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25. 00:09ㆍ들꽃다회
소백산 비로사 들꽃다회 - 하나 20140614 토요일, 맑음 산버찌 제가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성훈이 헹님께서는 고상하신 폭력적인 문자를 쓰시며 자꾸 겁을 주신다. 귀여분 연세는 한참 지나셨는 데에도...... 불구하시고.... 사실 저는 아이큐가 네자리 숫자 밖에는 안된다. 그래서 초등학교 다닐 때 낫놓고 기역자는 겨우 억지춘향이 식으로 뗏으나 아직도 지게놓고 ㅈ~자는 연상이 안되는 사람일 뿐이다. 이게 다 네자리 아이큐 중간에 큰 점이 붙어있는 탓이다. 다만 이것을 아는지라 전자망 파도타기에서 낚은 수확물을 이리저리 짜집기하는 법을 겨우 재작년에 집사람에게 배워서 연습삼아 써먹고 있을 뿐이다. 비로교 다리 위의 계류에서....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씨언한 다리밑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남자나 여자나 씨언하다고 해서 남의 다리 밑에 자주 들락날락하면 주위의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소백산 비로사(毘盧寺)
비로사는 소백산 비로봉의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산사로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 의상대사가 신라 신문왕 3년(AD683)에 창건하여 소백산사라 하였으며, 당간지주와 진공대사보법탑비, 아미타불좌상, 비로자나불좌상 등의 유물들이 이절의 유서깊은 내력을 말해 주고 있는 명찰이다.
신라 말에 진공대사가 비로사에 머물고 있을 때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에 들렀다가 대사의 법문을 듣고 존경하였으며, 대사가 태조20년(AD937)에 입적하자 왕은 진공(眞空)이란 시호와 보법(普法)이란 탑호를 내렸다.
이후 고려와 조선 시대에 여러 차례 중창했고, 특히 임진왜란 때 승병의 거점으로 활용하다가 전소되어 새로 지었으며, 1909년에 법당 외의 건물이 모두 불타는 시련을 격었다. 현재 건물은 모두 최근에 지은 것들이며, 보물 제996호인 석조아미타불상과 석조비로자나불상이 보존되어 있다. 함산 정제도라는 분이 쓴 비로사 일주문 편액 곤충과 지느러미엉컹퀴 엉컹퀴와 뻐꾹채는 실리마린이라는 간보호제 겸 간염치료제 성분이 들어가 있는 고마운 풀이다. 어릴 때에 부침가루를 묻혀서 지짐을 해먹으면 탁배기 안주로 씹는 맛이 일품이다. 봄산은 씹는 맛으로 댕긴다. 식용유를 약국에서 구한 물약통에 넣고 후라이팬 하나 있으면 부침가루는 시골 슈퍼에도 널려 있다. 호랑나비과 제비나비 춘형과 지느러미엉컹퀴 꽃은 스스로 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꽃은 남의 향기를 빌어 자기를 들어내지
않는다. 꽃은 다른 꽃을 해치면서 자기를 키우지 않으며
소리내어 제 모습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꽃은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으나 자신과 눈을 맞춘
사람의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빛과 색을 담은 갖가지 모양의 꽃들은 다른 꽃들의
모양을 시샘하지 않는다. 그런 꽃들은 함부로 만지거나 현미경으로 해부하듯
살피는 행위는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천사의 넋이라고 생각하며
바라보면 된다. 굳이 꽃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괜찮다. 꽃에게 소리가 있고 그들만의 언어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 그러니 억지로 꽃의 대답을 구한들 들을 수 있을
것인가. 꽃 앞에서 향기의 우열을 말하고 꽃에게 아름답다, 곱다, 귀엽다 등의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자기 품위를 낮추는 짓밖에 아니다. 꽃에 대한 최적의 헌사는 무언의
미소이다. 조용히 그리고 정성껏 꽃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돌아서면서 한 번 더 봐준다면 꽃이 받은 감동은 나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 사는 이야기 님의 글에서 발췌
달걀 부침(후라이)을 닮은 개망초와 제비나비, 지느러미엉컹퀴 제가 늘 이렇다 . 실내촬영을 위하여 화이트밸런스가 조정되어 있는 줄도 모르고서 그냥 막 찍어서 사진색조가 온통 푸른색조이다. 원래 게으른 이는 말이 없다. 제가 천성이 워낙 게으르고 엄범덤벙하는 삶의 태도 탓이다. 비로사 일주문 뒷태 당간지주 - 옆에 상하로 가로홈이 두개 파진 것으로 보아 목조나 금속제 풍판(風版)이 달려 있었을 듯하다. 석조당간지주(경북 유형문화재 제7호) 이 당간지주는 비로사 입구에 서 있으며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높이는 420cm이다. 당간(幢竿)은 절에서 불교의식이 있을 때 불(佛),보살(菩薩)의 공덕을 기리거나 마귀를 물리칠 목적으로 달았던 "당"이라는 깃발의 깃대를 말하며, 이 깃대를 고정시켜 주기 위해 세우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굵은 물푸레나무 비로사의 중창주이신 진공대사 보법탑비 - 처음 창건은 의상대사가 화엄경을 강설한 곳에 소백산사로 이름한 절을 지었다. 진공대사보법탑비 진공대사는 통일신라말·고려초에 활약한 승려로, 경주 출신이며, 성은 김씨이다. 가야산 선융(善融)의 제자가 되어 소백산에 절을 짓고 주지로 있다가 고려 태조 20년(937)에 입적하였다, 태조는 시호를 ‘진공대사’라 하고 ‘보법’이라는 탑이름을 내렸다. 이 비는 고려 태조 22년(939)에 세우고 비문은 최언위가 짓고 이환추가 글씨를 썼다.
