 적전이나 선잠에는 진다의식을 행하지 않다.  소사(小祀)는 풍사(風師), 우사(雨師) 뇌신(雷神), 영성(靈星), 제주현문선왕묘(諸州縣文宣王廟), 대부사사인제례(大夫士使人祭禮), 잡사(雜師)가 있는데, 소사때는 모두 진다의식을 행하지 않는다.

그러면 중사때 문선왕묘에 행하는 진다의식의 절차를 살펴 보기로 하자.

 

㉠ 문선왕묘(文宣王廟)

    문선왕묘란 공자를 모신 묘당을 말하며 공자(孔子)를 위시해서 안회(顔回) 등 여러 제자와 후학 문사들을 모시고 춘추로 제사를 지내는데, 날짜는 상정일(上丁日)로 한다.  이곳에 우리나라 문창후(文昌候),최치원(崔致袁)과 홍유후(弘儒侯) 설총(薛聰)도 함께 모셔져 있다.  제사는 봄, 가을 상정일(上丁日)로 하는데 임금이 거동하여 지낸다.  이때 제단에 차를 올리지는 않지만 제사에 참석한 모든 신하들에게 왕이 차를 하사 하신다.

   또 사인의 찬배(贊拜)로 왕태자 및 재추 이하가 모두 재배하고 반의 우두머리가 행렬에서 나와 진하(陳賀)하기를 마치고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면 사인의 찬배로 위에 있는 관원이 모두 재배하고 무도(舞蹈)하며 또 재배한다.  감관(監官), 학관(學官) 학생도 진하하기를 또한 이와 같이 하여 절하기를 마치는데 학생은 무도가 없다.  각문사(閣門使)가 왕지(王旨)를 전하여 자리에 나아가라하고, 차(茶)를 하사하면 사인의 찬배로 왕태자 재추 이하 모든 관원과 및 감관 학관 학생이 모두 재배하기를 마치고 왕태자 이하 모든 관원이 당(堂)에 올라가 각각 좌후(左後)에 나아가 서면 사인이 각각 좌(左)에 나아가라고 하며 왕태자 이하가 모두 좌에 나아가고 차(茶)를 하사하기를 마치면 감관, 학관, 학생은 뜰 밑에 서서 차(茶)를 받는다.  사인이 인도하여 뜰을 내려가 자리에 나아가면 사인의 찬배로 왕태자 및 재추 이하 모든 관원과 감관학관 학생이 모두 재배하기를 마치고 사인이 나누어 인도하여 차례로 나간다.

이와 같이 임금이 거동하여 문선왕묘에 제사하고 왕태자 이하 재추등 모든 관원들의 진하를 받고 그들을 치하하며 차를 하사하신다.

 

② 흉례(兇禮)때 진다의식

   흉례는 국휼(國恤), 진위의(陳慰儀), 부태묘의(付太廟儀), 상국사제존증부조위의(上國使祭尊贈弔慰儀), 제신상(諸臣喪), 인국상(隣國喪), 중형주대의(重刑奏對儀)  등이 있는 데, 이중에서 제신상 때에는 부의(賻儀)품으로 차(茶)를 하사하셨고, 무거운 형벌을 내리는 의식(重刑奏對儀)때 진다의식을 행하였다.

 

㉠ 중형주대의

    중형(重刑)이란 무거운 형벌을 말하며 주대(奏對)란 임금께 대답하는 말씀을 여쭈는 것을 말한다.  고려사 권64, 례6, 흉례편 중형주대의 조에 보면,

?왕이 편복으로 나와 내전 남쪽 낭하에 앉고 견룡도지(牽龍都知)가 숙배 하기를 마치면 승선(承宣), 중방(重房), 원방(院房)의 여성국원들이 차례로 숙배하며 각문이 신발과 홀(笏)을 놓고 비단신을 신고 (시신은 모두 같이 한다.) 정전 뜰에 들어가 옆으로 가면서 자기들 구령으로 재배하고 행두(行頭)는 걸어 나아가 위치로 돌아가고 각 지후(祗後)는 뒷편의 왼쪽에 선다.  형부의 주대원(奏對員)과 성랑단필원(省郞丹筆員)이 뜰에 들어가 사인의 구령으로 재배하고 밖으로 나간다.  지후가 재신과 추밀을 인도하여 문에 이르면 집례(執禮)가 받아 인도하여 자리를 맡은 자리에 나아가 입정(立定)하고 집례의 작은 구령으로 재배한다.  집례가 승전(承傳)하여 “자리를 하사하신다”하고 집례의 작은 구령으로 재배하고 인도하여 뜰위로 올라가 동쪽 가장자리 자리 위에 앉는다.  다방참상원(茶房慘上員)이 옆문으로 부터 들어와 찻잔을 올리고 내시칠품원(內侍七品員)이 찻잔의 뚜껑을 연다.  집례가 전각위의 앞 기둥 밖으로 올라가 면전에서 절하고 임금에게 차(茶)를 권하고 놓은 뒤에 전각에서 내려오고 다음에 원방(院房)의 8품 이하가 재추에게 차(茶)를 올리며 집례가 또 전각 위로 올라가 엎드려 찻잔을 내어 주실 것을 면전에서 청하고, 다음에 단필주대원(丹筆奏對員)이 들어가 아뢰기를 “단필(丹筆)로 참결(斬決)을 제(制)하시되 유인도(有人島)에 들어갈 자는 제하소서”라고 하고 마친 뒤에 어약(御藥)과 재신 추밀의 약을 권한다.

 

    이상의 기록을 보면 무거운 형벌을 내릴 때는 임금 이하 모든 신하들이 모여 보는 앞에서 벌줄 자를 정하는 데, 빨간 글씨로 표시를 한다.

이때 신하들이 임금에게 차(茶), 약(藥)을 올리고 재신과 추밀에게도 차와 약을 권하며, 주과(酒果)도 함께 하사하신다.

차는 임금에게 신하들이 올리고(進茶)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 그리고 과일 등을 하사하신다.  이러한 진다의식은 고려에만 있었던 독특한 진다의식이다.

이처럼 차와 함께 올리는 약(藥)은 진짜약이 아니라 입가심 물이다.  고려 사람들은 차를 마시고 난후에 미지근한 물을 꼭 마셨는데 이를 가리켜 약(藥)이라고 했다.

 

③ 빈례(賓禮)때 진다의식

    빈례란 손님을 맞이하는 예절로서 특히 외국에서 오는 사신(使臣)을 맞이하는 예의를 말한다.  빈례는 북조(北朝:북송파 남宋)의 조사(詔使)를 맞이하는 의식(迎北朝詔使儀)과 북조의 기북고칙사(起復告勅使)를 맞이하는 의식(迎北朝起告勅使)과 대명(大明)의 무조칙사(無詔勅使)를 맞이하는 의식(迎大明無詔勅使儀)과 대명의 조사(詔使)를 맞이하는 의식(迎大明詔使儀)과 대명의 사노사(賜勞使)를 맞이하는 의식(迎大明賜勞使儀)이 있다.  이중에서 북조의 조사를 맞이하는 의식과 북조의 기복고칙사를 맞이하는 의식과 대명의 무조칙사를 맞이하는 의식에만 진다의식을 행하였다.  북송은 태조(960년)로 부터 흠종(1127)까지 918대(320)년간 존립한 나라이고, 남송은 고종(1127)으로 부터 위왕(1279)까지 대명(大明)은 20대 294년간으로 태조(1368년)로 부터 영명왕(1662년)까지 지속되었다.  고려 제 4대 광종 11년(960) 부터 제 25대 충렬왕 5년(1279)까지는 북조의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절차에 의해서 진다의식을 행하였다.

공민왕 18년(1368)부터 공양왕 4년(1392) 7월이전 까지는 대명의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절차에 따라서 진다의식을 행하였다.

원(元)세조(1260)로 부터 순제(1368년)가 11대 109년간은 북조의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절차에 의거해서 진다의식을 행하였다.

고려 원종 1년(1260)부터 공민왕 16년(1367)까지는 원나라의 풍속을 따라서 진다의식을 행했다.

 

 

    북조

    북송 = 태조(960년) - 흠종(1127년) : 광종 1년(960)

    남송 = 고종(1127년) - 위왕(1279년) : 충렬왕 5년(1279)


     원  세조(1260년) - 순제(1368년) : 원  종 1년(1260)

                                         공민왕 16년(1367)

 

     대명  태조(1368년) - 영명왕(1662년) : 공민왕 17년(1368)

                                             공양왕 4년(1392)

왕  대

년  월

나  라

사  신  이  름

임    무

成  宗

9년 6월

柴成務, 趙化成

책봉(왕)

宣  宗

7년 9월

張思說

生辰(賀)

叔  宗

5년

이름모름

 

睿  宗

5년 6월

王襄, 張邦唱

 

明  宗

8년 정월

懷忠

 

神  宗

2년 4월

完顔愈, 趙?

책봉사

元  宗

10년 11월

黑赤

 

忠烈王

원년 5월

12년

5년 10월

7년 3월

 

副達魯花赤

探내, 哈伯郡

道茶丘

칙  사

 

전함(戰艦)

 

恭愍王

13년 10월

奇田龍

王복위

禑  王

3년 2월

北元

 

책봉사

恭讓王

3년

대명

  韓龍

 

 

 

③ 빈례(賓禮)때 진다의식

    빈례란 손님을 맞이하는 예절로서, 특히 외국에서 오는 사신(使臣)을 맞이하는 예의를 말한다.  빈례는 북조의 조사를 맞이하는 의식(迎北朝詔使儀)과, 북조의 기복고칙사를 맞이하는 의식(迎北朝起復告勅使儀)과, 대명의 무조칙사를 맞이하는 의식(迎大明無詔勅使儀)과 대명의 조사를 맞이하는 의식(迎大明詔使儀)과, 대명의 사노사를 맞이하는 의식(迎大明賜勞使儀)이 있다.  이 중에서 북조의 조사를 맞이하는 의식과, 북조의 기복고칙사를 맞이하는 의식과, 대명의 무조칙사를 맞이하는 의식에만 진다의식을 행하였다.  북조(北朝)는 북종(北宋)과 남송(南宋)그리고 원(元)을 말하며, 대명(大明)이란 명(明)나라를 말한다.  북송(태조:960-흠종:1127년)은 고려 광종 11년(960)부터 인종 5년(1127)때 까지며, 남송(고종:1127년-위왕:1279년)은 인종 6년(1128)부터 충렬왕 5년(1279)까지이다.

 

    원(세조:1260년-순제 : 1368년)은 원종 11년(1260)부터 공민왕 16년(1367)때 까지이며, 명(태조:1368년-영명왕:1662년)은 고려 공민왕 17년(1368)부터 조선 현종 3년(1662) 까지이다.  이중에서 고려때 진다의식을 행한 연대는 공양왕 4년(1392) 고려가 망할 때 까지였다.  그러므로 송,원때에는 북조의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으로 진다의식을 행하였고, 명나라때에는 대명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으로 진다의식을 행하였다.  그러면 북조의 조사를 맞이하는 진다의식을 살펴 보기로 하자.

