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 말씀의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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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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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는 다윗 가문의 유다 지파에서 태어났다.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 성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으나, 요아킴 성인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한 뒤 하느님의 섭리로 마리아가 탄생하였다.
안나 성녀에 대한 공경은 6세기부터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어 10세기에는
서방 교회에도 널리 퍼졌다. 요아킴 성인에 대한 공경은 훨씬 뒤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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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예언자가 성전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참으로 자신들의 길과 행실을 고쳐 이웃끼리
서로 올바른 일을 실천하며 주님께 충실하다면 그분께서는
그들이 이스라엘에 살게 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구원받았다며 자만하고 있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견주어 볼 수 있다고 하시며 가라지의 비유를 드신다.
가라지를 뽑아 버리겠다는 일꾼들에게 밀이 다칠지 모르니
그러지 말라고 만류하시며, 수확 때에 함께 거두어
가라지는 태우고 밀은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명하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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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으로 불리는 집이 강도들의 소굴로 보이느냐?>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7,1-1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
주님의 집 대문에 서서 이 말씀을 외쳐라.
“주님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서는 유다의 모든 주민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겠다.
′이는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이다!′ 하는
거짓된 말을 믿지 마라.
너희가 참으로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치고 이웃끼리
서로 올바른 일을 실천한다면, 너희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않고 무죄한 이들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않으며 다른 신들을
따라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예로부터 영원히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땅에 살게 하겠다.
그런데 너희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된 말을 믿고 있다.
너희는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으로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 자신도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
그러면서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 안에 들어와 내 앞에 서서, ′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이런 역겨운 짓들이나 하는 주제에!
너희에게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이 강도들의 소굴로 보이느냐?
나도 이제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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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4-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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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의 부모 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의 기념일에
성인이란 어떤 분을 가리키는 것일지 잠시 생각해 봅니다.
프랑스 출신의 20세기의 대표적 가톨릭 철학자
마리탱의 부인이자 뛰어난 지성과 깊은 영성을 지닌 시인이었던,
러시아 출신의 라이사 마리탱이 어린이들을 위해 쓴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아름다운 대목을 만났습니다.
“모든 성인은 사랑스럽답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마음과
우리 자신의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는 선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인은 그들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요.
마치 모든 꽃은 아름답지만 각각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듯이 말이지요.”
그녀가 아이들에게 들려준 말을 가만히 음미하며,
우리가 아름다움 없이 살아갈 수 없듯이 성인들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가 어떤 아름다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만하게 하였는지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없습니다.
두 분의 이름마저도 성경이 아니라 성전(聖傳)에 따른 것입니다.
그럼에도 두 분 성인의 공경이 일찍부터 교회에
자리 잡은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구세주를 낳으신 분은 낳은 그 사실만으로도
구세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두 성인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어렵지 않게 그려 볼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모습에 그 부모님의 성성과 덕성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의 아름다움은 부드러움과 온화함,
그러면서도 지혜롭고 겸손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꿋꿋하게 지키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찾고 그리워하는 모습입니다.
비록 우리가 성인의 꿈은 아니더라도 성인들을
닮아 가겠다는 마음만은 늘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움을 기뻐하고 그것에 대한 감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나누어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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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주 너를 지키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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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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