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오늘의복음]부활 제7주간 금요일(6/06)

2014. 8. 4. 09:56경전 이야기

글제목 : 말씀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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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7주간 금요일(6/06)







    말씀의 초대
    유다인들은 바오로 사도를 죽일 음모를 꾀하다 무산되자 그를 고발한다. 그러나 총독은 공판을 연기하고 그를 감옥에 가두어 둔다. 이제 새 총독 페스투스가 부임하자 유다인들은 다시 바오로를 고발하고 예루살렘으로 보낼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바오로는 그대로 갇혀 있다가 판결을 받겠다고 한다(제1독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뒤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는지 세 번 물으신다. 세 번째 물음에 베드로가 슬퍼하며 대답하자 주님께서는 당신의 양들을 돌보라고 거듭 당부하시며 그에게 닥칠 운명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예수는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5,13ㄴ-21 그 무렵 아그리파스 임금과 베르니케가 카이사리아에 도착하여 페스투스에게 인사하였다. 그들이 그곳에서 여러 날을 지내자 페스투스가 바오로의 사건을 꺼내어 임금에게 이야기하였다. “펠릭스가 버려두고 간 수인이 하나 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갔더니 수석 사제들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유죄 판결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발을 당한 자가 고발한 자와 대면하여 고발 내용에 관한 변호의 기회를 가지기도 전에 사람을 내주는 것은 로마인들의 관례가 아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곳으로 함께 오자,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다음 날로 재판정에 앉아 그 사람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발한 자들이 그를 둘러섰지만 내가 짐작한 범법 사실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바오로와 다투는 것은, 자기들만의 종교와 관련되고, 또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예수라는 사람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뿐이었습니다.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심리해야 할지 몰라서,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 그곳에서 이 사건에 관하여 재판을 받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바오로는 그대로 갇혀 있다가 폐하의 판결을 받겠다고 상소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황제께 보낼 때까지 가두어 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5-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세 번째 던지신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은 베드로에게 아픔이자 슬픔이었습니다. 예수님 곁을 지키지 못했으며, 자신의 안락을 위하여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했던 나약한 모습이 그에게 밀려옵니다. ‘이 나약함이 사랑의 부재였던 것은 아닐까?’ ‘이제 더 이상은 그분을 사랑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소리 없는 불안이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에도 베드로의 마음속 깊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차마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상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으로 똑바로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제 더 깊어지고 강해진 사랑을 베드로가 고백하고 그 사랑의 길을 선택하는 결단으로 이끄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치유이고 위로입니다. 주님과 함께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무거운 그늘 속의 진실을 만나는 어려운 걸음을 선택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일시적 위안이나 도피가 아닙니다. 진리에 따르는 삶, 목숨을 걸고 사랑을 지키는 삶에 대한 초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의 영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영은 우리의 보호자(위로자)이십니다. 성령 송가 ‘오소서, 성령님.’의 두 번째 대목은 이렇습니다.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저희 생기 돋우소서. 일할 때에 휴식을, 무더위에 시원함을, 슬플 때에 위로를.”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 길에 들어서려면 때로 아픔과 슬픔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이로써 치유하시고 지난날의 잘못과 악습에서 벗어나 생기와 위로를 얻도록 이끄시는 ‘영혼의 기쁜 손님’이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요한의 아들 시몬아

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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