 

㉠ 북조의 조사를 맞이하는 진다의식

    북종의 조사(詔使)를 맞이할 때 행하는 진다의식은 고려사 권65, 예7, 빈례조에 보면,

?왕이 건덕전(乾德殿)에 나가 앉으면 각문부사(閣門副使)이상이 먼저 건덕전 뜰에 들어가 숙배(肅拜)하고 다음, 재신. 시신. 각문. 남반(南班)이 숙배하고 서립(敍立)한 뒤에 굴사관반(屈使館伴)과 집사가 함께 뜰에 들어와 숙배하기를 마친다.

   각문사인이 문사위(聞辭位)에 나아가 아뢰기를 "북조의 사신이 이미 각문에 도착하여 엎드려 성지(聖旨)를 기다리나이다."라고 하면, 각문사가 전달하여 말하기를 "굴각문원(屈閣門員)은 사신과 조함(詔函:조서함)을 가진자를 인도하라."하면, 굴각문원은 사신 일행을 앞에서 인도하여 중문으로 들어와 사신이 건덕전문의 서쪽에 나아가면 왕이 문의 동쪽에 나와 서로 읍하고 뜰로 들어간다.  사신이 명을 전달하는 위치에 나아가 남쪽을 향해 서면, 왕이 서쪽을 향하여 재배하고 황제의 체후(體後:강녕)를 물으면 사신이 답하여 전한다.  왕이 배무(拜舞)하고 절하면 사인(舍人)의 구령으로 재신 이하 사신이 배무하고 절하기를 마친다.  사신이 명(命)이 있다고 말하면 왕이 재배하고 사신이 조서를 왕에게 전하면 왕은 재신에게 주고 재신은 꿇어앉아 함을 가진 관원에 준다.  왕이 배무하고 절하면 사인의 구령으로 재신 및 사신이 배무하고 절하기를 마친다.  국신물색(國信物色:국서와 예물)이 건덕전 뜰을 지나가고 왕이 재배하기를 마치면 각문원이 사신을 인도하여 문을 지나가고 왕이 재배하기를 마치면 각문원이 사신을 인도하여 문을 나가는데 왕이 문 밖에 읍하고 전송하고 각문이 사신을 인도하여 한림천(翰林廳)의 장막에서 접대한다.  왕이 임시 문안에 거동하여 조서(詔書)를 본 다음에 각문사가 사신의 정의물장(精儀物狀)을 드리고 왕이 답하여 전하기를 마치면 물색(예물)이 건덕전 뜰을 지나간다.

   각문사가 사신의 참상(參狀:알현문서)을 드리고 왕이 복장(復狀)한다.  각문원이 인도하여 건덕전 문 밖에 도달하면 왕이 문으로 나가 서로 읍하고 군덕전위로 들어간다.  사신이 재배하고 성상(聖上)의 체후(강녕)를 아뢰고 또 재배하고 걸어나가 치사(致辭:임금께 올리는 賀禮)하고 또 재배 하기를 마치고 자리뒤로 나아간다.

 

   사인이 상사(上使) 중사(中使)의 참상을 드리고 사인이 인도하여 절하는 위치에 나아가면 왕이 일어서고 사인의 구령으로 재배하고 성상의 체후를 아뢰며 사인의 구령으로 재배하고 걸어나가 치사하고 사인의 구령으로 재배한다.  각사가 객성(客省)에서 차(茶)와 술과 밥을 하사하라는 교지가 있음을 전하면 사인의 구령으로 재배하고 인도하여 문으로 나간다.  왕이 자리 뒤로 나아가면 각 문원이 하사(下使)를 인도하여 건덕전 뜰에 들어가 재배하고 성상의 체후를 아뢰고 재배 한다.  각사가 소사(所司)에서 술과 밥을 하사 하라시는 교지가 있음을 전하면 구령으로 재배하고 문으로 나가기를 마치고 차(茶)를 올리는 데 첫잔은 사신에게 친히 권하며 수작(酬酌)하고 돌아와 재배하고 자리에 나아가 마기시를 마치면 서로 읍하고 돌아와 자리에 나아가고 종사, 하사에게도 술과 밥을 하사하기를 마친다.  사신이 재배하고 걸어나가 치사하고 재배한다.  각 문원이 인도하여 내려가 문으로 나가면 왕이 문으로 나가 읍하고 전송하여 영빈관(館)에 돌아간다.?

 

    이상과 같이 사신이 오면 건덕전에서 맞이하는데, 그 순서는 왕이 먼저 황제의 체후를 묻고 조서와 예물을 받으며, 이 의식이 끝나면 사신과 수행원이 순서대로 들어와 왕의 체후를 묻고 예물을 바친다.  예물을 받고 난 뒤에 왕이 사신 일행에게 차와 술과 밥을 하사하는데 먼저 차를 대접한다.  첫잔은 왕이 친히 사신에게 권하며 수작(酬酌:찻잔을 서로 권함)하고 돌아와 재배하고 자리로 나아가 마시기를 마치면 서로 읍례하고 돌아와 자리에 나아간다.  수행원에게도 술과 밥을 하사하면 사신이 치사하여 재배하고 물러난다.  문밖까지 나가서 전송하고 돌아온다.  이렇게 진다의식을 행하게 되는데 사신을 접견하는 자리에서는 차만 대접하고 술과 밥은 따로 연회를 베풀어서 대접한다.

 

㉡ 북조의 기복고칙사를 맞이하는 진다의식

   기복고칙사(起復告勅使)를 맞이하는 의식도 조사(詔使)를 맞이하는 의식과 대동소이하다.

- < 왕이 건덕전에 나가 앉으면 각문부사 이상이 먼저 건덕전 뜰에 들어가 줄지어 서고 다음에 재신. 이하 및 시신과 남반이 뜰의 절하는 자리로 들어간다.  사인의 구령으로 재신 이하가 숙배하기를 마치고 자리로 나아간다.  굴사와 감관사가 뜰에 들어가 숙배하고 나가면 사인이 문사위에 나아가

"북조의 모사신이 이미 각문에 도착하여 엎드려 선지를 기다립니다."

라고 아뢰고, 각사가 전달하여 말하기를 궁각사가 나가 각문에 이르러 사신을 인도한다.  왕이 문밖에 나가면 사신이 문밖에 나아가 서로 읍하고 건덕전으로 들어 가는데 조서와 관고(官告:관리임명장)가 앞서고 각각 전의 뜰 본래의 위치로 나아간다.  왕이 재배하고 사신을 향하여 성상의 체후를 물으면 황제의 안강(安康)함을 전한다.

   왕이 배무하고 절하면 기거사인(起居舍人)의 구령으로 재신 이하가 배무하고 절한다.  사신이 칙명(勅命)이 있음을 전하면 왕이 재배하고 사신이 전하면 왕이 배무하고 절한다.

   사신이 조서를 취하여 왕에게 전하면 받아 재신에게 준다.  사신이 관고를 취하여 왕게게 전하면 받아 재신에게 주고 왕이 배무하고 절한다.  사신이 읍하고 나가면 왕이 서로 읍하고 나가 문 밖에서 전송하고 각사는 사신을 인도하여 한림청에서 접대한다.

   왕이 전에 올라가 조서와 관고 보기를 마치면 사신이 각사를 통하여 알현문서를 올리면 왕이 기거장(起居狀)을 보내고 문에 나가 영접하는 것은 전과 같이 하여 읍하고 들어가 건덕전에 올라가 사적인 예를 행한다.  사신이 먼저 차사를 하고 왕이 답배한다.  왕은 동쪽끝에 사신은 서쪽끝에 좌정(坐定)하면 각사가 사신 이하 수행원들의 알현문서를 올리고 사인이 수행원을 인도하여 절하는 자리에 나아가 사인의 구령으로 재배하고 시선(時宣:계절인사말)하며 사인의 구령으로 재배하고 걸어나가 치사하며 사인의 구령으로 다시 재배한다.  각사가 말을 전하여 ??사신에게 차와 술을 올리라는 교지가 있다.??고 하면 사인의 구령으로 재배하고 사신을 인도하고 나가는데 차와 술의 예의를 마치면 치사하고 왕이 답배하기를 마치면 사신을 인도하여 전에서 내려가며 왕이 서로 읍하고 전문밖에 나가 읍하고 전송한다.  복색은 모두 현관소복(玄冠素服:검은관에흰옷)을 착용하고 채붕(綵棚), 악부(樂部), 삽화(揷花:꽃꽂이)는 제외한다.>

이상과 같이 기복고칙사를 대접하는 진다의식은 조사를 맞이하는 의식과 같이 왕은 동쪽에 사신은 서쪽에 좌정하고 사신에게 차와 술을 권한다.

 

㉢ 대명의 무조칙사를 맞이하는 진다의식

   북조의 조사를 맞이하는 의식때는 진다의식을 행하지만 대명의 조사를 맞이하는 의식 때는 진다의식을 행하지 않는다.  북조의 조사를 맞이할 때는 건덕전에서 맞이했지만 대명의 조사는 교외에 임시로 장막을 설치하고 맞이하기 때문에 차대접은 생략되었다.  다만 조칙을 갖고오지 않은 사신을 맞을 때는 교외고 나가지 않고 영빈관에서 맞이하기 때문에 차대접을 하였다.

< 사신이 국경에 들어오면 국경을 지키는 관원이 빨리 달려가서 알리고 왕은 관원을 보내어 멀리서 영접하는데, 사신이 서울에 가까이 오면 기일전에 유사(有司)로 하여금 영빈관(迎貧館)에 장막을 설치하고 성문과 거리에 오색비단을 건다.  당일에 이르러 왕이 의위(儀衛)를 갖추고 성밖의 장막에 출영(마중나감)하는데, 세자 이하 백관이 모두 호종(扈從) 하는데 모두 평상복으로 한다.  사신이 이르면 백관이 영빈관의 길 남쪽에 차례대로 북향하고 자리를 달리하여 행렬을 중복하여 서서 기다리고 왕이 나가 장막 밖에 서면 사신이 말에서 내려 왕과 마주 읍한 뒤에 서로 먼저 말에 오르기를 사양하다가 함께 타고 가는데 사신은 길 왼쪽으로 가고 왕은 길 오른쪽으로 가서 왕궁에 이르면 모두 말에서 내려 함께 들어간다.  왕은 서쪽의 문으로 들어가고 사신은 동쪽의 문에 들어가 정전(正殿) 가운데 이르면 마주 서는데 사신은 동편에 서고 왕은 서편에 선다.  전달할 성지(聖旨)가 있으면 사신이 서서 말을 전하고 왕은 북향하고 꿇어 앉아 들으며 사신이 가지고 온 공첩(公牒:공공문서) 받기를 마치면 고두(叩頭:머리가 땅에 닫도록 절함)하고 일어나 평신(平身:몸을 바로세움)한다.  왕이 사신 앞으로 나아가 조금 몸을 구부리고 성체의 만복을 묻는다.  사신이 답한 뒤에 왕이 북향하여 꿇어 앉아 고두하였다가 일어나 몸을 세우고 동서로 서로 향하여 재배하기를 마친다.  한선(寒宣:계절인사)을 간략히 말하고 동서로 마주 앉아 차(茶)를 베푼 뒤에 왕이 대궐내로 들어가 조금 쉰 뒤에 세자와 사신이 상견(相見)하여 재배하고 다음에는 모든 군신, 재추, 백관이 모두 같이 하기를 마치면 왕이 나와 자리에 나아가 사신을 향연(饗宴)한 뒤에 구선(口宣:입으로 진술하는 것)이 있는 사신은 왕이 친히 전송하여 관(숙소)에 이르고 혹은 세자로 하여금 이를 전송하게 하며, 구선이 없는 사신은 재추에게 명하여 전송하여 관(館)에 이른다. >

 

    이와 같이 명나라 사신을 맞이할 때 조서나 칙서가 없는 사신은 영빈관에서 맞이하며 사신에게 임금이 대좌하여 차대접을 하는데 이때 임금은 서쪽 사신은 동쪽에 앉는다.  북조의 사신은 반대로 임금은 동쪽 사신은 서쪽에 앉는다.  왜 임금과 사신의 자리가 바뀌었는지 알 수 없지만 동쪽은 주인의 자리요.  서쪽은 손님의 자리인데 명나라의 제도를 따라 바뀐 듯 한다.

