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유명 부대 (3) - 창공의 울부짖는 독수리들 (상)

2014. 8. 12. 22:21병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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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유명 부대 (3) - 창공의 울부짖는 독수리들 (상)
맛있는 MEALitary
기사입력 2014.07.09 10:55:12  |  최종수정 2014.07.28 11:12:37

  『 공수부대라는게 있는데 낙하산을 메고 비행기에서 뛰어 내린다는 거야 왠지 멋있어 보여서 지원했어 』(미드밴드 오브 브라더스 中) 

   위 대사는 2001년 출시되어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미드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대사 중 일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에 전개되어 굵직굵직한 전투를 수행한 미국 제101공수사단을 배경으로 한 논픽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였는데 총 10부작인 이 드라마는 매화 첫 장면에서 당시 실제 101공수사단 예비역들을 출연시켜 인터뷰를 하는 형식을 도입해 신선한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이번 화에서는 제2차 대전 당시 유럽의 창공을 누비며 전사(戰史)에 영원히 기록될 만한 업적을 쌓은 미국 제101공수사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죽음의 사신 공수부대 

   101공수사단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공수부대란 어떤 부대인지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다들 알다시피 공수부대란 항공기를 이용해 고공에서 낙하하여 기습적으로 적의 의표를 찌르는 부대를 말한다. 한국의 경우 공수부대 = 특전사 = 특수부대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틀린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일한 공수부대가 특전사(특수전사령부) 소속이며 실제로도 특수전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특수부대로 칭할 뿐이다. (특전사의 영문명도 KSF, Korean Special Force) 따라서 국가마다 상이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공수부대를 정예부대로 취급하기는 해도 부대의 임무나 규모 등은 일반적으로는 보병과 같은 정규부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공수부대는 왜 정예부대로 취급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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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가든작전에서 강하중인 공수부대원들(사진:위키미디어)



   첫째, 포위되기가 쉽다. 공수부대의 특성상 작전 투입지역은 전선(戰線)이 아닌 적진 깊은 곳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 보병부대의 경우 적에게 포위됐다는 사실 자체로 집단적 패닉에 빠지기가 쉬운데 공수부대는 전선일대가 아닌 적의 후방 깊은 곳에 낙하하여 임무를 수행한다. 투입될 때부터 적에게 포위될 것을 예상하고 투입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아군이 전선을 돌파하지 못하거나 돌파하더라도 타이밍을 맞추지 못할 경우 투입된 부대원들은 전멸할 수 밖에 없다.일례로 일반 보병사단 같은 경우 사령부는 전선 수킬로~수십킬로 후방에 위치하여 지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공수부대의 경우 전후방 구분이 없기 때문에 투입되자마자 사단장 및 사령부 참모진들도 소총을 들고 전투에 합세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할 정도이다. 

   둘째, 중화기를 소지하지 못한다. 낙하산으로 공중에서 투입되는 공수부대의 특성상 야포나 전차 등의 중화기 화력지원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적의 기갑부대에 노출이 될 경우 일방적인 학살을 면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공수부대용 경전차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시도되기도 했으나 수송기의 탑재능력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전차를 공수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며 실제로도 과거 일부 도입되었던 공수전차들은 현재 전량 퇴역한 상태이다. 따라서 공수부대의 화력은 분대 지원화기, 박격포 정도 수준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셋째,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제2차대전 당시 주요국들의 공수부대는 보통 자기몸무게 만큼의 장비를 몸에 착용하고 대공화기가 빗발치는 적진 상공 수천 피트에서 낙하산 하나에 의지에 몸을 날렸다. 이들은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일주일 분의 탄약과 식량을 갖고 투입이 되었다.이는 작전 투입 후 사실상 재보급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공수부대원들은 아군 주력부대와 랑데부가 실패할 경우 임무지로부터 전선 후방까지 수십~수백 킬로미터를 자력으로 돌파하여 귀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따라서 공수부대원들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은 물론 우수한 전투기술, 생존기술 등을 요구받았다. 

   공수부대는 위와 같은 악조건 하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그 나라의 엘리트 부대로 취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수부대의 기원 

   이론상 공수부대의 운용에 처음 관심을 보였던 곳은 미국이었고 이어 이탈리아가 최초로 공수훈련을 실시하기는 했으나 중대급의 소규모 공수훈련으로써의 실험적인 성격이 강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공수부대를 최초로 전력화한 곳은 소련이었다. 1930년대부터 본격적인 공수부대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던 소련은 1935년 낙하산과 글라이더를 이용해 군단급 공수훈련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장차전에 있어서 공수부대의 전략적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가장 먼저 공수부대를 실전에 투입한 나라는 바로 독일이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공수부대는 독일 공수부대 (팔쉬름 예거, Fallschirm - Jaeger) 이다. 이는 세계최초로 공수부대를 전력화 하여 실제 전투에 투입한 것이 독일 공수부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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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에말요새 공략 직후의 독일공수부대원들
사진:German Federal Archive
출처: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Fort_Eben-Emael#mediaviewer/File:Bundesarchiv_Billd_146-1971-011-27,_Belgien,_Eben_Emael,_Fallschirmj%C3%A4ger.jpg
(CC-BY-SA-3.0-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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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세계대전 당시 기갑부대가 주력이 된 독일군의 주공은 벨기에와 프랑스를 연한 아르덴 고원지대를 돌파하여 프랑스를 침공하였는데 이때 벨기에는 프랑스의 마지노선(Maginot line)에 필적할 만한 난공불락의 요새 에반에말(Eben emael) 요새를 보유 하고 있었다. 요새 전면에 일반 보병사단과 기갑사단을 투입할 경우 상당한 희생이 불가피한 상태였는데 이때 독일군은 공수부대를 전격적으로 투입하여 단 24시간 만에 에반에말 요새를 점령하였다. 

