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26. 00:04ㆍ우리 이웃의 역사
*하드리아누스의 유언(138) -네르바왕조의 마지막 황제 -피우스와 아우렐리우스를 황제로 세우지 말 것. -서로마 몰락의 시작
------------------------------------------------------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161~180)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안토니오피우스와 같이 사실상의 쿠데타 -로마의 치세는 약1,000년중 주로 율리우스왕조 68년, 네르바왕조 45년에 이루어짐. 이후 서로마의 멸망도 사실은 동로마로 부터 벗어난 것. -아우렐리우스 처럼 게르만을 정복하려다 로마는 망함 -아마 아우구스투스때 신뢰가 돈독하였든 게르만의 배반이 없었더라면 오데르강까지 팍스로마나로 유럽은 상당히 발전하였을 것이다. 게르만에 실폐 이후라도 로마는 게르만과 싸움에 치중하기 보다 갈리아를 중심번영하여 융화정책을 하였어야 됐었다)
*단석괴 알선동에서 선비국 세움(155) -호한융합으로 탄생 -단은 단군의 단자와 같고 선비의 선자는 조선의 선자와 같음 자료;http://blog.naver.com/kimyto?Redirect=Log&logNo=50095246080
*프톨로마이오스 지도(156?)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
*로마상인 중국의 황제 만남(166) -비단길 열림
*교회 대탄압(170)
*제1차 게르마니아 전쟁(172)
*제2차 게르마니아 전쟁(178)
*황건의 난(184)
*조조 황건을 격파하고 동탁을 격파하여 화북을 원소와 양분(189) -202년 원소격파후 화북지배, 210년 유비 손권과 동맹하여 조조 남하 저지 229년 3국체제 완성, 263년 사마소 촉나라 격파, 265년 사마염 위나라를 강압하여 진나라 세움, 그리고 진나라(서진) 280년 오나라도 멸망시켜 삼국을 통일..
*을파소의 참전 계경(190년경) -고구려 고국천왕
*셉테미우스 세베루스(191-211) -처음엔 유대교 예수교를 지켜 보다 나중엔 박살냄.
*동탁암살(192) -동탁은 뛰어난 무장이고 상당히 뛰어나 추종자가 많았던 사람 -단지 유교의 한나라를 종식하려 하였다는 것에서 그렇게 부정된 것. 조조는 유비 세력을 키워준 자이고 유비에게 패한 자이니 영웅을 만들어야 되고, 조조를 배신한 유비는 간사하고 한황조 추종자를 규합하여 쫏기다가 오나라를 속여 끌여들여 조조에 이기고 촉나라를 세움, 그러나 오나라는 조조와 동맹하여 유비세력을 죽임..
*마야지역에 여러도시국가가 생기기 시작(2c) -900년 갑자기 몰락 -19세기초 발견(팔랭케부터)
*선비제국(2c~3c) *아일랜드와 브리타니아섬에 드루이드교 존재함(2c) *몬타니즘 발생(2세기)--최초의 이단
*탈무드(미슈나) 편찬(200) -우샤에서 70년~200년간의 랍비들의 구전된 것을 성문화시킴 *쿠샨왕국(200) -간다라에서 대승불교 탄생, -유목의 지배자들이 대개 백성지배에 신을 믿기 보다 이용하는 것인데, 카시카왕은 나중에 신을 믿기 시작함 *신공황후 임나정복설?(200)
*카르타고의 페르페투아 처형(203) -카르타고엔 비밀 예수교단체가 많음 -카르타고 지배자 한니발도 유태인
*이탈리카 등 유럽의 로마의 도시들이 쇠락되기 시작함(3세기부터),,
*유다인 최초 중국 이주(206-221) -유다인 구전
*시라쿠사 로마의 침략 막아 냄(214) -아르키메데스의 거울무기가 큰 역할
*로마의 본격 몰락 시작(218?)
*로마교회 설립(220) -예수교 본격화...카릭스투스 감독으로..
*위진남북조 시대(220~589)
<자료 위키백과>
*유현덕 사망(223) -손권은 싸우지 않고 상생하는 것이 더 큰 승리, 외교중시 -조조는 현실적 실용적 신뢰를 중시 -유비는 덕치정치, 보수, 기회주의자, 전사문화, 영웅주의
*사산제국(224~651)
*근초고왕의 영토확장(227)
*막시미누스(235-288) -매우 난폭하였으나 예수교에 생각보다는 심하지 않음..
