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 말씀의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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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을 삼위일체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마태 28,19 참조)에
따라 초기 교회 때부터 이어져 왔다. 삼위일체 대축일이
로마 전례력에 들어온 것은 14세기의 요한 22세 교황 때였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의탁하는 사람입니다.
‘삼위일체’는 어려운 개념과 공식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와 사랑을 뜻하는 말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온 사랑에서 교회는 탄생하였고,
우리는 그 사랑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삼위일체의 사랑에 따른 삶의 길은 일치와 헌신입니다.
그러한 삶을 실천할 것을 다짐하며 기쁜 마음으로 이 미사에 참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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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금송아지로 우상 숭배를 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여 깨뜨린 돌 판 대신에 새 증언을 받기 위한
돌 판 두 개를 들고 시나이 산에 오른다. 모세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경배하며 자신들의 죄악과 잘못을 용서해 주십사고 청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내는 둘째 서간을 마치는 인사를 건넨다.
기뻐하고 자신을 바로잡을 것이며, 서로 격려하는
가운데 뜻을 같이하여 평화롭게 살 것을 당부한다.
이러할 때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제2독서).
바리사이로서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인 니코데모에게
이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당신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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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4,4ㄱㄷ-6.8-9
그 무렵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돌 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시나이 산으로 올라갔다.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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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13,11-13
형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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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18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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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와 관련한 가장 아름다운 성화로 많은 이가 꼽는 작품이
15세기 러시아 정교회의 위대한 성상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그린 ‘삼위일체’입니다. 화가는 성삼위의 모습을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이야기
(창세 18,1-15 참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창세기의 이 장면은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나타난 세 사람을
지극히 환대하는 모습, 그리고 주님께서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삼위일체’ 성화에는 정작 아브라함의 모습은 없습니다.
천사의 형상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이 식탁 위의 그릇에 담긴 음식을
중심으로 살짝 몸을 기울인 채 서로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식탁은 제대를, 그릇은 성작을 닮았습니다.
온화한 분위기와 세련된 색채의 이 그림을 보는 이는
자연스럽게 세 사람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잠길 것입니다.
이 그림을 감상한 영성가 헨리 나우웬 신부는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도 세 거룩한 천사가 나누고 있는 친밀한 대화에 동참하라고,
그리고 식탁에 더불어 앉으라고 부드럽게 초대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성자한테로 몸을 기울이신 성부의 움직임과 성부한테로 몸을
기울이신 성자와 성령 두 분의 움직임은 하나의 움직임을 이루게 되고,
기도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마음이 드높여지고 든든해진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성화에서 신적 신비의
매우 중요한 요소를 깨닫습니다.
바로 초대와 환대를 통한 ‘상호 내주’(相互內住)입니다.
내가 그 안에 있도록, 그가 내 안에 있도록 하는 사랑이 삼위일체의
사랑이며, 우리는 그러한 사랑에 초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날 독일에서 공부할 때 삼위일체에 관한
신학 연수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교수들이 매우
정교하고 치밀한 논리로 삼위일체의 신학에 대한 강연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를 감동시킨 강연은 마지막 날 여든이 넘은
신학자 한 명이 조금 불편한 몸으로 눈을 살짝 감은 채
삼위일체 성삼위께서 서로 초대하고 환대하며 내주하시는 모습을
조용히 이야기하던 모습이었습니다. 그 강연을 들으면서
‘삼위일체의 신비는 아마도 인간이 이해하고
설명하는 진리이기 이전에 그 안에 머물러 살고 숨 쉬는 진리이구나.’
하고 깨달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성삼위께서 초대하시는 그 사랑의 집에 머무르는 은총을 거듭 청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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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Psallite Deo 하느님 기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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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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