비의 형태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산(山)모양의 머릿돌을 얹은 모습인데, 비몸이 갈라져 일부가 파손되었다. 거북받침은 새겨진 조각이 얕아 둔해 보이며 등 중앙에 비를 꽂는 네모난 홈을 마련해 두었다. 머릿돌은 구름과 용무늬를 새겨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진공대사가 유훈으로 남긴 말씀...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할 것과 상하가 화합하고 예의 질서를 지키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수행에 전념하라." 날다람쥐가 살던 집을 산새가 차지하여 새끼들이 나무구멍집 안에서 재재거린다. 작은 산새 한쌍이 이 나무구멍둥지에서 우리 일행을 유인하느라 재재굴거리며 주변 나무사이를 부지런히 오간다. 제 새끼들를 보호하려고 긴 꼬리를 아래위로 흔들면서 시선 유도를 하는 것이 기특하다. 이 갈참나무 줄기의 썩은 껍질에는 딱다구리가 벌레를 잡아먹은 흔적이 뚫려있다. 이를 유추하면 다음과 같다. 이 나무구멍집의 원래 주인 겸 시공자는 날다람쥐이다. 이 날다람쥐가 새끼들을 안전하게 기른 후에 맹모삼천 원칙에 따라 이사가기 직전에 알낳기 급한 딱따구리에게 전세를 놓았다. 딱따구리가 새끼들을 무사히 키워 이소훈련(離巢訓鍊)을 마친 후 작은 산새들에게 전전세 격으로 월세를 놓은 것 같다. 당초 날다람쥐가 딱다구리에게 전세를 놓을 때에 전세금은 싱싱한 도토리 12알이고, 딱따구리가 산새에게 월세를 놓을 때에 월세금은 보증금 없이 한달에 커다란 지렁이 다섯 마리 대략 이런 식이 아닐까하고 성훈이 헹님과 의견을 서로 나누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세속에 물든 우리 인간들의 계산법일 뿐.... 자연은 계산이 없다. 그냥 무주상보시일 뿐이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진 인간들은 이타행(利他行)을 늘상 행하고 있는 이 작은 미물들을 포함하고 있는 대자연 속에서 항상 느껴보고 배워야 하나 바쁜 일정 때문에 또는 자신의 육체적 단련이라는 등산행위에 급급한 나머지 이를 간과하기가 쉽다. 산이란 대지의 어머니의 불룩솟은 젖가슴은 산에 깃들고 사는 나무와 풀, 곤충과 야생동물들을 품고 빙그레 미소지으며 그산 나름대로 한평생을 살아간다. 가끔가다가 들리는 인간들이 각자의 근기대로 체력단련용 등산을 하던지, 계곡 근처에서 물장구치며 놀던지, 산길을 소요하며 명상에 잠겨 보던지 혹은 최상승공의 연마와 수련을 위하여 선정에 들어가던지 이 모두를 아무 말없이 포근히 감싸주며 모든 것을 내어준다. 이야말로 아무 표시도 없고 흔적도 남기지 않는 산의 진정한 무주상보시이다. *德華滿發* 한문방에서 얻은 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도반 동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布施)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합니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하죠. 이 무주상보시는 ≪금강경(金剛經)≫에 의해서 천명(闡明)된 것입니다. 원래의 뜻은 법(法)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하죠. ‘내가 남을 위하여 베풀었다.’는 생각이 있는 보시는 진정한 보시라고 볼 수 없습니다.
