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비로사 들꽃다회 - 둘

2014. 6. 25. 15:48들꽃다회






       소백산 비로사 들꽃다회 - 둘   


                                          20140614 토요일, 맑음




      ● 소백산 비로사(毘盧寺)  창건설화


 

           비로사는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사찰이다.

      소백산 비로봉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고,

      신라 신문왕 때 승려 진정이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창건 설화에 따르면,

      의상이 제자인 진정의 홀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현 비로사 자리로 추정되는 소백산 추동에 초가를 짓고 

      화엄경을 강의하였고, 90일 동안 계속된 이 강의가 끝나자,

      진정의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하늘에서 환생했다고 말했다.

 

           신라 시대에는 소백산사로 불렸다.

      신라 말에 이 절을 중창되고 고승 진공이 머물렀는데,

      고려 태조가 이 곳에 와서 진공의 법문을 듣고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태조 20년에 진공이 사망하자 태조가 직접 진공대사라는 

     시호와 보법이라는 탑호를 내려주었다.


          이 때 최언위가 글을 지어 세운 진공대사 탑비가 남아 있어,

     영주시지방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중창했다.

     특히 임진왜란 때 승병이 거점으로 활용하다가 전소되어 새로 지어야 했고,

     1909년에도 법당 외의 건물이 모두 불타고,

     남아 있는 건물은 모두 현대에 다시 지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 절에는, 9세기 신라 후기의 화엄불교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보물 제996호인 아미타불상과 비로자나불상을 보유하고 있다.




앙련형 주춧돌과 팔각석등 기단석







모서리기둥(우주 隅柱) 주춧돌






석다조(石茶竈) - 돌 차부뚜막 , 네 귀퉁이에 돌로 괴어 찻상 높이로 설치하여

                            차상 대용으로 사용하거나 찻설거지를 하는 데 사용함.

 

 

 

 

디딜방아 돌확과 요즘 만든 연화봉(蓮花峰)


진정대사 보법탑비의 이수 뒷태 - 거북꼬리가 가늘지만 힘차게 솟아 

                고려초의 국운의 융성함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귀부의 육각형 귀갑문에 비늘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 있다.

                 귀부는 용의 아홉아들 중 맏아들인 비희(贔屓)로 평소 무거운 

          

                 것을 잘 지고 다니는 맏이의 품성을 지녀 비석돌을 지는 

                 귀부(龜趺)로 활용된다.



 *****용의 아홉 아들

        -   명나라 호승지(胡承之)가 쓴 진주선(眞珠船)’

 

 

첫째가 비희(贔屓)

일명패하()’라고도 하며거북이를 닮았고 무거운 것 지기를 즐겨 

주춧돌 아래에서 집을 떠받치고 있다.







귀부의 용두(龍頭) 모습 - 뭉툭한 코가 우람하니 한기운을 쓰게 생겼다.





1,山  經  表

  


 1.산경표란?

                 

                                                                          

                                                                                         

 1)우리나라 산줄기 흐름의 체계를 족보 형식의 도표로 저술한 지리서이다.





        

                 산 경 표 (조선 광문회 활자본)
사진 -  다음 카페 <지리산 클럽> 산천나그네 님의 글중에서 발췌

 2) "山自分水嶺"  산은 곧 물길을 가르는 분수령이이라하여산줄기와 물줄기를 구분짖는 단편적 의미보다는 산줄기가 곧 물줄기를 만들고 물줄기가 곧 산줄기를 만든다는 유기적 관계를 강조한 우리고유의 지리적 개념이다.. 


   산줄기는 물길에 의해 끊이지 않고 연결되는 흐름으로 이것이 대간,정맥,정간 ,기맥을 만드는 기본이되는 것이다.

   또한 산경표는 단순 지리적 지역구분뿐 아니라 당시 행정적으로 팔도를 구분짓는 역할도 하여 인문,사회적으로 문화와 생활권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2.산경표의 저자와 제작연대는?

 

    산경표는 원본은 간데없고 필사본과 활자본만 있어 저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산경표의 산줄기 갈래와 여지고의 산천 총괄편이 

같다는 이유로 산경표의 저자를 여암 신경준으로 추정하였으나

 

  1)여지고의 오류를 산경표에서 지적한 점.

