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9. 15:05ㆍ詩
다 관 (茶 鑵 )
숙 종 대 왕(肅 宗 大 王)
양장굴곡사반사 羊腸屈曲似盤사 손잡이(파제 把提)는 양창자 같이 굽어 있고 사 : 蟲*也
몸통은 뱀이 감싼 것 같구나.
수화교공표리가 水火交功表裏加 물과 불이 서로 공을 들여 안밖에서 더해주네.
청화옥창춘후영 淸畵玉窓春煦永 밝은 창가에 맑은 그림처럼 봄볕이 따사로울 때에,
한짐작설자전다 閑斟雀舌自煎茶 홀로 작설차를 다려 한가하게 따르노라.
**** 숙종대왕이 볕이 따뜻한 봄날 , 잠시 정사(政事)를 잊고 왕 스스로 차를 다려 마시는
모습을 그린 듯한 詩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작설차를 우려내지(沖泡) 아니하고, 다려(煎茶)
마셨다는 점이다. 여기서 다관은 화로에 직접 올려 놓을 수 있는 금속제 차주전자를 말한다.
오늘날 다우님들의 대부분은 차의 종류를 가리지 아니하고 우려내는 충포법으로 차를
마시는 것으로 습관화되어 있고, 또한 이를 당연시 한다는 점이다.
숙종대왕이 이 詩를 쓰신 조선중기 뿐만 아니라 정다산 선생님이나 초의선사께서
한국차를 중흥하신 조선조 후기까지도 차를 오랫 동안 다려 마시는 煎茶法이 일반화되어
통용되어 왔고, 우려 마시는 충포법은 옥로차나 좁쌀차(粟芽茶 속아차) 등 여린 찻잎으로
가공한 일부 차에 지나지 않았음이 한시나 편지글 또는 문집 등에 많이 나타난다.
위의 한시에 나타난 작설차 마저도 어느 정도 자란 어린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
풍부한 광합성 작용으로 차의 풍미가 완연하고, 너무 어린 찻잎이나 싹눈을 채취하지
아니함으로써 차나무를 혹사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채엽(採葉) 제다(製茶)한 차이다.
( ㅡ 초의선사 <다신전 茶神傳> 채다론, 이덕리 선생님<동다기 東茶記> 본문 1조,
다산 정약용 선생님 <경세유표> "각다고" 등 문헌 참조)
흔히 접할 수 있는 중국의 철관음이나 여러 종류의 오룡차의 찻잎 정도의 크기로 보면
적당할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작설차를 다려서 마신다고 하면 대부분의 다우님들께서
의아하게 느끼실 것이 틀림이 없다. 이미 우리는 충포법에 적합한 제다법으로
만들어진 차를 위주로 마셔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조 후기에 이르기까지 약발효 내지 중발효차인 떡차, 돈차 또는 일부
추차(秋茶)까지도 만들어 마시는 것이 대세였던 시기였다. 왜 숙종대왕께서 우려 마시는
작설차를 다려 마셨을까?
그것도 내시들이나 궁인들의 도움도 없이 당신 혼자서 차를 따르고 있는 광경을
가감없이 담백하게 시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조선 국왕들의 백성사랑과 자연사랑
정신이 깊게 배어 있슴이 느껴진다.2~3차례 우려내고 남은 찻잎을 모아서 차주전자에
넣고 숯불에 다려서 마시는 것이다. 그것도 궁인들이 알세라 높은 누마루에 혼자 앉아서......
차농들의 높은 차세(茶稅)에 대한 민원사항 등이 점필재 김종직 선생님의 상소문을
비롯하여 여러 대신들과 지방관들의 보고문 등을 통하여 왕조실록 등에 여러 차례 나타난다.
대왕들의 몸소 검소하심과 검약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대량소비시대인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다우님들에게 꼭 들려 드리고 싶은 구절이 있다.
