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유명 부대 (2) - 상남자중의 상남자들, 프랑스 외인부대 (하)

2014. 8. 12. 20:16병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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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유명 부대 (2) - 상남자중의 상남자들, 프랑스 외인부대 (하)
맛있는 MEALitary
기사입력 2014.07.01 11:31:16  |  최종수정 2014.07.09 1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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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부대의 그림자 

   1831년 부대 창설 후 외인부대는 현재까지 약 3만회가 넘는 전투를 수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사실상 프랑스가 개입한 거의 모든 국내외 군사적 분쟁에 투입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특히 외인부대는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양적, 질적 향상을 거듭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명실상부한 프랑스의 전략기동군으로써 그 소임을 다하였다. 하지만 외인부대의 태생적 배경상 식민지국가들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전쟁에 주로 투입되며 제국주의 프랑스의 용병집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도 갖게 된다. 

   외인부대는 태평양 전쟁 이전부터 인도차이나 반도에 전개되어 있었으나 일본군의 인도차이나 반도 침략과정에서 전개되어있던 부대원 대다수가 포로로 잡히거나 사살되는 비극을 맞는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 베트남에서는 호치민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프랑스에 대한 독립을 선언하게 되고 프랑스는 이에 반발하여 혁명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외인부대를 중심으로 하는 진입부대를 파병하면서 전쟁이 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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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비엔푸에 낙하하는 프랑스 식민군 공수부대 (사진:위키미디어)



    전쟁은 약 7년에 걸쳐서 진행 되었는데 1954년 베트남 군이 디엔비엔푸 비행장을 점령하는 것으로 사실상 막을 내린다. 프랑스 군의 총 사상자는 약 4만 여명이었는데 외인부대는 이중 25%가 넘는 1만 1천여명의 사상자를 기록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여론은 베트남을 지지하는 분위기였고, 외인부대는 막대한 사상자를 기록하고 나서도 전혀 그 보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괴감에 빠질 새도 없이 곧이어 재편성을 마치고 알제리로 배치된다. 알제리에서도 독립전쟁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알제리에서 역시 외인부대가 진압의 선봉대로 투입되었던 것이다. 

   약 2년에 걸친 전쟁에서 외인부대는 전술적인 승리를 거듭하였으나, 이미 1960년대에는 전세계의 여론은 물론이고 프랑스 내에서 조차 명분 없는 식민지 전쟁을 반대하는 쪽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여론이 기울자 마침내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의 독립을 승인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비밀회담을 개최하였다. 인도차이나를 이어 알제리에서도 무의미한 전투에 투입되어 희생을 거듭한 외인부대의 불만은 상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알제리는 외인부대의 고향(당시 외인부대 사령부도 알제리 주둔 중)이라고 부를 정도로 외인부대에게는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프랑스 정부의 알제리 독립보장에 대한 반발로 제1외인공수연대를 주축으로 하는 일부 병력은 쿠테타를 일으켜 샤를 드골을 비롯한 프랑스 내각에 알제리 독립 승인을 반대할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준비도 없고 정치적인 목적도 없는 이들의 쿠테타는 쿠테타라기 보다는 일종의 집단 항명 에 불과하였고, 결국 4일만에 제1외인공수연대가 부대에 복귀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된다. 쿠테타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제1외인공수연대가 해체되고 이에 가담한 수십 명의 외인부대원이 불명예 전역하는 등 알제리 쿠테타는 외인부대 역사의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콜웨지 작전과 외인부대의 재조명 

   알제리 사태 이후 한동안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외인부대는 1978년 아프리카의 자이르에서 발생한 반군들의 테러활동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되어 재조명을 받게 된다. 당시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자이르에서 3,000여명 규모의 무장 반군들이 탄광촌인 콜웨지 마을을 습격하여 수십 명을 학살하고 당시 탄광촌에 거주하던 유럽기술자 및 그 가족들을 인질로 잡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당시 자이르는 벨기에의 영향력이 큰 곳이었지만 벨기에는 독자적은 군사작전을 감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다수의 프랑스 인이 억류되어 있던 관계로 프랑스가 사태에 직접 개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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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웨지에서 전투 중인 제2외인연대 병사들 (사진:위키미디어)

   프랑스 정부의 작전 승인 명령 25시간 만에 코르시카에 주둔하던 제2외인 공수연대는 약 6,000km를 날아 콜웨지에 도착하였다. 그 병력 규모는 약 650명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실시된 몇 안되는 대규모 공수작전이었다.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 되어 작전개시 후 3일만에 프랑스 정부는 공식적인 작전종료를 발표한다. 

