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설 화 > Ⅰ. 견훤관련 설화의 유형 / 사료와 전설로 보는 견훤

2014. 5. 14. 20:59나의 이야기






      

제2편 설 화 > Ⅰ. 견훤관련 설화의 유형  사료와 전설로 보는 견훤 / 문경문화원 자료 

2012/06/2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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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후백제 연표사 료설 화유적과 지명문경지역의 유적문경지역의 지명그외지역 유적

  

 

 

  사료와 전설로 보는 견훤  

 

 

제2편 설  화 > Ⅰ. 견훤관련 설화의 유형  

 

 

 Ⅰ. 견훤관련 설화의 유형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된 견훤 설화는 편의상 두 종류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는데 삼국유사의 기록과 전라도 부근에서 체록된 설화(A형)와 경상도 일부에서 채록된 것(B형)으로 나눌 수 있다.

  <A형>

  ① 과년한 미모의 딸이 있었다.
  ② 주위에서 청혼이 있었으나 모두 거절한다.
  ③ 이 처녀에게 간부가 있다는 소문이 나서 아버지의 귀에까지 들어간다.
  ④ 아버지는 딸에게 남자의 이름을 말하라고 욱박지른다.
  ⑤ 딸은 아버지에게 밤이면 자색옷(푸른 빛도 나고 붉은 빛도 나는) 옷을 입은 사내가 문을 개의치 않고 들어와 어깨를 누른다고 말한다.
  ⑥ 아버지는 딸에게 밤에 그 사내가 오면 실을 꿴 바늘을 옷에 꽂으라고 말한다.
  ⑦ 딸이 밤에 찾아온 남자의 옷에 바늘을 꽂는다.
  ⑧ 이튿날 실을 따라가자 산밑에 있는 굴속에 큰 지렁이가 바늘에 찔려 죽어있었다.
  ⑨ 딸이 출산을 하자 집에서 내쫓김을 당한다.
  ⑩ 딸은 아이를 데리고 떠돌아 다닌다.
  ⑪ 호랑이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도 한다.
  ⑫ 그 아이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다.

  <B형>

  ① 견훤은 지렁이 자손이다.
  ② 견훤은 지렁이 자손이어서 고려와 싸울 때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새 힘을 얻는다.
  ③ 사람들이 견훤을 잡기 위해서 강에 소금물을 풀었다.
  ④ 지금 “간수내”라고 하는 지명은 당시 소금(간수)를 넣어서 견훤을 잡은 곳이다.

  한국국비문학대계에 수록된 견훤관련 설화 목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새   목