   이때 독일 공수부대의 전사상자는 불과 30여명으로 전광석화와 같은 독일 공수부대의 활약에 전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독일은 1943년 크레타 공수작전에서 독일군이 보유한 공수부대원의 2/3가 전사하는 피해를 입으면서 대대적인 공수작전을 기피하게 되었고 이때를 기점으로 독일 공수부대의 위용은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반면 독일의 팔쉬름예거, 영국의 레드데빌스 등 유럽 공수부대들의 활약을 눈 여겨 보던 미국은 1942년 기존 제82, 제101 보병사단을 공수사단으로 재편하면서 본격적인 공수부대의 육성에 나서게 된다. 



어둠속의 강하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독-소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던 소련은 스탈린그라드 공방에서 독일군을 격멸함으로써 전쟁의 주도권을 바꿔 쥐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수백만의 병력을 잃은 소련군은 연합국에 유럽전역에 ‘제 2전선’ 을 열어줄 것을 줄기차게 요청했다 

   결국 본격적인 유럽침공에 앞서 이탈리아에 상륙하여 교두보를 마련하여, 이탈리아를 항복시키고 여세를 몰아 남쪽에서부터 독일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합국의 이탈리아 침공작전이 개시된다. 

   이때 2년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며 준비하던 제82공수 사단도 이탈리아전선에 전개 되었는데 이탈리아 전선은 당시 독일공군 사령관이었던 케셀링 원수가 지휘하는 수비대의 완강한 저항에 지지부진한 전투를 계속했다. 그러던 사이 마침내 1944년 6월 6일 전사(戰史)에 영원히 기억될 지상최대의 작전 즉,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이뤄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탈리아 방면에 배치되었던 제82공수사단과 본토에 주둔 중이었던 제101공수사단이 이 작전에 같이 투입되면서 공수부대란 어떤 존재인지를 화끈하게 보여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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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상륙작전 출격직전 아이젠하워 사령관의 훈시를 듣고있는 101공수사단 부대원들 (사진: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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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1공수사단은 연합군 본대의 상륙에 앞서 6월6일 새벽에 노르망디 지역 전역에 투입되어 주요 도로 철도 통신시설 등을 장악, 파괴하고 독일군의 포대를 파괴하여 노르망디 해안의 유타 섹터에 상륙 예정인 미국 제4보병사단을 지원할 것을 지시 받는다. 하지만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 일뿐. 

   6월5일 저녁 7,000여명 가량의 101공수사단 부대원들을 실은 1,400 여대의 C-47 수송기가 영국 전역의 비행장에서 노르망디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 풍경은 너무도 당당한 것이었지만 대규모 수송기 편대를 발견한 독일군 대공포대가 불을 뿜기 시작하면서 노르망디 해안의 밤하늘은 생지옥으로 변했다. 

   공수작전 당일 노르망디 지역에는 짙은 먹구름이 끼면서 수송기 승무원들은 위치를 헷갈려 하기 시작했고 지상에서 쉴새 없이 뿜어대는 빗발치는 대공포화를 피해 지그재그로 비행하면서 수송기 내부에 있던 공수부대원들은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면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게다가 대공포화에 피격되면서 잇따라 불꽃으로 변해 굉음을 울리며 곤두박질치는 아군 수송기들을 보면서 수송기 승무원들은 패닉상태에 빠져든다. 

   그러던 와중 선두에서 비행하던 수송기 한대가 피격을 우려한 나머지 강하 예상 지점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병력들을 강하시키자 후속하던 수송기들도 잇달아 병력들을 강하시켰다. 공수부대원들은 어지럽게 밤하늘을 수놓는 대공포화의 줄기와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 굉음소리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지경이었고 수송기 내부에 강하등이 켜지자 영문도 모른채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 난장판의 한가운데서 여러 명의 중대장 및 대대장들이 전사 또는 행방불명 되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일반적인 경우 이 지경이 되면 부대가 와해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공수부대원들은 혼돈의 한 가운데서도 피아식별을 통해 적게는 3~4명 많게는 수십명씩 짝을 이루어 소규모 전투부대를 즉석에서 조직하여 임무를 수행하였다. 대대와 연대가 섞인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제82공수사단 병력들과 제101공수사단 병력이 서로 뒤엉켜 혼성 전투부대를 만들기도 했다. 

   이 소규모 전투부대들은 지휘계통이 사라진 와중에 스스로 임무를 찾아 독일군 대공포대를 파괴하고 이동중인 독일군 수비대를 기습하여 장성들을 사살하는가 하면 주요 극비문서를 탈취 하는 등 어마어마한 전과를 올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렇게 넓은 지역에 공수부대원들이 골고루(?) 분산되어 버리자 패닉에 빠져 버린 건 독일군이었다. 한 밤중에 여기저기서 소총소리가 들리고 수류탄 폭음이 들려오자 당황한 독일군은 수십만의 공수부대가 출현했다고 착각하고 우왕좌왕 댔다. 

   결과적으로 이들 공수부대원들의 활약은 매우 주효해서 독일군의 초기 반격작전을 저지 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그날 밤까지 최초 투입된 7,000 명의 공수부대원 중 1,600여명이 전사하거나 행방불명 되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장효준
장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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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권사 기획팀에 근무중인 밀리터리 매니아. 알아두면 뼈가되고 살이되는 스토리 중심의 밀리터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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