*데끼우스 황제(240-251) -예수교 유대교 제거 본격화, 다시 씨이져의 로마를 세우려 하였음/
*코넬리우스파 로마교회 장악(250) -유럽에 예수교 확산
*키프리아누스 역병(251~270) -카르타고로 부터 발생된 것으로.. -키프리아누스는 카르타고의 주교
*발레리아누스(253-260) -처음엔 예수교를 옹호하는 편이었으나 나중엔 크게 탄압함..
*갈리아제국(260~274)
*미추왕(262~284) -신라 최초의 김씨왕
*팔미라와 알렉산드라아, 아우렐리아누스에 반란(270?) -알랙산드리아 도서관 불탐 -팔미라의 제노비아여왕은 서로마의 세력..
*팔미라의 제노비아여왕 패배(272) -로마는 이미 갈리아 팔미라 알랙산드리아 등으부터 신뢰도 잃고 비난의 대상이 되었음. 오히려 더 야만인 되었음. -아우렐리리아누스 팔미라에서 자신의 피를 제물로 바침.
*갈리아 지역에 갈리아 왕국으로 분열(273)
*아우렐니아누스 갈리아 점령(274) - 유일신앙 표명, 12.25일 태양신 숭배일로 정함
*아우렐리아누스 암살과 또다시 제국의 분열(276?)
*굽타왕조(280)
*디오클레티아누스(283-305) -위기에 빠진 로마를 다시 세움 -원로원(공화주의) 약화시킴 -동로마의 예수교를 반대 -사두체제 총본부를 이집트에둠 -동방은 디오클라키우스를 황제 갈레리우스를 부황제 -서방은 밀라노를 중심으로 막시우스와 부황제 콘스탄티누스로 -동방황제가 페르시야와 싸웠고 예수교를 반대하여 콘스탄티누스가 이를 이용하여 반역을 이르킴
*노바티즘 발생(3세기) -이단
*일본인구의 급격증가 시작(약300년) -500년까지 매우 빠른 증가... *평신도 설교금지(300) *십자가 크게 사용 시작(300) -동로마 지역 군대 등에.. *마야황금 문명(300~600?)
*유연 한나라 세움(304~318) -5호16국 난립의 계기가 됨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유언(305)
*디오클라티스 칙령(306) -예수교가 로마신들을 부정하고 급속히 확산됨에 따라 예수교와의 전쟁을 벌임 -콘스탄티누스는 디오클라티우스 아래에서 있을 때, 스토이즘 철학에 관심을 많이 가짐. 그래서 사상이 비슷한 예수교에 관심을 가지고 나중에 동로마를 차지할 때 이용함..
*콘스탄티누스와 프랑크 족과의 전쟁(306)
*콘스탄티누스와 니키니우스와의 혼인동맹(311)
*밀비아다리전투(312) -막센티우스 물에 빠저 사망, 기독교의 첫 승리
*카톨릭 국교승인(313) -유태인 학대 시작..
*콘스탄티누스 개선문(315) -실상은 십자가도 예수도 없음
*전진의 승려 둔왕석굴사원 조성시작366)
*동진세움(317~420) -양자강 이남
*아리우스파 단죄(319) -황제는 결코 교리문제로 분리되는 것을 반대, 카돌릭이라는 것이 교리문제가 아니기 때문 -그러나 교리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교황파이고 이를 인문주의자와 검은 귀족의 유태인들이 이용하 였던 것?.
*굽타제국(320~550)
*동로마 로마 완전지배(320년경) -카돌릭이 국교 -원래 카돌릭이 성경내용이나 교리의 의도가 아니고, 서로마와의 종교의 합의 하에 통합에 그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바티칸궁에는 그렇게 이교도적인 것이 많고, -서로마는 여신이 우선이기 때문에 마리아를 내세운 것, 카돌릭을 만든 황제도 성경의 믿 음은 없는 사람들이고(오히려 미트라 신에 더 관심 많았고, 고대 그리스 건축 등에 관심이 많았 고 교회도 별로 가지 않았다) 십자가를 내세운 것도 서로마엔 십자가를 지붕 위에 많이 세워두었기 때문이다.(물론 태양신의 빛의 십자가이지만..) -그래서 서로마에서도 니케아 공의회때 큰 부작용없이 동의하여 준 것이고, 그래서 경전은 대충 통합 정리하다 보니 모순투성이 인 것이다.. -그래서 로마카돌릭의 장점이 교리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시대에 따른 변화 융화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매우 교리중심인 성경 원리주의자 유다인들에게는 로마카돌릭이 최대적이고 로마카돌 릭도 마찬가지였다.