내가 베풀었다는 의식은 집착만을 남기게 되고 궁극적으로 깨달음의 상태에까지 이끌 수 있는 보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공처럼 맑은 마음으로 보시하는 무주상보시를 강조하게 된 것이죠. 나와 네가 둘이 아닌 한 몸이라고 보는 데서부터 무주상보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보시를 위해서는 맨손으로 왔다가 맨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살림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에게는 분수대로 나누어주고, 진리의 말로써 마음이 빈곤한 자에게 용기와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며, 모든 중생들이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참된 무주상보시라고 보는 것입니다.
도반 동지 여러분! 아주 오래전에 제가 어느 사회봉사단체에 가입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열심히 따라다녔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제가 기대하고 하고 싶은 활동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어 겨울에 산동네에 연탄 한 차를 실어다 줍니다. 그리고 생색이라도 내듯이 현수막을 내 걸고 사진을 찍고 신문 잡지에 요란하게 보도를 하고 난리법석을 떨죠. “아! 이게 아닌데?” 예수님께서도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자랑을 늘어놓고 생색을 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엔 얼마 안가 발길을 끊었습니다.
도반 동지 여러분! 남에게 베풀고 선(善)을 행하면서도 선이 더욱 커지지 못하는 것은 베풀었다는 생각, 선을 행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의식을 버리지 못한 때문이 아닐까요? 내세우기 위해, 과시하기 위해 남에게 베풀고, 남에게 말하기 위해 선을 행한 것처럼 온 세상에 떠벌리며 자신이 행한 선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입만 열면 자기 자랑으로 시끄러운 사람들, 결국 자신을 드러내는 말들 때문에 좋은 일을 하고도 공덕(功德)이 쌓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업(善業)이 쌓여 힘이 되기도 전에 조금씩 쏟아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죠. 이렇듯 인간은 쉼 없이 유루(有漏)의 행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렇다고 남에게 전혀 베풀지 않고, 선을 행하지 않는 사람과 같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랑 자체를 자신의 일로 삼는 심보 때문에 선을 더 큰 복덕이나 공덕으로 키우지 못한다는 것이죠.
달마(達磨) 대사를 만난 양무제(梁武帝 : 464~549)가 물었습니다. “내가 오리(五里)에 작은 절 하나, 십리에 큰 절 하나씩을 짓고 수많은 승려를 키워 불사(佛事)를 이루었는데 공덕이 얼마나 될까요?” “소무공덕(所無功德)!” 아무 공덕도 없다는 뜻이죠. 자랑하는 마음, 공 치사를 바라는 마음은 비움을 중시하고 일체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수행의 본질로 하는 선(禪)의 세계가 아닙니다.
도반 동지 여러분! 《금강경》에 이르시기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하면 그 복덕(福德)이 불가사량(不可思量)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중생들이 착하게 살게 하기 위하여 말씀하신 방편(方便)으로써가 아니라 실로 무주상보시를 해야 헤아리기 어려운 복덕을 받을 수 있는 이치 때문에 그리 말씀하신 것이죠.
상대를 가리지 않고 베풀고, 주는 물질이 크고 작음에 구애 없으며, 선행이라는 생각도 없이 베푸는 것이 바로 ‘무주상보시’입니다. 어찌 여기에 자랑이나 과시가 붙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는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남을 돕는 일을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죠. 남을 돕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자신보다 남을 돕는 일이 우선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정말 바라는 바 없이 남을 돕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사람들은 감정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선을 행합니다. 그러고는 그 선행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드러내려 하기 때문에 주(住)하는 바 없이 마음을 내지 못하고 무주상보시를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하는 모든 행위가 ‘업(業)’이 됩니다. 상(相) 없이 선업을 쌓아 가노라면 결국 그것이 무루(無漏)의 복을 받게 되는 것이죠.
도반 동지 여러분!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우리의 마음을 어느 곳에 주(住)하고 마음을 일으켜야 할까요?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무두 허망하다 하셨습니다. 물질로 행복을 얻으려 하거나 권력이나 명예로 행복을 얻으려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보리행(菩提行)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허물을 청정히 하려는 것이 보리 행입니다. 자신의 허물을 씻는 것이 보리 수행이고, 자신의 허물을 정화(淨化) 시키는 것이 참회기도입니다.
