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금동대향로 ㅡ 양각상의 해석 셋

2013. 5. 14. 09:07향 이야기

 

 

 

*** 제2단 外山부

 

 

 

 사냥감을 먹고 있는 맥(貊 또는 원숭이?)과 뿔이 난 맹수像  -  順馳過程(遊牧時代 始作)

 

 

 

멧돼지에게 쫒겨가는 소형 곰(?猫熊)을 닮은 동물像   -   부족간의 다툼(?)

 

 

 

수렵像  -   騎馬後射弓法  :  고구려 고분벽화의 수렵도와 유사   -    평면 배치상 제2단 內山부에 속하나 1단 內外 각 5단 배치로 제2단 외산부에 포함시킴     

  * 기마후사궁법(背射法) - 쫒기는 사냥감을 앞질러 달려 머리를 단번에 쏘아 잡는 방법

 

 

 

코끼리코를 가진 맹수像(대형 도마뱀류? 혹은 코끼리 코를 가진 것으로 보아 중국전설상의 貊?)

 

 

떠나는 사람(지팡이를 지닌 2명)을 배웅하는 仙人像   -   民族移動?(東流)

 

 

 

***제3단 內山부 사진

 

 

 

 호랑이와 釣仙像  -  濊?

 

 

 

장갑기병상(裝甲騎兵像)   -    철기군(高句麗軍 또는  漢軍?): 철기시대의 도래를 의미함

 

 

 

꼬리가 긴 새와 등에 약병(?독수리의 시치미 또는 연락문서통)을 지고있는 앵무새를 닮은 조류像

貊 :白居易 <貊屛讚> 貊者, 象鼻犀目, 牛尾虎足, 生于南方山谷中 寢基毗避瘟 圖基形避邪       **** 코끼리를 타고 있는 仙人??***

    : 近代에는 猫熊(莫屬)을 이름 함.  / 바이두 백과

 

 

산 뒤에 숨어있는 거북이像과 동물像(멧돼지?)   -    猪族?에게 멸망된 2개 부족(?)

 

 

 

하늘을 쳐다보는 조류像과 지팡이를 짚고있는 仙人像  -  遼河地域으로 移動?

 

 

 

 

*** 제3단 外山부 부분 사진

 

 

 

수염난 仙人像(?갑옷을 입은 군인)  -  漢軍+ 禿族의 侵入?  , 조류像과 불꽃무늬 山像

 

 

 

인면수상(人面獸像 : 고구려 고분벽화의 말하는 성성이와 비슷), 멧돼지(코끼리코의 貊?)를 타고있는 仙人像과 불꽃무늬 산像

    -  고조선지역인 요동~흑룡강域으로 移動, 흡수동화

 

 

 

현대 감각으로 디자인된 三神山  ,  雙魚紋2 , 香爐, 湖水와 건너편 山, 山脈2   -    麻姑大城의 상징(?): 復本? / 백두산의 聖域化?

 

 

 

떠나는 호랑이像과 뒤돌아 보는 虎像   -   예맥족의 분화?

 

 

 

꼬리가 갈라진(別鍾?)  虎像

 

 

 

큰 石門이 있는 山(醫巫呂山의 天祭穴?)

 

 

 

 

 

     이상의 각 단별 내외산에 양각되어 있는 인물상,동물상과 三神山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본 결과,

 

백제금동용봉대향로에 새겨진 각종 조각상들의 배치는 대체적으로 인류의 역사문화발전 단계와 거의

 

유사하게, 위에서부터 아래로 순차적으로 수렵채취시대인 상고 구석기시대부터 하부 철기시대까지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 백제금동대향로와 <부도지>에 수록되어 있는 마고신화와의 연관성은 추후로도 역사 고고학 학자나 전문가들에 손으로

 

체계적으로 분석 검토되어야 마땅하나, 우선 개괄적으로 살펴본 바로는 백제의 왕실 및 백성들의 조상이 예맥족(후에 부여족)인

 

것으로 추론하건데 황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물(神物)에 조상들의 행적들을 조각해서, 각종 제례나 의례시에 향을 피워

 

사용하는 것도 의미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건데, 대향로와 마고신화와의 관련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위서논란이 있는 신라 박제상의 아들인 백결선생 박문량이 저술하고 김시습 선생님이 하나

 

를 더한 <징심지> 중의 <부도지>의 마고신화는 기억력에 의존하여 1953년에 다시 필사되었다고는 하나, 한민족의 상고시대의

 

설화나 전적류를 후에 집성한 것이 틀림이 없어 보인다.

 

     박제상은 420년 경에 일본에 볼모로잡혀가 있는 왕세제(王世弟)를 구하려 가서, 일본왕의 회유를 뿌리치다 순국하였고,

 

백제금동대향로는 5~6세기 경에 제작되었다고 역사학계에서 추정하는 바, 약간의 시차는 있으나 거의 같은 시기인 그 당시에는

 

신라 백제 공히 마고신화가 통용되고 있었다는 증거를 금동대향로의 양각상 해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대향로의 하부 앙련부의 조각상의 해석은  신화해석과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여 생략한다.

 

 

 

 

       강호제현의 크신 질책을 고맙게 여기겠사오며,  조그만 자료검토의 기회로 삼고져 합니다.

 

       부디 제가 우매하고 어리석었음을 조속히 깨우쳐 주시는 분이 계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