  2)당시 영조연호는 사후(1776년 이후) 사용된 점.

  3)1776년과 1800년대 개편된 지명이 혼용된 점.

  4)실학자인 신경준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풍수사상이 산경표에는 

반영되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신경준의 사후(1781년 이후)인 1800년경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여암 신경준이 집필한 동국문헌비고의 

"여지고"과 "산수고"를 토대로 "산경표"를 수정 보완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후 산경표를 토대로 산경도 제작이 체계화되어 고산자 김정호에 의해 

대동여지도를 제작하는데 기여하였다. 


이로서 실학자이자 "훈민정음운해"로 유명한 여암 신경준은 이 산경표로 

인해 천재 지리학자로 재조명되고 있다.


 

3.산줄기의 분류


   크게 간(幹)과 맥(脈)으로 나눈다. 

幹은 독립된 줄기를 말하고 脈은 줄기(幹)에서 뻗어나온 갈래이다.

즉 대간은 여러 강의 분수령이 되는 독립된 큰 산줄기이고, 

정맥은 특정한 강의 분수령이 되는 산줄기이다.


   우리나라의 산줄기 분류는 현존하는 산경표 필사본(여지편람,해동리보) 

2편과 활자본(조선광문회) 1편에 약간의 차이는 있다.


   먼저 비교적 오류가 많은 조선광문회 활자본에는 1대간1정간13정맥으로 

되어 있으나 여지편람 산경표에는 1대간2정간12정맥으로

해동리보 산경표에는 낙남정간과 낙남정맥이 혼용되고 있다.

 

  1)족보형식의 체계로 기술한 산경표라는 것을 감안 낙남정맥이 장백정간 

다음으로 나오고 각 정맥은 북에서 남으로 기술한 점

  2)풍수지리상 1대간은 根原즉 사물의 全體를, 2정간은 陰陽, 12정맥은 12地支로 해석함

  3)필사본에서 낙남정간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2정간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아직 정간과 정맥의 기준이 모호한 점이 많은 것을 고려해 더 많은 검토와 

 고증이 필요하리라 본다.

 





아래 그림은다음카페 <작은여울의 빈터> 달구지 님의 글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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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여울의 빈터작은여울의 빈터
              대동여지도 백두산 부분 









                      1대간 

 

1.백두대간: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서 할머니 산인 지리산(두류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 산줄기다.


          이 산줄기에서 정맥,정간이 뻗어 한반도 곳곳에 이르니 백두대간은 단순한 

       산줄기를 떠나 우리나라 전체를 품은 산줄기이며 곧 우리의 山河이자 우리 민족의 

       터전인 것이다.


          모든 길은 한양으로 이어지듯 모든 산줄기는 민족혼이 서려 있는 백두산으로 이어진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의 정기가 팔도에 흐르는 脈이요. 이땅의 염원이 백두산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그래서 백두대간을 아끼고 지키는 것은 곧 국토사랑이요 애국의 길인 것이다..

 

          도상거리는 1,600Km로 남한구간은 두류산(지리산 천왕봉)에서 덕유산,소백산,태백산,

       설악산을 거쳐 진부령까지 도상 680Km에 이르고 실거리는 분분하나 포항셀파에서 50M 

       줄자로 실측한 거리 738Km가 산악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진부령에서 향로봉까지도 남한 구간이기는 하나 군부대지역으로 통제되고 있어 통일의 

       염원과 함께 백두대간 완주의 꿈은 진부령에서 미루어야 한다..

          남한구간은 실거리가 북한구간의 2/3이나 종주시 소요되는 시간은 북한구간은 남한 

       구간의 두배 이상 된다고 한다..

           이유인즉 접속거리가 멀고 교통편과 고도차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 다음 블로그 <지나리산방 (알고 떠나라. 아는 것 만큼 보인다)>지나리산방(알고 떠나라/아는만큼 보인다) 

                   지나리 부부 님의 글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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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정간


1.장백정간:두대간 두류산에서 함북지방을 두만강과 동해안 지방가르는 산줄기로 

          서수라곳에서 끝을 맺는다.

             장백정간은 함경도의 내륙과 해안지방을 갈라놓아 생활환경과 기후등이 

          현저히 차이가 난다.


