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연종집요(蓮宗輯要)』 제10장 운명할 때의 행사 - 5. 가족의 주의 할 일

2014. 9. 11. 13:12경전 이야기

홍인표 저 / 경서원에서 1983년『정토로 가는 길-蓮宗輯要-』
제10장 운명(殞命)할 때의 행사(行事)
5. 가족의 주의 할 일 

      가족이나 친족들은 운명할 사람에게 언어와 행동을 매우 조심하여
      왕생의 큰일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할 것이다.

      1) 운명할 사람에게 슬픈 기색을 보이거나 눈물을 흘리지 말 것이며,
      2) 운명할 사람에게 애정을 못 이기어
      섭섭한 말이나 집안일이나 세상일을 말하지 말 것이며
      3) 요란하게 떠들지 말아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일로 인하여 운명하는 사람에게
      슬픈 마음을 일으키거나 애정에 끌리거나 다른 일에 마음이 산란하게 되면
      정념(正念)을 잃고 악도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 무당, 판수, 외도(外道)들의 하는 행사를 혼용하지 말 것이니,
      이것은 해만 있고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불법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까닭이 된다.

      운명한 후에도 조념(助念)을 계속하되 염(殮)하는 시간을 제하고는
      四十九일까지 영전(靈前)에서 가족들이 염불할 것이며,
      또 선지식(善知識)을 청하여 중유(中有)에게 설법하되
      「중유가 어떠한 경계(境界)를 당하든지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하고
      일심(一心)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라」고 설명하여 들려주면
      중유는 염불하는 소리와 선지식의 설법을 듣고 부처님의 힘을 얻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망자(亡者)가 정신을 잃은 후에 곧 울거나 옷을 갈아입히거나
      손발을 거두거나 몸을 자리를 움직여서 옮기지 말고
      신식(神識)이 다 떠나간 후에 최소한 8시간 이후에 행사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시체에 만약 한 곳이라도 따듯한 기운이 있으면
      신식이 아직 다 떠난 것이 아니고,
      그 시체가 다만 입으로 말만 못하고 몸을 움직이지 못할 뿐이고
      지각(知覺)은 아직 남아 있으므로 이때에 우는 소리를 들으면
      애정이 생기고 불법 생각이 식어지는 까닭으로
      애정의 마음을 따라서 몇 번이고 형상을 바꾸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에서 해탈(解脫)할 수 없고,
      몸을 자리를 움직여서 옮기면 고통이 되어 성난 마음이 생기고
      불법 생각이 적어져서 악도에 떨어지기 쉬우니라.
      이때에 가장 이익을 얻는 것은 염불이 제일이고
      가장 해를 끼치고 왕생에 절대 불가한 것은 떠드는 소리나 흔드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에서 망인이 운명하자마자 손발을 거둔다고
      손목과 발목을 묶어서 염(殮)할 때까지 두는 습관이 있으나
      이것은 운명 후에 시체를 그대로 두면 골절이 굽어 굳어져서
      염하기가 불편하다고 해서 하는 일이나,
      만일 신식이 시체에서 떠나기 전에 손발을 거두다가
      신식이 고통을 느끼어 성이 나면 안 될 것이니
      손발을 거두지 말고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그대로 두었다가 설사 굽어 굳더라도
      뜨거운 물에 수건을 담갔다가 물을 짜고 굳은 곳에 대어 두면
      굳은 것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니 염려할 것 없다.

      또 유가(儒家)의 습관인 초혼(招魂)도 부를 필요가 없으니
      지성으로 염불하여 망자의 명복(冥福)을 빌면
      부처님의 원력(願力)으로 명부(冥府)에 가지 않고
      곧 극락으로 직행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시체를 염할 적에 금강경탑다라니(金剛經塔陀羅尼),
      천수탑다라니(千手塔陀羅尼), 수구다라니(隨求陀羅尼) 등을 넣어서
      망인이 다라니의 공덕으로 선도(善導)에 태어나기를 원한다.

      그러나 위의 다라니 외에 대관정광진언(大灌頂光眞言)
      즉 광명진언(光明眞言)이 가장 좋으니
      이것은 글자 수가 간단하여 二十여 자에 불과하고
      또 범자(梵字)의 획(劃)이 시체에 닿으면 정토에 태어난다는 계송(偈頌)이 있으니

      진언범자촉시골(眞言梵字觸屍骨)
      망자즉생정토중(亡者卽生淨土中)
      견불문법친수기(見佛聞法親授記)
      속증무상대보리(速證無上大菩提)라 하였다.

