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원 4대가(金元四大家)

2014. 7. 24. 14:25건강 이야기




       금원4대가(金元四大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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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log.naver.com/msk7613   김민수 님의 글 중에서.....






       단계(丹溪) 주진형(朱震亨)

​     지평 현감(砥平 縣監) 남언경(南彦經)은 명종에게 아뢰기를 “중국의 금국,원국 시대의 유완소, 장종정, 이동원, 주진형의 4대 학파인 금원4대가(金元四大家)의 하나인 단계(丹溪) 주진형(朱震亨)은 원(元)나라의 명의(名醫)였는데 역시 마음을 바루고 마음을 거두고 마음을 기르고 마음의 울화를 막는 것을 약먹는 효과보다 나은 것으로 여겼다 합니다."하였다. 단계(丹溪) 주진형(朱震亨)의 자는 언수(彦修), 호는 단계(丹溪)이다. 저장성 출생이다. 35세 때 허겸(許謙)의 문하에서 주자학을 공부하고 과거에 응시했으나 2번이나 실패하고, 43세 때 나지제(羅知悌) 밑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이고(李杲)의 내상설(內傷說)을 발전시켜 내부환경을 중요시하는 의설(醫說)을 제창하였다. 치료법에서는 약물요법(화학요법)의 테두리를 넘어 쇠약한 환자에게 감자즙이나 우유를 먹이고, 아라비아에서 전해진 시럽제 혹은 도창법(倒倉法) 등의 신기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채용하였다. 종래의 중국의학은 화베이 화북(華北)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나, 남송시대 이후는 화중(華中) ·화난 화남(華南)에 적합한 의료법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주진형에 이르러 확립되었다. 저서에 주자(朱子)의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연관되는 격치여론(格致餘論), 당시의 관학계(官學系)의 의서를 비판한 국방발휘(局方發揮) 등이 있다.





       하간(河間) 유완소(劉完素)

 

     금국(金國)의 이름 난 의사이며 중국의 금국,원국 시대의 유완소, 장종정, 이동원, 주진형의 4대 학파인 금원4대가(金元四大家)의 하나이다. 하간 사람이므로 유하간(劉河間)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오랫동안 민간에서 임상을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의술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의학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소문(素門)을 수십 년간 온 마음을 기울여 연구하여 운기학설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견해를 제기하였는데 운기가 4계절의 정상 법칙을 나누어 맡고 있다고 생각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운기에는 변하지 아니하는 것과 변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운기학설을 연구할 때는 마땅히 풍·한·서·습·조·화가 질병 발생과 발전에 대하여 미치는 영향에 착안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북쪽 사람의 체질과 열성병 유행의 특징을 근거로 하여 그의 치료 경험을 총결하였으며, 고방(古方)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주로 성질이 차고 서늘한 약물을 잘 썼으므로 뒷세상에 그를 한량파(寒凉派)라고 불렀고 주요 저서는 소문현기원병식(素門玄機原病式)·선명논방(宣明論方)·3소론(三消論)·상한직격(傷寒直格)·상한표본심법류췌(傷寒標本心法類萃) 등이다.


      

 대인(戴人) 장종정(張從正)

 

    ​금국(金國)의 이름 난 의학자이고 중국의 금국,원국 시대의 유완소, 장종정, 이동원, 주진형의 4대 학파인 금원4대가(金元四大家)의  한 명인 대인(戴人) 장종정(張從正)은 자는 자화(子和)이고 의술에 밝았으며, 유완소의 학술 사상을 이어받았아 약물을 씀에 있어서 한량한 약을 중심으로 사용하고 땀을 내는 방법으로 치료하는 한()구토를 하도록 하여 치료하는 토() 사기(邪氣)를 아래로 빼내는 설사를 시키는 하()의 3가지 치료 방법을 주로 이용하였다. 풍(風), 한(寒), 서(暑), 습(濕), 조(燥), 화(火) 6가지의 하늘의 사기(邪氣)인 6음(六淫)과 안개·이슬·비·우박 등 땅의 사기(邪氣)는 가장 쉽게 사람으로 하여금 병에 걸리게 하고 부적당한 음식도 또한 발병 요인이라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외사는 마땅히 곧바로 몸 밖으로 몰아내야 하는데 사기를 몰아내는 방법으로 상한론의 汗·吐·下 세 가지 치료 방법을 원칙으로 삼았다. 치료를 공하(攻下)를 중심으로 하였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이 공하파(攻下派)라고 불렀다. 그는 병을 치료함에 있어서 먼저 공(攻)하고 나중에 보(補)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보약을 중심으로 사용하였던 당시 상황에는 파격적인 치료법이였다. 1217부터 약 5년 동안 태의로 임금의 병을 돌보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유문사친(儒門事親)이 있다.



       동원(東垣) 이고(李杲)

 

 

​    금국(金國)의 이름 난 의학자이며 중국의 금국,원국 시대의 유완소, 장종정, 이동원, 주진형의 4대 학파인 금원4대가(金元四大家)의  한 명이다. 동원(東垣) 이고(李杲)의 자는 명지이고 호는 동원노인이다. 이름 난 의사인 장원소를 스승으로 모셨고 학술에 있어서도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혼란한 시대 상황 때문에 백성들은 배고픔, 추위,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이러한 요인이 인체의 원기를 쉽게 손상시킨다는 것을 알고 내상학설을 제기하였다. 안으로 비위가 손상되면 온갖 병이 이로부터 생긴다고 생각하여 비위(脾胃)를 조리하고 중기(中氣)를 끌어올릴 것을 강조하였으며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 등 새로운 방제를 스스로 만들었다. 모든 병의 주된 치료를 비위의 치료에서 시작하였다 하여 그를 보토파(補土派)라고 불렀다. 나천익, 왕호고 등이 그의 이론을 이어 받았으며 비위론(脾胃論)·내외상변혹론(內外傷辯惑論)·난실비장(蘭室秘藏)·의학발명(醫學發明)·약상론(藥象論) 등의 의학책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