   당시 외인부대의 전과는 사살 247명, 포로 163명 으로 49: 1에 달하는 전투교환비를 보여주며 외인부대의 명성이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유감없이 발휘했다. 

   콜웨지 작전이후 전 세계에 불어 닥친 탈 냉전화의 바람과 대규모 전면전의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면서 외인부대의 명성을 떨칠만한 대규모 전투는 없었지만 91년 걸프전, 93년 발칸분쟁, 94년 예맨 사태, 2011년 이라크 전쟁, 그리고 2014년에 발생한 말리 사태까지 프랑스가 개입한 해외 분쟁에 최선봉으로 파견되어 외인부대의 눈부신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Legio Patria Nost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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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자: Jastrow
출처 : 위키미디어
http://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French_Foreign_Legion?uselang=ko#mediaviewer/File:Foreign_Legion_Bastille_Day_2013_Paris_t092730.jpg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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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인부대는 항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특수부대가 아닌 프랑스 정규군의 일부이다. 하지만 외인부대에는 일반 정규부대들과는 다른 확실한 무언가가 존재 한다. 

   외인부대의 부대 구호는 ‘Legio Patria Nostra’ 인데 이것을 직역하면 ‘(외인)부대는 나의 조국’ 이라는 의미이다. 알다시피 외인부대 지원자들은 국적도 다양할 뿐더러, 이들의 입대 동기 또한 국적만큼이나 다양하다. 모험을 동경하는 사람부터 금전적 이익을 원하는 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이들을 하나로 뭉칠 구심점은 어찌보면 그들이 속해 있는 ‘외인부대’ 그 자체일 수 밖에 없다. 

   사실 보통의 경우 군대라는 전문화된 무력집단이 소속국가가 아닌 그 집단자체에 대해 충성할 경우 자칫 위험한 사태가 벌어질 개연성이 충분하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알제리 반란 사태가 그 좋은 예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외인부대원들의 출신국가에 대한 고려 없이 무력투사가 가능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을 주축으로 하는 추축군에 맞서 물불가리지 않는 활약을 보여줬던 외인부대의 부대원들 중 상당수는 독일계 병사들이었다. 이는 외인부대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소속감이나 정체성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전세계에서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가장 격의 없이 지내는 곳은 외인부대가 유일하다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 

   외인부대의 특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특유의 복장이다. 밀리터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 이라도 한번쯤은 봤을 법한 것이 프랑스군 특유의 깡통모자 즉 ‘캐피’ 인데 그 기원은 과거 19세기까지 올라가는 유서 깊은 군모이다. 사실 ‘캐피’ 자체는 외인부대만 썼던 것은 아니고 1940년대 이전까지는 프랑스군이 제식으로 착용해오다가 점차 도태시킨 물건이다. 외인부대를 제외하면 1982년 프랑스국가헌병대(프랑스의 경우 파리등 대도시를 제외한 지방지역의 치안은 국가헌병대가 담당)를 마지막으로 캐피를 쓰는 부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아무튼 현재는 하얀캐피와 검은캐피 즉 ‘캐피블랑(Kepiblanc)’ 과 ‘캐피느와(Kepinoir)는 외인부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며 그 전통을 이어내려 오고 있다. 

외인부대의 오늘과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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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MoD/Crown Copyright/MOD
출처 : http://www.defenceimagery.mod.uk (Open Government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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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외인부대라 하면 일체의 과거를 묻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외인부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 입대지원자들 대다수가 탈영병, 범법자, 테러리스트, 각종 범죄자등이 득실대는 것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묘사는 터프하고 거칠기로 이름난 외인부대의 이미지와 제법 잘 맞아떨어지므로 점점 확대 재생산되는 경우가 많은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문은 소문일 뿐’. 

   사실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아예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전산상으로 간단히 신분을 조회하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앞서 말한대로 전장의 총알받이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던 관계로 ‘잘싸워줄 놈’ 뽑으면 됐지라는 인식이 존재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현재 유럽에서 공공의 적으로 통하는 전직 나치 무장친위대 출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인터넷에 전화 한통이면 이 사람이 오늘 점심으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갔는지, 일식집 스시를 먹었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편리한(?) 세상이 됐다. 또한 냉전과 대규모 전면전의 위협이 사라진 오늘날 전세계적인 감군 추세에서 갈곳 잃은 명문부대 출신 예비역들이 득실한 세상이다. 굳이 잠재적 시한폭탄을 받아줄 이유가 없는 셈이다. 