도반 동지 여러분! 그리고 인연 따라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역시 무주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집착하고 상(相)을 내고 하는 인연은 결코 아무리 잘해도 상생의 선연은 아닙니다. 따라서 인연을 지어가되 너무 좋아할 것도 너무 싫어할 것도 없습니다. 너무 좋아해도 괴롭고, 너무 미워해도 괴롭기 때문이죠. 사실 우리가 알고 있고,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 두 가지 분별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반 동지 여러분! 사랑이든 미움이든, 재물이던 명예든 마음이 그 곳에 딱 머물러 집착하게 되면 그때부터 분별의 괴로움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머무는 바 없이 해야 하는 것이죠. 바로 그것이 <무주상보시>로 만 냥의 황금을 얻는 것보다도 큰 공덕이 아닐런지요!
원기 98년(2013) 10월 18일 덕 산 합장 <註> *육바라밀(六波羅密) : 보살이 열반(涅槃)에 이르기 위해서 해야 할 여섯 가지의 수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를 이른다. *유루(有漏) : 빠지거나 새어 나감. *무루(無漏) : 새어나감이 없음,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다음카페 덕화만발(德華萬發)클릭→http://cafe.daum.net/duksan725】 sparkbox 님의 글 중에서
무진등 2012.06.27 17:23
상수멸(想受滅) ****** 상수멸에 대한 오해와 착각은 끝이 없습니다. 언어의 한계를 살펴서 想受滅에 대하여 설명하지요. 여기서 말하는 상수멸이란 번뇌가 끊어진 선정을 말합니다. 많은 분들이 상수멸을 말하기는 하나 살아있는 선정에 대하여는 별로 말하신 분이 적은 듯 합니다.
상수멸을 깡끄리 없다고 하면 죽은 송장선과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송장선과 깨어있는 선의 차이를 말하지요. 죽은 송장과 같은 선정은 몸의 작용이 끝나고, 말과 생각의 작용도 끝나 버렸기에 일체의 감각반응이 없는 상태입니다. 전에도 여러번 말했듯이 서각을 하거나 사경에 집중하고 있을 때 또는 염불이나 진언에 집중하고 있으면 누가 와도 모르고, 저녁 먹으라고 소리쳐도 듣지 못합니다. 눈과 귀가 있어도 보지 못하고 듣지를 못합니다.
일지스님의 선이야기 중에서 불화 그리는 스님이야기가 나오는 데, 어느날 스님께서 불화를 그리려고 산문을 나섰는데 제자가 보니 그림 도구를 두고 가셨습니다. 제자가 자루를 들고 나룻터까지 가서 스승에게 전해주었는 데, 다음날 돌아와서 말하길 "어제는 참으로 이상한 일도 다있더라, 자루가 저 혼자 나룻터까지 오지 않았겠니" 이러한 착각 때문에 참선을 잘하는 저 도인은 가다죽고, 오다 죽고, 앉아 죽고 등 , 生死를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自然生 自然死를 따라야(隨緣行)합니다. 여기서 따른다 함은 "알고 따른다" 입니다. 衆生은 모르고 따르고, 如來는 알고 따른다
무주무념으로 길을 가면 신호등도 안보이고, 길가다 친구를 만나도 모릅니다. 禪이 이와 같으면 송장선이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상수멸은 목숨과 온기가 다하지 않았다 하는 말은 사족이고, 모든 감각기관이 맑고 깨끗한 상태에서 보여주면 보고 들려주면 듣는 깨어있는 禪定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무지무념상태가 아니고, 명지에 의한 明行, 明照, 또는 照見을 말합니다. 조사들이 상수멸은 말하면서 照見에 대한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상수멸을 무주무념에 안주한 것이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게 합니다.
왜그러한가!! 아함경에 상수멸에 이르는 길은 세가지 접촉(체득)에 의한다 라고 했는데 먼저, 공한 감각접촉, 둘째, 표상없는 감각접촉, 세번째는 원함없는 감각접촉, 이렇게 세단계라고 설하셨습니다.
마지막 願함 없는 접촉이란 離欲을 말하고, 법의 실상을 보는 無所有(中道)의 체득입니다. 그리고 상수멸을 증득하기 위하여는 두가지 법의 큰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사마타와 비파사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비구가 묻습니다.
세존이시여, 상수멸에 들때 어떤 법들이 먼저 소멸합니까?, 몸의 작용입니까?아니면 언어의 작용입니까?. 아니면 마음의 작용입니까?. 상수멸에 들때, 먼저 말의 작용들이 소멸하고, 그 다음 몸의 작용들이 소멸하고, 그 다음에 마음의 작용들입니다. 이 질문은 범천과의 마지막 대화에도 나옵니다.
