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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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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성심에 대한 공경은 17세기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의
요한 외드 성인의 노력 등으로 점점 보편화되었다.
성모 성심에 대한 신심은 예수 성심을 공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이 신심은 별도로 날을 잡아 기념하던 19세기 전까지는
예수 성심 미사에서 기억하는 형태로 전례 안에 들어왔다.
1942년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님의 파티마 발현 25주년을 맞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세상을 봉헌하고,
이 기념일을 온 교회가 지내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8월 22일이었으나
1996년부터는 예수 성심 대축일의 다음 날로 옮겨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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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예언자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노래한다.
이사야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그의 영혼은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한다.
그분께서 구원과 의로움을 주셨기 때문이다.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제1독서).
예수님의 소년 시절의 모습이다.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토론하고 있는 소년 예수님을 부모가 황급히 찾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느냐고 반문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내셨고,
마리아께서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셨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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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1,9-11
내 백성의 9 후손은 민족들 사이에, 그들의 자손은 겨레들
가운데에 널리 알려져, 그들을 보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주님께 복 받은 종족임을 알게 되리라.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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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5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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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날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로 지냅니다.
이 신심은 1917년 포르투갈의 파티마에 발현하신 성모님을 통하여
오늘의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의 마음은 우리에게 더없는 위로입니다.
오늘 복음이 알려 주듯, 성모 성심은 예수님에 대한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시는 성모님의 마음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깨끗하신 성모님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죄와 고통과 번민을 아시고 그것을 품어 주십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울고, 기대고,
그리고 다시 구원의 빛을 향할 용기를 얻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을 특별히 공경하는 오늘,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의 무너진 마음을 바라보고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자기 자신의 우울한 마음으로 절망에
빠진 많은 이를 성모님의 마음에 맡겨 드리고 싶습니다.
은사 신부님이 번역한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의
『우울한 마음의 의미』라는 책을 새 신부 시절에 읽은 적이 있습니다.
특히 ‘우울한 마음’이라는 말이 긴 여운을 주었습니다.
은사 신부님은 사제로서 사람들을 만나며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 아주 좋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우울한 마음으로 신음하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이 겪는 ‘남몰래 아파하는 시간들이
얼마나 길고 불안하고 고독한지’를 안타깝게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번역하였다고 밝힙니다.
역자 신부님의 이러한 말씀에 그때는 큰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제로 살아가면서, 또 이제 본당 사목자로 지내면서,
무너진 마음을 안고 사는 많은 사람에게서 우울한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과르디니 신부는 우울한 마음에 위대한 것이 깃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울함은 근본적으로는 사랑의 동경,
누구보다 더 고귀한 사랑의 동경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울한 마음, 무너진 마음이 일어서려면
사람의 노력만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스며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성모 성심을 특별히 공경하는 오늘,
성모님의 옷자락을 잡으며 그분의 전구를 간절히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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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마리아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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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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