 

④ 가례(嘉禮)때 진다의식

   가례란 혼례와 같이 경사스런 예식을 말하는데 특히 책봉의식이나 공주를 시집보내는 일이나 원자(元子)의 출생 또는 연등회, 팔관회나 군신들의 연회 때 가례를 행한다.

   이 중에서 진다의식을 행하는 의식은 태후(太后), 왕비(王妃), 왕태자(王太子), 왕자왕비(王子王妃) 등의 책봉의식 때와 원자 탄생과 공주하가와 군신 연회와 노인 연회와 연등회, 팔관회 때 모두 진다의식을 행했다.

 

㉠ 태후를 책봉하는 의식(冊太后儀)

   태후를 책봉하는 의식때에는 차와 음식(茶擔)을 올리는데 고려사 권65, 예7, 가례편에 보면,

< 왕이 대내(大內)에 들어가면 진물(進物)과 담상(擔床)이 앞에 가고 다음에는 향로와 다담(茶擔:차와 음식)이 가고 다음에는 교상(絞床)와 수관자(水灌子)가 가고 다음에는 산마안(散馬鞍)이 가고 다음에는 자수대개(紫繡大盖), 홍소개(紅小盖), 연평련(延平輦)이 가고 다음에는 책(冊)을 인도하는 자와 악관(樂官)이 가고 다음에는 옥책(玉冊), 인쇄(印璽), 물장(物狀), 누자(樓子)와 지절자(持節者)가 가고 다음에는 태위(太尉)와 사도(司徒) 이하가 가는데 위의를 갖추어 악을 잡히고 경문(景門)으로 부터 들어가 책(冊), 보(寶), 물장과 누자는 대관전(大觀殿) 문밖에 진열하고 예물과 담상(擔床)은 대정문(大定門)안에 진열하며 태위와 사도는 막사에 들어가 기다린다.  태위와 사도가 책(冊)을 받들어 상궁에게 주면 상궁은 사언(司言)에게 준다.  사도가 인새와 물장을 상복(尙服)에게 주면 상복은 사보(司寶)에게 주기를 마친다.  태위 이하는 서쪽 계단으로 부터 내려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연평련 및 자수대개와 홍소개, 교자상, 수관자와 행로(行爐), 다담(茶擔)은 중문으로 부터 전정뜰에 들어가 나열하여 서고 진물(進物)이 뜰을 지나간 뒤에 돌아 나온다.  전알(典謁)이 태위 이하의 행례원(行禮員)을 인도하여 반열(班列)에 따르기를 마치면 영공(令公)과 재추가 힝행으로 동쪽을 위로 하여 북향하고 선다.  (이하 생략) >

   이상과 같이 왕태후를 책봉하는 의식때에 차와 음식을 올리지만 어떻게 마시는지 의식 절차가 생략되어 있어 알수가 없다.

 

㉡ 왕비를 책봉하는 의식(冊王妃儀)

   왕비를 책봉하는 의식 때 진다의식을 행하는 데 책봉의식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대묘(大廟), 별묘(別廟), 경영전(景靈殿)에 고하는 것은 평상시와 같이 하고, 대관전(大觀殿)에 진설(陳說)하는 요령도 하루 전에 상사국(尙舍局)에서 대관전에 왕좌(王座)를 설치하는데 평상시와 같이 한다.  다음은 임헌발책(臨軒發冊)을 하는데, 장차 책례(冊禮)를 행하려면 임시로 막사를 설치하여 발책을 하도록 한다.  발책하는 요령은 재신, 추밀, 이하 문무백관과 책사(冊使)와 부책사(副冊使) 및 행례에 참가한 관원이 모두 조복을 입고 대관전 문밖에서 기다린다.

   다음은 궁정진설(宮庭陳說)인데, 하루 전에 수궁서(守宮署)는 책사와 부책사의 자리를 남궁(南宮)의 중문 밖 길옆 서쪽에다 동향하여 설치하고 모두 궁중 중심으로 북향하여 수책위(受冊位)를 설치한다.  향안(香案) 및 기타 시설물도 위와 같이 한다.

궁정수책(宮庭受冊)은 궁중에서 책을 받은 것인데, 책봉하는 날 유사가 위의를 갖추고 궁문의 안밖에 법도에 맞도록 전열한다.  다음은 회빈(會賓)인데,  이때에 진다(進茶)를 한다.

 

고려사 권65, 예7에 보면,

< 책례를 마치고 궁중의 관인이 연반좌(筵伴座)를 청상(廳上)의 북쪽벽 중앙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책사와 부책사의 자리는 남쪽벽에 설치하되 책사는 동쪽에 있고 부책사는 서쪽에 있으며 독책(讀冊)과 권화사(勸花使)의 자리는 책사와 부책사의 뒤에 설치하되 모두 북향으로 한다.  각 자리마다 과일상을 설치하고 나면 연반(筵伴)은 초대장(屈狀)을 드리고 책사와 부책사가 답장을 한다.  집례관이 연반을 인도하여 문밖의 좌편에 나가 남향하여 서고, 또 책사와 부책사 이하 독책을 인도하여 문밖의 우편에 나아가 북향하여 서서 서로 읍하고 문으로 들어가 올라가 청상의욕위(褥位)에 나아가 입정한다.

    집례관이 기거장(起居狀)을 교정(交呈)하기를 마치고 재배를 찬하면 빈주(賓主:손님과 주인)가 모두 재배하고 앞으로 걸어나가 또 재배하며 다시 앞으로 걸어나가 또 재배하기를 마치고 각각 자리에 나아가 입정한다.

   집례관이 압물(押物)이하 행사집사관의 기거장 드리기를 마치면 압물 이하가 차례로 자리에 나아가 뵙기를 마치고 각각 물러나 자리로 나아간다.  집례관이 읍이라 찬하면 손님과 주인이 서로 읍하고 자리에 나아가 차(茶) 올리기를 마친다.

 

   술이 이르면 집례관이 빈주(손님과 주인)를 인도하고 나가 요위에 나아간다.  연반이 헌작하기를 청하면 손님이 사양하고 연반이 헌작하기를 세 번에 이르면 손님이 감히 사양하지 못하겠다고 칭한다.  무릇 손님과 주인의 사양하는 것은 집례가 모두 이를 대신한다.  집례관이 읍이라 찬하면 빈.주가 서로 읍한다.  주자(注子)와 잔(盞)잡은 자가 연반의 좌측에 나아가 서향하고 서면 집례관이 읍이라 찬하여 빈.주가 서로 읍하고 연반(주인)이 홀(笏)을 꽂고 술 붓기를 마치면 홀을 뽑고 또 서로 읍하며 홀을 꽂고 잔을 잡고 나아가 꿇어앉아 손님에게 주면 손님이 나아가 꿇어 앉아 홀을 꽂고 잔을 받아 잔을 잡은 자에게 준다.  손님의 잔을 잡는 자가 잔을 받아 책사의 좌측에 나아가 북향하고 서면, 빈.주가 모두 일어나 홀을 잡고 서로 읍하고 서서 헌작하며 부사와 독책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  손님이 수작(酬酌)하기를 청하면 연반이 사양하고 손님이 수작하기를 청하여 세 번에 이르면 연반이 감히 사양하지 못하겠다고 칭한다.  집례관이 읍이라 찬하여 빈.주가 서로 읍한다.  주자(注子)와 잔(盞)잡는 자가 손님의 주칙에 나아가 서향하고 서면 책사가 연반과 서로 읍하고 홀을 꽂고 잔을 취하여 부사에게 주고 부사가 홀을 꽂고 잔을 잡으면 책사가 홀을 뽑고 또서로 읍하며 홀을 꽂고 술 붓기를 마치면 홀을 뽑고 또 서로 읍한다.  책사가 홀을 꽂고 잔을 잡으면 부사가 홀을 뽑고 서로 읍하며 홀을 꽂고 술을 붓는다.  다음에 독책관이 술 붓기를 부사의 의식과 같이하여 마치면 책사가 나아가 꿇어앉아 연반에게 주고 부사와 독책이 모두 나아가 꿇어 앉으면 연반이 나아가 꿇어 앉아 홀을 꽂고 잔을 받아 잔잡는 자에게 준다. 

잔 잡은 자가 잔을 받아 연반좌의 좌칙에 나아가 남향하고 서면 빈주가 모두 일어나 홀을 잡고 물러나 자리에 돌아가 입정한다.  집례관이 찬배(贊拜)하면 빈.주가 모두 재배하고 각각 자리에 나아가기를 마친다.  집례관이 찬음(贊飮)하면 음악을 시작하고 마시기를 마치면 음악을 중지한다. >

   이와 같이 왕비를 책봉하는 의식때 진다의식을 행했는데 먼저 차를 올리고 나중에 술을 올린다.  이러한 의식절차는 모든 책봉의식 때와 대동소이하다.

 

㉢ 왕태자를 책봉하는 의식(冊王太子儀)

   왕태자를 책봉하는 의식도 태묘와 경영전에 고하고 나서 전정진설(殿庭陳說)을 하는데 이는 왕비 책봉의식과 같다.  다음이 임헌발책(臨軒發冊)인데 왕비책봉의식과 조금 다르다.  그다음이 궁정진설(宮庭陳設)인데 이도 약간 차이가 있다.  다음이 궁정수책(宮庭受冊)이다. 

다음은 회빈(會賓)예 이다.  이 회빈예 때에 진다를 한다.