*비진틴제국(323~1453) -로마의 종교가 없는 곳을 택함
*콘스탄티누스와 니키니우스와의 전쟁(324) -니키니우스의 반예수교 정책에 의하여..
*종교내분(324)
*니케아 공의회1차(325) -부활절 제정, 유월절 거부, 아리우수파 단죄(원리주의자)
*아들 크리스푸스 속임 당하여 처형됨(326)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326) *콘스탄티누스 세례 받음(326)
*콘스탄티누스 사망(327)
*유다인 차별법 더욱 강화(329)
*헬레나 시나이산에 카트리나 수도원 세움(330) -카트리나는 막센티우스와 종교적인 대립으로 305년 참수당한 지역총독의 공주 -헬레나는 막센티우스를 부정하고 자식의 권력을 확고히 하고져 곳곳에 성지와 성물을 세움 (막센티우스는 서로마황제로 인기가 많았음) -최초의 순례자는 스페인의 유력여성
*전연의 부여점령(346) -3세기말부터 부여가 점차 쇠약됨 -50,000명의 고구려 시민 기술자 여성을 데려감 -전연은 선비의 북위와 같은 뿌리 (선비족은 다민족 연합체 당나라도 선비 후손) -부여의 일부는 남으로 내려가 남부여(백제) 세움 -또 일부는 가야로 진출하여 융화됨
<위키백과>
*로마에 게르만족의 침입(351) -지금 독일지역의 알레마니(아리안)족 -로마몰락의 본격 시작 -이후 반달 고트족들이 유럽을 무너뜨리기 시작함 (서고트는 스페인) -이후 카톨릭이 헤루리 멸망(493) 반달멸망(534) 동고트족을 멸망(538)시키고 로마교황청을 국가로 까지 인정받았으나 중세의 카노사의 굴욕과 십자군전쟁으로..
*둔황 막고굴 조성(355) -5대 16국 시대, -원나라 때까지 조성
*내물왕(356~402) -마립간 -금관시대 시작(약150년간) -큰 고분 -산동성의 흉노족 가문
*라우디게이아 종교회의(365) -개인은 찬송가를 작사 작곡 할 수 없음
*흉노족 한나라에 쫒겨 드네프르강 서쪽의 동고트족을 점령(375)
*다퉁(대동) 북위의 수도가 됨(398~494)
*게르만의 일파인 서코트의 로마침입으로 로마 동서로 양분(395)
*바스크지역 프랑크의 점령으로 팜플라나 왕국이 됨(405) -과거 로마에 점령된 적이 있음(-75)
*서고트족 이탈리아 약탈(410)
*서고트족 스페인 점령(429) -스페인의 반달족(게르만족의 일파) 쫒겨 카르타고를 점령
*에베소 공회(431) -마리아 신격 공식화(에베소의 다이애나 숭배에 의하여)
*부여인 선비족에 쫒겨 일본으로(370) -일본에 기마문화 유입, 부여는 원래는 기마문화가 아님
*고구려 불교(372) -소수림왕
*게르만 대이동(375) *카돌릭 성인숭배시작(375)
*고트족 흉노족에 의하여 루마니아에서 쫏겨남(376) -이후 고트족 콘스탄티노플 점령 이후 로마까지 점령
*섹슨족의 영국 침공(380) -북부 독일인으로 그곳에 대홍수가 일어남으로써 -로마가 국내사정으로 군을 상당량 철수하였고..
*2차콘스탄티노플회의(381) -아플로나리우스파 단죄
*브리타니아의 마그누스 막시무스 그라티아느스 죽임(383)
*백제불교 인도로 부터(384) -인도승려 마라난타 법성포로 부터 -인도로 부터 들어오고 도교의 영향도 있음
*탁발선비 북위세움(386~534) -호한 융합정책 -439;크게 융성, 간다라의 미소,
<위키백과>
*막시무스 이탈리아 침공(387)
*백제인 고구려에 쫏겨 일본으로 대거 유입(390) -일본의 통일왕국 야마토(나라) 탄생
*일본에서의 가야지역 점령?(391~562) -임나 일본부설 주장 -전남의 신안 영암 남원 장수 등에서 잇따라 이 시기의 말기의 가야유물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일본이 백제인들과 합쳐 이 지역까지 진출하지 않았나 싶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태움(391) *갈리아 프랑크족 출신인 아르보가스트 로마황제 거부(391)
*발렌티아누스2세 의문의 죽음(392 05 15)
*서로마 대혼란에 빠짐(392?) -동로마 지배 이후 카돌릭의 지배 이후 서로마의 문화는 붕괴되어 가고 로마전역에 물질문화 사치가 극에 달하고 물가는 폭등하고, 이집트 경제의 붕괴(서로마의 경제정치 기반은 알렉산드라아인데..) 등으로 결국 로마는 경제대공황의 혼란과 분열케 됨
*올림픽금지(393)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지시
*로마내에 코트족의 왕국 탄생(394) -알리리크왕 -로마내에는 고트족등의 1/3이 용병으로 이용
*매일 미사드리는 것을 공식화(394)
*훈족애 쫒겨 게르만의 대이동(395?~495?) -중앙아시아의 저온건조, 목초지 말라 버림? -로마의 경계인 라인강의 동결로 바바리안이 이동되고 결국 475년에 로마 멸망
*도나티즘 발생(4세기) -이단 *인도의 카마수트라 출간(4세기 경) -인생의 세가지 목적은 종교(法), 사회(利), 사랑(愛) -락쉬마나사원 카마수트라사원
*훈족에 쫒긴 동슬라브족 러시아지역으로 이동(4~6c) -아슈케나지 유태인의 근원?
