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는 감성여행] 강릉 오죽헌①--겨레의 어머니ㆍ민족의 스승 태어난 성지 /헤럴드경제 기사

2014. 9. 1. 11:19여행 이야기






       


[천천히 걷는 감성여행] 강릉 오죽헌①-

-겨레의 어머니ㆍ민족의 스승 태어난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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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남민 기자] 우리 역사상 최고의 현모양처로 칭송받는 신사임당의 목소리는 어떠했을까. 남편에게 바가지는 긁지 않았을까. 일곱 자녀나 낳아 키우면서 언성을 높인 일은 없었을까. 

    강릉 오죽헌을 여행하던 나에게 최대 관심사는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찼다. 신사임당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의 여행, 한여름의 무더위도 느낄 수 없을 만큼 궁금증으로 가득 찼다. 눈으로 보는 여행이라기 보다 마음 속으로의 여행을 한 것 같다.

   1504년(연산군 10) 아버지 신명화(申命和)와 어머니 용인이씨 사이에서 다섯 딸 중 둘째 신인선(申仁善ㆍ1504~1551)이 태어났다. 

   신인선이 태어난 곳은 강릉의 북평촌으로, 어려서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 시와 글씨에도 재주가 있었으며 감성이 풍부한 소녀였다. 그리고 둘째 딸로서 늘 어머니 곁에서 함께 말벗이 되어주며 생활했다. 

   신인선은 강릉 외가에서 태어나 결혼 후에도 한동안 이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 이씨 역시 강릉 외조부 참판 최응현 밑에서 자랐다. 즉 모녀가 모두 친가가 아닌 외가에서 태어나고 살아 눈길을 끈다. 이는 조선 전기까지의 우리의 가족문화가 여성의 집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로 눈여겨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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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과 이율곡 선생이 태어난 외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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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선은 어머니와 오랜 생활을 함께 하면서 그의 천부적인 시와 그림 솜씨를 발휘하게 된다. 

    아버지 신명화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18세손이다. 학문은 했지만 벼슬에 뜻이 없어 재야에 남은 덕에 조광조 등 신진사림이 처형 당한 기묘사화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신인선은 19살이 되던 해 한양에 사는 덕수이씨 가문의 이원수(李元秀)와 결혼해 4남3녀를 낳았다. 이 중 셋째 아들은 33살에 낳은 이(珥)다. 

   그가 율곡 이이(李珥)다. 그리고 신인선은 그 유명한 신사임당(申師任堂)이다. 

   우리는 신사임당은 너무나 익숙하게 알고 있지만 정작 그의 본명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인선, 요즘 들어도 꽤 있을 법한 이름이라는 게 신기하다. ‘사임당(師任堂)’은 당호다.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로 지덕을 겸비한 태임(太任)의 여성상을 본받는다는 의미로 지은 호다. 

    태임은 성품이 올곧고 오로지 덕(德)을 실행한 최고의 여성상으로 특히 자녀교육에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문왕을 임신했을 때는 나쁜 것을 보지 않았고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았으며 거만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아 아들을 훌륭한 왕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오늘날의 임산부들의 태교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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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과 이율곡 선생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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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인품은 태임을 닮고자 했고 자신의 천부적인 시와 글씨, 그림의 재능은 안견(安堅)의 작품을 보며 독학해 키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렸던지 풀벌레 그림을 그린 후 볕에 말리려 마당에 내놓자 닭이 먹이인 줄 알고 쪼아 종이가 찢어질 뻔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표적인 그림으로 산수도(山水圖)와 초충도(草蟲圖) 등이 유명하고 사친(思親) 등의 시도 후세에 길이 남겼으며 이외에도 수많은 작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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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화가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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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보면 신사임당은 그 자신이 이미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예술인 반열에 올라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 ‘현모양처’라는 편협된 시각으로만 보려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그렇게 훌륭한 학자를 낳아 교육하고 키운 어머니로서의 인품도 당연히 인정받아야겠지만. 

신사임당은 율곡을 낳기 전날 밤 용이 나타난 꿈을 꾸었는데 율곡이 태어났다. 그래서 그 방을 ‘몽룡실(夢龍室)’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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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이 용꿈 꾸고 이율곡을 낳은 방 ‘몽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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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 이이(1536~1584)는 1548년(명종 3) 13세에 진사시(進士試) 합격을 시작으로 생원시(生員試) 등 아홉번의 과거에 모두 장원으로 급제해 사람들은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고 불렀다. 율곡이 장원을 독식했으니 그와 동시대에 과거 본 사람들은 그저 붙기만 해도 다행으로 여겼다. 

    율곡은 너무나 많은 벼슬을 해서 일일이 거론하기 조차 어렵다. 하지만 말년에는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大提學)을 지내며 최고의 지성인임을 입증했고 우리 민족의 대스승으로 칭송받고 있다. 1582년에 이조판서, 1583년에 병조판서가 되어 선조에게 시무육조(時務六條)를 바치며 십만양병설 등의 개혁안을 주장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두 모자는 짧은 인생을 살다 갔다. 신사임당이 48세, 율곡은 49세로 생을 마감했다. 

   50년도 못 산 그들이지만 500년이 지나도 그들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4개의 지폐 중 무려 2개에 이들 모자가 등장했을까. 반만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다. 

5만원권 화폐의 인물은 어머니 신사임당이다. 사임당의 초상과 묵포도도와 자수초충도, 월매도와 풍죽도가 있다. 초충도 중 가지가 옅은 색으로 등장한다. 월매도와 풍죽도는 조선중기 매화와 대나무 그림에 뛰어났던 어몽룡과 이정의 작품이다. 

5천원권 화폐의 인물은 율곡 이이다. 지폐에는 이이 초상과 오죽헌, 오죽, 사임당이 그린 초충도 중 수박과 맨드라미가 디자인 돼 있다. 수박은 다산을, 맨드라미는 벼슬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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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모자 화폐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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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죽헌(烏竹軒)은 신사임당의 어머니가 넷째딸의 아들 권처균(權處均)에게 물려준 집인데 권처균은 집 주변에 ‘까마귀 처럼 검은 대나무 숲’이 있다 해서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불렀으며 집의 이름도 그렇게 불리게 됐다. 

    그러니 신사임당과 율곡이 태어난 집이지만 훗날 율곡의 이종제(姨從弟)인 권처균이 오죽헌이라 부른 것이고 오늘날에는 신사임당과 율곡이 ‘태어난 성지’로서의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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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변 대나무가 까마귀 처럼 검다 하여 부른 오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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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의 외가에서 본명이 지어진 이이는 훗날 그의 친가가 있는 파주 율곡리의 지명을 따 호를 ‘율곡(栗谷)’이라 했으니 율곡 이이에게는 강릉과 파주를 빼고는 말할 수 없겠다. 

(오죽헌②에서 계속)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