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영지요선(嶺誌要選) / 집주 문경사

2014. 5. 14. 19:43나의 이야기






       

20. 영지요선(嶺誌要選)  집주 문경사 / 개인발간 향토자료 

2012/08/0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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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集註                         

  문     경     사  

 

 

20영지요선(嶺誌要選)

 

차        례

  해 설
  번 역
      문경(聞慶)
  연혁(沿革)
  산천(山川)
  관사(官舍)
  방리(坊里)
  역로(驛路)

  장시(場市)

  고적(古跡)
  토산(土産)
  원우(院宇)
  인물(人物)
  정각(亭閣)
  효열(孝烈)
  제영(題詠)
        상주
        함창
        예천
        용궁


  [해 설]

  1876년(고종 13년)에 최석봉(崔錫鳳)이 편찬했으며 지금은 전하지 않는 영남여지(嶺南輿誌) 15권이 번잡하여 중요한 것을 간추려 2권으로 요약한 것이다.

  동국여지승람과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대한 불만에서 편찬을 시작했다고 하나 다른 기록에 비해 미비한 점이 있다. 수록 항목이 연혁, 산천 등 13개 항목으로 대단히 적으며, 특히 경제 분야인 전답, 진공(進貢), 조적,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이며 군병(軍兵)부분 기록이 없어 사료적 가치가 떨어진다. 제영에서 몇 편의 시가 추가되었다. 문경은 영지요선 하권에 실려 있다.

 

  [번 역]

 

문   경(聞慶)

  서울 129리, 감영 118리
  호수 : 3,550호
  토지면적 : 2,170결(結), 곡수(穀數) : 6,150섬
  군인(軍人) : 3,880명

  [연혁(沿革)]
   본래는 신라의 관문현(冠文縣)인데 뒤에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 관산(冠山), 문희(聞喜)라고도 한다.

  [산천(山川)]
   주흘산(主屹山) : 주산(主山)이다. 살펴보면 영남의 산천은 성질이 중후하여 명현(名賢)을 배출한 동방인재의 부고(府庫)이다. 관동(關東)의 산수는 맑고 수려하며 기이하게 솟아서 인재가 적었다. 옛 사람들은 초나라 남쪽에 돌이 많고 사람이 적어 그것을 관동이라 했다.
   관혜산(冠兮山) : 북쪽 5리에 있다.
   희양산(曦陽山) : 남쪽 20리에 있다.
   재목산(梓木山) : 남쪽 40리에 있다.
   선암산(禪巖山) : 남쪽 40리인데 봉화가 있다.
   탄항(炭項) : 북쪽 30리인데 봉화가 있다.
   장산(獐山) : 남쪽 40리에 있다.
   봉명산(鳳鳴山) : 북쪽 8리에 있다.
   화산(華山) : 서쪽 65리에 있다.
   이화현(伊火峴) : 서쪽 20리에 있다.
   계립령(鷄立嶺) : 북쪽 30리에 있는데 세상에서는 지릅산[麻骨山]이라 하는데 방언으로 비슷하다.
   조령(鳥嶺) : 북쪽 30리에 있고 둘로 나누어져 하나는 주흘산, 하나는 조령산이다.
   황장봉산(黃腸封山) : 동쪽 30리에 있다. 주위가 10리로 소나무의 성질이 많이 굽어 봉산을 한 후로는 소나무가 곧게 커서 하늘을 찌른다.
   대미산(黛眉山) : 북쪽 30리에 있고 본 현 여러 산의 주맥(主脈)이다.
   관갑천(串岬遷) : 남쪽 20리로 토천(兎遷)이라고도 하는데 세상에 전해 오기를 ”고려 태조가 남쪽으로 쳐 와서 이곳에 이르니 길이 없었는데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는 곳으로 행군을 하게 되어 토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응암(鷹岩) : 조령의 중성 안에 있는데 석벽에 돌이 깔린 50여보인데 그 모양이 새매와 같다.
   어류동(御留洞) : 조령의 동쪽으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와 머물러 어류동이라 하고 궁실(宮室)터가 있다.
   불일산(佛日山) : 남쪽 60리이고 우단(雩壇)이 있다. 
   용유동(龍遊洞) : 불일산 북쪽 5리에 깊은 소[深湫]가 있다.
   용추(龍湫) : 새재에 있고 예로부터 용이 오른곳이라고 한다.
   견탄(犬灘) : 남쪽 40리에 있다.
   조천(潮泉) : 조천은 둘이 있다. 하나는 소둔산(所屯山)에 있고 하나는 남쪽 5리 정곡리에 있는 것으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솟아 넘쳐 적시는 것이 마치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것과 같아 조천이라 한다.