 

< 책례를 마치고 나면 궁관(宮官)이 연반의 자리를 전작위 동벽의 중간에 서향하여 설치하고 책사, 부책사의 자리를 서벽에 설치하되 책사는 남에 있고 부사는 북에 있으며 독책, 압책관(押冊官), 권화사(勸花使)의 자리는 책사와 부사의 뒤에 동향하여서 설치하고 각 자리마다 과일상을 설치한다.  연반이 초대장을 드리고 책사와 부사가 답장을 드리기를 마치면 집례관 연반을 인도하여 문밖의 좌칙으로 나아가 서향하여 서고 또 책사, 부사, 이하 독책, 압책관을 인도하여 문밖의 우칙에 나아가 동향하고 서서 서로 읍하고 문으로 들어가 올라가 전각위의 요위에 나아가 입정한다.  집례관이 기거장(起居狀:일상 생활기록)을 서로 드리기를 마치고 재배와 찬하면 빈.주가 함께 재배하고 걸어 나가 또 재배하고 다시 걸어나가 또 재배하기를 마치고 각각 자리로 나아가 입정한다.  집례관이 압물 이하 행사 집사관의 기거장을 드리기를 마치고 압물 이하가 차례로 자리에 나아가 참알하기를 마치고 각각 물러나와 자기 위치로 나아간다.  집례관이 찬읍하면 빈.주가 서로 읍하고 자리에 나아가 차를 올린다.  차 올리기를 마치면 술이 나온다. >

    술을 올리고 권하고 마시는 요령은 왕비 책봉의식때와 대동소이하며 차를 올리는 방법도 비슷하다.

 

㉣ 왕자 왕비를 책봉하는 의식(冊王子王妃儀)

    왕자와 왕비를 책봉하는 의식도 왕비 책봉할 때와 같이 의식절차가 대동소이하다.  진다의식은 마찬가지로 회빈(會賓) 때 차를 올리고 있다.

< 책례를 마치고 책사와 부사와 독책관이 모두 나가 자기 자리로 나아가면 궁관이 주인의 자리를 대청 위의 동벽의 중앙에 서향으로 설치하고 책사와 부사의 자리를 서벽에 설치하되 책사는 남쪽에 있고 부사는 북쪽에 있도록 하며 독책관과 권화사의 자리는 책사 부사의 뒤에 설치하고 모두 동향케 하고 각 자리에 각각 과일상을 설치한다.  주인이 초청장(屈宴狀)을 드리고 손님이 답장 하기를 마친다. 

   집례관이 주인을 인도하여 문밖의 좌로 나가 서향하여 서고 또 손님을 인도하여 문밖의 우로 나가 동향하여 서서 서로 읍하고 문으로 들어가 올라가 대청위의 요위에 나아가 정립하면 집례관이 기거장(起居狀)을 교정하기를 마치고 재배라고 찬하면 빈.주가 모두 재배하고 걸어나와 또 재배하고 다시 걸어나와 재배 하기를 마치고 각각 자리에 나아가 입정한다.  집례관이 찬인(贊引)이하 행사 집사관의 기거장을 받아 주인에게 드리기를 마치면 찬인 이하가 차례로 자리에 나아가 참알하기를 마치고 각각 물러나와 자기 위치로 돌아간다.  집례관의 찬읍으로 빈.주가 서로 읍하고 자리에 나아가 차를 올리기를 마친다.  다음은 술이 나온다. >

   이와 같이 주인과 손님이 차마시기를 마치면 술이 나오고 술이 다섯잔을 마시면 선화주(宣花酒:왕의 하사품)가 나오고 따라서 밥과 과일등 춤과 음악까지 겯들여질때가 많다.  이 같은 진다의식은 차로써 의식을 시작하는 독특한 사례이다. 

 

㉤ 원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元子誕生賀儀)

   원자가 탄생하면 축하하는 의식이 있는데 이때 진다의식을 행한다.  원자가 탄생하면 왕은 3일간 정사를 보지않고 쉬었다가 4일째 되는 날 대관전(大觀殿)에서 하례를 받는다.  왕이 하례받기를 마치고 경영전에 고하는 의식은 세일(歲日)에 향고하는 의식과 같이 한다.  왕의 조서를 전달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고려사 권65, 예7, 가례편에 보면,

 

< 유사가 조서(詔書)를 갖추어 올리고 대내(大內)에서 옥새(玉賽)를 내어 함에 담아 봉하기를 마치면, 태사(使)과 부사(副使)가 전정에 나아가 명을 받고 조서를 받들고 나가는데 악부(樂部)와 위의를 갖추어 조서를 작은 상(小子)에 간직하여 연덕궁(延德宮)의 문밖에 이르면 수명자(受命者)가 나가 절하는 자리에 이르러 재배하기를 마치고 먼저 들어가 기다린다.  알자(謁者)가 행사와 부사를 인도하여 궁문의 좌측으로 나아가고, 찬례(贊禮)가 수명자(受命者)를 인도하고 문밖의 우측에 나아가 서로 읍한다.  조서함을 가진자가 먼저 들어가면 찬례가 행사와 부사를 인도하여 궁정으로 들어가 요위에 나아가는 데 태사는 동향하여 서고 부사는 정사의 우측에 선다.  조서함을 가진자는 남쪽에 있어 조금 물러나 모두 동향하고 다음에 수명자가 들어가 향안(香案)의 남쪽에 북향하여 서면 찬례의 구령으로 수명자가 재배하고 성궁(聖宮:임금)의 만복을 아뢰며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하기를 마친다.  태사(太使)가 봉선(奉宣)하였다고 말하면 수명자가 재배하고 태사가 구선(口宣)하기를 마친다.  부사가 조서를 가져다 태사에게 주면 태사가 조서를 받들어 수명자에게 전하고, 수명자는 꿇어 앉아 조서를 받아 함을 가진자에게 전하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재배 무도하고 또 재배하기를 마치면 홀을 꽂고 꿇어 앉는다. 

 

   압물(押物)이 선물(宣物:베푸는 물건 하사품)을 가지고 전정의 뜰을 지나가는데 동쪽으로 들어가 서쪽으로 나가기를 마치면 수명자가 홀을 잡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재배하기를 마친다.  조사함을 가진자가 각의 뜰 아래에 나아가 꿇어 앉으면 내인(內人)이 조서를 받아 들어가기를 마치면 찬례가 행사와 부사를 인도하여 나가면 수명자가 궁문밖에 나아가 읍송(揖送)하고 행사와 부사를 인도하여 막사에 들어가 수명자가 돌아 들어간다. >

    이와 같이 왕의 조서를 받아가지고 태사와 부사가 대내에 들어가 수명자에게 전달하고 물러나 막사로 돌아온다.  조서를 받아 본 왕후가 행사와 부사에게 수명자를 시켜서 차와 술과 식사를 대접하게 된다.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 태사와 부사가 막사를 돌아와 조금 있다가 상장(上狀)을 올린다.  아관(衙官)이 상장을 받아 왕후전의 뜰아래 나아가 꿇어 앉으면 내인이 나가 상장을 받아 가지고 들어간다.  궁관이 드디어 왕후의 지(旨)를 받들어 전하면 태사와 부사를 인도하여 궁정의 자리에 나아가 재배하고 걸어나가 치하하고 또 재배한다.  궁아관이 사연(賜宴)을 전하면 태사와 부사가 또 재배하고 청사(廳事)에 나아간다.  수명자가 주인이 되고 태사와 부사는 남쪽에 있어 북향하며 주인은 북쪽에 있어 남향하여 서로 읍하고 뜰에 올라가 요위에 나아가 기거장(起居狀)을 교정(交呈)하며 집례의 찬배로 손님과 주인이 재배하고 걸어 나간 뒤에 재배하며 다시 걸어나가 또 재배하기를 마치고 각각 자리에 나아가 입정한다.  압물과 지함(持函)과 인담(引擔)이 차례로 참상(參狀)을 주인에게 드리는데 압물은 청상(廳上)의 기둥사이의 약간 동쪽에서 북향하여 절하고 지함과 인담은 기둥밖의 서쪽에서 북향하여 절하기를 마치면 각각 계단을 사이로 청막(廳幕)으로 나아가는데 매등급에 따라 장막을 달리한다.  손님과 주인이 서로 읍하고 자리에 나아가기를 마치면 차를 올린다.  차를 다 마시고 나면 술을 올린다.  술이 나오면 빈.주가 모두 일어나 헌수하기를 마치고 식사(食事)를 차린다.

   이와 같이 예를 마치고 연회가 파하면 빈.주가 모두 일어나 뜰을 내려가 각각 처음의 조서를 전하던 자리에 나아가 입정한다.  수명자가 재배하고 일어나 표(表)을 받들고 태사앞에 나아가 꿇어 앉으면 태사가 조금 앞으로 나아가 표을 접수하고 물러나 자리에 돌아간다.  주인이 자리에 돌아가면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 하기를 마친다.  태사가 표를 부사에게 주면 부사는 함을 가진자에게 준다.  집례가 빈.주를 인도하여 서로 읍하고 뜰에 올라가 사양한 뒤에 압물이하가 서로 차례로 사뢰 하기를 처음에 참례할때와 같이 한다.

납폐(納幣)하기를 마치면 빈.주가 서로 동반하여 문으로 나가 대좌하여 송별주(送酒)하기를 마치고 돌아간다.>

   이처럼 원자가 탄생을 하면 왕을 사신을 보내 조서를 내리고 왕비는 조서를 가지고 온 태사와 부사 일행에게 차와 술과 식사를 베푸는 연회를 만들어 대접한다.  이때 왕비가 태사와 부사 일행에게 차를 하사하는 진다의식이 있다.

 

㉥ 공주를 시집 보내는 의식(公主下儀嫁)

    공주를 시집 보낼 때 행하는 의식인데 이때 진다의식을 행하였다. 

고려사 권67, 예9. 가례편에 보면,

 

< 의식은 친영(親迎: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는 의식) 동로(同?), 배구고(拜舅姑), 항사(降使)의 순서로 진행하는데 진다의식은 항사 때 행했다.

소관 유사가 하루전날 어전의 동문밖에 적당한 곳에 사위의 장막을 설치한다.  당일 새벽에 사위의 아비는 그의 부모에게 고하고 사위는 청사에서 초례(醮禮)를 지낸다.  아버지께 재배하고 물러나 말을 타고 대궐문 밖에 이르면 말에서 내려 집례가 인도하는 막사로 간다.  유사가 공주의 노부(鹵簿)와 의위(儀衛)를 내동문 밖에 진설하고 공주가 장차 수레에 오르려면 여담(與擔:손가마)으로써 대신한다.  집례가 사위을 인도하여 막사에서 나가 내동문 밖에 서서 몸을 국궁하고 공주가 수레에 오르면 사위가 대궐을 향하여 재배하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 말에서 내려 기다린다.  공주가 도착하여 수레에서 내리면 사위가 공주를 대하여 엎드리고 공주가 이에 답례하면 일어나 침문(寢門)으로 들어가 계단에 오르고 부채와 촛대를 잡은 사람이 쫓아 들어가 앞뒤로 진열하면 여상자(女相者)가 공주를 인도하여 방에 들어간다.