# 1 이 대목을 보면 세존께서 분명하게 언어 이전의 한소식으로 부터 출발하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조사들이 말하는 언어 이전의 한소식, 화두타파와 똑 같습니다. 이때가 空한 감각으로 진공의 체득입니다. 自歸依 自燈明, 我空에 비유될 것입니다.
언어 이전을 깨치고 보니 몸뚱이가 있더라. "쿵!" 소리를 듣고 소리나는 곳을 보니 소리는 사라졌는데 주장자가 있더라. 이 소식이 '사자는 흙덩이를 쫓지 않는다' 입니다. 설봉스님의 " 뱀이다! " 일전에 찾아와 나무 닭 소리를 들었는가? 묻기에 "如是는 모르고 소리(我聞)만 들었구료" 했더니 누가 "如是는 어떻게 처리 하시렵니까?" 참으로 말쟁이들은 되도 않는 곳에서 꼬리를 잡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남전의 고양이처럼...
## 2 두번째 표상없는 감각의 접촉이란 나와 대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감각을 체득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몸이 열리는 현상입니다. 눈도 귀도 코도 열리는, 空이 밝아지면 相卽相入의 감각을 느낌니다. 산, 나무, 초목, 대상이 눈앞으로 다가 오는 듯, 물질의 경계가 뽀얀 여백상태로 보여지기도... 선사가 청산으로 들어간다 하기도..
空을 체득한 보살이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감각을 認知하는가?. 앞에서 설했던 법화삼매에서 손가락을 들고 "피부의 경계와 허공의 경계가 같은가?. 다른가?."로 설했던 체득을 말합니다.
### 3 마지막으로 마음의 작용들의 소멸, 니르바나, 번뇌의 불꽃이 완전히 끊어진 경계 이 경계는 言說不思義, 三界火宅은 思惟도 아니고 智解도 아닌 실제 상황입니다. *********************************************************************** 글자를 비단같이 풀어도 불 속에서 살아나오지 못하면 中道涅槃이 아닙니다.
[정사유의 이론과 지해로 풀리지 않는 경계를 설명합니다. 상수멸이란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래의 사선정에 해당합니다. 四禪定은 火宅에서 살아나온 妙色如來의 不思義境界로서 證知소지비여경(如來(색=물질)의 境界를 證하여 아는 것(知))
니르바나가 되지 않고 열반을 말하면 想像 또는 지해열반이지 실제 涅槃自覺과는 천지현격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작용이 끊어진 상태에서 어떻게 열반을 自覺한다는 말인가?. 역시 言說不思義 입니다. 그러나 힘껏 설명해 봅니다.
나는 상수멸에 든다 거나, 이미 상수멸에 들었다 는 그런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 어떻게 상수멸처를 아는가?.
설합니다. 마음작용이 끊어진 寂滅을 어떻게 아는가 는, 첫문에서 진공을 체득하고 보니 진공속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곳을 상수멸처로 착각하고 돈수를 주장하나 표상없는 감각의 접촉(法空)을 알기 위하여는 공을 체득한 순일한 마음(선정) 으로 대상을 보고 느끼고 아는 見聞覺知 수행(신수심법)을 해야 합니다. 마음챙김이고 비파사나에 해당하겠지요.
공한 감각을 모르고 비파사나를 하면 최면 空이 됩니다. 참선역시 습선으로 이와 비슷한 경계를 체험할수 있습니다. 오래전 法器 강ㅇㅇ거사의 글을 보면 정수리의 육계가 솟는다, 육계가 올라와야 한다 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습선의 일종으로 氣에 해당할 겁니다. 정수리에서 전류가 솟아 나오듯 쭈뼛쭈볏한 느낌 들어 마치 육계가 솟아 오르는 듯합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어떠한 수행에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는가에 많은 체험이 있었기에 누가 말하면 곧 바로 경험에 비추어 認知할수가 있습니다. 이 門은 말과 생각의 단절에서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음작용의 소멸이란 번뇌가 끊어진 상태(니르바나)를 말합니다. 여기서 자신의 번뇌가 끊어졌는가를 아는 체득은 中道의 發見, 노사나불입니다.
여래의 四禪定은 노사나불의 지혜입니다. ************************************ 위로는 적멸처를 자각하고 아래로는 사천하를 관하니
須彌頂山은 정수리의 고요함이요 마음이 일어나고 소멸하는 작용을 관하는 곳은 백호 미간이라.
三神(法身 保身 化身)이 하나로 돌아 감을 모르면 涅槃이 아닙니다. //////////////////////////////
이와같이 空도 아니고 色도 아닌 곳.. (法身(空)도 아니고 化身(色)도 아닌) 禪定이 밖에 있어도 안되고 안에 있어도 안됩니다. 안과 밖을 떠나야 합니다. 戒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이 길(中道)로 통합니다.