  [관사(官舍)]
   징원당(澄源堂) : 동헌(東軒)
   유곡역(幽谷驛) : 남쪽 40리에 있고 18우역(郵驛)이 소속되어 있다. 조선 초에는 이서(吏胥) 가운데 오래 근무한자로 역승(驛丞)을 시켰다. 김안노(金安老)가 이판(吏判)으로 있을 때 승(丞)을 고쳐 찰방으로 하고 사족(士族)을 배치하였다. 지금도 서리(書吏), 겸종(겸從)을 무릇 부를 때 김승(金丞), 이승(李丞)이라고 부른다.
   조령진(鳥嶺鎭) : 새재 아래에 있다.
  돌로 쌓은 성이 세곳 있는데 한 곳은 고개마루에, 한곳은 응암에, 한곳은 초곡에 있는데 모두 홍예문이 있어 큰 길이 통한다. 중간에 있는 어류동은 안이 넓고 밖이 협착하여 수만인을 수용 가능한 하늘이 낸 험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 천장(天將) 이제독(李提督)이 이곳을 지나며 지은 시에

조령의 높고 험함이 백리에 이르니
분명히 하늘은 이 나라를 보호하는구나.

 
   
  한탄하기를 “이렇게 험한 곳을 지키지 않은 신총병(申摠兵)은 무모하다”고 했다.
  화봉원(華封院)이 있는데
  이규보(李奎報)의 시

만가지 인연이 재처럼 찬 노거사(老居士)도
붉은 마음 있어 성인 임금을 받든다.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축원하려는데
어찌하여 화봉의 이름을 혼자서 차지했는고.

 
      
   [방리(坊里)]
   읍방(邑坊), 신동(身東), 신남(身南), 신북(身北), 초곡(草谷), 호남(戶南), 호서(戶西), 호현내(戶縣內), 가동(加東), 가남(加南), 가서(加西), 가북(加北), 가현내(加縣內)

  [역로(驛路)]
   요성(요城) : 동쪽 5리에 있고 유곡역 소속이다.

  [장시(場市)]
   읍내외시(邑內外市) : 2일, 7일, 4일, 9일
   진남(鎭南) : 1일, 6일
   호남(戶南) : 3일, 8일
   유곡(幽谷) : 2일, 7일
   가은(加恩) : 3일, 8일
   농암(籠巖) : 5일, 10일
   송면(松面) : 4일, 9일

