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계계곡 |
[환경일보]한국보전커뮤니티 = 죽계구곡이 위치하고 있는 소백산국립공원 지역은 한반도의 중추를 이루는 북서-남동향의 태백산맥에서 남서향으로 분기된 소백산맥의 주축부를 이루고 있다. 지형은 원지형으로부터 침식작용이 활발히 진행돼 원지표면이 거의 또는 완전히 침식된 지형윤회 과정의 장년기에 해당된다. 풍화에 강한 율리계 편마암류가 분포하는 공원의 대부분 지역은 험준한 높은 지역과 중생대 화강암류가 분포하는 남동 주변부 지역은 낮은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이 지역의 지형 발달이 구성암류의 분포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지시한다.
죽계별곡의 무대
죽계구곡이 있는 이 계곡은 고려후의 명현이며, 문장가인 근재 안축의 ‘죽계별곡(竹溪別曲)’의 무대이며, 퇴계와 신재 등 유현들이 유상하던 자취들이 있어 비교적 알려진 계곡이다. 죽계란 순흥 읍내 동편쯤에서 소수서원, 배점을 거쳐 초암에 이르기까지의 대략 5리 정도의 계곡을 말한다. 이 물은 국망봉 아래 석륜골에서 나오는 물과 하가동에서 나오는 물이 중봉 아래서 합류해 초암 부근에 이르러 죽계의 첫머리가 된다.
죽계구곡이 위치하는 순흥지방은 삼국시대부터 있어왔다. 조선시대에도 도호부로 유지됐다가, 금성대군의 난으로 인해 폐지된 뒤 다시 숙종년간에 순흥부가 됐다. 현재는 영주시 순흥면으로 돼 있다.
죽계천(竹溪川)에서 죽계(竹溪)라는 지명유래는 지방의 향토지나, 시문에도 나오지는 않아 그 유래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대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는 환경인 이곳 지형에 유독 대나무 ‘죽竹’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이 보이는 것은 그 연원을 따져보아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죽령(竹嶺)을 비롯해 대밑골, 죽계천이 있는 순흥지방의 내죽리(內竹里), 죽동(竹洞) 등 대나무 죽자가 들어간 지명이 곳곳에 보인다. 죽령의 경우 그 개척자의 이름인 죽죽(竹竹)의 이름을 따서 죽령(竹嶺)이라 이름했다고 전해지는 유래가 여러 사서와 향토지에 나와 있어 그 연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죽계의 경우는 좀 다른 경우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내죽, 죽계, 죽동 등은 죽령과는 그 거리가 차이가 꽤 있고, 죽령이 개통되는 당시에 지명을 유추할 만한 근거가 없어 그 유래를 연관하기 힘들다. 이들의 지명유래는 그 주변에 위치하는 비봉산(飛鳳山)과 연관해 지명유래를 찾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인 견해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대동여지도에서 명기
비봉산의 유래는 주지하다시피 순흥 읍내의 진산으로 소백산에서 동으로 떨어진 지맥이 순흥부에 이르러 솟은 형태가 봉황이 날아오르는 모양이라 해 ‘비봉산’이라 이름 지어 졌다고 전한다. 비록 소백산의 지류능선 상에 위치하는 매우 작은 산에 불과하지만 조선 후기의 실학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소백산과 동등하게 명기돼 있을 만큼 그 명성과 가치가 당시에는 꽤 큰 산으로 보인다. 죽서기년(竹書紀年) 및 백호통(白虎通) 등 고전에 의하면 ‘봉황은 죽실(竹實)을 먹고 오동(梧桐)에 깃든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즉 봉(鳳)을 상징하는 비봉산 주변의 지명에 대나무 죽(竹)자를 넣은 지명 및 개천명을 붙임으로서 봉황이 깃들 자리를 축원하는 차원의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죽계(竹溪)라는 것은 봉황이 깃들기를 축원하기 위한 대나무 죽(竹)자에 시내 계(溪)자를 붙여 명명돼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 언제부터 이렇게 씌여졌는지에 대한 연원은 기록의 부재로 알 수 없을 따름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최성규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