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오늘의복음]연중 제12주간 월요일(6/23)

2014. 8. 4. 10:15경전 이야기

글제목 : 말씀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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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간 월요일(6/23)





    말씀의 초대
    아시리아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임금 호세아를 잡아 가둔 뒤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간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몰락한 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율법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키라고 촉구하신 것을 듣지 않은 결과이다(제1독서). 주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한다고 지적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자기 눈의 들보를 빼내야 이웃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라고 권고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 앞에서 물리치시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7,5-8.13-15ㄱ.18 그 무렵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는 온 나라를 치러 올라왔다. 그는 사마리아까지 쳐 올라와 그곳을 세 해 동안 포위하였다. 마침내 호세아 제구년에 아시리아 임금은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가서 할라와 고잔 강 가 하보르와 메디아의 성읍들에 이주시켰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들을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빼내시어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 저희 하느님께 죄를 짓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풍속과 이스라엘 임금들이 만들어 낸 것에 따라 걸어갔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와 선견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 경고하셨다. “너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나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보낸 모든 율법대로 나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켜라.”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주 저희 하느님을 믿지 않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목을 뻣뻣하게 하였다. 그들은 그분의 규정과 그분께서 저희 조상들과 맺으신 계약, 그리고 자기들에게 주신 경고를 업신여겼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크게 노하시어 그들을 당신 앞에서 물리치시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제 지낸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의 여운을 느끼며 성체성사에 따른 삶에 대하여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오늘 복음을 묵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들보’와도 같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면서도 공동체 안의 이웃에 대한 비판을 일삼는 자들의 변화를 촉구하십니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내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문득 반성과 성찰의 순간에도 교묘히 움직이는 우리 안의 자기중심주의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 성찰’이 단지 이웃을 ‘비판’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경우가 너무나 잦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철저히 살피고 ‘뚜렷이 보는’ 힘을 얻은 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 깊이 머물러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완전한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형제의 잘못을 합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가?’ 하고 성찰할 때에는 형제는 여전히 객체로 남아 있는 가운데 ‘나의 옳음’만이 관건일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나의 옳음’이 아니라 형제를 ‘중심’으로 초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담고 있습니다. 곧 형제가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 것인지가 관심사가 됩니다. 성체성사에 따른 삶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은 무엇보다 교묘한 자기중심주의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고 깨닫습니다. 일상의 소소한 행위라 할지라도 이웃을 중심에 두고 진심으로 그의 처지에서 그의 치유와 다시 일어섬을 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성체성사에 따른 삶일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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