이와같이 禪과 내가 따로 있어도 안되지만, 둘이 하나가 되어도 문제가 생깁니다. 즉, 물이 물을 모르고, 허공이 허공을 모르듯, 선정에 들었던 당시를 알수가 없습니다. 둘이 하나가 되면 멸정의 죽은 선정이 됩니다. 이러한 무주무념이 중도가 맞기는 하지만, 그 상태에는 自覺이 없습니다.
고로 삼라만상이 무주무념으로 돌아 가기에 법화삼매를 깨쳐도 법과 함께 윤회합니다.
법화삼매에서 손가락(色)이 바람 따라 흘러가는 것이라면 굳이 손가락을 왜 들고 있는가. 손가락을 접어라 (던져라) 爲法忘軀를 다른말로 백척간두 진일보 하라 했는데 그냥 던지면 됩니다.
결국, 自歸依로 我空, 法歸依로 法空, 不他歸依로 兩俱空을 말합니다. ************************************************************** 잠시 不他歸依를 집고 갑니다. 我空 法空을 체득한 보살에게 불타귀의를 "다른 신을 믿지마라" 고 하면 초등생 수준이 됩니다. 여기서 不他歸依란 空과 色에 의지하지 말라는 中道를 말합니다.
고로 강물에 뜬 달에 속더니 허공 달에 또 속누나. 달 가르키던 손가락을 움켜쥐고...
다시 처음으로 홀연히 깨치고 보니 몸은 가볍고 세상을 보는 지혜는 생겼는데 스스로는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 찾으려 하지만 생각으로는 찾아지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실체가 없으니 어데가서 물어 볼수도 없습니다. 모르는 것을 깨치고, 모르는 것을 自覺하는 것이 見聞覺知 입니다.
'무엇을 알았다'는 생각이 선정을 장애하기 때문에 번뇌가 끊어지는 만큼 반비례 로 自覺도 됩니다. 다른 말로 무주무념을 인지하는 상태를 말하고 이것이 깨어있는 禪定이라고 할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自覺(禪定)으로 對相(범소유상)을 편견없이 觀照하는 것이 正思惟입니다.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보고 아는 것을 말하며, 세존께서 "나는 다보고 다안다" 다른 말로 見聞覺知가 뚜렷한 상태를 말합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구나를 알아채고, 사라지면 사라지는 것을 알아 채는 것, 비파사나는 이제부터 해당합니다. 삼매와 비파사나(마음챙김)의 결합, 止와 觀의 결합, '번뇌가 끊어진 상태에서 보고 듣는다' 세존께서 "나는 멈춘지 오래다" / 草觀 비로사 진공대사 보법탑비 안내판 탑비 부근에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석재 부재들.... 복련(覆蓮)무늬 주춧돌 기둥을 세울 때에 기둥 밑면과 주춧돌의 위로 볼록 튀어나온 부분에다 콤파스 처럼 생긴 그렝이자를 대고 요철을 표시하여 요철을 따라 기둥의 아랫면을 따낸다. 그러면 이 주춧돌의 튀어나온 부분과 기둥의 밑면을 그렝이질한 부분이 꽉 맞물려서 다른 경사부재의 도움이 없이도 기둥이 홀로 직립한다. 일주문을 세울 때에도 주춧돌과 기둥 밑면 사이에 그렝이질로 인한 밀착효과로 다른 부재의 도움없이 지붕부의 하중이 지면으로 전달된다. 천오백여년 내려온 일주문은 그동안 여러차례의 태풍과 지진을 이겨내고 버티어 온 연유가 바로 이 그렝이질에 있다. 이에 더하여 기둥 밑면을 그렝이질 할 때에 중앙부를 한두치 더 파내고, 기둥을 세우기 전에 이 부분에다 볶은 소금을 넣는다. 소금이 지면에서 주춧돌을 타고 온 수분에 의하여 녹으면서 기둥 아랫부분은 소금이 하얗게 묻어나게 된다. 이는 바로 목재건축에 치명적인 해충인 흰개미의 침입을 방지하는 전통기법이다. 개미류는 소금을 싫어하여 이 소금은 묻어난 기둥을 타고 오르지 않는다. 또다른 이유로는 그렝이질 중앙부의 소금이 다 녹을 지음에는 기둥의 가장자리와 주춧돌이 맞닿은 부분의 밑면부가 빗물 등에 의하여 썩어 상부의 하중으로 내려앉을 때에 비로소 기둥의 그렝이질한 면과 주춧돌의 위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면이 서로 꽉 물리게 되어 풍압과 지진의 수평가속도에 목조건물이 견딜 수 있게끔 한 것이 전통 한옥건축술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다. 