  [고적(古跡)]
   호계 고현(古縣) : 남쪽 40리에 있다. 배산성(拜山城)이라고도 하며 본래 신라의 호측현(虎側縣)인데 지금은 본현 소속이다.
   견훤산성(甄萱山城) : 남쪽 40리에 터가 남아 있다.
   고부산성(姑夫山城), 고모산성(姑母山城) : 두 성이 마주보고 있다. 토천의 서쪽 두 골짜기를 묶은 것 같은데 아래에 큰 내가 흐른다. 임진왜란 때 왜병이 지키는 줄 알고 두려워 여러 차례 확인하고서야 지키는 병력이 없음을 알고 춤을 추며 조령으로 들어갔다.
   아자개(阿慈介) : 가은현 사람인데 아들 넷이 모두 세상에 알려졌고 견훤은 그 중의 한 아들이다. 처음 견훤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들에서 밭을 갈고 어머니가 수풀에 눕혀 두고 점심을 했는데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여 마을 사람들이 듣고 이상히 여겼다.
  고설(古說)에 “옛날 무진촌(武珍村)에 살고 있는 한 부자가 얼굴이 곱고 예쁜 딸이 하나 있었다. 그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네가 실을 바늘에 꿰어 그 옷에 찔러 놓아라’하여 그대로 하였다. 날이 밝자 그 실을 찾으니 북쪽 담 밑 큰 지렁이 허리에 바늘이 찔려 있었다. 그로 말미암아 아이를 배어 견훤을 낳았다”고 하였으나 믿을 것이 못된다.
  고려 태조가 견훤을 토벌할 때 견훤진을 향한 내에 소금을 풀어 무수한 사람이 죽어 지렁이가 됐다고도 한다.

  [토산(土産)]
   복령(茯
), 송이버섯, 백자(柏子), 인삼, 웅담(熊膽), 황장판(黃腸板)

  [원우(院宇)]
  한천(寒泉) : 안귀손, 신숙빈
  소양(瀟陽) : 김락춘

  [인물(人物)]
   안귀손(安貴孫) : 덕행이 순수하고 집안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었다.
   신숙빈(申叔彬) : 지조와 행실이 고결하고 은거하여 벼슬하지 않았다.
   김낙춘(金樂春) : 순천인으로 자(字)는 태화(泰和), 호는 인백당(忍百堂)으로 퇴계(退溪) 문인이다.

  [정각(亭閣)]
   교구정(交龜亭) : 용추 위에 있다. 관찰사 교인(交印)장소이다.
   연정(蓮亭) : 객사(客舍)에 있다.
   천교정(遷喬亭) : 유곡(幽谷)에 있다.
   비홍정(飛鴻亭) : 동쪽 5리 경치가 뛰어났다.
   봉생정(鳳笙亭) : 남쪽 30리로 서애(西崖:柳成龍)가 세웠다.

  [효열(孝烈)]
   주득천(周得天) : 어머니가 병이 들어 꿩고기를 먹고 싶어하자 매가 날아가며 꿩을 떨어뜨렸다.
   윤소사(尹召史) : 남편이 전사하여 절개를 지키려는 뜻을 꺾으려 하자 목을 메어 자결했다.
   조형(趙珩) :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여묘를 하였으며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에도 그렇게 하였다.
   최씨(崔氏) : 안귀손의 아내로 글에 능했으며 남편이 죽자 제문(祭文)에

봉황이 함께 날 때 즐겨 노래 불렀는데
봉(鳳)이 돌아오쟎아 황(凰)이 홀로 운다.
하늘에도 물어 봐도 말이 없긴 마찬가지
하늘같고 바다같이 넓은 한(恨)이 끝이 없다.

 
  종신토록 피눈물을 흘리며 절개를 지켰다.
  
 최억수(崔億壽)
 : 어머니가 눈이 멀자 지성으로 봉양했다. 하루는 그 어머니가 더러운 물건을 잘못 알고 먹었으나 억수가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했다. 부인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옥황상제에게 어머니의 눈을 뜨게 청원하리라”고 했다. 그 뒤 꿈에 그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미 상제에게 청하였으니 어머니 눈이 반드시 밝으리라”했다. 아침에 집사람이 보니 과연 눈이 밝은지라 사람들은 “효성에 감동한 때문이라”고 했다.
  
 충신(忠臣) 신길원(申吉元) : 임란 때 현감으로 적을 꾸짖다가 팔을 베이고도 계속 꾸짖으며 순직했다.