2.낙남정간(정맥) :지리산 영신봉에서 신어산에서 매리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남으로는 남해안과 북으로는 낙동강을 구분 짓는 산줄기다.

          역시 해양성기후와 내륙성기후의 차이로 환경과 문화가 다르다.





                             12정맥

 

1.청북정맥 : 백두대간 마대산에서 마곳에 이르는 산줄기로 북으로는 압록강 

           남으로는 청천강의 수계를 구분 짓는다.

2.청남정맥 : 청북정맥 낭림산에서 남포에 이르는 산줄기로 북으로 청천강과 

           남으로 대동강의 수계를 구분 짓는다.

3.해서정맥 : 백두대간 두류산에서 화개산을 거처 장산곳에 이르는 산줄기로 

           북으로는 대동강과 남으로 예성강의 수계를 구분짓는 산줄기다.

4.임진북예성남 정맥 : 해서정맥 화개산에서 진봉산에 이르는 산줄기로 

           북으로 예성강과 남으로 임진강의 수계를 구분짓는다. 

5.한북정맥백두대간 백봉에서 시작하여 대성산 명지산을 거쳐 장명산에 

           이르는 산줄기로 북으로 임진강과 남으로 한강의 수계를 구분짓는다.

         남한 구간은 수피령에서 시작하여 대성산을 거쳐 임진강 하구에 이르는 

           약 160Km이다.



6.한남금북정맥 :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칠현산 분기점에 이르는 산줄기로 

           북으로는 한강과 남으로는 금강의 수계를 구분짓는다.

           거리는 약 158Km에 이른다.

7.한남정맥 : 약178Km한남금북정맥의 칠현산에서 광교산-계양산을 거쳐 

           문수산성에서 끝나는 산줄기로 북으로 한강의 수계를 가른다.    

8.금북정맥 : 282Km = 칠현산에서 수덕산을 거쳐 안흥진에 이르는 산줄기로 

           남으로 금강의 수계를  가른다.

9.금남호남정맥 : 70.7Km =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장안산을 거쳐 모래재에 

           이르기까지의 산줄기로 북으로 금강 남으로 섬진강의 수계를 가른다.

10.금남정맥 : 131Km = 운장산에서 왕사봉 천호산 을 거쳐 옥구에 이르는 

           산줄기로 북으로 금강의 수계를 가른다.


11.호남정맥 : 454Km = 섬진강을 두르는 산줄기로 호남 좌우를 가르다가 

           동으로 뻗어 백운산에 이른다..

           해안과 내륙을 구분 지어 확연한 생활권 차이가 생긴다.

12.낙동정맥 : 419Km = 태백산 천의봉에서 시작하여 경상남북의 해안과 

           내륙을 가르는 낙동강 동쪽 산줄기로 부산 몰운대에서 끝이 난다.

 

 

4.산경표와 산맥의 차이는?

 

1)구분:산경표는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수계로 구분지어지는 산줄기의 흐름을 

           연속으로 보나 산맥체계는 지질학적 구조선으로 구분하나 외형적으로는 

           물길에 끊어지더라도 지하의 지질구조선에 따른 구분이다.

2) 산경표는 우리 고유의 자연지리및 인문지리에 기반을 둔 산줄기 체계인데 반해 

           산맥은 일제 지질학자들이 만들어 원 수탈은 물론 풍수사상의 산줄기의 

           흐름을 끊어서 민족으 동질성을 파괴하는 목적도 있었음.

3) 산경표에 의한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관계 및 인문사회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산맥체계의 지질과 단층구조는 지진및 광물이용 등에 중요하므로

          병행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인 생각이다.

 

5.맺음

산경표에 따른 산줄기 해석은 분분하다.

 1)남쪽은 두 정맥의 공통정맥(한남금북,금남호남)을 인정하는 데 반해 

      북쪽은 별도로 정맥 (청북청남,해서예성남)이름을 부여하지 않은 점.

 2)산자분수령의 원리에 따라 정맥은 대간의 산에서 시작하여 강 하구에서 

      끝나야 하나 그렇지 않은 곳이 많음 (해서,금북,금남,낙남 등).

 3)정간과 정맥의 구분의 모호함이 낙남정맥의 위계가 불확실하다는 점

 4)백두대간을 단순 동서의 분수령으로 인식하여 신백두대간의 용어가 

      난무하다는 점등이 있다.

