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전쟁] 누가 국제 은행 가문인가 화폐전쟁 제2부

2014. 6. 22. 18:11우리 이웃의 역사






       


[화폐전쟁] 누가 국제 은행 가문인가  화폐전쟁 제2부 

2013/05/1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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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장   독일 : 국제 은행 가문들의 발원지

  19세기 이후 로스차일드(Rothschild) 가(家)를 대표로 하는 17개 주요 국제 은행 가문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잇달아 탄생했다. 이어 러시아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미국으로 점점 더 넓게 퍼져나갔다. 마지막에는 오늘날 지구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제 금융 인맥의 핵심 네트워크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가문은 말할 것도 없이 막강한 역량을 가진 이 세상 최고의 극소수 엘리트 집단이다. 따라서 이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은 인류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과거 200여 년 동안 이들 가문은 세계무대에서 질풍노도의 행보를 보였다. 이들 가문을 핵심으로 형성된 서방 사회의 방대하고도 복잡한 인맥 네트워크가 인류 역사의 발전 궤적과 현 지구촌 구도의 형성에 엄청난 작용을 했다는 얘기이다. 이들 가문은 오늘날까지도 국제 금융계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봉건사회를 겪은 아시아 사람들은 원래 권력이라는 인성(人性)의 역사에 대해 대단히 친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부(富)라는 인성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익숙하지 못하다. 때문에 우리는 국제 은행 가문을 가장 많이 배출한 독일에서부터 이 곡절 많은 탐색의 여정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은 1860년대에 오스트리아와 국가의 운명을 건 일전을 치르고 있었다. 이때 프로이센의 수상 비스마르크(Bismarck)는 승리의 여세를 몰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점령할 수 있는 유리한 전황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진군을 원하는 국왕과 달리 오스트리아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수상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압박과 투신자살하겠다는 협박을 통해 전쟁을 끝내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처럼 갑자기 종료된 전쟁의 배후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었을까?  우리는 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국제 은행 가문의 그림자였다. 이를테면 로스차일드, 블라이흐뢰더(Bleichroeder), 오펜하임(Oppenheim) 등이 주인공들이었다. 더불어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던 이들의 그림자 뒤에는 사통팔달(四通八達)로 통하면서도 깊숙한 연계를 가지는 가문들의 네트워크도 존재했다. 당시 이들은 한편으로는 제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투구의 격렬한 싸움을 벌이면서 서로 돕거나 경쟁을 벌였다.

 

  이 금권(金權) 네트워크는 정말 없는 곳이 없었고 못할 일이 없었다. 실제로 유럽 각국의 복잡한 국가 내정과 외교, 전쟁과 혁명, 정변과 음모를 배후에서 조종하거나 장악하거나 결정했다. 끝이 없는 신통력을 가진 금권 네트워크는 비스마르크가 두각을 나타냈을 때부터 독일 통일 과정, 1848년의 혁명(프랑스의 2월 혁명을 비롯한 전 유럽의 혁명을 의미함), 덴마크 위기,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 전쟁, 보불 전쟁(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 등의 사건들과 하나같이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역사 역시 이처럼 천변만화하는 국면을 거치면서 아슬아슬하게 발전해 내려왔다.

 

 

 

  누가 국제 은행 가문인가

 

  이 장의 들어가는 말에서 살펴봤듯, 19세기 이래 네덜란드를 비롯한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는 로스차일드 가를 대표로 하는 국제 은행 가문이 탄생했다. 이들은 이후 점점 더 외연을 확대하면서 급기야 오늘날 지구촌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금융 인맥의 핵심 네트워크까지 형성했다. 종교 세력과 봉건 왕권은 프랑스 부르주아 대혁명의 파도가 유럽을 휩쓸기 시작하면서 점점 쇠락해갔다. 이른바 구체제의 통치 세력 그룹이 점차 와해되면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빠른 속도로 사회 권력의 공백을 메워갔다. 이 기간에는 또 산업혁명에 의해 탄생한 철도, 야금, 광업, 군수, 기계, 통신 분야의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더불어 유럽 열강들의 세력 불균형에 의해 수차례의 전쟁 역시 폭발했다. 국제 은행가들은 바로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매우 뛰어난 동물적 감각으로 역사적인 중대한 기회를 움켜잡아, 금융시장을 통해 산업 성장과 각국 간의 전쟁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모집한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깜짝 놀랄 만한 엄청난 부를 획득함과 동시에 역사 발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 구체제

  프랑스 원어는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 프랑스 혁명기 타도의 대상이 되었음

 