  [제영(題詠)]
  회재(晦齋:李彦迪)의 고모산성 시에

가파르고 위험한 사다리길을 오르니
측량할 수 없는 낭떠러지 머리털이 쭈뼛하고
산허리 옛 보루가 있으니
어느 때 설치했는지 알지 못하나
그로부터 태평 세월 오래였으니
싸우던 성벽에는 개암나무와 가시나무 자라네.

 
     
    
오숙(吳숙)의 시

떨어지는 물이 폭포의 장엄함을 얻었고
상주진이 원래 오솔길로 통한다.

 
     
    
신해장(申海藏)의 시

오솔길 궁벽하고 음산한 잔설 아래
충사(蟲沙)의 남은 원한이 얼어 구름으로 높구나.

 
     
    
지은이를 모르는 시

위태로운 토천의 자취 물결 층으로 떨어지는데
유곡의 꾀꼬리 소리에 한가로운 하루 다 가고

 

     
    
지은이를 모르는 시

꿈속 닭우는 소리 함곡관에 새벽 오니
희뿌연 사람들 행렬이 촉나라 길 밝힌다.

 
      

상     주

  [산천(山川)]
   사불산(四佛山) : 북쪽 100리에 있다.
  
 영수(영水) : 북쪽 45리에 있다.

  [방리(坊里)]
  
 영순(永順), 산동(山東), 산서(山西), 산남(山南), 산북(山北)

  [장시(場市)]
  
 산양 : 5일, 10일

  [고적(古跡)]
  
 농천(農川) : 산양 조동에서 나오는데 농지의 구덩이로부터 봄에는 적게 나오다가 모내기에 맞추어 물이 배로 솟아나고 풍족하게 물을 데다가 가을추수가 끝나면 쉽게 말라 버린다.

  [토산(土産)]
  
 옥등석(玉燈石) : 조현(鳥峴)에서 난다.

  [원우(院宇)]
  
 근암(近巖) : 홍언충(洪彦忠), 이덕형(李德馨), 김홍민(金弘敏), 홍여하(洪汝河)를 제향한다.

  [인물(人物)]
 
  권상일(權相一) : 본관이 안동으로 자는 태중(台仲)이고 호는 청대(淸坮)로 부제학(副提學)을 지냈다. 이조판서에 증직되고 시호는 희정(僖靖)이다.

  [사찰]
  
 대승사(大乘寺) : 사불산에 있다.
 
  김룡사(金龍寺)
 : 운달산에 있다.
  
 묘적암(妙寂庵)
 : 사불산에 있고 나옹이 심은 전나무 3그루가 있다.
 
  미륵암(彌勒庵)
 : 위와 같고 옛날 판서 백진(白瑨)이 계해년 왜란에 어머니를 업고 피난하여 중수했다.
 

함   창(咸昌)

  [방리(坊里)]
  
 동면, 북면

  [인물]
  
 홍귀달(洪貴達) : 의흥지를 볼 것
  
 홍언충(洪彦忠)
 : 귀달의 아들로 자는 직경(直卿), 호는 우암(寓庵)이며 교리(校理)를 내리고 갑자사화(甲子士禍)를 당했다.
 
  홍호(洪鎬)
 : 귀달의 후손으로 자는 숙경(叔京), 호는 무주자(無柱子)로 대사간(大司諫)을 지냈고 우복(愚伏) 문인(門人)이다.
  
 홍여하(洪汝河)
 : 호의 아들로 자는 백원(百源), 호는 목재(木齎)로 사간(司諫)을 지냈다.
 

예   천(醴泉)

  [방리(坊里)]
  
 화장(花庄), 동로소(冬老所)

  [장시(場市)]
  
 소야(蘇野) : 3일, 8일
 

용   궁(龍宮)

  [방리(坊里)]
  
 서면(西面)

  [효열(孝烈)]
  
 강여성(姜汝腥) : 임진왜란에 어머니를 모시고 적을 피해 갔다가 죽음을 당했고, 여성의 아들 찬선(纘先)도 적의 칼날에 동시에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