홍콩 인근에서~요서지방 ~왜에 이르기 까지 왕족이나 귀족들을 파견하던 담로22개를 해외에
설치하였던 백제해상대제국의 백제인들의 생활신조인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褸 華而不侈)
ㅡ 즉 검소하되 누추하지 아니하고, 화려하되 사치하지 아니한다.>라는 말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끝으로 창덕궁 동궁전인 성정각(誠正閣)내 보춘정(報春亭) 누마루 앞마당에 있는 돌화로(石爐),
석지조(石池槽) 돌차부뚜막(石조:부두막 조) 그리고 조그만 주춧돌을 닮은 수인주(燧因柱)에
대한 사진 설명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위에서 부터 시계방향으로 석지조(石池槽), 수인주(燧因柱)와 돌화로(石爐)
석지조 ; 다기나 약탕관을 씻기 위하여 물울 담아두는 돌씽크대 역활.
다탕류(茶湯類)를 많이 준비할 때에는 한시적으로 돌화로 대용으로 사용
ㅡ 석지조 내부까지 열변질과 그으름이 나타남.
수인주(燧因柱) : 부싯돌을 켜서 가운데 원통형 구멍에 담겨있는 마른쑥, 수리취 말려
비빈 것 등에 불을 붙이는 용도로 쓰거나, 불씨를 담아두는 용도로 쓰임.
구멍 내부는 일부 열변질되거나 그으름이 있슴.
*** 석지조 돌절구 등은 강릉 한송사 옛터에 남아 있다고 고려시대 李穀의 詩文 <東遊記>
등에서 나타나나 현재 망실 되었으며, 다른 하나는 북한지역 묘향산의 사찰에 있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 창덕궁 동궁전인 성정각의 2층누각 보춘정 앞마당에 있는 석지조 ,돌화로,
수인주(부싯돌용 발화용 기둥)와 석조(차부뚜막) 등은 우리가 소중하게 지켜야
할 국내 유일한 석제야외 다구류 일습인 셈이다.
다 화 로 명 (茶 火 爐 銘)
- 화로에다 찻물 끓이려 숯불을 피워 놓았는 데, 그 불꽃이 아름다워 한줄 적는다.
숙 종 대 왕
이금위질족상삼덕 以金爲質足象三德 무쇠로 만들고 세발은
세가지 덕을 형상화하여 만들었네.
비목불찬회토유실 匪木不찬灰土維實 아무 나무로나 불피우지 아니하고
재는 거름으로 쓴다.
찬 : 興빼기 두점받침+焚리 : 새추 변 뺀 離
감리교제기리가칙 坎리交濟其理可則 물과 불이 서로 교감하는 그 법리를 알아야 한다.
오행극비기공불식 五行克備其攻不式 오행을 다 갖추어야 하며 그 효능이 법식만을
따르지 않는다.
돌화로(石爐 또는 石風爐) ㅡ 궁중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는 백탄을 숯으로 사용하였으나,
빈번한 사용으로 풍구(風口) 위치 아래까지 화로내부가
열에 의하여 변질 또는 변색된 흔적이 보임.
석다조(石茶竈 ) : 들차를 마실 때에 야외 찻상 겸 차설겆이 할 때 차부뚜막으로 사용.
용도를 몰라서 인지 땅속에 많이 묻히고 상판 일부만 노출됨.
우측 모서리는 깨어지고 용도불명의 시멘트 주춧돌을 배치하여 어색함.
깨어진 청자다완의 재활용 ㅡ 아주 여러 조각으로 잘게 부숴진 청자다완을
강력순간접착제로 붙혀 다화용(茶花用) 화분으로 사용하여 봄.
심겨진 다화는 소박한 우리 들꽃인 씀바귀, 제비꽃, 주름잎과
뜰에서 저절로 난 어린 살구나무 두 그루(小杏壇) 그리고 이름모를 잡풀들 임.
*** 숙종은 세자 때부터 서거할 때까지 일기와 산문,詩를 유초(遺草)한
개인 유고집인 필사본 <明普文稿>가 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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