  이들이 획득한 부의 역량은 권력을 타락시키고 갈망하고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자본의 수요와 공급이 서로 맞물려 어우러지는 과정에서 점차 세계 자본과 신용 흐름의 채널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일련의 완벽한 게임의 규칙 역시 만들어냈다.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의 배후에 금융 세력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대략 살펴만 봐도 이 사건들은 간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우선 호프(Hope)와 베어링(Baring) 가의 연합에서부터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맹 확립이라는 사건이 예사롭지 않았다. 또 말레(Mallet)와 호팅거(Hottinguer) 등 스위스 은행 가문의 막후 공작에서부터 프랑스 대혁명으로 심화, 발전하기까지의 사건들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들이다. 오트 방크의 은행 가문들이 자금을 원조한 이른바 브뤼메르 18일에서부터 나폴레옹이 이들에게 프랑스 은행을 설립하도록 한 화끈한 대가에 이르는 과정의 사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윌링(Willing)과 모리스(Morris) 가문이 대서양을 넘어 미국까지 인맥을 넓힌 것에서부터 미국 정부에 루이지애나 지역을 구입하도록 자금을 융자한 사건들, 페레르(Perreire)와 풀드(Fould) 가가 연합해 로스차일드 가에 대항한 것에서부터 크레디 모빌리에 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금융 혁신 경쟁에 이르기까지 금융 세력의 그림자는 어른거렸다.

 

* 오트 방크(Haute banque)

  일반적인 금융과는 차원이 다른 고도의 금융이라는 의미

 

* 브뤼메르 18일

  1799년 프랑스에서 나폴레옹 1세가 총재정부를 뒤엎고 독재 체제를 구축한 사건

 

* 크레디 모빌리에(Credit Mobilier)

  프랑스 최초의 산업은행. 근대 산업 금융의 선도적 역할을 함.

 

  또 비스마르크에 대한 블라이흐뢰더 가의 지지에서부터 빈에서의 갑작스런 전쟁 중지에 이르기까지, 파울링과 바르부르크(Warburg) 가가 빌헬름 2세를 선동해 영토 확장에 나서도록 한 것에서부터 로스차일드가 영국 금융을 장악하는 사건에 이르기까지, 벨몬트(Belmont) 가가 링컨의 그린 백을 폐지시키는 데 참여할 때부터 셀리그먼(Seligman) 가가 파나마의 독립을 획책할 때까지도 그랬다. 아라비아인들의 대기의(大起義)에서부터 벨푸어 선언에 이르기까지, 독일 제국 은행의 민영화에서부터 1923년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이르기까지, 나치의 부상에서부터 히틀러가 진행한 금융 혁신 정책에 월스트리트의 자금이 투입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원자탄 관련 비밀의 누설에서부터 소련 KGB가 자행한 악질적인 간첩 사건에 이르기까지, 로즈 재단의 웅대한 계획에서부터 미국의 재단 시스템이 만들어낸 ‘그림자 정부’가 탄생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에인 랜드의 정신적인 가르침에서부터 앨런 그린스펀의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금융 쓰나미에서부터 세계중앙은행의 태동에 이르기까지, 미 달러화의 최종적인 붕괴에서부터 세계 단일 화폐의 카운트다운에 이르기까지 등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의 자본과 신용의 유통 채널이 하나같이 국제 은행 가문의 효율적이고도 긴밀한 인맥 네트워크에 의해 좌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그린 백(greenbacks)

  미국 연방정부가 남북전쟁 중인 1826년에 발행한 화폐. 뒷면이 녹색

 

  오늘날 세상 사람들에게는 채널이 곧 왕이라는 개념이 귀에 무척이나 익숙하다. 월마트가 이 경우 단연 먼저 떠오른다. 만약 월마트가 상품 유통 영역의 채널 장악력과 상품 가격 협상 능력에서 다른 경쟁 기업의 추격을 우려할 정도였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자본과 신용 흐름 채널의 독점적 장악력에 의해 형성된 사회적 영향력이 지금의 월마트에 훨씬 못 미쳤을 것이다.

 

  국제 은행 가문들은 하나같이 비천한 사회적 지위에서 가문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각 나라의 권력 귀족층에 빌붙어 크기 시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후 점점 강력한 경제적 실력을 키워 각 나라의 자금 흐름 채널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나중에는 각국의 공업과 상업 시스템을 장악한 다음 상호 이익을 폐쇄적으로 공유했다. 이어 각 나라가 지향하는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함으로써 더욱 막대한 이익을 도모하기에 이르렀다. 이들과 권력 귀족층과의 상호 이익은 날이 갈수록 잘 맞아떨어졌다. 급기야 이들은 거부하기 어려운 금전적인 유혹을 통해 정부 관리의 임명에서부터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정치가들의 인선까지 주도하게 되었다.