집사자가 사위를 인도하여 남쪽 세소(洗所)에서 손을 씻는데 공주의 종자(從者)가 물을 떠 놓고 공주는 북쪽 세소에서 손을 씻는데 사위의 종자가 물을 떠 놓는다. 

동로와 배구고를 마치고 나면 임금이 보낸 사신이 오는데 이를 "항사"라고 한다.

 

    사신이 전정에 나아가 명을 받고 조서를 받들고 나가는데 악부(樂部)를 갖추어 조서를 의위하고 조서를 메어 소루자(小樓子)에 간직한다.  공주가 궁문 밖에 이르면 사위가 나와 배조위(拜詔位)에 나아가 재배하기를 마치고 먼저 들어가 기다린다.  집례가 사신을 인도하여 궁문밖의 좌쪽에 나아가면 집례가 사위를 인도하여 문밖의 우쪽에 나아가 서로 읍한다.  조서함을 가진자가 먼저 들어가고 집례가 사신을 인도하여 들어가 궁정요위에 나아가면 조서함을 가진자가 사신의 서쪽에 있어 조금 물러나고 다음에 사위가 들어와 명을 받는 자리에 선다.  집례의 구령으로 사위가 재배하고 성체의 만복을 아뢰여 재배무도 하고 또 재배하기를 마친다.  사신이 선지(宣旨)를 받을겠다고 말하면 사위가 재배하고 사신이 구선(口宣)하고 조서를 가져다 사위에게 전해주면 사위가 꿇어앉아 조서를 받아 함 가진자에게 전하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재배무도하고 재배하기를 마치고 홀을 꽂고 꿇어 앉는다. 

압물(押物)이 선두물담(宣頭物擔)을 인솔하고 뜰을지나 동으로 들어가 서로 나가기를 마치면 사위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재배하고 집례가 사신을 인도하여 나가면 사위가 궁문밖에 나가 읍송(揖送)하여 사신이 장막으로 들어가면 사위가 들어간다. >

이와 같이 사위가 임금이 보낸 사신을 맞아 조서를 받고 나면 사위가 사신 일행에게 차와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연회를 베풀게 된다.

 

< 조금 있다가 사위가 먼저 굴연장(屈宴狀)을 드리면 사신이 답하기를 마치고 집례가 사신을 인도하여 문밖의 위쪽으로 나아가 동향하고 사위은 문밖의 좌쪽으로 나아가 서향하여 서로 읍하고 문으로 들어와 계단에 올라 요위에 나아가 입정한다.  집례기 기거장(起居狀)을 서로 드리기를 마치면 찬배하여 빈주가 재배하고 걸어나가 재배하고 다시 걸어나가 재배하기를 마치고 각각 자리로 나아가 입정한다.  다음에는 압물이 다음에는 지함(持函)이 다음에는 인담이 각각 참상(參狀)을 주인에게 드리는데 압물은 대궐 기둥사이의 조금 남쪽에서 동향하여 절하고 지함과 인담은 기둥밖에서 북향하여 절하고 참상드리기를 마치면 각각 계단을 사이에 두고 장막으로 나아가는데 등급에 따라 자리가 다르다.

빈주가 서로 읍하고 자리에 나아가기를 마치면 차와 술을 베푼다.  차를 마시고 나면 술이 나오는데 손님과 주인이 함께 일어나 헌수(獻酬)하기를 마치고 음식을 베푼다. 

예를 마치고 연회를 파하면 빈주가 함께 일어나 계단을 내려가 각각 처음의 조서전달 위치로 나아가 입정한다.  >

    이처럼 혼례때 차가 쓰여지기는 언제 부터인지 확실치 않지만 이미 고려 왕실에서 공주를 시집보낼 때 차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 왕태자가 절일에 궁관의 하례를 받고 아울러 연회하는 의식(王太子節日受宮官賀幷會儀)

   왕태자가 여러 군신으로 부터 절일에 하례를 받고 그들에게 연회를 베풀어 주는 의식인 데 여러 신하들이 차와 술을 올리는 진다의식이 베풀어진다.

< 하루 전날 유사가 왕태자의 자리를 대전 위의 동쪽벽 아래 가운데에 서향으로 설치하고 신료(臣僚)의 자리를 여정궁정(麗正宮庭)에 설치하기를 평상시와 같이 한다.  당일 아침 일찍 장위(仗衛)가 들어가 궁정에 진렬하고 영관(伶官)은 양부공인(兩部工人)을 거느리고 자리에 나아가 영관 한사람이 지휘하는 자리에 나아간다.  통사사인이 궁관을 인도하여 모두 궁문밖 자리에 나아가는데 문신(文臣)은 동쪽에서 서향하여 북을 위로 하고 무신(武臣)은 서쪽에서 동향하여 북을 위로 하여 모두 행열을 중복하여 입정하고 통사사인(通事舍人)등 행례관(行禮官)이 먼저 들어와 자리에 나아간다.  왕태자가 화포(靴袍:구두와 도포)를 착용하고 장차 전각을 나오려 하면 영관이 지휘봉을 들어 음악을 시작하고 좌정하면 음악을 중지한다.

 

    장위 영관 등이 자기구령으로 재배하고 통사사인 행례관등이 진하를 마치고 자리로 나아가 나누어 선다.  사인이 삼사(三師), 삼소(三小) 번객 이상을 인도하여 궁정에 들어가면 음악을 시작하고 왕태자가 동쪽계단으로부터 내려오고 삼사 이하가 서쪽계단으로 나아가 전학에 오르면 음악을 중지한다.  삼사, 삼소는 서쪽에서 북을 위로 하고 빈객은 남쪽에 있어 동쪽을 위로 하여 북향하고 재배하면 왕태자가 답배하고 행두(行頭)가 걸어나가 치사하고 또 재배하면 왕태자가 답배하기를 마치고 동쪽계단으로부터 내려오면 음악을 시작하고 삼사 이하가 서쪽계단으로 부터 내려오고 왕태자가 도호 전각에 오르면 음악을 중지한다.  사인이 3사 이하를 인도하여 문밖의 장막으로 나아가면 왕태자가 자리에 오르기를 마친다.  사인이 궁관 6품 이상을 인도하여 들어가 자리에 나아가서 사인의 구령으로 신료가 재배하고 행두가 걸어나가 치사하고 자리에 돌아가 또 재배한다.  처음에 왕태자가 자리에 올라가 앉으면 전찬(典饌)이 안(案:상)을 연전(筵前)에 설치하고 찬 그릇을 갖추는데 그릇은 모두 평상시에 사용하는 금.은 그릇을 쓴다.  사인이 행두를 인도하여 서쪽계단으로 나아가 올라가 존소(尊所)에 나아가면 궁관이 차와 술을 올린다.  차마시기를 마치면 술이 나오는데 그 절차는 똑 같다. 

 

   전선랑(典膳郞)이 술을 부으면 행두가 홀을 꽂고 잔을 잡아 태자앞에 나아가 꿇어 앉아 좌차자(左차子)에게 주고 좌차자는 잔을 받아 왕태자 앞에 놓는다.  행두가 홀을 잡고 동향하여 꿇어 앉아 일컫기를 "신 모등은 머리를 조아려 아뢰나이다.  다행히 모절일을 당하여 신등은 크게 경사 스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천만세주(千萬歲酒)를 올리나이다." 라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재배하면 궁관 상하가 모두 재배한다.  좌차자가 앞으로 나가 영을 받고 조금 물러나 선령하기를 "삼가 공등의 술잔을 들겠노라."라고 말하기를 마치면 궁신 이하가 또 재배한다.  좌차자가 잔을 받들어 올리고 왕태자가 술을 들면 음악을 시작하고 마시기를 마치면 음악을 중지하고 신묘가 재배한다.  2잔, 3잔도 모두 처음 의식과 같이 한다.>

이와 같이 술이나 차를 올리는 의식은 똑 같다. 

다만 술을 올리기 전에 차를 먼저 올리고 차를 다 마시고 나면 술을 올리고 술을 다 마시고 나면 (3잔) 음식을 올린다.  모두 같은 절차에 의해서 행하여 진다.

※ 절일(節日) : 한철의 명절 : 곧 인날(人日), 삼짇날, 단오, 칠석, 중양.

 

㉧ 설날에 임금께 조하(朝賀)하는 의식(元會儀)

   설날 아침에 임금께 하례를 드리는 의식인데 이때 임금께 차를 올리는 진다의식이 행하여 진다.

< 상식(尙食) 다방(茶房)은 미리 수존소(壽尊所)를 대전 계단 위의 동쪽 가장자리에 설치하고 유사는 신료의 존소를 대전 계단 아래의 서쪽 가장자리에 설치한다.  시간이 되면 시중(侍中)이 중엄(中嚴)을 판주(版奏)하여 태악령(太樂令)은 공인(工人)을 거느리고 들어와 자리에 나아가고 협률낭(協律郎), 전의(典儀), 찬자(贊者)도 각각 자리에 나아간다.  사인이 문무 4품 이하 상참(常參)이하 관인을 인도하여 전정의 위치로 들어오고 참외문반(參外文班) 9품 이상과 유록제권무무반(有祿諸權務武班), 산원(酸員) 이상은 대전 문밖에 나누어 선다.  시중이 바깥 준비가 되었음을 아뢰면 왕이 장차 나가려하여 의장을 움직이고 협률랑은 기를 들어 악(樂)을 시작하고 왕이 대전에 앉으면 악을 중지한다.

  각사(閣使)가 태자 영공 재신을 인도하여 가운데 위치에 나아가 북향하고 합반(合班)하여 선다.  전의가 재배라하여 태자 이하가 배무하고 절하며 성체의 만복을 아뢰고 또 재배하고 태자가 걸어나가 치사 하례드리고 뒤치로 돌아간다.

   전의가 재배하라하여 태자 이하가 배무하고 절하기를 마치면 각사가 태자와 영공을 인도하여 동쪽계단으로 올라가 대전위의 근에 중심으로 나아가 입정한다. 전의가 재배라 하여 태자 이하 및 대전 뜰에 있는 자가 모두 재배를 아치고 태자가 꿇어앉아 아뢰기를 "신 모등은 元正의 수조(首祚)를 맞이하여 신등은 크게 경사스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천만세수주(千萬歲壽酒)를 올리나이다."라고 말하면 각사가 전하여 아뢰고 근시가 제(制)를 받아 가(可)하다고 하면 각사가 선지(宣旨)를 전하여 태자 영공에게 산호(山呼:만세)재배함을 허락하면 문무반이 모두 재배한다.  태자 영공이 세소에 나아가 손을 씻는 것은 평상시와 같이한다. 

 

   茶房이 먼저 차를 올린다.  차를 마시고 나면 술을 올리는데 뢰주(뢰酒)하기를 마치고 태자 영공 재신이 왕좌 앞의 동쪽으로 가깝게 나아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영공이 존(尊)을 도우며 태자가 수주(壽酒)를 붓고 다방원이 잔을 공손히 받든다.  태자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다시 대전위의 자리로 나아가면 전의가 재배라 하여 태자 이하 태전 뜰에 있는자 모두가 재배한다.  태자 영공이 다시 왕좌앞으로 나아가 태자가 잔을 받들고 영공이 존을 도와 왕이 작(爵:잔)을 잡으면 협률낭이 깃를 받들어 악을 시작하고 작을 다하면 악을 중지한다.