기둥들 사이에서 중간에 가로로 걸쳐있는 인방과 창방의 결구구조에서 상하방향으로 어느 정도 유격을 두고 기둥 옆면에 파인 직육체면을 만드는 이유도 이 그렝질한 기둥 밑면의 가장자리가 목재부식에 의해 가라앉을 때의 부등침하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통일신라 때 만든 경주 황룡사의 구충목탑이 고려 때 몽고군의 방화로 소실되기 전까지 수많은 태풍과 지진을 견디어 왔고 속리산 법주사의 오층목탑인 팔상전이 수백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건축기법이 바로 그렝이질이라는 기초와 목조기둥부의 접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은 참으로 한국건축술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서양건축학자들은 아무리 슈퍼 컴퓨터를 돌려 건축구조계산을 해보아도 일주문 구조는 작은 횡압력 - 풍압이나 수평지진력에도 넘어지게 계산 결과가 나오니, 그들이 쉽게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그렝이질에 있다. 이 기둥과 주춧돌과의 그렝이 결합에서 하중의 작용점은 힌지구조도 아니고 강결합구조도 아닌 어느 정도 유격을 가지고 서로 느슨하게 결합되어 있는 자유한정구속면마찰구조로 되어 있는 바, 이런 구조계산법은 서양의 유수한 건축구조해석 프로그램에서 결합구조의 종류로 구분되어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월조루(月照樓) 이 월조루 아랫층 중간 기둥사이를 지나서 이 비로사의 금당격인 적광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있다. 다른 산행기들을 참조하여 보니 이 편액을 전부 월명루(月明樓)라고 설명하고 있다. 행서체는 읽기가 쉽지 않아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밝은 명(明)자이면 마지막 획에서 점을 찍지 않으니 수정하지 않고 그냥둔다. 이 비로사는 소백산 비로봉이 북동쪽으로 바라보이는 위치에 산의 지형에 따라 동향으로 앉아 있어 달을 구경하기에 좋은 안배를 갖는다. 당우의 이름에 유난히 달 월(月)자가 들어가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이 절은 해동 화엄종의 개조인 의상대사가 화엄경(華嚴經)을 설법하시던 터에 지은 절로서 소백산 비로봉 아래 추동곡(錐洞谷)에 자리잡고 있다. 이 절 근처의 달밭골이 비로봉에서 바로 흘러나와 송곳(추 錐)처럼 뽀죽한 급한 계곡을 이루고 있다. 달밭골은 지금은 마을 이름으로 남아 있으나 이 달밭골은 "달밝골"이 음운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동향의 급한 산세 탓에 달이 뜨면 산의 나뭇잎과 눈에 반사된 달빛이 모여서 유난히 밝음을 비로봉에 올라간 스님들이나 마을 분들이 이미 알아 보시고 옛부터 붙혀진 이름으로 보여진다. 이 비로사를 짓기 7년 전에 인근에 당시에는 이곳의 화엄종찰격인 영주 부석사를 지었다. 부석사 무량수전에도 아미타여래불상이 동쪽을 보고 계신다. 서방여래인 아미타불이 동쪽을 보시고 계시는 것은 당연한 배치이나 이 절의 금당인 적광전에는 특이하게도 이 아미타여래불과 비로자나불이 함께 모셔져 있다. 적광전이 동향이므로 이 두분의 석조불상은 정문을 열면 바로 정면인 동쪽을 향하고 계신다. 부석사 무량수전에서는 이와는 달리 정문을 열면 왼쪽 벽면인 서쪽에 아미타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무량수전이 남향으로 배치된 까닭이다. 의상대사가 지은 영주 부석사는 일반신도들과 죽령을 넘어 오가는 관리나 상인들을 위한 기도처로 활용되었다면 이 소백산 비로봉 바로 아래에 있는 당시의 소백산사(후에 비로사로 바뀜)는 제자들을 위하여 화엄경을 설법하고 수행을 하는 수행공간으로서의 기능이 강조된 절이라고 하겠다. 비로자나불은 화엄종에서 법신불(法身佛)로 불리우나 원래는 페르시아인 서역의 태양신이 고대문명교류의 영향으로 인도의 불교에서 수용하고 있는 종교간 포용과 통섭현상의 하나이다. 이 태양신은 예수탄생 후 기독교에 영향을 주어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은 이 태양신을 모시는 조로아스터교의 성직자들을 의미한다. 로마제국 콘스탄틴 대제가 로마가 동서로 분리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여러차례의 종교회의를 소집하기 전까지 이 조로아스터파와 아리우스파가 기독교단내에서 다수파를 점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에 정치적 통합의 목적으로 여러 로마 황제들에 의한 종교회의라는 방편을 통한 유일신의 확정작업이 있기 전인 서기 4세기 까지는 기독교 내부에서도 다신교의 경향을 띄었었고, 여러 다양한 경전들이 각파별로 채택되고 있었다. 