 

    본인 생각은 애초 백두대간의 의미를 부여한 취지가 대학 산악계에서 

일본의 침략적 산맥체계보다는 우리나라 산줄기 흐름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시작되었으므로 산경표 활자본과 필사본에 근거로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이며 산경표가 족보기술 방법을 적용한 것인 만큼 직계가 아닌 

방계의 모든 곁가지와 줄기는 정간, 정맥,기맥 등으로 구분되는 것이 타당하다.

 

   최근 정맥 종점에 대한 논쟁은 강 끝과 바다 시작의 불확실성을 감안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강하류의 지류 발달과 하천 개발로 인한 본류 변경등을 

고려하여야 하고  또한, 산경표를 분수령으로 본 지리적 기준뿐 아니라 

당시 풍수지리와 사회상을 반영한 원본에 준하여 해석하여야 한다.


   산경표의 산줄기 인식체계가 단절의 의미가 아닌 연속성에 있어 강과 바다 

또한 그러하고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측면에서 단순 분수령의 기준만이 아닌 

풍수와 사회상을 반영하여 지리적 중요지역에 의미를 두기도 하는 것이다.

 

   본인은 이런 판단에 있어 학계와 산악계의 다수의 의견 도출이 없는 한 

현존하는 산경표에 따를 것이다.


   상기 내용은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얻은 여러 정보를 전문인이 아닌 일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간단하게 정리하였다.

그러므로 논리성은 나름 최선을 다하였으나 미비점은 많은 것으로 생각되며 

오류에 대한 지적은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2013년8월      갈바람.

 

 

 

 

※1대간 9정맥 총거리:대간683.4km+정맥2087.7km=2771.1km

  *백두대간 9정맥 도상거리및GPS거리(KM)*

 도상거리(km)

 GPS거리(km)

 백두대간

 683.4

739.660

 낙동정맥

 419.0

 518.325

 낙남정맥

 232.7

 242.027

 호남정맥

 454.5

 514.627

 금남호남

 70.7

 74.740

 금남정맥

 131.4

 130.801

 한남금북

 158.1

 177.408

 한남정맥

 178.5

 203.150

 금북정맥

 282.4

 312.315

 한북정맥

 160.4

 184.608

 총     계

 2771.1

 3,097.661



 


님의 답변
04.07.06 12:34
답변공감
백두대간 [白頭大幹] 

한반도를 동·서로 크게 갈라 놓은 산줄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으로 맥을 뻗어내리다가 태백산을 거쳐 남서쪽의 지리산에 이르는 국토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산맥이다. 이 산줄기를 이루는 주요 산은 백두산(2,744m)을 기점으로 포태산(胞胎山:2,289m), 두류산(頭流山:2,309m) 등 해발고도 2,000m 내외의 고봉으로 이어져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양분한다.

산줄기는 다시 남쪽으로 차일봉(遮日峰:1,743m), 철옹산(鐵瓮山:1,085m), 두류산(頭流山:1,324m), 추가령(楸哥嶺:752m)으로 이어진다. 또한 동해안을 끼고 금강산(金剛山:1,638m), 진부령(陳富嶺:529m), 설악산(雪岳山:1,708m), 오대산(五臺山:1,563m), 대관령(大關嶺:832m), 두타산(頭陀山:1,563m)을 거쳐 태백산(太白山:1,567m)에 닿는다.

여기서 방향을 남서쪽으로 돌려 소백산(小白山:1,421m), 죽령(竹嶺:689m), 이화령(梨花嶺:548m), 속리산(俗離山:1,508m)으로 뻗어내린다. 이로부터 추풍령(秋風嶺:221m), 황학산(黃鶴山:1,111m), 삼도봉(三道峰:1,177m), 덕유산(德裕山:1,614m), 백운산(白雲山:1,279m), 지리산(智異山:1,915m)로 이어지면서 산줄기는 끝이 난다.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에 따르면 한국의 산맥은 1개 대간과 1개 정간(正幹) 및 13개 정맥(正脈) 체계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산줄기[山經]의 개념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제일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대간, 두번째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정맥, 세번째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지맥, 기타는 골짜기를 이루는 작은 산줄기 등으로 나타냈다.