   각사가 태자 영공을 인도하여 동쪽 계단으로 부터 내려와 계단아래 절하는 위치에 나아가면 전의가 재배라 하여 태자 이하가 배무하고 절하기를 마친다.  각사가 선지를 전하며 "좌적에 나아갈 것을 허락하고 아울러 술과 밥을 하사 하신다."고 하면 전의가 재배라 하여 태자 이하가 배무하고 절하며 각각 자리에 나아간다. >

 

    이와 같이 정월초하루 설날 아침에 임금께 천만세수주를 올리고 차도 올리는 진다의식이 행하여졌다. 

민간에서도 설날 아침이면 여러 조상님들게 차와 술과 밥을 올리는 다례를 지낸다.

 

㉨ 대관전에서 군신을 연회하는 의식(大觀殿宴郡臣儀)

   대관전에서 군신을 연회(宴會)하는 의식 때에 군신이 임금께 차를 올리는 진다의식과 임금이 군신에게 차를 하사하는 의식이 있다.  그 절차는 기일전에 대관전에 왕의 자리와 군신의 자리를 설치하는 진설(陳設)과 당일에 행하는 대연(大宴)으로 되어있다.

하루 전에 상사국(尙舍局)은 왕의 좌석을 대관전 위의 가운데 남향으로 설치하고 편차(便次)는 왕좌의 동편북쪽에 설치하고 짐승 모양의 화로 두개를 좌우에 설치하고 태자의 좌석을 왕좌의 동남쪽에 서향으로 설치하고 공후백의 좌석은 왕좌의 동서에서 조금 남쪽으로 설치하고 재신과 추밀의 자리를 태자 공후의 뒤에 설치하고 문관 3품 및 승제(承制) 시신의 자리를 재신의 뒤에 설치하고 무관 3품의 자리를 추밀의 뒤로 매등급에 따라 위치를 달리하여 모두 북쪽을 위로하여 서로 바라보게 한다.

    상의국(尙衣局)과 상사국은 꽃안(花案)을 왕좌앞의 기둥사이 좌우에 설치하고 다방과 상식국(尙食局)은 어주(御酒) 어식(御食) 어과(御果)상을 구비하며 군신의 술과 밥은 유사가 직위에 따라 공변한다.

   대연회를 베푸은 당일에 시간이 되면 산선(傘扇)과 장위(仗衛)는 들어가 대관전 뜰에 진열하고 태악령(太樂令)은 교방(敎坊)의 樂官을 거느리고 들어가 위치에 나아가며 협률낭(協律郎), 전의(典儀) 贊者, 御史등 무릇 행사 집사관은 모두 들어가 위치에 나아가고 각문(閣門)은 각각 태자, 공후백, 및 재신, 추밀, 문무, 상참 이상을 인도하여 들어가 문사위(聞辭位)에 나아가 임정한다.

 

    시중이 바깥 준비가 되었음을 아뢰면 왕이 적황색 도포를 입고 전에 이르는데 협률낭이 꿇어 엎드렸다가 지휘봉을 들고 일어나면 음악을 시작하고 장위가 만세을 아뢰고 재배하고 왕이 자리 앉으면 음악을 그친다.

각문이 문사를 아뢰고 태자, 공후백, 재신, 추밀, 문무, 군관을 인도하여 절하는 자리에 나아가 북향하여 선다.  전의가 재배라하며 태자 이하 군관이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하여 성체의 만복을 아뢰고 재배하며 태자가 걸어나가 치사하고 물러나 자리에 돌아간다.  찬자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가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하기를 마친다.

    각문이 각각 태자 및 상공(上公)을 인도하고 동쪽계단으로 부터 대전에 올라가면 집례관이 받아 인도하여 절하는 자리에 나아간다.  찬자의 구령으로 태자, 공후벽 및 문무군관이 재배하고 태자가 꿇어 앉아 아뢰기를 "신모 등은 옆드려 모절일을 만나 대경(大慶)을 이기지 못하와 삼가 천만세의 수주(壽酒)를 올리고 옆드려 성지(聖旨)를 문후 하나이다."라고 하면 집례관이 왕좌의 동남쪽에 나아가 엎드려 꿇어 앉아 전하여 아뢰고, 승제가 전달하기를 좋다(可)라고 하면 집례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태자의 동북쪽에 나아가 서향하고 전달하여 "태자이하가 엎드렸다가 일어남을 허락한다." 하고 찬자의 구령으로 태자이하 문무 군관이 재배하기를 마치고 태자 및 상공은 세소에 나아가 손을 씻는다.

 

   근시관이 차(茶)를 올리면 집례관은 몸을 국궁하여 권하고 매양 술을 올리고 식사를 올릴 적 마다 집례관은 몸을 국궁한다. 

다음에 태자 이하의 군관에게 차(茶)를 하사하면 태자 이하 군관이 재배하고 집례관의 찬음으로 태자 이하가 마시기를 마치고 읍례한다.  다음에 태자 이하 군관에게 술을 베푸는데 집례관의 찬음으로 태자 이하가 재배하고 잔을 잡으면 음악을 시작하고 마시기를 마치고 읍례하면 음악을 중지한다.

 

   사재경(司宰卿)이 어식(御食)을 올리고 다음에 태자 이하 군관의 식사를 차린다.  왕이 식사를 들면 음악을 시작하고 집례관이 찬배하면 태자 이하가 재배하고 모두 자리에 나아가 식사를 받으며 먹기를 마치고 일어나 읍례하면 음악을 중지한다.  다식(茶食)이 이르면 교방의 치어(致語:樂人이 받들어 올리는 )와 구호(口號:詩한구절) 드리기를 마치고 태자 이하 군관이 내려가 전각 뜰의 배위(拜位)에 나아가 찬자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가 재배하고 태자가 걸어나가 치사하고 물러나 자리로 돌아간다.  찬자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 군관이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하기를 마치면 각각 자리에 나아간다.  근시관이 차례로 어주와 어식을 올리는 것과 군관에게 술을 베풀고 군관에게 식사를 차릴 때 음악을 시작하고 중지하는 것은 모두 위의 의식과 같이 한다.  이와 같이 차 올리기를 마치면 술을 올리고 이어서 식사를 올린다.  왕은 태자이하 군관에게 차와 술을 하사하고 식사도 내린다.

 

㉩ 정월 보름에 연등회 하는 의식(上元燃燈會儀)

   고려때 가장 큰 명절로는 봄에 지내는 연등회와 겨울에 지내는 팔관회가 있다.  연등회는 부처님을 섬기는 것이고 팔관회는 천영(天靈), 오악(五嶽), 명산(名山), 대천(大川), 용신(龍神)을 섬기는 것이다.

 

   고려사에 보면, 연등회를 지낼 때 진다의식을 행하였다. 

연등회의 의식 절차는 먼저 소회일에 지내는(小會日), 좌전(坐殿)의식과 조진(祖眞:선조어전)을 알현하는 의식이 있고 이어서 다음날 대회일 행사가 있다.

소회일의 좌전의식은 왕이 대전에 나가 여러 군신들의 하례를 받고 함께 무희들의 춤과 노래, 놀이패들의 잡기와 놀이를 관람하는 행사이다.  상사국은 왕의 휘장을 대전 위에 설치하고 태자이하 공후백 추밀 등의 자리를 대전 뜰 좌우에 설치하여 북쪽을 위하여 동서가 서로 보도록 한다.  태자 이하 군신들이 전각 뜰에 들어가 왕께 재배하고 물러나 자리에 나아가면 다음에 백희(百戱), 잡기(雜伎)가 차례로 전각 뜰에 들어와 연달아 재주를 부리고 연기 하기를 마치면 물러나 나가고 다음에 교방(敎坊)의 주악(奏樂)과 무회(舞회)들의 춤과 노래를 감상한다.  이처럼 춤과 노래등 잡기와 놀이를 관람하고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선조(先祖)의 어진(御眞)을 알현하는 의식

   왕이 봉은사(奉恩寺)에 납시어 열성조의 어진을 알현하고 헌작(獻酌)하는 의식인데 먼저 편전에 예를 마치고 나면 예사가 초엄을 아뢰고 노부와 의장을 구정에 진열하고 상사국은 왕이 탈 수레(輦)를 전각 뜰 중앙에 준비한다.  태자 이하가 전각 뜰에 나와서 좌우로 나누어 서고 사인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가 재배하기를 마치면 섭시중(攝侍中)이 바깥 준비가 다 되었음을 전각뜰에 나아가 아뢰면 왕이 전각에서 내려와 수레를 타고 봉은사로 향한다.  태자 이하 군신들이 말을 타고 따라가서 삼문(三門) 밖에서 말에서 내리고 시신이 어가를 인도하여 삼문 안으로 들어가면 왕이 연(수레)에서 내려 휘장안으로 들어간다.  태자 이하가 진전문(眞殿門) 밖에 나아가 벌여서서 기다리다가 왕이 진전문 안에 이르러 북향하여 서면 계단 아래 요위에 나아가 북향하여 선다.  문무군신이 차례로 북향하여 서기를 마치면 추밀의 찬배로 왕이 절하고 사인의 구령으로 태자이하 군신이 모두 재배한다.  매번 왕이 절한 뒤에 사인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가 모두 재배한다.  왕이 전각 밖에서 절하고 이내 전각 안으로 들어가 재배하고 헌작(獻酌)하기를 마치면 또 재배하고 태자 이하 군신이 재배한다.  추밀이 복주(福酒)를 올리면 왕이 재배하고 마시기를 마치고 또 재배한다.  음복(飮福)하기 전후에는 신하는 절하지 않고 왕만 대전에 나가 재배하는데, 태자 이하 군신도 재배한다.  왕이 나가서 문안에서 북향하여 서서 추밀의 찬배를 절하고 태자이하 군신도 재배하기를 마친다.  재추와 추밀이 왕을 인도하여 휘장에 돌아오면 각문이 태자 이하를 인도하여 모두 나가 삼문밖에 나가 진열한다.  왕이 돌아 올때는 나아갈때와 마찬 가지로 한다.

 

㉩ 대회일 좌전(坐殿)

   대회일에 왕이 편전에 나아가면 승제원, 근시관, 각문원 및 제숙위, 중금도지, 색룡관, 전문내와의 위장 등의 예수(禮數) 및 교방의 주악은 소회일의 의식과 같다. 

