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 말씀의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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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을 가슴 깊이 새기는 날이다.
이날 교회는 예수님께서 성목요일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과,
사제가 거행하는 성체성사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의 현존을 기념하고 묵상한다.
전통적으로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목요일을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로
지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목적 배려로 주일로 옮겼다.
그리스도의 성체 축일과 성혈 축일이 따로 있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함께 지내 오고 있다.
오늘 전례
▦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을 깨닫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살아 있는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몸을 모시는 이 미사에 기쁘게 참여하며 우리도
주님 안에 깊이 머무르는 성체성사의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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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베푸신 주님의
은혜를 상기시킨다. 마음이 교만해져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그들을 구해 내신 하느님을 잊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성찬례의 의미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과 친교를
이루기 때문에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시며
이 생명의 빵을 먹는 이는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리실 것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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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양식을 먹게 해 주셨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8,2-3.14ㄴ-16ㄱ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분은 불 뱀과 전갈이 있는 크고 무서운 광야,
물 없이 메마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너희를 위하여 차돌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 분이시다.
또 그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이 몰랐던 만나를 너희가 먹게 해 주신 분이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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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0,16-17
형제 여러분,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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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1-58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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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주님 만찬 성목요일의
마지막 만찬을 다시 한 번 성대히 기념합니다.
교회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에는 일체의 화려함을 피하고, 성령 강림 대축일이
지난 뒤에 거행하는 오늘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에 예수님의 몸과 피로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생명에 대하여 감사하고 마음껏 기뻐합니다.
이러한 기쁨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신심 행위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 뒤에 이어지는 성대한 성체 거동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쉽게도 여러 이유로 아주 드물게 볼 수 있으나,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많은 교회에서는 이날의 성체 거동을
공동체의 중요한 신심 행사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러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성체 거동의 화려한 행렬을 하는 이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성체를 앞세우고 거리로 나온 이유를 생각해 보았을까?’
비록 외적인 성체 거동을 하지 않더라도 성체 성혈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게 하는 오늘 우리도 이러한 질문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거리로 나가(야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 시절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의
성체 거동에 앞서 행한 강론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강론에 따르면, 다름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간직하고
그 안에 머물기 위하여 거리로 나간다고 합니다.
곧, 길이신 주님 안에 머물려면 단지 제자리에,
제 보금자리에 ‘머물러서’ 안 되므로 거리로 나선다는 것입니다.
교황님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의 근본정신을
‘머물고 기억하며 걷는 것’이라고 요약하시며 다음과 같이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 머물기 위하여 걸으면서 그분의 행위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유념하면서 걸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기억 속에서 걸어야 하고, 기억하면서 걸어야 합니다.”
이 기억은 사랑의 기억일 것입니다. 그 사랑은 안락한 곳에
머무르는 사랑이 아니라 정의를 위한 투신과 아픔을 아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거리로 나서는 것은, 벗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는 사랑이 바로 주님의 사랑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리에서 봉헌하는 미사’를 두고 여러 말이 있었음을 압니다.
이웃에 대한 참된 사랑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과 함께
‘거리’로 나서게 하며, 이것이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길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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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O Sacrum Conviv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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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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