*예루살램 탈무드 등장(400)
*신라에 불교 도래(405) -백제보다 무려 120년이나 뒤에..
*훈족에 쫏긴 반달족의 이동(406) -15,000명이 라인강 동결을 이용하여 넘어와 유럽을 휩씀..
<필자 ;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연구원>
*영국에서 서로마군 철수(407) -영국이 알아서 스스로 지켜라고 선언(이후 영국은 수세기동안 암흑시대) -서로마가 게르만의 침공을 받음으로써..
*스틸리코 처형(408) -스틸리코는 반달족과 로마인의 혼혈인 -로마와 고트족과 모두 평화로운 시대염 *호노리우스 황제의 고트족 대학살(408) -동로마 황제 호노리우스의 무능과 인종주의와 고트족과의 약속 위반 때문 -로마의 멸망으로 나가게 됨 *고트족 알라리크의 로마점령(409)
*아더왕의 등장(409?) -영국에서 로마군이 철수하고 동쪽의 야만 섹슨족(게르만의 일파)이 영국을 지배함으로써 카메롯섬에 있던 아더왕이 색슨족을 몰아냄, 그러나 아더의 죽음 이후 다시 색슨족이 영국지배.
*고트족 로마유린(410) -800년 만에 처음 -호노리우스 황제의 알리리크에 약속을 어기고 기습공격 함으로서..
*구마라집 사망(413)
*나제동맹(422)
*반달족 히스파니아를 거처 카르타고 지역에 국가설립(439)
*암흑시대 도래(426)
*히스파니아의 가이세리크 북아프리카를 점령하고 반달족의 왕이 됨(428) -북아프리카 카톨릭 100년간 탄압 -477년 주교 아들 훈데리크가 왕이 됨
*베네스 라벤나도시 시작(429?) -이 두 도시는 비잔틴제국이 만든 도시, -비잔틴예술은 화려하고 더러움, 금과 보석과 거룩과 권위를 빼버리면 쓰레기 예술,
*마리아 신봉 시작(431)
*아일랜드에 카돌릭 전파(433?)
*네스토리우스파 추방(435) -마리아 신격화 부정, 예수 인격화 부정, 전세계로 흩어짐, 아시아에서는 경교라 부름.
*훈족 아틸라 콘스탄티노플 유린(434?) -금괴 3,000톤 내주는 등, -로마 동서로 분열,
*남북조시대(420-589) -선비의 탁발부의 북위가 화북을 통일함으로써 -북위는 하북성에서 규합된 혼혈민족으로 대안령산맥 기슭에서 살았으나 흉노가 남북으로 분열하자 거의 독립상태가 되고, 북흉노와 후한의 싸움동안 선비의 세력이 매우 커지게 되고, 북흉노를 몽골서쪽으로 몰아내고 강대하게 됨..
*6조시대 -남경을 수도로 하는 오나라, 동진, 남조의 송, 양나라, 제나라 진나라.
*중남미 체첸이트(전사의 신전) 건설(5세기경) -매우 호전적이고 잔인하였다 함. *모아이섬 호전적인 종족들 유입(5세기경) -서로 간에 경쟁하다 망하였다 함..