   편절의 예를 마치면 다방(茶房)은 과일상을 왕좌의 앞에 설치하고 수존안을 좌우 꽃상(花案)의 남쪽에 설치한다.  상사국은 왕태자의 자리를 왕좌의 동남에 서향으로 설치하고 공후백의 자리를 왕좌의 서남에 동향으로 설치하되 북쪽을 위로한다.  태자와 공후백의 과일상은 자리에 앉기전에 먼저 설치한다.  좌우승제와 근시관, 각문원, 6상국, 제후전관은 모두 공복(公服)으로 갈아입고 천우상대장군(千牛上大將軍), 비신장군, 색룡반, 중금도지 등의 제위장은 각각 그 기물과 복장을 착복하고 좌우로 나위에 계단 아래에 나아가 기다린다.  왕이 자황표(자黃袍)를 입고 나가 대전에 앉으면 명편(鳴鞭)하고 금위가 산호(만세)를 아뢰며 재배한다.

 

   태사국이 시각을 아뢰면 좌우승제와 천우상대장군이 북서쪽 계단으로 부터 올라가 좌우에 서고 각문원은 전뜰에 나아가 횡행으로 북향하여 행두의 구령으로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하며 성체와 만복을 아뢰고 또 재배하고 좌우로나 누어선다.  각문이 태자이하 공후백, 추밀을 인도하여 들어가 배위에 나아가면 사인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가 재배무도 하고 또 재배하여 성체의 만복을 아뢰고 재배하며 태자가 걸어나가 치사하고 불러 주심을 감사하고 물러나 자리에 돌아가면 사인의 구령으로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한다.  좌쪽 집례관이 나아가 선지를 받고 전을 내려가 태자의 동북에 나아가 전을 향하여 읍하고 서향하여 올라 오라고 전하면 사인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가 재배하고 각문원이 동서로 나누어 인도하여 전각에 올라가고 좌우 집례관이 받아 인도하여 자리뒤에 나아가 입정하며 공후백은 동서의 자리로 나누어 명령을 따른다.  근시관이 차(茶)를 올리면 집례관이 전을 향하여 국궁하고 매양 술을 올리고 식사를 올릴 때에도 집례관 모두 전을 향하여 국궁하여 권하며 뒤에도 모두 이와 같이 따라서 한다.  다음에 태자이하 시신에게 차(茶)를 하사 하는데 차가 이르면 집례관의 찬배로 태자 이하가 재배하고 집례관의 찬음으로 태자 이하가 모두 마시기를 마치고 읍한다.  매번 태자 이하 시신이 주식을 설 할 때는 좌우 집례가 찬배, 찬음, 찬식하는데 뒤에는 모두 이를 따른다.

 

㉪ 仲에 팔관회 하는 의식(仲八關會儀)

   팔관회도 연등회 처럼 신라 때 부터 내려온 풍속으로 가장 큰 명절 중에 하나이다.  팔관회는소회일과 대회일로 나누어지고 소회는 음력 11월 14일에 대회는 15일에 거행하였으며 진다의식은 소회필과 대회일에 모두 행하였다.

 

소회일 진다의식(소회날 이전에 회장을 설치하고 예행연습을 한다.)

    기일전에 도교서(都校署)는 3단계 뜬계단을 의봉문 동전(東殿)의 층계 아래에 설치하고 상사국은 관속을 거느리고 휘장을 전각위에 남향으로 가운데에 설치하고 왕좌를 설치하는 것은 평상시 의식과 같이 한다.  편전을 휘장의 동쪽에 설치하고 상의국은 꽃상(花案)을 왕좌의 앞 기둥사이 좌우에 놓으며 다방(茶房)은 과일상(果案)을 왕좌 앞에 놓고 수존안(壽尊案)을 좌우에 있는 꽃상의 남쪽에 놓는다.  상사국은 왕태자의 자리를 왕좌의 동남쪽에 서향으로 놓고, 공후백의 자리를 전각위의 동서벽에 설치하되 모두 북쪽을 위로하여 서로 마주보게 하며 짐승 모양의 화로 두 개를 기둥밖의 좌우에 놓는다.  또 좌우 추밀의 자리는 위 계단에 북쪽에 가깝게 마련하며 좌우시신은 나누어 추밀의 뒤에 있어 모두 북쪽을 위로 하여 서로 마주보게 하고 협률랑(악장)의 자리는 위계단의 서쪽에 남에 가깝게 동향으로 설비하며 중간계단의 시신의 자리는 좌우에 설치하되 모두 북을 위로하여 서로 마주보게 하고 악탁(樂卓)은 좌우 시신의 뒤에 설치하며 찬(饌) 및 다방(茶房)의 장막은 중간계단의 동쪽과 서쪽에 설치하며, 내고사(內庫使)는 대존뢰(大尊?:세수그릇)를 정원의 좌우에 진열하여 북을 상위로 하고 예부(禮部)는 그 관원을 거느리고 황룡의 큰기 둘을 정원의 동서로 계단에 가깝게 꽃으며 각문은 태자의 문사(聞辭)하는 자리를 정원 가운데에 동편에 가깝게 서향으로 마련하고 공후백의 자리는 그다음으로 하며 재신의 자리는 그 다음으로 하되 문관은 모두 약간 물러나 서향하여 북을 위로하고 무관은 서편에 설치하되 동향하여 마련한다. 

 

하루 전에 좌우추밀, 시신, 장위(仗衛), 악부(樂部)는 대관저(大觀殿)으로 부터 줄지어 위봉문으로 나가고 재추이하 문무백관은 모두 정원의 자리에 나아가 의식의 예행연습을 하고 마치면 읍례하고 물러간다.   

   소회 당일의 의식은 열성조의 어진(御眞)을 뵙고 북향 재배하여 헌작하는 의식으로 부터 시작 되는데 예사(禮司)에서 시간에 의해서 초엄(初嚴)을 알리면 노부(鹵簿)와 의장(儀仗)은 나가 구정에 줄지어 서고 산선(산扇)과 위장(衛仗)은 대관전 뜰로 부터 좌우에 줄지어 의봉문에 이르러 멈추고 인가관(引駕官)은 왕이 탈 수레를 인도하여 들어가 요위에 ?奏쨈?.  예사가 중엄(中嚴)을 알리면 추밀이하 시신 각문등은 반열을 지어 전각뜰에 들어가 좌우로 나누어 서서 기다린다.  왕이 저황포(저黃袍)를 입고 나와 수레를 타고 의봉문에 이르러 수레에서 내려 옷을 고쳐입고 조진(組眞)앞에 이르러 북향재배하고 헌작한다.  또 재배하고 물러나 편전으로 나아간다. 

 

< 대전에 앉아서 하례 받기와 군신의 헌수(坐殿受賀 群臣獻壽) >

   왕이 나아가려 하면 근시관이 주렴을 걷고 명편(鳴鞭)하고 협률랑(악장)이 엎드려 지휘봉을 들고 일어나면 교방(악대)이 주악(奏樂)을 울리고 고취(鼓吹)를 울린다.  왕이 왕좌에 올라가면 명편하고 좌우 승제와 천우상대장군은 동서 층계로부터 전각에 올라가 좌우로 나누어 서며 향연을 피운다.  태사국이 시작을 아뢰면 협률랑이 꿇어 앉아 지휘봉을 놓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재배하면 악을 그친다.  이와 같이 왕이 나와 대전에 앉으면 태자이하 공후백 제신이 조하(朝賀)를 드리고 차와 술을 올린다.  왼쪽 집례관이 태자와 상공을 인도하여 세소(洗所)에 나아가 손을 씻고 근시관(近侍官)이 차(茶)를 올리면 집례관이 대전을 향하여 국궁하여 권한다.  

 

   다음에 술을 올릴때는 전중감(殿中監)이 잔을 받들고 근시관이 주자(注子)를 받들고 먼저 올라간다.  태자와 상공은 동쪽 계단으로 부터 대전에 올라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어좌(御座)의 좌편에 나아가 서향하여 꿇어 앉아 태자가 잔을 받으면 상공이 태자의 좌편에 나아가 주자를 받들고 술을 붓는다.  왕이 잔을 들면 협률장이 지휘를 들고 악관(樂官)이 ?가곡천온향(歌曲天?香)?을 울리며 왕이 술 들기를 마치면 태자가 빈잔을 받고 전중감이 잔을 이어 받으며 근시관이 주자를 받아 가지고 조금 불러나 꿇어 앉으면 협률랑이 지휘를 놓으면 음악이 그친다.

   태자와 상공은 엎드렸다가 일어나 대전에서 내려가고 각문이 인도하여 정원의 절하는 자리에 나아가면 사인의 구령으로 태자이하 군관이 재배 무도하고 또 재배하기를 마치고 입정한다.  처음 헌수하기를 마치면 사재경(司宰卿)이 식사(食事)를 올리고 전중감이 술을 올리는데 세 번하고 식사를 올린다.  왼쪽 집례가 서쪽 계단으로 부터 계단위에 올라가 자리에 나아가 북향하여 섰다가 선지를 받들고 계단에서 내려가 태자의 동북쪽에 나아가 전을 향하여 읍례하고 서향하여 전하기를 "경등의 하례하는 바는 이미 말았노라."하고 소사(所司)에게 차와 술을 하사하면 사인의 구령으로 태자 이하군관이 재배 무도하고 또 재배하기를 마친다.

 

   각문이 태자 이하 공후백, 추밀 등을 인도하여 자리에 나아가고 이어서 삼경유수(三京留守)와 동서 병마사, 8도목사, 4도호부사등이 하례하고 자리에 나아가며, 이하문무 백관과 악관과 위장 및 하급군관에 이르기 까지 정해진 자리에 나아간다.

다음에 추밀 이하 양쪽 계단의 시신 및 정원의 각 문원등의 과일상을 차리고 대전위의 태자, 공후백의 과일상은 앉기 전에 마련하며 근시관이 올리는 차와 식사를 마련하고, 다음에 태자, 공후백 및 추밀 양쪽계단의 시신을 위한 차와 식사도 마련하며, 좌우 집례관의 찬배로 태자이하 시신이 모두 재배하고 자리에 나아가 식사를 받아 먹기를 마치면 일어나 읍례한다.  중간계단의 시신은 서서 식사를 받고 다음에 근시관이 차를 올린다.  다음에 태자, 공후백, 추밀, 시신에게 차를 하사하면 집례관의 찬배로 태자이하 추밀 시신이 모두 재배하고 차를 받아 마시기를 마치고 읍례한다.  태사령의 판주로 만방이 구성아악(九成雅樂)을 정주(呈奏)하고 정원의 중악(衆樂)이 번갈아 시작 하기를 앞의 의식과 같이 한다.