 

  경제 정책의 제정에서부터 외교 전략의 형성 역시 이들의 몫이었다. 전략 정보 시스템의 운영에서부터 각국 군대 장군의 승진까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들은 또 각종 엘리트 단체의 설립에서부터 공공 의사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미디어 경영을 통한 자율적인 출판 사업에서부터 사회를 좌우할 정보 공급까지, 교육과 문화의 취사(取捨)에서부터 사상과 의식의 형성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주도하는 것 역시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한마디로 금권은 200여 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싹을 틔우면서 강대해지는 과정을 일궈냈다. 이 기간 동안 금권은 그저 영향을 끼치는 존재에서 모든 것을 농단하는 존재가 돼버렸다. 무대 앞에서 활약하다 막후에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역사적 전환 과정 역시 거쳤다.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확실하게 존재하는 서방 사회의 지배적 역량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권력은 심지어 입법, 행정, 사법권 위에 군림하기도 했다. 이로써 그들은 완벽하게 금권 독재로 탈바꿈하는 임무를 완수했다.

 

  이제 대단한 역량을 발휘한 국제 은행 가문들을 일별해보도록 하자.

 

  첫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가문은 200여 년 동안 국제 금융계라는 강호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보스 중의 보스 로스차일드 가이다.

 

  이어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의 심복이자 베를린의 은행가인 블라이흐뢰더 가가 꼽힌다.

 

  이외에 아래와 같은 가문들 역시 더 꼽아야 한다.

 

 

* 독일 쾰른의 오펜하임 가

* 독일 함부르크의 바르부르크 가

* 독일 바이에른 출신의 월스트리트 은행가인 셀리그먼 가

*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신, 훗날 미국의 슈퍼 파워가 된 시프(Schiff) 가

* 독일 함부르크에서 가문을 일으킨 다음 영국의 런던과 미국의 뉴욕에서 크게 성공한 슈뢰더(Schroder) 가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가문을 일으킨 다음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슈파이어(Speyer) 가

* 독일 베를린의 최고 전통을 자랑하는 멘델스존(Mendelssohn) 가

* 19세기에 로스차일드 가와 함께 명성을 떨쳤던 영국의 베어링 가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호프 가

* 프랑스 왕실이 특히 의존했던 풀드 가

* 프랑스 은행의 이사 자리를 근 100여 년이나 지켰던 프랑스의 말레 가

* 로스차일드 가에 도전했던 프랑스 크레디 모빌리에의 창업자 페레르 가

* 스위스 은행가의 태두인 미라보(Mirabaud) 가

* 원래 로스차일드 가의 집사로 있다가 미국의 급부상을 틈타 빠르게 지금의 세계 금융 주도 세력이 된 록펠러(Rockefeller) 가와 모건(Morgan) 가

 

 

  이처럼 이 세상의 극소수 엘리트 집단에 속했던 이들은 당연히 엄청난 일을 해냈다. 무엇보다 이들이 일어난 곳은 엄청난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반면 이들이 포기한 곳은 쇠락만이 있을 뿐이었다. 또 이들은 기기묘묘한 술수를 부리는 과정에서 대량의 부를 창조하도록 사회를 자극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에 못지않은 농간으로 거액의 금전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가문은 불처럼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사라졌다. 물론 대부분의 가문은 여전히 이 지구상에 엄청난 영향력을 계속 미치는 존재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 세계에는 매일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 즉 인성은 시종일관 부단히 자아를 되풀이해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성은 수천 년 전에 이미 부에 대한 탐욕과 두려움을 가졌고, 권력에 대해서 매우 집착하면서도 저주했다. 지금 역시 이 점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자유를 갈망해왔다. 얻지 못했을 때는 얻기를 열망해 마지않았고, 얻었을 때는 잃을 것을 걱정했다. 또 늘 공평무사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는 이기심을 품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도 사악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증거를 굳이 복잡하게 찾을 필요도 없다.  ‘25사’ 로 흔히 일컬어지는 방대한 중국 역사를 장식한 정치적 도박과 서양 역사에서 흔히 보이는 돈과 관련한 권모술수 등이 인성의 본질을 중복해 보여주고 있다. 우리들이 역사 연구를 통해 미래를 파악하는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오늘날 인성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역사에서 그 선례를 찾아볼 수 있다.

 

* 25사(二十五史)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로 인정되는 25종류의 사서

 

  그럼에도 독자 여러분은 부의 인성의 역사에 대해서 시시콜콜 잘 알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들어가는 말에서 밝힌 대로 국제 은행 가문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독일에서부터 이 곡절 많은 탐색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출처 : 화폐전쟁 2 : 금권천하(랜덤하우스), 저자 쑹홍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