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십자평 - 20140623 월요일

2014. 6. 23. 22:06잡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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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십자평 (十字評) 

                   20140623 월요일, 비



             선 읍참마속(先 )




*******읍참마속(泣斬馬謖)


泣(울 읍), 斬(벨 참), 馬(말 마), 謖(일어날 속)

울면서 마속을 베다.

큰 뜻을 위해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가차없이 버린다는 말로써, 법의 공정을 지키기 위해 사사로운 정(情)을 버림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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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


<<삼국지(三國志)>><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專)>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삼국시대 촉(蜀)나라 건흥(建興) 5년에, 제갈량(諸葛亮)은 대군을 이끌고 서울인 성도(成都)를 출발했다. 곧 한중(漢中)을 차지하고 기산(祁山)으로 진출하여 위(魏)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이에 조조(曹操)가 군사를 급파했고,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司馬懿)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에 선형(扇形-부채꼴)의 진을 치고 제갈량의 군대와 대치했다. 하지만 이 ‘진법(陣法)’을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인 만큼 보급로(補給路)인 가정(街亭)을 수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가정을 잃으면 중원(中原)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가정을 수비하는 중책을 맡길 만한 마땅한 장수가 없어 제갈량은 고민했다.
그때 마속(馬謖)이 그 중책을 스스로 맡겠다고 나섰다. 그는 제갈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모 마량(馬良)의 동생으로, 평소 제갈량이 아끼는 재기 발랄한 장수였지만, 경험많고 약삭빠른 사마의를 대적하기에는 아직 어리고 경험도 적었다.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 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가족까지 참형(斬刑)을 당해도 결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부터 살펴보았다. 삼면이 절벽인 산이 있었다. 제갈량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길만 지키라는 것이었지만 마속은 적을 유인해서 역공(逆攻)할 생각으로 산 위에 진을 쳤다. 그러나 이것을 알게 된 위나라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한 채 위로 올라오지 않고 기다렸다. 식수가 끊기고 버틸 수 없게 되자, 마속은 전병력으로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나 용장인 장합(張郃)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모든 부대를 한중으로 후퇴시킨 제갈량은 마속에게 중책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군율을 어긴 그를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듬해 5월, 마속이 처형되는 날, 때마침 성도에서 연락관으로 와 있던 장완(張埦)은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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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요.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끌리어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되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차없이 처단하여 대의(大義)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는 법이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 네이버 지식in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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