로마제국의 분열을 방지하기 위하여 기독교의 교리와 교단을 활용할 때에 유일신을 내세워 다른 다양한 신들을 잡신이라고 폄하하고 여러 다양한 신을 위한 제경전들을 수거하여 불태움으로서 여러차례의 종교회의를 통한 교리와 제도정착 이후에는 기독교 유일신을 믿는 종교로 정착되었고, 이후에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모태로 아랍민족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슬람교는 이러한 여러차례의 종교회의 없이도 유일신을 믿는 종교로 시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정치적인 목적의 종교회의를 거쳐서 유일신화한 사건을 가리켜서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니체는 " 신은 죽었다."라고 천명하여 나중에 니찌즘과 파시즘이 태동하게 되는 이론적 토대를 본의 아니게 제공하게 된다. 짜라투스트라는 페르시아 현지어로 조로아스트 즉 태양신을 믿는 배화교(拜火敎)를 말함이다. 조로아스트라는 배화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사람이 있는 데, 이 사람은 이전부터 전래되어 오던 태양신앙을 전례화하여 고등종교를 만든 분의 이름이다. 요지음에는 태양신과 불을 믿는 배화교를 이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조로아스터교라고 통칭한다. 종교회의에서 밀려난 아리우스파와 네스토리우스파는 동전(東傳)하여 그중에 네스토리우스파는 그리스의 동방정교로 정착하게 되고, 몽골족에 의하여 유라시아 대륙이 통합된 국제화된 원나라 시대에는 이 동방정교가 중국에 전파되어 경교(景敎)로 불리우게 된다. 기독교 내에서 다수파를 점하고 있었던 조로아스트교파는 로마제국의 박해를 피하여 동쪽인 페르시아 지방으로 이주하게 되어, 오늘날에도 이란 북동부 지방, 인도대륙의 북서부 지방에서 교세를 유지하고 있다. 불교에서 이 태양신을 받아들인 것은 로마 종교회의 이전의 일로 원래부터 인도 토착경전인 우파니샤드나, 베다, 리그베다 등에서도 이 태양신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인도에서 이미 기층신앙화되어 있던 전래의 태양신을 비로자나불로 받아드린 것으로 보인다. 인도에서 보면 서역인 페르시아와의 고대문명의 교류는 부처님 이전에서 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판단된다.아마도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에서 신앙화하고 있던 태양신이 인도대륙으로 전래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태양신이 있으므로 하여 이 세상은 연화장(蓮華藏) 세계가 되며, 이 아름다운 초록별과 우주가 바로 화엄장(華嚴藏) 세계의 바탕이 된다. 두산백과 조로아스터교[ Zoroastrianism , ─敎 ]
고대 페르시아의 철학자이자, 오늘날 예언자로 불리는 조로아스터(Zoroaster)에 의해 창시된 종교로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를 숭배하며,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은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믿는다 하여 스스로를 마즈다 예배교(마즈다야스나 : Mazdayasna)라고 부르며, 한자로는 배화교(拜火敎), 중국에서는 현교(祆敎)라고 하여 삼이교(三夷敎)의 하나로 꼽혔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소백산 주목 이 잡석 사진은 왜 찍은는지 모르겠으나, 이 황량하기만 한 돌틈에서도 씀바귀 질경이 등등의 뭇생명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한평생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주춧돌 중간부재 집을 지을 때 온갖 정성을 드리는 우리 선조들은 상부목재의 결합형상에 맞추어 주춧돌 윗면을 가공하였다. 둥근 큰 기둥의 밑면 그렝이질을 한쪽 방향으로 긴 모양으로 파내고 중앙부는 원형으로 파내어 상부목재의 결구방향에 따라 주춧돌과 기둥밑면의 접착면을 달리하여 줌으로서 횡압력과 상부하중과 상부목재 결구구조에 따른 마찰력을 서로 보완하게끔 주춧돌 윗면의 요철 형상을 구분하여 설치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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