전승지역

구연자

채록날짜

채록자

발표지

1

견훤이는 천상에서 귀향온 지내아들

전북 남원시 대강면 15

임모상 남 75

79. 7. 31

최래옥

대계5-1

2

견훤은 지렁이 소생

전북 옥구군 대야면 21

고상락 남 65

82. 8.  8

박순호
이   흥

대계5-4

3

견훤의 탄생

전북 정읍시 영원면 9

박경철 남 75

84. 8. 27

박순호

대계5-6

4

견훤과 지렁이

전남 함평군 신광면 31

정점암 남 82

81. 8. 21

지춘상

대계6-2

5

지렁이의 아들 견훤

경북 상주시 화서면 4

임익봉 남 67

81.12. 1

최정여
천혜숙

대계7-8

6

견훤전설

경북 상주시 화서면 19

최승락 남 76

81. 12. 1

최정여
임갑랑

대계7-8

7

견훤을 물리친 삼태사

경북 안동시 7

권재영 남 66

81. 7. 21

임재해
정낙길

대계7-9

8

견훤을 막는 삼태사

경북 안동시 북후면 62

강대각 남 62

81. 8. 2

임재해
김봉기

대계7-9

9

지렁이 자손 견훤

경북 안동시 예안면 21

신동신 남 65

81. 8. 4

임재해
권대성

대계7-9

10

지렁이 아들

경남 김해시 진영면 31

신동신 남 65
김석환 남 61

82. 8. 22

김승찬
박기범

대계7-2

   앞에서 제시한 <자료목록> 가운데 1~6, 12번은 <A>에 해당되고, 7~9번은 <B>형에 해당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A형>은 전라도와 경상도 일부 지역에 전하는 것으로 견훤의 신이한 출생과 후백제의 건국을 말하고 있으나, <B>형은 경상도 일부지역에서 전하는 전설로 견훤이 지렁이 후손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견훤에 관한 이야기가 지역에 따라 판이하게 나타나는 것을 “발생지역보다 전승지역의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받으므로, 역사지리학적 관점보다 문화적 생태학적 관점에서 설화의 분포 및 전승의 문제가 해명되어야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특히 삼국유사 후백제 견훤조에 의하면 처음 시작할 때에는 “삼국사본전운견훤상주가은현인야”로 되어 있고, 중간에 다시 견훤의 탄생을 이야기 할 때에는 “고기운 석일부인거광주북촌 유일여자 자용단정 위부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상주, 가은, 광주 등의 지명과 <B형>의 자료가 전승되는 경북 안동 지역을 관련시켜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삼국유사가 기록될 당시의 지명과 현재의 지명을 일대 일로 대응시킨다는 것은 무리지만 그 당시의 지명이 현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상주는 현재 경상북도 상주시에 해당되는 부근이라고 볼 수 있다. 이곳은 원래 사벌국이라고 하는 자그마한 고대국가였었는데 신라 12대 첨해왕 때에 정복되어 신라 땅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곳 병풍산 아래에 구릉이 있는데 신라말년에 견훤의 아비 아자개가 이 성에성 웅거하였었다고 하며, 지금도 견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돌성”이 화북면 장암리에 남아있다. 조선 9대 성종 때에 8도의 지방행정 구획을 다시 정리하면서 오늘의 경상남북도 지방을 경상도라 했는데 이 때 경은 지금의 경주에서 따온 것이고, 상은 지금의 상주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가은은 현재 경북 문경시 가은읍이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는데 동국여지승람에도 문경현의 속현으로 되어 있으며, 이곳은 화북의 장암리와 인접하고 있으며 견훤산성이라고 불리우는 성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런데 가은현이 상주에 속한다고 하는 기록은 가은현이 고려 현종 때(AD1009~1030년) 상주에 소속시켰다가 공양왕(1389~1392년)때에 문경현에 내속되었다는 기록과 일연사가 출가(9세, 1214년), 입적(84세, 1290년)한 때를 관련시켜 보면 올바른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은 상주나 가은이라는 곳에 전해지는 견훤 관련 유적이 정말로 견훤에 의해서 지어졌는지 아니면 후에 지어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견훤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는 것만은 말해 주고 있다.
  다음에 등장하는 지명으로 “광주”를 살펴볼 수 있다. 광주는 본래 광유현에 속하였었다. 이곳은 원래 백제의 무진주인데 일명 노지라고도 했으며, 신라가 백제를 빼앗아 그대로 도통을 두었다. 경덕왕 16년 무주로 고치고 진성왕 6년에 견훤이 습격하여 의거하고 후백제라 칭하였다. 결국 무주를 광주라고 부른 것은 견훤 때부터이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볼 때 광주라는 지명 역시 견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처럼 상주,가은,광주라는 지명이 보여주는 견훤과의 관련성은 견훤설화가 지닌 인물전설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시사점을 준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세 지역은 뒤에 신라에 편입되기는 했지만 원래 백제에 가까웠던 지역이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A형>의 자료가 전승되는 지역은 삼국유사나 “대계”의 자료 모두 백제와 관련된 전라도 지역이고, <B형>의 자료가 전승되는 지역은 신라와 관련된 경상도 일부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다.

 

 

 

목차후백제 연표사 료설 화유적과 지명문경지역의 유적문경지역의 지명그외지역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