      망인을 위하여 복을 짓는 도(道)는 보시(布施)가 위주(爲主)이며,
      그 중에서도 망인의 유물로 복을 짓는 것이 가장 좋으니
      망인이 많은 이익을 얻는 까닭이다.

      「무상경(無常經)」에는
      「망인의 신구(新舊)의복이나 몸에 따라 쓰던 물건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그 망인을 위하여 부처님, 달마(達磨), 승가(僧家)에 보시하면
      이로 인하여 망자의 업장(業障)이 가벼워지고 공덕, 복리(福利)의 이익을 얻을 것이니
      좋은 의복을 시체에 입혀 보내는 일은 하지 말라」하였다.

      그러므로 망인의 유산이 있으면 전폐(錢幣: 돈)로 바꾸어서
      불상(佛像)을 장엄(莊嚴)하고, 경전(經典)을 출판하고, 승가에 보시할 것이며,
      또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생물(生物)을 놓아 보내는 등
      유정에게 유익한 일을 할 것이다.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는
      「만일 부모가 죽어서 아귀도에 낳았을 때에
      그 자손이 망령(亡靈)을 위하여 복을 지으면 아귀가 곧 이익을 얻을 것이요,
      만일 망령이 천도(天道)에 낳았으면
      천도에는 뛰어나게 기묘한 보장(寶藏 곧 寶庫)을 성취하였으므로
      인간의 물건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지옥에 낳았다면 몸에 극심한 고를 받으므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고 축생도 그러하며
      아귀도 원래 애탐간린(愛貪慳吝)으로 인하여 아귀도에 떨어진 것이므로
      아귀가 된 후에는 항상 그 허물을 후회하고
      추천(追薦)의 이익을 생각하므로 그 이익을 얻는 것이니
      슬기가 많은 사람[智者]은 아귀를 위하여 부지런히 복덕을 지을 것이라」하였다.

      「관정수원왕생시방정토경(灌頂隨願往生十方淨土經)」에는
      「유정(有情)이 삼보(三寶)를 믿지 않고 법계(法戒)를 행(行)치 아니하다가
      죽은 뒤에 삼도팔난(三塗八難)에 떨어져서 모든 고통을 받을 적에
      친족들이 망인을 위하여 복을 닦으면
      七분(分) 중에 一분의 복을 망인이 얻는다」하였고,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에는

      「세상에 있을 때에 선인(善因)을 닦지 아니하고
      많은 중죄(重罪)를 지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친척들이 망인을 위하여 온갖 성사(聖事)를 지으면
      망인은 七분(分)의 一 공덕을 얻고 六분 공덕은 산 사람이 얻는다」하였다.

      《註》 

      -. 초혼(招魂)
      사람이 죽었을 때에, 그 혼을 소리쳐 부르는 일.
      죽은 사람이 생시에 입던 저고리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은 허리에 대고는
      지붕에 올라서거나 마당에 서서, 북쪽을 향하여
      ‘아무 동네 아무개 복(復)’이라고 세 번 부른다.

      -. 삼도팔난(三途八難)
      화도(火塗 지옥), 혈도(血塗 축생), 도도(刀塗 아귀)의 삼도(三塗)와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고 정법(正法)을 듣지 못하는 여덟 가지의 난(難)을 말함이니
      재지옥난(在地獄難), 재축생난(在畜生難), 재아귀난(在餓鬼難)
      이상 셋은 고통이 너무 심해서 법을 들을 수 없고
      재장수천난(在長壽天難), 재북울단월주난(在北鬱單越洲難)
      이상 둘은 낙이 너무 많아서 법을 듣지 못하고
      세지변총난(世智辯聰難), 농맹음아난(聾盲瘖瘂難), 불전불후난(佛前佛後難)
      세지변총난은 세상 지혜가 너무 수승한 탓으로 분주하여 법을 듣지 못하고,
      농음맹아난은 눈 멀은 자, 귀가 먹은 자, 말을 못하는 자는
      신체적 결함으로 수행하기 어렵고,
      불전불후난은 부처님이 안계시므로 불법을 직접 만날 수 없는 것이라 함이다.


출처 : 미주현대불교
글쓴이 : 염화미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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