이렇듯 대간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산줄기들은 지역을 구분짓는 경계선이 되었으며, 삼국의 국경과 조선시대의 행정경계를 이루었다. 따라서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자연적 상징이며 동시에 한민족의 인문적 기반이 되는 산줄기라고 할 수 있다.
                          - 네이트 지식   님의 답변



 

  위의 산경표 자료를 실은 것은 바로 소백산과 태백산과 강원도 
정선을 연결하는 삼각형이 바로 한반도의 하단전에 해당되는 지역이라
산중공부를 하기 좋은 곳인 까닭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 이 세줄의 글을 적기 위하여  위의 산경표와 백두대간에 대한 
자료글을 길게 인용하다.


   정선 땅에 전해져 오는 최근세의 전설이 있다.
초대 리승만 대통령 시절에 정선 광대곡 근처에 살던 일자무식의 심메마니가
무우만큼 큰 산삼을 한뿌리 캤다. 당시만 해도 교통사정이 불편하여
심을 도라지나 더덕처럼 물김치나 담구어 먹고, 돌에 두드려
고추장 발라서 화롯불에 구워나 먹고, 큰 것은 골패 모양으로 썰어서 
깍두기나 담구어 먹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생전에 이 무우만큼 큰 심은 처음으로 캐본 탓에 동네 이장과 상의하니
군수에게 선물하라고 권유하였다. 
래서 이 큰 심은 정선군수 ㅡ> 강원도지사 ㅡ> 내무부장관 ㅡ > 경무대의 코스로
상납 절차를 순식간에 밟아 리승만 대통령께 전달되었다.
며칠 후 미국 아이젠하워(이거이 동계등산용 뾰죽덧창의 이름과 유사하네)
대통령 방한시에 당시 국가경제 사정으로 마땅한 선물감이 없었던 탓에
미 대통령에게 선물하였다.


   백악관에 돌아가서 이 심을 꼭꼭 씹어먹은 내외분은 별안간 솟는 기운을 어쩌지 못하여

광란의 밤을 보냈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미 대통령이 리 대통령에게 감사의 전화를 한 것은 물론 영부인께서도

감사편지와 함께 특별한 선물을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보냈다고 전해진다.


이에 감격한 리 대통령은  정선의 심메마니를 불러 고마움을 전하고

평소에 원하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였다.



두메산골에서 일자무식으로 살면서도 그 조상의 근본은 선비의 후예라

도로보수 수로원 등의 국록을 먹어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고 하였다.



    이 심메마니가 고향집으로 돌아가 있던 어느날 

갑자기 군청 공무원들이 이 오두막을 찾아 왔다.

" 군수 영감님!! 내일부터 출근하시는 데 지장이 없도록 모시려 오겠습니다."


정선땅 동면에 전해지는 거짓말 같은 실화이다.



귀부의 용두의 앞모습 - 입에 물고 있는 여의주가 풍화가 심하다.




귀부 용두의 이마에 수정 등의 정안(頂眼)을 심은는 듯 

동그란 구멍이 나있다.









   진공대사 보법탑비는 탑신과 이수가 왜병들에 의해 깨어졌는지 

손이 심하나 탑신돌이 매우 치밀하여 글씨는 마멸되지 않아 

읽을만 하다.









진공대사 탑비의 이수 - 전면에 용이 일곱마리 세겨진 화려한 장식이나

              모서리가 깨어져 있는 등 훼손이 심하다.








탑비 귀부의 귀갑문(龜甲紋)








  귀부의 오른쪽 등부분에 석질을 달리한 물고기 자연무늬가 있어서,

거북이 등에 엎힌 물고기 형상을 나타낸다.








이수의 옆부분은 구름무늬(雲紋)로 장식되어 있는 데, 

양 모서리부에는 사람 형상의 신장상(神將像)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이수의 전면부는 고 진공대사비라고 전서체로 돋을새김한

주위를 일곱마리의 용이 이 탑비를 호위하는 형상으로

돋을새김하였고 용의 문양이 화려하여 고려초의

융성하였던 문화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탑비명에 고(故)자를 새긴 것은 특이하다. 








소백산 산행코스 안내도







                  - 다음 카페 <성남 희망산악회> 검정고무신 님의 글 중에서 발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