*운강석굴(5세기초) *로마는 이제 동쪽의 야만인들이 차지함(5세기 중엽)
*게르만의 일파인 앵글로 섹슨족 영국 캘트족 내몰고 점령(449)
*아틸라 폐퇴(451) -동로마로부터 대량의 황금을 받아내 서로마 갈리아지역 공격 아이티우스와 서유럽의 여러 왕들과 연합하여 미리 평원의 언덕을 선점하여 아틸라를 완패시킴
*픽트족(스코틀랜드 야만인)과 섹슨족과의 전쟁(452) *반달족 로마점령(455) -북아프리카 점령 이후 곧바로 로마진격 -로마 혼란시대로 접어듬
*게르만 사령관 리키메르,, 로마의 시칠리아에 침략하는 반달족 물리침(456)
*리키메르 아비투스 폐위시키고,, 친구인 마조리아를 황제로 세움(456)
*단검의 밤(458) -협상에서 색슨족이 무장하지 않은 브리튼인을 협상장에서 학살
*룽먼석굴(5세기말)
*유럽에서의 유다인 추방(4세기 중엽)- 유다인 스페인으로 대거 이주,,
*북위 운강석굴조성(460~529) -수 당에 큰향을 줌. -미소와 풍만 -죽은 선황제 5명을 부처화 -이후 용문석굴에서는 호한 융화정책으로 미소가 상당히 사라짐 (지나치게 한족의 유교식 문화를 따르다 결국 멸망됨)
*리키메르 마조리아(로마인)가 반달족 원정에 패하자 죽임(461),,
*콘스타니노플 대화재(462) *아기디우스 리키메르에 독립하여,, 갈리아에 국가 세움(462) -마조리아를 죽인 것에 분노 -리케메르를 공격하나 난황을 격음 -아기나우스는 갈리아인으로 서로마를 구하려 함..
*아기니우스 북아프리카를 지배하는 반달족과 연합하는 가운데,, 친구 리키메르에 암살(463)
*리키메르 세베루스 황제 죽임(465),,
*달마 중국으로(470) -남인도 출생, 페르시야 출생설도 있음 -선종의 창시자 -소림사의 창시자(496); 북주 시대에 파괴되고 수문제때 재건,,
*북위 효문제(471~499) -북위를 몰락케 함 (이유; 진나라 한나라 장례제도 도입, 자신의 성씨를 한나라 것을 동입하는 등 한나라 편중된 정책 때문)
*파르테논 신전파괴지시(472?) -데오도시우스2세 *리키메르 안티키우스 황제 폐위시키고,, 죽임(472) *리키메르 스스로 황제되고 피를 토하고 죽음(472),, -이방인(수비아족+서고트족)이고 아리우스파로써 스스로 황제가 되기는 어려웠다
*네스토리우스(5세기)
*신라 금숭배 절정(5세기말)
*오나라(춘추) 멸망(473) -오월동주로 연합하였던 오월은 패전하고 -오나라의 계략(서시; 양귀비와 같은 의미)으로 야만의 월나라에 멸망
*북주무제 불교 대탄압(474)
*부르군트족(프랑크 바로 아래 지역)의 군도바트가 왕이됨(474) -로마의 권력자임을 그만 두고 -스페인(서고트)/ 갈리아(프랑크)/ 영국(앵글로색슨)
*백제 장수왕에게 폐배(475) -수도는 당시 가장 풍요로고 평화로왔던 매우 큰 도시였고, 외각에 해자와 몽촌토성(현재), 안쪽에 풍납토성(현재)으로 이루어진 매우 큰성으로 방어용의 성.. -패배는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침
*서로마를 다시 일으키려는 로마인 오레스테스 오도아케르에 의하여 사망(476) -오레스테스는 동로마 황제에 의하여 임명된 네포스 황제를 제거하고 서로마를 지배하였으나.. *서로마 멸망(476) -로마 최초로 야만인 오도아케르 서로마의 왕이 됨... -얼마 후 갈리아지역(북유럽과 시이져의 영향 많이 받은)이 서로마 문명을 이어받음.
- 네이버 블로그 <emerald city> moiuytr7 님의 글 중에서
|
'우리 이웃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사 요점정리 (0) | 2014.06.26 |
---|---|
로마 서브 로사 3 : 카틸리나의 수수께끼 (0) | 2014.06.26 |
[화폐전쟁] 1848년 혁명과 은행 산업 구제 프로젝트 / 화폐전쟁 제2부 (0) | 2014.06.22 |
[화폐전쟁] 오펜하임 : 쾰른의 금융 패주 / 화폐전쟁 제2부 (0) | 2014.06.22 |
[화폐전쟁] 사무엘 블라이흐뢰더 : 로스차일드 가의 대리인 / 화폐전쟁 제2부 (0) | 2014.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