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 우 (喜 雨 ) / 杜 甫 창덕궁 그 하나

2013. 5. 19. 01:00

 

 

 

                喜         雨

 

                                                   杜   甫

 

 

 

 

          남국한무우     南國旱無雨          남녘나라에 가뭄들어 비가 오지 않더니

 

          금조강출운     今朝江出雲          오늘 아침 강가에 구름이 이누나.

 

 

          입공재막막     入空漠漠           공중에 들더니 비로소 널리 퍼지는구나.           

 

          쇄형이분분     灑逈已紛紛          멀리서 비뿌리며 어지러이 흩날린다.

 

 

          소연고비진     巢燕高飛盡          둥지속의 제비가 높이 날아올라 사라지고

 

          임화윤색분     林花潤色分          숲속의 꽃들은 더욱 색깔이 고와지누나.

 

 

         만내성부절      晩來聲不絶          저녘때가 되어도 빗소리 끊임이 없으니

 

         응득야심문      應得夜深聞          마땅히 밤깊어도 빗소리 들을 수 있겠네.

 

 

 

  창덕궁 동궁전

 

 성정각(誠正閣)의  남문인  영현문(迎賢門)     

      

          성정각 ㅡ 세자가 머물면서 공부하던 곳, 한때는 임금의 편전으로 사용, 순종 때는 내의원으로 사용됨.

                     원래 내의원은 인정전 서쪽의 궐내각사에 있슴.

          誠正 ㅡ 순수하게 집중하고 마음을 바르게 가짐의 의미임.

          영현문 ㅡ <어진이를 맞이한다>라는 의미로 세자가 어진이를 통하여 바르게 공부하여 成業을 이루라는 뜻의 門임.

 

 

 

 

성정각의 누각인 보춘정(동쪽인 杏壇에서 보면 喜雨樓라는 현판이 있슴)

 

           행단(杏壇) ㅡ 원래 살구나무 다섯 그루를 심었으나 한그루는 말라 죽고 네 그루만 남음.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곳이라는 의미.

         報春亭 ㅡ 봄이 옴을 알림이라는 뜻으로 왕세자가 있는 동쪽을 의미하는 현판임.

 

 

    *** 행단이 은행나무가 아니고 살구나무라는 주장

 

        실학자 이수광(李秀光 1568~1628) <지봉유설> " 사문유취(事文類聚)라는 책을 보니

              <杏은 紅杏이다>"라고 하여 붉은 꽃이 피는 杏 ㅡ 즉 살구나무라는 것을 주장함.

 

        茶山 丁若鏞(1762~1836) <아언각비> " 우리나라 사람이 잘못 알아, 공자의 사당 뒤에

               은행나무를 심어 杏壇이라 하였다."라고 잘못을 지적함.

 

    *** 조선 중기에 문인으로 활약하던 윤탁(尹卓 ; 1472~1534)이 성균관 대사성으로 근무하던

               중종 14년(1519년)에 명륜당 앞에 은행나무를 심고 문행(文杏)으로 부른 이후에 전국

               각지의 향교 서원 등에서 이를 본받아 은행나무를 심음.      

     

 

 

 

 **** 중국에서 행단에 심는 나무의 유래

 

           漢 明帝가 산동성 곡부현의 공자의 구택을 방문. 방문 기념으로 교수당(敎授堂) 남은 터에 전(殿)을 건립.

       宋 建興연간(1022년?)에 大殿을 뒤로 이전하고 그 터에 기와를 쌓아 단을 만들고 주위에 살구나무를 심은 데서 유래.

       金 학사 당회영(堂懷英) ㅡ 그 곳을 찾아 杏壇 두글자의 비석을 세움.

 

        *** 살구나무를 심은 이유   1. 과거급제자 어사화 - 살구나무 꽃 ㅡ

                                               / 나까무라 고이치(中村公一)의 <꽃의 중국문화사> : 曲江宴(곡강池), 杏宴(杏園)

                                             2. 살구나무가 일찍 꽃피우고, 일찍 열매가 맺음.  ㅡ> 빠른 成業과 신분보장을 기원.

 

        ** 기타 故事  ㅡ  吳 동봉(董奉)이란 명의(名醫)가 치료비를 받지 아니하고, 중병인 사람에게는 다섯그루,

                                가벼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한그루의 살구나무를 심게하여 杏林을 조성케 하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열매를 쌀과 바꾸어 가난한 백성들을 구휼하였다는 행림춘만(杏林春滿)

                                이라는 고사가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의사는 의술로 선비는 仁術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라는 의미로 심었을 것으로도 추정됨.

 

 

 

관물현(觀物軒)의 현판 집희(緝熙)

 

         ㅡ 어필 갑자년이라고 표기됨.  재위기간 중 갑자년이 있는 영조,순조,고종 중 누가 쓴는지는 미상.

             고종이 즉위 원년인 15살이던 때에 쓴 것이어서 글씨에 幼氣가 있다라는 說도 있슴.

 

 

      緝熙(낳을 집, 빛날 희)의 뜻 ㅡ "계속하여 밝게 빛난다"라는 의미.

 

              詩經 : "심원하신 문왕이시여! 아! 계속해서 밝히시고 공경하시도다."에서 유래한 말.

 

           朱子 : "緝은 이어지는 것이요, 熙는 밝은 것으로 또한 그치지 아니한다."라는 뜻으로

                    "임금(文王)의 밝은 덕이 계속하여 빛난다."라는 의미로 풀이.

 

           英祖 : <緝喜堂詩> " 이 전각은 옛날의 세자의 집이라, 집안에 휼륭한 작품들이 새롭구나. /

                     계속하여 밝게 빛나니, 어진이를 높이어 날로 더욱 친하도다." 

                      /   경희궁에 있는 집희당에 題하여

 

       관물헌은 삼일천하인 갑신정변의 현장이기도 함. 개화당인 金玉均 등이 고종을 경우궁(慶祐宮)으로

     옮기게 한 후에 환궁하면서 전망이 뛰어난 이곳을 작전본부로 삼은 적이 있슴.

 

 

 

관물헌 ㅡ 왕이 자주 머물면서 독서와 접견을 했던 곳. 왕세자와 활발한 토론의 공간임.

              건물 뒷편에 밖으로 달아낸 서고가 있슴.

              동궐도에는 지금의 이름이 아닌 <유여청헌(有餘淸軒)>으로 표기되어 있슴.

 

 

 

희우루(喜雨樓)의 유래

 

    정조 원년(1777년) 가뭄이 들어 서너달 동안 비가 오지 않았으나 이 누각을 중건하자 몇차례 비가 오기 시작하였고. 이 2층 누각을 완성하여 정조가 행차하자 반가운  비가 많이 오다. 그래서 喜雨라는 이름을 내려 이를 오래 잊지 않게 하였다.  /  정조대왕의 문집 홍제전서(弘齊全書) 54권 喜雨樓誌 중에서

 

    宋 문인 蘇軾이 <喜雨亭記>를 지은 이후로 정자 이름으로 많이 쓰임. 

창덕궁 후원 주합루 뒤에도 희우정이라는 정자가 별도로 있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