 

   승제(承制) 한명과 중간계단의 좌우시신 각 한명을 내려 보내어 좌우 동락정(同樂亭)과 재신(宰臣)의 장막과 문무 3품관의 장막에 나누어 보내서 별잔(別盞)을 하사하는데 명을 받은자는 모두 재배하고 뜰에서 내려간다.  승제가 장차 재신의 장막으로 나아가려하면 다방(茶房)의 인리(人吏) 두명이 주자(注子)를 갖추어 별선주(別宣酒)를 받들고 임금이 보낸 교방(敎坊), 악관(樂官)으로 하여금 뒤를 따르게 한다.  승제가 장막의 계단아래의 어명령을 전하는 자리에 이르러 남향하여 서면, 악관은 동향하여 줄지어 서고, 재신은 모두 계단에서 내려가 절하는 자리로 나아간다.  승제가 본부를 받들었다고 칭하면 재신이 재배하고 국궁하며 구선(口宣)하기를 마치면 재신이 또 재배하고 계단위에 올라가 조금 앞으로 나아가 서향하여 서면 명을 받은자는 계단에 올라가 재신의 북쪽에 남향하여 선다.  상사국이 과일상을 마련하고 다방인리 한명이 잔을 받들고 또 한명이 술을 부으면 주악을 시작하고 마시기를 마치면 주악을 중지한다.  승제가 계단에서 내려가 남향하여 서면 재신은 배위에 나아가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하며 돌아와 자리에 나아간다.

 

   다음은 시립원장(侍立員將), 양부악관(兩部樂官), 시봉군인(侍奉軍人)에게 술과 과일을 하사 하라는 분부를 전하면 좌우승제, 천우상대장군, 내시, 다방참상원(茶房參上員)과 대전위의 좌우 집례가 차례로 대전위의 서쪽벽에 나아가 동향하여 북쪽을 위로하여 서서 재배하고 술을 받아 마시기를 마치고 재배하며 각각 자리에 나아간다.  매양 별잔을 하사하라는 어명과 대회날에 꽃과 봉약(封藥), 선과(宣果)를 받는 것은 모두 이를 따른다.

 

    -  대회일 진다의식

   왕이 처음 선인전(宣仁殿)에 거동하면 승제이하 근시간 및 후전관(後殿官)이 문후 하기를 마친다.  대관전에 납시면 시신이 문후하고 의봉루의 위에 거동함에 앞서서 향을 사르고 헌작한 뒤에 근시관 이하가 뜰에 올라가며 태자이하 공후백 재신 추밑 시신 문무 군관이 차례로 서고 왕어 대전에 앉은 뒤에 문사(聞辭:송축의치사), 헌수(獻壽:만수무강의 축원), 전선(傳宣:어명전달)의 사좌(賜坐:함은 모두 소회일 의식과 같다.  이와 같이 신료가 각기 정한 자리에 앉으면 각문이 송나라(宋)의 강수(綱首:상인의 우두머리) 등을 인도하여 문사의 위치에 나아가 입정한다.  각문이 문사하여 아뢰기를 ?송나라의 도강(都綱) 아무개등이 기후(祇候)하고 조하(朝賀)코자 하나이다.?라고 하고 마치면 인도하여 절하는 위치에 나아가 꿇어 앉아 물품을 적은 서장을 올리면 각문이 받아 올리고 엎드렸다가 일어난다.  사인의 구령으로 재배하고 행두가 성체의 만복을 아뢰며 산호를 아뢰고 재배하여 행두가 걸어나아갔다가 물러나 위치에 돌아가 산호를 아뢰고 재배한다.  다음에 어명을 전하여 자리를 하사하고 음악을 보게하며 겸하여 소사의 술과 밥을 하사 하기를 마치면 산호를 아뢰고 재배하며 권반(卷班)하여 서쪽으로 나가 장막으로 나아간다.

 

   다음에 동서의 번자(番子:오랑캐)를 인도하고, 다음에 탐라인(제주도)을 인도하는데, 조하 및 전선하는 예는 모두 송나라의 강수와 같게 한다.  다음에 사방의 공물과 제번(諸蕃:오랑캐)들의 공물을 인도하여 동쪽 인덕문(仁德門)으로 부터 들어가 빨리 대전뜰을 지나 서쪽의 의창문으로 나가기를 마친다.

다음에 근시관이 차와 식을 올리면 집례관이 대전을 향하여 국궁하여 권하며, 다음에 태자 이하 시신의 차와 식사를 차리는데 식사가 이르면 집례관의 찬배로 태자 이하 시신이 모두 재배하고 자리에 나아가 식사 받아 먹기를 마치면 일어나 읍례한다.  대전위에 차를 올리고 술을 올리며 식사를 올리는 것 및 태자 이하 시신에게 차를 하사하고 술을 베풀며 식사를 차리는 예식과 음악을 시작하고 중지하는 것도 모두 소회일의 의식과 같이한다.  다음은 꽃을 베풀며 식사를 차리는 예식과 음악을 시작하고 중지하는 것도 모두 소회일의 의식과 같이한다.  다음은 꽃을 올리는 헌화식(獻花式)과 꽃술(花酒)을 올리는 의식이 차례로 거행된다.  왕은 태자이하 시신들에게 꽃과 꽃술 그리고 선과(宣果)와 봉약(封藥)이 하사된다.

 

   왕이 나와 대전에 앉으면 명편하고 향을 사른다.  근시관이 함으로 어화(御花)를 받들고 다른 근시관 두명이 어잔(御盞) 및 주자(注子)를 받들고 먼저 올라가 왕좌의 동북에 나아가 조금 물러나 꿇어 앉으며 태자 이하 추밀 이상은 대전에 올라가 엎드렸다가 일어난다.  태자가 왕좌의 좌편에 나아가 서향하여 꿇어 앉고 승제원(承制員)이 꽃한가지를 취하여 태자에게 주고 태자가 꽃을 받들고 꿇어 앉아 올리면 주악을 시작하고 승제원이 또 한가지를 취하여 태자에게 주면 태자가 받들어 올린다.  헌수원(獻壽員)이 어화를 드리는 것은 두가지 혹은 세 네가지로 하여 헌수원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나누어 드린다.  왕이 대화(戴花)하면 태자가 조금 물러나 엎드려 꿇어 앉고 공후백, 추밀이 계속하여 나아가 꽃을 드리는데 위의 의식과 같이하여 마치면 악을 중지 한다.  화주를 드리는 의식을 태자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왕좌의 좌편에 나아가 술잔을 받들고 꿇어 있으면 공후백 추밀이 차례로 주자를 받들고 술을 붓는다.  왕이 술을 들면 음악을 시작하고 술 들기를 마치면 음악을 중지한다.  태자가 나아가 빈잔을 받으면 근시관이 잔과 주자를 이어받고 조금 물러나 꿇어 앉으며 태자 이하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대전에서 내려가 절하는 위치에 나아가면 구령으로 태자이하 양쪽 계단의 시신이 재배무도 하고 또 재배한다.  꽃술을 드리는 예식은 이하 모든 사람들이 이를 따른다.  다음은 왕이 태자이하 추밀들에게 꽃과 꽃술을 하사하는 의식이다.  근시관이 함으로 희사(희賜)하는 꽃 및 주자와 잔을 받들고 먼저 올라가고 추밀 이상이 대전에 올라가 왕좌의 좌편에 나아가 엎드려 꿇어 앉으면 승제가 꽃을 받들어 올리고 왕이 손수 하사하면 악을 시작하고 태자가 꽃기를 마치고 엎드려 물러나 꿇어 앉고 공후백 취질이 차례로 나아가 꽃 받기를 위의 의식과 같이 하여 마치면 주악을 중지한다.  다음은 꽃술을 하사하는 의식이다.

 

   태자가 왕좌의 좌편에 나아가 엎드려 꿇어 앉으면 승제가 주자를 받들고 근시관이 잔을 받들면 승제가 술을 붓는다.  태자가 조금 앞으로 나가 잔을 잡으면 근시관이 전하여 받고 대전위 동쪽벽의 태자의 마시는 위치에 나아가 서면 태자가 엎드렸다가 일어나 물러나 술마시는 위치로 가서선다.  공후백 추밀이 차례로 나아가 희사함을 받는 것은 위의 의식과 같이 한다.  집례관의 찬음으로 태자 이하가 왕좌를 향하여 읍례하면 주악을 시작하고 마시기를 마치면 주악을 중지한다.  근시관이 각각 빈잔을 받고 태자 이하가 읍례하고 대전에서 내려가 절하는 위치에 나아가면 구령하여 재배무도 하고 또 재배하며 각각 위치로 나아간다.

 

   다음에는 재신(宰臣)과 문무 3품관원에게 꽃과 꽃술 그리고 과일을 하사 하는 의식이다

   승제 한명과 중간 계단의 좌우 시신 각 한명씩을 내려 보내어 좌우 동락정(同樂亭)의 재신 장막과 문무 3품관의 장막에 나누어 보내서 별선화주(別宣花酒)를 하사하면 어명을 받은자는 모두 재배하고 뜰에서 내려간다.  승제가 장차 재신의 장막에 나아가려 하면 다방인리(茶房人吏)가 주자를 갖추고 별선화주를 받든자와 선과(宣果)와 선화(宣花)를 받든자와 선송(宣送)한 교방악관(敎坊樂官)등이 모두 뒤를 따른다.  승제가 장막 계단 아래의 어명을 전달하는 위치에 이르러 남향하여 서고 악관은 동향하여 진열하면 재신이 계단에서 내려와 배명(拜命)함과 승체가 입으로 전하는 예식과 상식국이 과일상을 설치하는 것은 모두 수회의 의식과 같이 한다.

   재신이 절하기를 마치고 뜰에 올라가 위치에 나아가 대전을 향하여 입정하면 승제가 재신의 북쪽에 남향하여 선다.  꽃함을 받든자가 승제의 우칙에 나아가 꿇어 앉고 승제가 꽃을 취하여 재신에게 전하여 주면 주악을 시작하고 재신이 꿇어 앉아 받기를 마치면 주악을 중지한다.  상식국이 과일상을 마련하고 다방인리 한사람이 잔을 받들며 또한 사람이 술 붓기를 마친다.  선과를 받든 자가 각각 뜰에 올라가 재신의 위치를 당하여 동향하여 서면 주악을 시작하고 마시기를 마치면 주악을 중지한다.  승제가 뜰에서 내려가 남향하여 서면 재신이 절하는 위치에 나아가 재배무도하고 또 재배하기를 마치고 돌아가 위치에 나아간다. 

다음은 문무 3품 이하에게 꽃술과 과일과 차를 하사하고 별선주도 하사하게 된다.  이처럼 모든 대소신료에게 차와 식사와 술과 과일을 하사하면 마지막으로 태자가 천만세 수주를 올리며 근시관은 왕에게 차를 올리므로 모든 행사를 끝내게 된다.

 

   이상과 같은 팔관성회의 진다의식은 고려시대 진다의식의 백미로 대회의 성대함이나 그 규모로 볼 때 최고의 행사요.  모든 백성에 이르게까지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고 3경 유수와 8도 목사도 참석하였으며 외국의 상인과 탐라인과 오랑캐들 까지도 참석시켰다. 

이러한 팔관회는 신라 진흥왕 12년(551)으로 부터 고려 공양왕 4년(1392)까지 약 840여년 동안이나 계속된 행사, 이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서 팔관보(八관寶

를 설치하여 운영하기도 하였다.  이때 행하여진 진다의식은 고려시대 차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 하였을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다례의식으로 그대로 계승되었다. 

 

 

                                                         - 네이버 블로그 < 현로(炫爐)의 블로그> 마운틴 님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