   따라서 단순한 경범죄나 폭행 등을 제외한 살인, 강도 등의 강력범죄 전과자는 여지 없이 심사과정에서 탈락행이며 만약 심사과정에서 인터폴의 수배를 받는 전직(?)테러리스트나 중 범죄자였음이 드러날 경우 현장에서 체포될 각오를 해야 한다. 이렇게까지 철저한 신분조회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프랑스 외인부대는 더 이상 전장의 총알받이 소모품이 아니라 최첨단 하이테크 무기로 무장한 21세기 프랑스의 최정예전략기동부대 이기 때문이다. 

현재 외인부대는 보병, 기갑, 공병, 공수로 구성된 8개의 연대와 1개의 반(伴)여단 그리고 1개 분견대의 편제를 유지하는 군단급 부대로써 구성원은 장교 450여명, 하사관 1,600여명을 포함하여 총 9,000여명 수준이다. 그 중 한국인 대원수는 약 100여명 정도로 대부분이 전투병과에 배치되어 있으며 외인부대 내에서 상당히 평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외인부대는 특수부대가 아닌 정규부대라고 설명했으나 전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부대 출신들도 체력테스트에서 상당수 탈락할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프랑스어 수업을 포함한 12주 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무사히 수료하면 드디어 외인부대의 상징인 캐피블랑을 쓸 수 있게 되는데 기본 복무연한은 5년이며 5년의 복무연한을 모두 채울 시 프랑스 시민권 및 연금 수령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 신병기준으로 급여는 월 200만원 정도 수준이지만 각종 전투수당, 파병수당 등이 더해지는 관계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제3세계 국가의 지원자들이 폭증하는 상태라고 전해진다. 

   앞서 수차례 언급한대로 외인부대는 프랑스의 신속대응군으로써 정치적으로 민감한 해외분쟁 파병시 최선봉으로 투입되어 그 임무를 다해오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수 있다. 

   첫번째는 정치적인 문제이다. 아무래도 분쟁지역에 최선봉으로 투입되는 만큼 그 임무의 위험정도는 상당한 수준일 수 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일 징병제 국가인 프랑스에서 국제분쟁 지역에 자국국민이 파병되어 전사했을 경우 그에 미치는 정치적 파급효과는 결코 작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모여든 자원입대자들로 구성된 외인부대의 경우라면 그에 대한 정치적인 부담감은 상대적으로 덜할 수밖에 없다. 

   두번째는 외인부대의 전문성이다. 현재 프랑스는 의무 복무기간은 약 10개월이며, 대체사회봉사를 신청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갈수록 하이테크화 되는 전장환경에서 불과 수개월의 복무경험을 가진 병사들이 우수한 전투력을 발휘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외인부대의 경우 최소 의무복무 기간이 5년에 달할 뿐더러, 입대자원 자체도 전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부대 출신인 경우가 허다한 만큼 실전경험도 풍부한 편이다. 이러한 점들이 프랑스가 전략기동부대로써 외인부대를 보유 하는 주요 요인들이라고 볼 수 있다.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사라진지 20여년. 전 세계는 여전히 무장 핵평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이 덕택에(?)국가간 대규모 전면전의 위협은 상당부분 사라진 상태이다. 이와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 대다수 국가들의 군비감축이 진행중이다. 특히 딱히 적대국이 없다시피한 유럽의 경우 가장 큰 폭으로 감군이 진행중인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무장중립국의 모델처럼 여기는 스위스 같은 경우 아예 군대를 폐지하는 것을 국민투표에 붙이기도 했을 정도이다. (2013년 9월22일 부결 됨.) 

  프랑스의 경우도 군비축소와 더불어 조만간 징병제에서 모병제로의 전환이 확실시 됨에 따라 프랑스 정규군 또한 현재의 외인부대와 같은 소수정예 간전문 직업군인 체제로 개편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따라서 외인부대도 언제까지나 현재의 군단급 편제를 유지할 수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세계화의 추세에 맞물려 국가간, 대륙간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가간 이해관계의 틈새에서 테러리즘의 위협, 국지적 무력분쟁의 싹은 언제나 자라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한물 갔다고는 해도 프랑스는 여전히 열강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국가고 다른 열강국가들이 그런 것 처럼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에서의 영향력은 아직도 상당한 편이다. 그리고 이런 식민지 국가들은 대체적으로 정치적 불안요소가 상존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필요시 언제든 무력을 투사할수 있는 정예부대의 존재 가치는 너무나 절실하다. 

   이러한 프랑스의 이해 관계와 외인부대의 명성이 사라지지 않는한 프랑스 외인부대의 전통과 역사는 과거 2세기에 걸쳐 그랬던 것처럼 21세기에도 지속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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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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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준
장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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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권사 기획팀에 근무중인 밀리터리 매니아. 알아두면 뼈가되고 살이되는 스토리 중심의 밀리터리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