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 말씀의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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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야킨이 주님 보기에 악한 짓을 많이 저지르며 유다를
통치할 때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예루살렘을 침공한다.
여호야킨은 항복하여 그의 포로가 된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여호야킨을 포함해 많은 지도층 인사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간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하신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지만, 실행하지 않는 자는
비가 오면 쓸려 갈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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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임금은 여호야킨과 건장한 모든 사람을 바빌론으로 데려갔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4,8-17
여호야킨은 열여덟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느후스타인데 예루살렘 출신 엘나탄의 딸이었다.
여호야킨은 자기 아버지가 하던 그대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때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도성을 포위하였다.
이렇게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동안,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이 도성에 이르렀다.
그러자 유다 임금 여호야킨은 자기 어머니와 신하들,
대신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빌론 임금에게 항복하였다.
그리하여 바빌론 임금은 그의 통치 제팔년에 여호야킨을 사로잡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네부카드네자르는 주님의 집에 있는
모든 보물과 왕궁에 있는 모든 보물을 내가고, 이스라엘 임금 솔로몬이
주님의 집에 만들어 놓은 금 기물들을 모조리 떼어 냈다.
또한 온 예루살렘 주민과 모든 대신과 모든 용사 등 포로 일만 명과
모든 장인들과 대장장이들을 끌고 갔다. 그리하여 나라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 말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여호야킨을 모후와 왕비들,
내시들과 나라의 고관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그들을 끌고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데려간 것이다.
바빌론 임금은 또 훌륭한 사람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등,
전투할 수 있는 건장한 모든 사람을 바빌론으로 데려갔다.
그런 다음에 바빌론 임금은 여호야킨의 삼촌인 마탄야를 그 뒤를 이어
임금으로 세우고, 이름을 치드키야로 바꾸게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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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1-2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자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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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번역된 성경 원문의 낱말은
‘사추덕’의 하나인 ‘현명’(지덕)과 같은 어원입니다.
이 말에 잠시 머물면서 진정 지혜롭고
슬기롭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성찰해 봅니다.
그리스도교 사상이 꽃핀 중세의 윤리학에서 지덕인 ‘현명’은
올바른 ‘실행’을 가능하게 하는 덕이자 능력으로 칭송되었습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여러 덕만이 아니라 정의(의덕), 용기(용덕),
절제(절덕)와 같은 사추덕조차도 모두 근본적으로
‘현명’이라는 지덕에 의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현명은 ‘모든 덕의 어머니’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현명’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구체적인 상황과 사건 속에서
올바른 행위의 목적을 잘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선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행위에는 물론 사추덕이라는 인간적인 덕만이 아니라
믿음, 희망, 사랑이라는 ‘향주덕’(向主德)을 요구한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윤리학의 기본 원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께서
선사하시는 이 세 가지 덕을 통하여 조명된 사추덕을 비롯한
인간적인 덕성은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몇 년 전에 선종한, 우리 시대의 뛰어난 영성가이자 성서학자인
전 밀라노 대교구장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은 덕에 대한
자신의 간결한 묵상집에서 그리스도인의 ‘현명’에 대하여
아주 깊이 있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는 참으로 슬기롭고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빛 안에서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되, 그 귀결에 대한
분명한 책임감과 건전한 현실 감각을 지녀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현명’이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요소를 드는데,
단호함과 주의력입니다. 올바른 선택을 흔들리지 않고 실행하며,
변화하는 상황에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길을 주의 깊게 찾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지혜는 무엇보다도
침묵과 내적 여유 속에 선입관과 욕심에 따른 성급한 결정을 피하려는
노력을 반복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권고합니다.
오늘 복음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현명하게 실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참으로 슬기로운 삶을 다짐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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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사/곡:박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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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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